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8: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큰 서판을 취하여 그 위에 통용 문자로 마헬살랄하
스바스라 쓰라 - 이것은 계시를 보는 중에 된 일인 줄로 생각된다. 서판에 "마헬살랄
하스바스"(* )라고 쓰라 하셨으니, 그 뜻은, 속히 노략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앗수르가 불원한 장래에 다메섹과 사마리아를 노략하게 된다는 예언
이다.
사 8:2
"우리야와...스가랴" 두 사람을 증인으로 삼은 것은, "서판"에 예언을 쓴 자가 이
사야인 사실과 또 그것을 쓴 시기(時期)에 대하여 그들로 증거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
예언이 성취된 때에 그들의 이와 같은 증거는 백성들의 신앙심을 일으킬 것이다.
사 8:3
내가 내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
되 그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 - 이것은 이사야의 실지 행동(實地行動)이 아
니고, 다만 환상 중에 된 일이다(Calvin). 이와 같은 것은, 행동을 통하여 나타낸 계
시(啓示)로서 그 계시를 인상 깊이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
사 8:4
이는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할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긴바 될 것이니라 -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할줄 알"
때는 출생된지 3년 후이다. 이 예언은 과연 그대로 성취되어 예언한지 3년 후에 앗수
르가 다메섹을 정복하였고, 사마리아 왕 베가에게서 요단강 저편 땅을 취하였다
(Delitzsch).
사 8:5-7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유다 나라가 세상 세력을 의존(依存)하고 하나님을 불신앙하
는 죄를 꾸짖으신다. 그 때에 유다 나라는 아람 왕 르신과 에브라임 왕 곧, 르말리야
의 아들(베가)의 세력을 기뻐하였다. 여기 "기뻐하"였다 함은, 부러워하는 심리를 가
리킨다. 기뻐하였다 함은 히브리원어로 메소스(* )인데, 힛직(Hitzig)이라는
학자는 이것을 본래 메소스(* =두려워함)를 잘못 베낀 것으로 여겼다(Zu einer
bessern Auffassung fuhrt Hitzings Vermutung, dass * auf ein
ursprungliches * sich verlaufen zuruckgehe). 그들이 이런 심리를 가졌기
때문에 앗수르의 군사 원조(軍事援助)를 칭하였다.
사 8:8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하리라 하셨느니라 - 이 말씀은 윗절에 계속하여, 유다를 침략하는 앗수
르의 세력이 마치 큰 하수가 흘러 들어옴과 같다고 한다. "목에까지 미치리라"고 한
것은, 유다 나라를 인체(人體)에 비유하는 말이니, 앗수르 군대가 유다의 수도(首都)
예루살렘까지 올 것을 가리킨다.
"임마누엘이여"라고 한 부르짖음은, 유다의 경건한 신자들을 위로하는 말씀이다.
곧, 유다가 앗수르의 침략을 받게 되지만, 임마누엘이 계실 땅(유다 나라 땅)이 아주
멸망할 리는 없다는 것이다(Calvin).
"임마누엘"(* )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인데 메시야의
성호(聖號)이다(Alexander). "그의 펴는 날개"라는 말은, 큰 하수가 창일하여 들어오
는 광경이 마치 날개로 덮는 듯하다는 뜻이다.
사 8:9
"훤화"하여도 못이김. "훤화"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로우(* )라고 하는데
모인다는 뜻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많은 무리를 자랑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도리어
적은 무리로 큰 영광을 나타내신다. 기드온의 300명 군대가 그렇게 싸웠다(삿 7장).
"허리를 동이"며 "띠를 띨"찌라도 못이김. "허리를 동이"며 "띠를 띠"는 것은, 노
력하며 전쟁 준비를 함이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이
다(시 127:1).
사 8:10
"함께 도모하라 필경 이루지 못하리라". 윗절에서, 힘을 가지고도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시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고 하였다. 여기서는 지혜와 모략으로도 못한다고 한
다. 잠 21:30에 말하기를,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
라"고 하였다. 영적 지혜(靈的智慧)가 없이 육적 지혜만 고집하는 자들은 참된 지혜의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실상 맹목적(盲目的)으로 하나님을 제외하고 세상 세력만 표준
하고 모략을 말하는 자들이다.
"말을 내어라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 세상 사람들은 말로써 이긴다고 호언장담(豪
言壯談)한다. 시 12:4 대로,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의 혀로 이길찌라 우리 입술은 우
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라고 한다. 말로써만 이기는 것은 실상 거짓된
승리이니 하나님이 살아 계신 한(限), 사필귀정(事必歸正) 하신다. 고후 13:8에 말하
기를,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사야는, 위에 앗수르가 아무리 유대 민족을 대적할찌라도 이기지 못하고 도리어
자기 파멸(自己破滅)로 돌아간다고 여러번 말한다. 그가 이 말을 이렇게 중복하는 목
적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는 자가 적(敵)의 공격을 끊임 없이 받아도, 그를 도
우시는 하나님은 피곤하여지시는 법이 없다는 것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지불알탈
(Gibraltar)의 해안(海岸) 바위들은 물결이 몇 백번 부딪쳐 와도 끄떡 하지 않는다.
신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한번만 기대할 것 아니라 그는 얼마든지 그것을 기대하여
신앙일관(信仰一貫) 하면서 낙심하지 말아야 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말을 할 수 있기는, 우리가 아는 대로
는 하나님을 신종(信從)하는 사람이어야 할 수 있다. 잠 21:29에 말하기를, "악인은
그 얼굴을 굳게 하나 정직한 자는 그 행위를 삼가느니라"고 하였다. 여기 이른바 "얼
굴을 굳게"한다 함은, 회개는 하지 않고(자기를 반성하며 고칠 것을 고치지는 않고)
강퍅하여지며 남들을 원망하고 있는 태도이다.
사 8:11-13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의 강한 손의 지도를 받아 그 때의 일반 민중의 사상을 따
라가지 않도록 되었다. "강한 손으로...알게하시"는 것은, 그가 대항할 수 없도록 강
하게 임하신 성령의 감화를 가리킨다. 겔 3:14;왕하 3:15;렘 20:7 참조. 이것은 하나
님께서 말씀으로만 아니고 손으로 이끌어 인도하듯이 지도하여 주심을 가리킨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와 같은 지도를 구하여야 한다. 그 이유는, 우리는 너무도 대중
의 의견에 의하여 유동(流動)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 아닌 것이, 대중의
의견이라는 명목하(名目下)에서 정당시(正當視)되는 일이 이 세상에 많다. 그것은 얼
마나 위험한가 ? "이 백성의 길로 행치 말것". 이것이 위에 말한 여호와의 "강한 손"
의 지시 내용이다. 곧, 그 때 유대왕과 백성이, 아람과 에브라임 양국(兩國)이 침해
때문에 앗수르의 원조를 청했는데 이사야는 그것을 반대하였다. 그러므로 그 백성은
이사야의 이와 같은 태도를 가리켜 "반역"("맹약한 자"라는 말의 히브리 원어 케쉐르
=* 는 "반역"이라는 뜻임)이라고 하였다. 이 점에 있어서 하나님은 이사야와 그
제자들더러 백성과 동감(同感)하지 말라고 하신다. 백성들은 실상 아람과 에브라임 양
국의 세력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유대의 앗수르 의지함을 정당시 하였다. 그러나 이사
야와 그 제자들은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들은 여호와만
두려워할 따름이다.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로 너희의 두려워하며 놀랄 자를 삼으라".
세상 사람들은 세력 있는 자를 두려워하지만, 신자들은 "거룩"하신 이를 두려워 한다.
그 이유는, 최후의 승리는 반드시 거룩한 자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사 8:14,15
"거룩한 필할 곳"이라는 말 믹다쉬(* )는, "거룩한 것"(A holy thing)이라
는 뜻이니 이는 그리스도의 칭호(稱號)이다(눅 1:35).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는 피난
처가 되시나, "이스라엘의 두 집(유다와 에브라임의 불신 분자들)에게 거치는 돌, 걸
리는 반석...함정 올무가 되신"다. 이런 양극(兩極)의 결과는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난
다. 그것은 신약에도 계시되었으니, 눅 2:34,35;고후 2:14-16;마 21:42-44을 참조하여
라. 사람들이 여호와께 대한 태도 여하(態度如何)에 따라, 이렇게 양극의 결과가 나타
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 그것은 이렇다. 곧, 여호와는 유일한 진리 자체(眞理自體)시
며 생명 자체시며 거기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이시니(요 14:6), 그를 전적으로 신뢰
하는 자들은 구원을 얻으려니와 그를 배척하는 자(불신자)는 멸망할 것 밖에 없다. 그
이유는, 여호와 밖에는 다른 구원자가 없기 때문이다.
위의 양극의 결과에 대한 말씀은, 불신자들에게나 신자들에게 경고를 준다. 불신자
들에게는 그들이 불신앙을 고집하는 것이, 마치 발뒤꿈치로 송곳을 차는 것과 같은 우
매(愚昧)임을 알려 준다. 그리고 신자들에게는 그들이 불신의 대중(大衆)이라도 두려
워하지 말고 깨끗이 떠나서 여호와(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에게 귀속(歸屬)해야 할 것
을 알려 준다.
사 8:16-18
하나님께서 이사야더러 그의 "증거의 말씀" 곧, 앗수르는 필경 패하고 유다의 남은
백성에게는(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소망이 있으리라는 말씀(겸하여 메시야로 말미암
아 하나님 백성이 구원될 말씀=사 7:1-8:15)을 그 때의 경건한 무리(이사야와 그의 제
자들) 가운데 "싸매"어 두라고 하신다. 그가 그렇게 부탁하신 이유는, 그 때의 일반
민중이 그의 말씀을 신종(信從)하지 않았을찌라도 필경 그 말씀 성취의 날은 확실히
임하겠기 때문이다. 단 12:4,9;계 22:10 참조. "율법"(* =토-라)은, 구원에 관
련하여 선지자가 가르친 말씀인데 사람이 마땅히 행할 하나님의 뜻과 및 하나님의 계
획도 가리킨다(출 19:21,23;신 8:19;삼상 8:9;렘 11:7,24:19;암 3:13).
이사야는 그 전한 말씀의 성취를 확신하고 기다리겠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그 때에
는 "낯을 가리우시"듯이 유다에게 진노하셨으나 구원의 한 때가 반드시 올 것을 이사
야는 내어다 본 것이다. 그는 자기와 그 자녀들(그 제자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될 줄 알았다. "징조와 예표"(* =오도드 모페딤)는, 미
래의 어떤 사항(事項)에 대한 보장(保障)이니 그것들 자체가 혹시 이적적(異蹟的)인
성격을 띈 것일 수도 있다. 이사야와 그의 제자들이 장차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구
원하시리라고, 예언하였으니 그것은, 그 시대에 있어서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한 일("징조와 예표")이지만 장래에 그대로 될 것이다.
이사야는, 저렇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민중의 반응(反應)을 얻지 못한 경우에도
낙심하지 않았다. 그는, 그 전한 말씀이 성취될 영화로운 장래를 기다리므로 만족한
다. 이는 마치 농부가 곡식을 심어 놓고 추수할 때를 내어다 보고 기다림과 같다.
사 8:19-22
여기 있는 말씀은, 그 때 유대 사회의 죄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여기고 접신
술자(接神術者)에게 난문제를 묻는 풍속을 정죄하며 꾸짖는다. 이 꾸짖음은 네 가지로 나온다.
(1)하나님을 믿는 백성은 난제(難題)를 하나님께 물어봄이 당연하다는 것(19절).
(2)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는 것이 모순되다는 것(19절). 죽은 자는 심판
받고 갈 곳으로 갔으며 생명 세계에 간섭할 수 없다.
(3)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일에 지침(指針)으로 생각하라는 것. 하나님의 말씀(기록된 말씀)은 율법과 증거의 말씀이다. 누구든지 환상이나 꿈을 숭상하면 잘못이다(20절).
(4)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는 것을 최고(最高)의 권위로 알고 가르치는 자들은,
마침내 암흑과 비운(悲運)을 당할 것이다(20절 하반, 21,22). 시 16:3,4 참조. 다시
말하면, 그들은 앗수르의 침략으로 인하여 황폐한 땅에서 유리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