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14:1,2
이 부분에서는 유다(이스라엘) 민족을 바벧론의 압제 하에서 해방하여 주실 것을
예언한다.
"다시 택하여"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바칼 오드(* )이니 "그래도
역시 택하여"(still choosing)라고 번역할 수 있다. 곧, 그래도 버리지 않고 택한 백
성으로 사랑하기를 계속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들이 본래부터 택한 백성이었지만
불택자와 같이 극도로 불행한 자리에 빠졌던 것을 이제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원상(原
狀)으로 회복시킬 것을 예언한다.
택한 백성이 어떤 때는 불택자처럼 극도로 비참한 처지에 떨어지는 때도 있다. 그
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그와 같은 자리는, 오히려 극도로 높아진 것보다 소망 있는 것
이다. 그 이유는, 극도로 높아진 자리는, 교만을 가져오기 쉽고 따라서 불행(不幸)을
초래(招來)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미천(微賤)한 자리를 감미(甘味)
있게 차지하고 거기서 은혜 받기를 원한다. 동양 철학의 주역(周易)을 보면, 항용유해
(亢龍有海)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하면, 높아진 용이 유감스럽다는 뜻이니 곧, 높아
진 자리는 위태하다는 것이다. 주역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철학이지만 다만
이 세상 사람들의 경험으로 보아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주역 철학자들은 자기들도 모
르게 하나님의 진리를 이 세상 생활에 국한하여 어느 정도 말하였다고 볼 수 있다. 사
실상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진리를 빌려다 쓰는 일이 많이 있다. 하나님
은 높은 자를 낮추시며 낮은 자를 높이시는 심판자이시다.
"나그네된 자가 야곱 족속에게 가입되어"라는 말씀은, 유대인들이 바벧론에서 돌아
올 때에 바벧론 사람들 중에서 함께 돌아올 자가 있을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스
2:65). 그러나 좀더 멀리 신약 시대에 이방 족속 중에서 신 이스라엘로 주님께 돌아올
것을 예언한다(Calvin). "그들을 얻어 노비를 삼겠고"라는 말씀은, 유대 사람들이 바
벧론에서 돌아올 때에 도덕력(道德力)으로 그 나라 사람들을 감화시켜 본국에까지 데
리고 돌아와 그들을 자기들에게 복속(服屬)케 할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멀리 신약 시대에 유대인에게서 난 구원 운동(요 4:22)이 모든 이방 사람들에게 미칠
것을 가리킨다.
사 14:3
위의 1,2절 해석 참조.
사 14:4-6
바벧론 멸망에 대하여 노래를 지으라는 여호와의 부탁은, 그 멸망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까닭이고 결코 그들의 멸망을 기쁘게 여기는 잔인성이 아니다. 여기서는 어디
까지든지 하나님의 주권(主權)을 높여 그의 공의를 칭송하는 의미에서 말하고 있다.
여기 나오는, "어찌(* =에익=驚歎의 意味) 그리 그쳤으며", "어찌 그리 폐하
였는고", "패권자의 홀을 꺾으셨도다"란 말씀들은, 바벧론이 망한 것이 너무나도 돌연
(突然)하다는 뜻이다. 바벧론이 극도로 왕성한 때에 침략을 일삼다가 망하였으니 그야
말로 가장 힘 있을 때에 망한 것이다. 그것은 점차적 쇠약(漸次的衰弱)을 통하여 망한
것이 아니고 돌연한 것이다. 이런 멸망은 하나님이 주신 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 14:7
"온 땅이 평안하고 정온하니". 이 말씀 뜻은, 세상 사람들을 못살게 굴던 바벧론이
거꾸러지매 그 통치 하에 있어서 고생하던 많은 민족("온땅")들이 평안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바벧론을 죄에 비유할 수 있으니 그렇다면 우리 마음 속에 죄악의 요동이
거꾸러질 때에 심령이 평안해지는 법이다. 진정한 평안은 하나님을 거스리는 요소가
없어질 때에 온다. 죄만 떠나면 노래가 터질 만큼 우리 심령은 즐거운 법이다. 이 세
상 나라들의 질서도 그러하다.
"소리 질러 노래하는도다"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파체쿠 린나(* )
이니 즐거움의 소리로 터진다는 뜻이다. 이것은 오랫동안 눌리워 있던 자가 놓여남으
로 인하여 즐거움이 폭발됨을 가리킨다.
사 14:8
"향나무와 레바논 백향목도 너로 인하여 기뻐"한다고 하였으니 곧, 자연계도 바벧
론의 멸망으로 인하여 즐거워한다는 뜻이다(Calvin). 죄악이 떠날 때에 만물도 기뻐하
는 듯이 보이는 것은 우리의 주관적 심령의 느낌이라고도 할 수 있다. 누구든지 회개
하는 그 순간에는 모든 만물도 좋아 보인다. 그것은 일종 기분(氣分)이라고 할지 모르
나 그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죄악 문제의 해결로 말미암아 대종말의 축복에 대한
예언적인 느낌이라고 함이 당연하다. 아담, 하와가 범죄하므로 땅도 저주를 받아 가시
와 엉겅퀴를 낸 것과 같이 만물이 부패하였으니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속죄
함을 받고 부활의 영광을 받을 때에는 천지 만물까지도 새로워진다(계 21:5). 여기 이
른바, "향나무와 레바논 백향목"도 기뻐한다는 말도 위에 말한 내용을 의미하는 시적
표현(詩的表現)일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해석하기를, 여기 "향나무와 레바논의 백향
목"을 바벧론 군왕들이 전시(戰時)에도 많이 작벌(斫伐)하였고, 자기들의 궁전을 짓기
위해서도 그리 하였는데 이제 바벧론이 망함에 따라 그런 일이 없겠으니 기뻐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인 경우에도 첫째 해석에 위반은 아니고 도리어 거
기에 포함된다. 이런 나무들도 바벧론으로 말미암아 피해(被害)를 받았으나 이제 바벧
론이 멸망하므로 저것들도 해방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인간의 죄악 처분에
따라서 만물도 새로워 진다는 말씀과 상이(相異)되는 것은 아니다.
사 14:9-11
여기서는 바벧론 왕이 죽어서 음부에 떨어짐에 따라 음부가 역시 놀란다는 풍자적
(諷刺的) 교훈을 보여준다. 곧, 음부에 가 있는 영웅(英雄)들과 모든 군왕(君王)들의
영혼이 거기 찾아온 바벧론 왕을 보고 놀랜다는 뜻이다. 그들이 놀라운 이유는, 바벧
론 왕이 땅에 살아 있을 때에 죽음이라고는 당하지도 않을 듯이 너무나도 교만하여서
저희들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그 자신을 신화(神化)하였기 때문이다. 이 세상 영웅
들과 군왕들은 흔히 자기들은 죽지도 않을 듯이 그 심령이 권세로 마비되어 있는 법인
데 바벧론 왕은 그들보다 더하였기 때문에 그들까지도 저의 죽음(음부에 옴)에 대하여
놀란다. 이 말씀은, 바벧론 왕의 교만죄가 얼마나 큰 것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교만은
스스로 속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권세 잡은 자는 그 자신이 누리고 있는
영화와 향락("비파소리") 때문에 그 심령이 장차 받을 죽음과 화(禍)에 대하여는 느끼
지도 못하고 태연(泰然)하게 죄악의 생활을 자랑 삼아 해 나간다. 사실상 사람이 받는
영화와 향락은 사람을 어둡게 만든다. 그러므로 될 수 있는 한 맨 사람(赤身의 사람)
으로 사는 것이 오히려 천국에 가까운 것이다. "구더기가 네 아래 깔림이여 지렁이가
너를 덮었도다". 이 말씀도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고 바벧론 왕의 전생(前生)을 한번
회고(回顧)하게 하는 것이다. 바벧론 왕은 영화와 쾌락에 취하여 마비되었으므로 자기
가 당할 죽음을 상상해 보지도 못했다. 그는 쾌락에서 쾌락으로 낙이망반(樂而忘返)하
다가 결국 거기서 죽었다. 이는 마치, 신라(新羅)왕이 신하들을 데리고 포석정(鮑石
亭)에서 기생들의 손에서 술을 받아 먹다가 후백제(後百濟)가 침입하므로 망한 것과
같다. 쾌락을 누리는 자들은 그 죽은 후에 구더기 위에 누으며 지렁이가 그위에 덮일
것을 모른다. 인생은 언제든지 이 사실을 내다 보면서 살아야 바로 산다.
사 14:12-14
여기 "계명성"이라는 것은, 라틴 월겟 번역(Lucifer)을 따른 것이니 곧, 새벽별이
라는 뜻이다. 왕을 별에 비유하는 것은 성경에 종종 나오는 어투이다. "어찌 그리 하
늘에서 떨어졌으며"라는 뜻은, 극히 교만하였던 바벧론이 망하게 된 것을 가리키며,
"땅에 찍혔는고"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닉다타 라아레츠(* )이
니, 나무가 찍히듯이 바벧론 나라가 멸절되어 땅에 떨어졌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라는 것은, 바벧론 왕이 자기를 모든
군왕들 위에 주재자로 높이겠다는 뜻이니, 이는 그가 자기를 하나님과 같이 높이겠다
는 말과 같은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를 사람들 위에 높인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등시
(同等視)하는 무서운 죄악이다. 사람들 위에는 하나님이 계실 뿐이다.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는 것은 여호와께서 앉
으시는 증거산(예루살렘 성전산)에 앉으리라는 뜻이니 이 말씀 역시 자기를 하나님과
동일시 하는 바벧론 왕의 교만을 가리킨다. 바벧론 왕은 인간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를 신화(神化)하는 교만한 죄를 범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14절도 말하고 있
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좁은 자인 듯이 자처할때에 하나님
의 자기를 외람되이 차지하는데 가까운 무서운 죄를 범한다.
사 14:15-17
여기서는 위에 말한 것과 같이 자기를 극도로 높인 바벧론 왕이 하나님의 벌을 받
아 극도로 비참하여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놀랄만치 된것을 진술한다. 전에 극도로 높
아져 있던 처지와 대조할 때에 지금은 너무나도 비참스러운 것을 보니 그것은 하나님
의 징벌인 것이 분명하다.
15절에 있는 "구덩이"(구더기로 번역된 것은 잘못 되었음)는 무덤을 의미한다. 그
는 이전에 틀림 없이 많은 민족들에게 공포 정치(恐怖政治)를 사용하였다. 우리 본문
이 말한 대로 그는, "땅을 진동시킴", "열국을 격동시킴", "세계를 황무케 함", "성읍
을 파괴함", "사로잡힌 자를...놓아 보내지 않음"과 같은 말은, 모두 다 공포 정치에
속한 행위들이다. 이런 무서운 정치를 할 수 있는 바벧론 왕은 안하무인(眼下無人)이
었다. 그러나 그는 극도로 낮아져 음부 곧, 구덩이 맨밑에 빠뜨리웠다. 이런 급강하
(急降下)의 비운(悲運)은 자연이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징벌로 된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렇게도 엄청나게 돌연한 변동을 받은 바벧론 왕에 대하여 사람들은 자세히
살펴야 그가 과연 바벧론 왕인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사 14:18-20
여기서는 선지자가 바벧론 왕의 비운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진술한다. 곧, 그 왕은
다른 왕들처럼 왕능(王陵)에 묻히우지 못할 뿐 아니라(18절), "무덤에서 내어 쫓겼"다
는 것이다. 이 사실은 바벧론 역사에서 이렇게 성취되었다고 한다. 곧, 느부갓네살이
그 아들 에월무로닥을 왕 위에 세웠다가 옥에 가두었는데, 그가 옥에 갇혀 있는 동안
에 그 아버지는 죽었고 백성은 그에게 왕이 되라고 하였다. 그 때에 그는 자기 아버지
가 돌아올 것이라고 하면서 왕 되기를 원치 않았으므로 백성들은 느부갓네살의 시체
(屍體)를 파내어 그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느부갓네살은 무덤에서 쫓겨났다.
그가 이렇게 된 원인은 폭군으로서의 죄가 다른 왕들보다 우심(尤甚)하였기 때문이다.
"가증한 나무가지 같고"라는 말은, 바벧론 왕이 내어던짐이 될 쓸데 없는 나무가지
같이 버리웠다는 것이다.
"칼에 찔려 돌구덩이에 빠진 주검에 둘려 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란 말(*
)
은, "칼에 찔려 죽어 돌무더기로 가는 자들의 옷과 같으며, 또한 밟힌 시체와 같다"고
번역될 수 있다(Calvin). 그 의미는 느부갓네살왕이 죽어서 내어던짐이 된것이, 마치
전쟁에서 죽은 자의 옷이 내어버리움이 된 것과 같으며 또한 밟힌 시체와 같다는 의미
이다. 이것은 그가 죄 값으로 사후(死後)에도 이렇게 시체까지라도 욕을 보게 되는 것
을 가리킨다.
"악을 행하는 자의 후손은 영영히 이름이 나지 못하리로다 할찌니라". 바벧론 왕과
같은 이 세상주의(此世主義者)는, 땅 위에서 너무도 명예를 취하였기 때문에 그의 사
후(死後)에는 후손들의 이름까지 없어진다. 이것도 역시 명예를 탐한 죄 때문에 하나
님의 보응을 받은 결과이다. 시 49:10-12에 말하기를, "저가 보리로다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우준하고 무지한 자도 같이 망하고 저희의 재물을 타인에게 끼치는도다 저희의
속 생각에 그 집이 영영히 있고 그 거처가 대대에 미치리라 하여 그 전지를 자기 이름
으로 칭하도다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하였고, 시
49:16-20에는, "사람이 치부하여 그 집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 말찌어다 저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내려가지 못함이로다 저가 비록 생시
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하므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찌라도 그 역대의 열
조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
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하였다.
사 14:21
너희는 그들의 열조의 죄악을 인하여 그 자손 도륙하기를 예비하여 그들로 일어나
땅을 취하여 세상에 성읍을 충만케 하지 못하게 하라 - 여기 "너희"라는 것은 메대 바
사의 군대를 가리킨 듯하다. 하나님께서 그 군대를 통하여 바벧론 사람의 선조들의 죄
악으로 인한 벌을 실시하도록 하신다. 조상 때에 지은 죄벌이 육체적으로는 그 후손에
게까지 미치는 일이 종종 있다. 애 5:7에 말하기를, "우리 열조는 범죄하고 없어졌고
우리는 그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라고 하였다. 출 20:5,34:7;신 5:9;렘 32:18 참조.
"그들로 일어나 땅을 취하여 세상에 성읍을 충만케 하지 못하게 하라". 악인들이 왕성
하도록 그냥 두면 그들은 얼른 세상에 가득히 찰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아직도 자비를 베푸시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까지 왕성하도록 허락지 않으신다. 하나
님께서는 이제 바벧론에 대하여 심판 하시되 악인들이 인수(人數)를 제재(制裁)하신
다. 그가 그렇게 하시므로 악한 바벧론이 다시는 힘있게 일어나지 못하게 하신다.
사 14:22,23
여기서는 바벧론이 필경 지면(地面)에서 멸절(滅絶)될 것을 예언한다. "고슴도치"
는 소택 지대(沼澤地帶=늪과 못이 있는 곳)에 사는 짐승이다. "물웅덩이가 되게"한다
는 것은 바사 왕 고레스가 바벧론을 칠 때에 그 성 가운데로 흘러 나간 유브라데강 물
을 돌려 다른데로 흐르게 하였으므로 온 바벧론은 소택 지대가 될 것을 예언한다.
"멸망의 비로 소제하리라". "비"는 멸망시키는 비(broom)를 의미하는데 그것으로
바벧론 사람들을 소제하듯이 없애버릴 것을 의미한다. 바벧론은 메대 바사의 침략으로
인하여 아주 없어지지는 않았으나 후에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 때에 완전히 없어져 버
렸다. 바벧론이 이와 같이 망하리라는 예언의 목적은, 장차 바벧론에 잡혀 갈 이스라
엘 백성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적국(敵國)이 아무리 강할찌라도 그것도 하나님의 수중
(手中)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이스라엘은, 그 적국의 압박 밑에서도 마음에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이다.
사 14:24
사 55:10,11 참조.
사 14:25
사 37:36 참조. "나의 땅", "나의 산"은 예루살렘 교외(郊外)를 가리킨다. 사
36:2,10:28-32 참조.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 이것은,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앗수르의 이름이 이제는 떠나고 그들
(이스라엘)에게 무거운 짐과 같은 앗수르의 압제가 물러갈 것을 가리킨다.
사 14:26
그 때에 앗수르를 향한 하나님의 징벌은 사실상 그 때에 알려졌던 온 세계를 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그 때에 앗수르는 많은 민족들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 14:27
위의 24절 해석 참조.
사 14:28,29
"블레셋"은 지중해 연안(地中海沿岸)에 있는 나라로서 가나안 땅의 서남(西南)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민족은 다윗이 정복하였던 일이 있고(삼하 15:17-21,21:15), 여
호람 때에 유다를 반역한(대하 21:16,17)일이 있었다. 그 후 다시 웃시야왕이 블레셋
을 정복한 일도 있었으나(대하 26:6), 아하스왕 때에 블레셋은 다시금 머리를 들었다
(대하 28:18). 그 후에 히스기야왕이 블레셋을 쳐 이긴 일도 있다(왕하 18:8).
"막대기가 부러졌다"는 것은, 블레셋을 침해하던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의 죽음을 가리킨다고 하나, 차라리 유다 왕 웃시야나 혹은 아하스의 죽음을 가리킨다고 함이 적당한 해석이다.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 열매는 나는 불뱀이 되리라". 여기 "뱀"은 웃시야를 비유하고, "독사"는 히스기야를 비유하고, "나는 불뱀"은 장차 오실 메시야를 가리킨다고 한다(Rosenmuller). 다만 "불뱀"으로 메시야를 비유했다는 해석이 내 마음에는 합당치 않게 생각되나, 만일 그렇다면 이 귀절의 의미는, 블레셋이 웃시야왕이나 아하스왕의 죽음 때문에 기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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