사 17:1
다메섹에 관한 경고라 보라 다메섹이 장차 성읍 모양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
기가 될 것이라 - "다메섹"은 수리아 나라를 가리킨다. 그것은 실상 수리아 나라의 수
도를 가리킨다. 그것은 안티리비누스산 밑에 있는 부요한 평원에 자리 잡고 있으며 많
은 작은 산들로 둘러 싸였다. 거기에는 크리솔호스(Chrysorrhoas)라는 강이 흐르고 있
다. 그 강은 필경 여러 갈래로 갈렸는데 그 중요한 것은 아바나(Abana)와 바르발
(Pharpar) 두 강이다(왕하 5:12).
수리아 왕국은 유다 왕 아하스 제 4년에 파멸되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은 그 전에
선포되었을 것이다.
"경고"라는 말에 대하여는 13:1의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여라. "성읍 모양을 이루
지 못"한다는 것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Tiglathpileser)로 말미암아 그 도시가
파멸될 것을 가리킨다(왕하 16:9). 후에 다시 건축됐으나 느부갓네살로 말미암아 재차
파멸을 당하였다. 디글랏 빌레셀이 다메섹을 파멸시킨 유적(遺蹟)에 대하여 말하여주
는 조각문(彫刻文)이 발견되었으니 곧, 디글랏 빌레셀이 2년 동안(주전 333-332)에 다
메섹 나라를 훼파하였다고 하였는데 거기 말하기를, "내가(디글랏 빌레셀) 목 베어 죽
인 자들의 수효는 다 셀 수 없고 르신의 아버지 벤하닷의 왕국을...500 도시를 훼파하
여 무더기를 만들었다"고 하였다(Schrader-Die Keilinschriften und das A.T.,p.150
sq.u.152 sq.). 이렇게 이사야의 예언은 후에 역사적 사실로 이루어지고 말았다. 다메
섹이 현재까지 있지만 그것은 후에 재건된 것 뿐이다.
사 17:2
아로엘의 성읍들이 버림을 당하리니 양 무리를 치는 곳이 되어 양이 눕되 놀라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 "아로엘의 성읍들"은 세 도시를 의미하는데, 하나는 유다 지방
에 있고(삼상 30:28), 다른 하나는 요단강 동쪽 이스라엘 땅의 남쪽에 있고(수
12:2,13:16), 또 다른 하나는 그 북쪽에 있는데 라빠에 가까운 곳이다(수 13:25;민
32:34)(Alexander). 이 도시들이 파멸되리라는 예언도 디글랏 빌레셀의 침략으로 말미
암아 성취되었다(왕하 15:29). 그곳들이 황폐하여 양들이 누워 먹는 초장이 되리라고
한 것은, 거기에 인가(人家)가 없을 것을 의미한다.
사 17:3
에브라임의 요새와 다메섹 나라와 아람의 남은 백성이 멸절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 같이 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에브라임의 요새"라는 말은, 에브라
임 곧, 이스라엘 나라의 수비(守備)를 위한 지방들을 가리키는데 그것도 멸절되고 다
메섹 나라의 백성(아람의 남은 백성)도 멸절되리라고 한다. 여기서는 이렇게 두 나라
가 동일한 파멸에 참예할 것을 말하여 그 나라들의 동일한 죄악을 암시하여 준다. 그
나라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 곧, 유다 민족을 침해(侵害)하기 위하여 그 때에 동맹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사 7:2). 그러한 동맹을 여호와께서 미워하셨다(사 7:4-7). 동
일한 죄악은 동일한 벌을 받게 되는 것이 세상에 종종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이 역시
공의로우시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
같이 되리라". 곧, 다메섹 나라가 하나님의 벌을 받아 그 나라의 모든 자랑거리(영광)
가 없어지게 될 터인데 그것은 북쪽나라 이스라엘이 당할 일과 같을 것이다. 이 두 나
라의 범한 죄악이 같으니 그 받을 벌도 같을 것이라고 여기 부언(附言)되었다.
사 17:4
그 날에 야곱의 영광이 쇠하고 그 살찐 몸이 파리하리니 - "야곱의 영광"이라는 말
은 이스라엘 나라의 국운(國運=혹은 그 나라의 자랑거리)을 가리킨다. 그 국운이 앗수
르의 침략으로 인하여 쇠함이, 마치 건강하던 사람이 수척하여 볼 모양 없이 된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사야는 나라를 인체(人體)에 비유하기 좋아한다(사
1:5,6,7:8,9,8:8,10:18). 북쪽 나라 이스라엘은 이 때에 물질이 부요하므로 인하여 나
타(懶惰)하여졌고 방종하여졌다. 그렇기 때문에 선지자들은 그것을 꾸짖으며(렘
5:28,50:11;암 4:1) 경성시키려고 한다. 그들이 경성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벌을 받아
있는 것도 다 빼앗기고 파리할것 뿐이다.
사 17:5
마치 추수하는 자가 곡식을 거두어 가지고 그 손으로 이삭을 벤 것 같고 르바임 골
짜기에서 이삭을 주운 것 같으리라 - 이것은 이스라엘이 당할 앗수르의 침략이, 하나
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우연히 될 것이 아님을 밝혀준다. 심판을 "추수"에 비
유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종종 나온다(마 13:30;계 14:14-20). 심판이 이렇게 비유
되는 이유는, 개인이나 나라들이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됨이, 언제나
있는 일이 아니고 그 죄악이 관영한 때를 기다려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다시 말하면,
곡식이 익은것 같이 죄악이 가득찬 때에 하나님께서 벌하심).
"르바임 골짜기"는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면서 좌측에 놓여 있는 평원이다.
여기서 그것을 들어서 말하는 이유는, 그 토지가 비옥하여 곡식을 많이 내기 때문이
다. "이삭을 줍"는다 함은 곧, 추수를 의미한다.
사 17:6
그러나 오히려 주울 것이 남으리니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실과 이 삼개가 남음 같겠고 무성한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사 오개가 남음 같으리라
- 이 비유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1)하나님의 백성이라도 범죄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징벌을 아끼지 않으신다는 것.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일수록 채찍을 주신다(히 12:5-13). 우리 본문 말씀은, 하
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심히 벌하시매 그들이 전화(戰禍)를 당하여 많은 사
람이 죽었으므로 마치 실과가 많이 떨어진 과수(果樹)와 같다고 한다.
(2)그러나 택한 백성은 끝까지 망하지 않는다는 것(요 5:24,6:37,40,51,10:27,28).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환난과 곤고를 당할 때에 회개할 뿐이고 낙심할 것은 없다.
교회는 음부의 권세를 이기나니(마 16:18), 그 이기는 비결이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
니고, 하나님의 선택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는
것이 아주 멸망 당할 것을 목표한 것이 아니고 다만 회개와 신앙 연단을 목표한 것인
줄 알아 그 방향으로만 힘을 쓸 것이다.
사 17:7,8
그 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자를 쳐다보겠으며 그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를 바라보겠고 자기 손으로 만든 단을 쳐다보지 아니하며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아세
라나 태양상을 바라보지 아니할 것이며 - 이스라엘 백성은 위에 벌써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므로 영적 큰 유익을 받았으니 그것에 대하여 여기 7,8절이 말한
다. 곧, 그들이 이제부터는 하나님만 신앙하는 자리에 서게 된다. 신자가 징계의 고난
을 바로 받으면 그것보다 몇 백배나 큰 유익을 받는다.
사 17:9
그 날에 그 견고한 성읍들이 옛적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버린 바 된 수풀속의 처
소와 작은 산꼭대기의 처소 같아서 황폐하리니 - 여기서는 또 다시 본장 초두에 선포
된 이스라엘이 받을 신벌(神罰)에 대한 말씀(2-6)으로 되돌아 가서 그 참상을 진술한
다. 곧, 이스라엘의 견고한 성읍들이 앞으로 임할 앗수르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내어버
린 성읍과 같이 폐허가 되리라는 뜻이다. "옛적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버린 바 된
수풀 속의 처소". 곧, 옛날에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 민족 앞에서 정복을 당하여
내어버린 도시들이 지금에 와서 "수풀 속의 처소"와 같이 혹은, "산꼭대기의 처소"와
같이 황무하여졌다. 그들(가나안 민족들)은 죄악이 관영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시
는 벌을 받아 그 도시들을 내어버렸지만,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침략할 즈음에는 이스
라엘 자신이 그런 벌을 받아 그 도시들을 내어버려 황폐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한 줄 모르고 이방 종교와 풍속을 좇아 갔기 때
문이다(10절). 죄악이 관영한 자들도 벌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한 줄
모르는 자도 마찬가지로 벌을 받는다.
사 17:10
이는 네가 자기의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자기의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않은 까닭이라 그러므로 네가 기뻐하는 식물을 심으며 이방의 가지도 이종하고 - 여기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늘 체험하는, 구원하여 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가리키는바 구원하지 못하는 무생명(無生命)한 우상(8절 참조)과 반대
되는 참 하나님이시다.
"능력의 반석"이라는 것은 택한 백성의 피난처 되시는,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의미
하는바 이 명칭이 구약에 많이 사용되었다. 신 32:4,15,18,30,31,37;삼상 2:2;삼하
22:2,3,32;시 18:31,46,19:14,28:1 참조. 이스라엘 백성이 이와 같은 하나님을 잊어버
리며 마음에 두지 않은것은 배은망덕하는 죄악이다. 이 죄악이 그 나라 파멸(8절 참
조)의 원인이 되었다. 본절 초두에 "이는"이라는 말은 원인을 보여주는 것이다.
"네가 기뻐하는 식물을 심으며"라는 말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과실나
무(포도나무 같은 것)를 심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영적 의미를 가지는 바 곧,
그 아랫말이 설명해 준다. 곧, "이방의 가지"를 심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방 종교를
가져다가 이스라엘 가운데 이식(移植)하였다는 뜻이다(Alexander). 혹설에 이것은 이
방에서 희귀한 포도 가지를 갖다가 심었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영적 해석이 오
히려 타당하다. 하나님을 떠난 자는 결국 불행하게도 우상을 섬기는 죄에 빠진다.
사 17:11
네가 심는 날에 울타리로 두르고 아침에 너의 씨로 잘 발육하도록 하였으나 근심과
심한 슬픔의 날에 농작물이 없어지리라 - 사람이 자기 생업(生業)을 위하여 수고해야
된다는 것을 옳은 일이지만, 수고한 뒤에 참으로 복된 수확을 얻는 것은 여호와를 경
외하는 자에게 국한되어 있다(시 128:2).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은
고로, 그들이 수고하여 농사한것의 수확을 가져오지 못하리라고, 선지자는 말한다. 이
예언은 앗수르 디글랏 빌레셀의 침략으로 인하여 성취됐다. 전시에는 행군(行軍)으로
인하여 농작물이 못쓰게 될 뿐만 아니라 한재(旱災)와 같은 천재(天災)가 겸병(兼倂)
하기 때문에도 그렇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신 아세라나 바알 같은 농신(農神)
을 섬겨서(8,10 下半 참조), 농사에 수확이 많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죄악에 해당하는 벌을 받게 하기 위하여 농작물이 잘못되는 재앙이 내리도록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흔히 사람이 짓는 죄악의 성질에 해당되는 벌을 내리신다. 시 18:26 하
반 참조.
사 17:12
슬프다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으되 바다 파도의 뛰노는 소리 같이 그들이 소동하였
고 열방이 충돌하였으되 큰 물의 몰려옴 같이 그들도 충돌하였도다 - 이 말씀은, 앗수
르 군대가 북쪽 나라 이스라엘을 침략하기 위하여 군대를 동원하는 것을 가리킨다.
"많은 민족"은, 그 때 앗수르가 많은 다른 나라들을 속방(屬邦)으로 가지고 있었음에
따라 전시(戰時)에 그 속방 민족 가운데서도 군대에 참예하는 자들이 많았다. 그러므
로 여기서 "많은 민족"이라고 하였다.
본절에 "소동"이라는 말이 두번 나오고, "충돌"(* =히브리 원어로 쉐온이니
이는 떠드는 것을 이름이다)이라는 말도 두번 나온다.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세상
세력은 떠드는 것을 그 특징으로 가지지만(시 2:1;사 8:7), 실상 오래 가지 못한다.
그것을 이기고 심판할 자는 결국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과 같이(사 8:6) 고요한 여
호와의 종교이다. 이 세상 세력(예컨대 앗수르의 세력)이 왕성할 때에는 그것이 제일
인 것 같고 필경 그것이 승리할 것으로만 보여진다. 그러나 그것은 메뚜기 같이 성하
여 잠간있다가 사라짐과 같다(나 3:15-17). 그러므로 본절에 소동하며 떠드는 기세를
가진 세상 세력에 대하여 진술하는 선지자는, 사실상 그것이 멀지 않아 맥 없이 사라
질 것을 암시한다.
사 17:13
열방이 충돌하기를 많은 물의 몰려옴과 같이 하나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시리니 그
들이 멀리 도망함이 산에 겨가 바람 앞에 흩어짐 같겠고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 같을
것이라 - "충돌"이라는 말에 대하여는 앞절에 있는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여라. 위에
서도 말했지만 세상 세력은 떠들므로 극히 무서워보여도 하나님은 그것을 쉽게 정복하
신다. 그는 그것을 꾸짖으시므로 진정시키신다. 다시 말하면, 그는 말씀 한 마디로 그
것을 없애 버리신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사람들이 무섭다고 하는 세력이라도 그의 가
장 작고 고요한 방침으로 그것을 정복하시나니 이와 같은 일에 대하여 성경은 많이 말
한다. 눅 11:20,17:14 참조. 하나님의 가장 작고 고요한 처리 방법 앞에서도 세상의
큰 세력은 여지 없이 패배(敗北)를 당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서 이사야는 말하기를,
"그들이 멀리 도망함이 산에 겨가 흩어짐 같겠고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 같을 것이라"
고 말한다. 이것은 물론 앗수르가 하나님의 간섭 앞에서 여지 없이 패배할 것을 가리킨다.
사 17:14
보라 저녁에 두려움을 당하고 아침 전에 그들이 없어졌나니 이는 우리를 노략한 자의 분깃이요 우리를 강탈한 자의 보응이니라 - "저녁에 두려움을 당한"다는 것은, 유대인이 앗수르의 침략 때문에 잠간 동안 두려움을 당할 것을 가리킨다. "아침 전에 그들이 없어졌나니"란 것은, 앗수르 군대가 하나님의 간섭하시는 권능 앞에서 여지 없이 패배할 것에 대하여 예언한다(사 37:36). "우리를 노략한 자의 분깃"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을 침략한 앗수르가 당할 벌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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