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사 1: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
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 "웃시야"는 주전 811년-759년에, "요담"은 759년
-743년에, "아하스"는 743년-728년에, "히스기야"는 728년-699년에 각각 유다를  다스
렸다. 그렇다면 이사야는 근(近) 60년 동안 사역한 장기(長期) 예언자였자. 이렇게 그
가 오래 동안 사역하는 중 두번이나 유다 민족이 적(敵)의 침략을 당하는  참변(慘變)
을 보았다. 한번은 수리아와 에브라임의 합세(合勢)한 침략이고(왕하 16:5), 또  한번
은 앗수르왕 산헤립의 침략이었다(왕하 18:13). 이렇게 이사야는 오랜 세월  동안  뿐
아니라 적잖은 환난 중에서 무거운 성역을 하고 있었으니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이사야"(*            )는 "여호와의 구원"이란 뜻이다. 여기 "대하여"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알(*    )인데 70인역(LXX)은 이것을 "거스려"(against)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우리 한역대로 따름이 합당하다(Alexander).
   "이상"(異像)이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카존(*        )이니 "본 것"이라는 의미
이다. 이것은 예언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구약에 많이 나온다(민 12:6,24:4;삼상  3:1;
시 89:19;단 2:19,7:2,8:1;나 1:1;창 15:1;사 21:2,22:1). 그러므로 선지자를  가리켜
선견자(先見者)라고 하는 때도 있다(삼상 9:11,18,19;대상 9:22,29:29).

 

  사 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
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 이사야가 이 아래에 말하고자 하는 것은,  너무
도 애타는 일이었다. 곧, 유다 민족의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일이었다. 그 죄악은  너
무 크기 때문에, 너무 높아서 소식이 갈것 같지 않은 하늘도 그것을 알 듯하며,  무의
무정(無意無情)한 땅도 그것을 느낄 듯하였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하늘"과 "땅"더러
도 "들으라"고 호소(呼訴)한다.
   "자식을 양육하였"다 함은, 하나님께서 유다 민족을 키우신 것이 마치, 부모가  자
식을 키우듯이 사랑으로써 그들을 양성(養成)하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
하여 모든 좋은 일들을 다 하셨다(사 5:4). 특별히 그가 이스라엘 민족을 땅 위에  세
우기 위하여 모든 초자연적 사행(超自然的事行)들을 많이 실시하셨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렇게 특수 취급하신 것은, 자식을 양육함과 같은 유달리 사랑한 사랑이었다.
   "양육"이란 말이, 히브리 원어에서는 "키웠고 높였다"(*                        )
는 뜻이다. 다른 나라 민족들을 키운 이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유다 민족은 그가 키
우실   뿐   아니라   자기의   백성되는   자리에까지   높이셨다(출     4:22,23;신
14:1,32:6,18-20). "거역"하였다는 말(*      =파솨)은 반역하였다는 뜻이니 이는, 받
은 은혜를 모르는 괴이(怪異)한 행동을 의미하기에 적당하다.

 

  사 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도다 - 여기 "구유"란 것은 나귀의 먹을 것을 담는 그릇이다. 이 말씀은,  이스라
엘의 배은(背恩) 행위가 극도에 달한 사실을 탄식함이다. 배은망덕의 죄는 큰 것이다.
그것은 악으로 선을 갚는 것이기 때문이다. 잠 17:13에 말하기를,  "누구든지  악으로
선을 갚으면 악이 그 집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 배은망덕의 죄는 특별히  불
효의 죄이다. 신 27:16에 말하기를,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
라"고 하였다. 배은망덕하는 자들은 소나 나귀만도 못하다고 우리 본문은 말한다.  돼
지가 도토리는 맛있게 주어 먹으면서도 도토리나무를 모르는 것과 같이, 사람들은  하
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살면서도 하나님을 모른다. 인생이 이렇게  배은망덕하게  되는
원인이 어디 있는가 ? (1)그들이 하나님을 알려고 힘쓰지도 않는 까닭.  그들이  세상
학문을 알기 위하여는 많은 노력을 한다. 그들 중에는 세상 학문을 배움에 열중하느라
고 불빛이 없으면 심지어는 반딧불이나 눈(雪)에 책을 가져다 대고 그 희미한 빛을 통
해서 글자를 읽은 사람도 있지 않았던가 ? 그것을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고 한다. 그
런데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서는 그렇게 힘쓰는 자가 없다. (2)학문이 있는 자들은  멋
없이 교만하여진 까닭. 사람이 어떤 학문을 전공했다면 그 한 가지에 대하여 어느  정
도 아는 것 뿐이다. 그런데 그는 무엇이든지 다 아는 것처럼 자처하니 그것이  잘못이
다. (3)죄를 회개치 않음으로 양심의 화인(火印) 맞은 것 같아서(딤전 4:2=타져서  무
감각해 짐), 죄감(罪感)이 둔하여진 까닭. 죄는 사람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든
다. 죄감과 신감(神感)은 인접 관계(隣接關係)를 가진다. 사람에게 죄감이 있어서  회
개할 때에 신감(하나님을 알게 되는 느낌)이 오기 시작한다. (4)영지(靈知)가 없는 까
닭. 육지(肉知)가 있는 동시에 영지라는 것도 있다. 영지는 어떻게 배양되는가 ? 그것
은, 성경 말씀을 깨닫는 경험, 성경대로 순종하는 경험, 기도를 간절히 하는 경험  등
에 의하여 성령으로 말미암아 얻어진다. 그러나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그와
같은 경험을 가지지 않았음으로 영지가 결핍(缺乏)되어 있었다.

 

  사 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죄상(罪相)이 어떻게 심각하였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깨닫
지 못한 자의 맺는 열매는 죄(罪)위에 죄를 더 짓는 것이다.
   여기 이른바, (1)"범죄한 나라"라는 말은 그 민족의 죄악이 거족적(擧族的)인 죄악
임을 가리키고, (2)"허물진 백성"이란 말 암 케베드 아온(*                  )은, 많
은 허물을 짐지듯이 무겁게 질머진 백성임을 보여주고, (3)"행악의  종자"라는  뜻은,
그들의 죄악이 근거 깊이 내부에서 나오는 사실을 가리키고, (4)"행위가 부패한 자식"
이라는 말에서, 특히 "부패한"이라는 히브리 원어 마쉬키딤(*              )은, "(남
들을) 부패케 하는"것을 의미하는 바(Barnes), 그들의 행위가 고칠 수  없으리  만큼,
심각함을 보여준다. (5)위의 네 가지와 같이 그들의 범죄가 극도에 달하게 된  결과로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다."
인생이, 하나님을 모른 결과로 모든 죄악을 연출하고(3,4절 상반), 모든 죄악을  연출
한 결과로 그들은 더욱 하나님을 멀리 떠난다(4절 하반).
   이렇게 인간은 죄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하나님을 모르기까지 됐다.  사람
이 죄를 회개하기 전에는, 천하의 모든 지식을 다 가질찌라도 제  힘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성령의 감화로 죄를 회개하기만 하면, 일자  무식(一字無識)
하여도 하나님을 바로 안다.

 

  사 1:5,6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  이
말씀은, 그 때의 유대인들이 징계(懲戒)를 받을 대로 받았으나 회개치 않으니 이 이상
더 징계할 필요조차 없다는 뜻이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라는 문구(*
                      )는, "너희가 매를 더 맞을 필요가 무엇이랴"고 번역되어야 한
다(Calvin).
   "온 머리는 병 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라는 뜻은, 신체의 가장 중요한  부
분인 머리와 심장이 상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나라가 징계를 받아서  그  중요한
부분들이 치명적(致命的) 중상(重傷)을 입은 사실에 대하여 말한다. "발바닥에서 머리
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 이 말씀도 그  나라가
하나님의 징계를 많이 받아 파상된 참상을 진술한다. 그렇게 상한 것이 아직 치료되지
도 않았다(6절 하반절). 그래도 그들은 회개하지 않고 "더욱 더욱 패역"하니 그들에게
는 징계도 소용 없다(5절 상반).
   징계를 받아도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소망 없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징계는 죄인들
에게 얼마나 귀한 것인가 ? 양을 치는 목자들이 말 안듣는 양은 그 다리를 꺾어  부러
뜨린다고 한다.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 양으로 하여금 목자와의 접촉이 많게 하
기 위함이다. 곧, 그 양이 목자에게 치료 받는 동안 목자를 사랑하게 되어 다 나은 후
에는 목자에게 잘 순종하게 된다고 한다.

 

  사 1:7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
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하였고 - 이 귀절의 묘사(描寫)는  일찌기
모세가 선포한 저주의 내용(신 28장)과 흡사하다. 미 6:13-16;렘 5:15 참조. 그렇다면
이 때에 유대 나라가 당한 참상이 그 민족의 죄 값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하였고". 곧, 그 때에 유대 나라가 당한 참혹한 형편
은, 사정 없이 잔인하게 행동하는 외국 군대의 자취라는 뜻이다. 여기 관설된 전화(戰
禍)는 요담왕 때에 된 일을 가리킨다고 한다(왕하 15:32).

 

  사 1:8

   "딸 시온". 이것은 예루살렘을 의미하고, "포도원의 망대 같이, 원두 밭의  상징막
같이"라는 말씀은, 사방에 사람은 별로 없고 망대나 상직막만 외로이 솟아 있는  광경
을 이름이다. 그 때에 예루살렘 성읍이 그렇게 인적(人跡)이 없을 정도로 적막하였다.
그것이야말로 "에워싸인 성읍 같이" 사람의 통행(通行)이 두절(杜絶)된 상태였다.

 

  사 1: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였더면  우리가  소돔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 여기 이른바, "만군의 여호와"라는 명칭은 히브리 원어로 예
호와 체바오드(*                    )이다. 그 의미는 별 떼(星群)의 주님이란  것이
다. 인생은 벼룩 한 마리도 복종시킬 수 없는데, 하나님은 저 방대(尨大)하고  무수한
별들을 주관하신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에 대하여 알렉산더는, 이것이 하늘과  땅
과 별들과 그 모든 거민(居民)들의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마르티(Marti)는  정
통적 주석가가 아니지만 역시 동일한 해석을 취한다. 곧, 그는, "만군의 여호와(*   
               )라는 말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모든  능력과
모든 인간계와 자연계의 하나님이라는 뜻이다"(Jahwe ist nicht nur der Gott der is-
raelitischen Heere, sondern der Gott aller Machte in der Menschenwelt und in der
Natur)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권능의 대주재(大主宰)께서 죄인들의 죄를 사하심에 대하여  항의(抗議)
할 자는 없다. 그는 그의 주권에 의하여 사죄하셨으니 그 사죄는 공고하다. 그것이 죄
인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큰 긍휼이다. 소돔과 고모라 같이 전멸되어 마땅한 자들이지
만 남겨 놓음이 되었으니 그들이 얼마나 감사해야 될 것인가 ?

 

  사 1: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
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찌어다 - "소돔"의 죄악은 교만과 육체의 정욕과 무자비한 행
위이다(겔 16:49,50). 그 때에 유대의 관원들은 그런 악행의 지도자들이었다. 또한 그
백성은 "고모라" 사람들 처럼 악했다. 선지자는 그들더러 여호와의 말씀과 법을  들어
보라고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과 법을 안다고 하면서 잘못 알기 때문
이다. 그들이 바로 알았더면 희생의 제물과 절기를 외식으로 취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확실히 그것들을 외식으로 취급하였다(11-15).

 

  사 1:11-14

 "제물", 레 1:1이하, 2:1이하, 6:14,9:17 참조. "배불렀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제물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비유이다. "분향", 출 25:6,30:7 참조. "월삭과  안
식일과 대회", 레 23:24-29,16:31;민 10:10 참조. "견디지 못하겠노라", 이 말씀은 하
나님께서 대단히 싫어 하심을 이름이다. "곤비하였느니라"는 말씀도 역시 그  뜻이다.
"손에 피가 가득함"은 그들이 살인죄를 범하였다는 뜻이다. 여기 말한 "피"는  히브리
원어로 따밈(*        )인데 일설에서는 희생 제물의 피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나
칼빈(Calvin)은, 이것이 피 흘리는 죄 곧, 이 아래 말씀에 지적된 죄("악업", "악행",
"학대")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이 부분(11-15)에서는 , 사람 상대로 행해야 할 마땅한 일들은 실행치 않으면서 하
나님을 섬기는 의식(儀式)만 가짐은 가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의식과
제도를 명령하셨으나, 그것은 그 의식만으로 족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람들은  그것
을 행하면서 겸하여 선한 행실을 가져야 될 것이었다. 13절 하반절, 15절  하반절  참
조. 신인 관계(神人關係)에 있어서 여기서 역설되는 것은, 하나님에게 대하여 지킬 성
별된 생활보다도 사람에게 대하여 옳게 행할 도덕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여기서  종
교의 어떤 의식(예컨대 祭物 바치는 것)보다도 사람에게 대하여 도덕  실천(道德實踐)
이 중요하다는 것을 표시한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과 관계 없는 인본주의 도덕(人本
主義道德)을 관설함이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의미에서 그의 명령 실천으로서 사람
에게 대하여 옳게 행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사람
과의 관계에 있어서 옳게 행해야 될 도덕이 강조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교훈을
볼 때 우리는 신본주의 종교가 사람에게 대한 사랑을 얼마나 심히 강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자들 중에는 신본주의 신앙을 강조하는 자들로서 사람에게 대한 공의와 사
랑의 의무를 무관심하게 생각하는 일이 종종 나타난다. 그것은 심리적으로 그렇게  잘
못 기울어지기 쉬운 경향이다. 신본주의(神本主義)는 하나님을 중심한다고 하니까, 그
들은 하나님 중심 하나님 중심 하면서 사람에게 대한 사랑을 주요시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착(誤錯)이다. 신본주의는 사람 사랑하는 것도 그 불가결(不可缺)
의 표현으로 가진다(요일 4:20).

 

  사 1:16,17

   이 귀절들은 유대인들의 회개를 독촉한다. 곧, 그들이 "스스로 씻어" 근본적인  생
활 변화가 있어야 될 것과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날마다 거룩되어 가야  할  것이라고
한다. 앞의 것은 단번에 있는 기본 회개(基本悔改)요, 뒤의 것은 날마다 있는  점진적
인 성화(聖化)를 가리킨다(Delitzsch).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
고".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의 죄악된 행실을 버리라는 뜻이다. 죄란 것은  모
두 다 하나님의 표준에서 판단되어야 한다. 사람이 스스로 죄의 표준을 정하거나 판단
하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 노릇하려는, 하나님을 모독(冒瀆)하는 죄이다. "선행을 배우
며". 사람들이 지식이 많다 하여도 선을 행하는 데는 모두 다 서툴다. 그들은  이론에
서 멎어지지 말고 실행하는데 학도(學徒)가 되어져야 한다. "공의를 구하며".  "공의"
는 쉽게 행하여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찾아) 구해야 된다. 사람들은 특히 무의
무탁(無依無托)한 자들에게 대하여 공의를 행하지 않고 그들을 업신여기기 쉬운  것이
다. 그러므로 이 아래 말씀하기를,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고 하였다.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
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 "변론하자"(*     
   =니와케카)는 것은 한편 설복(說服)시킨다는 의미도 가진다. 이말을 보면,  진정한
종교는 진리의 합리성을 가진 것이고, 무리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모든 이론은  패배
(敗北)를 당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이긴다. 그러므로 시 51:4에 말하기를,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아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
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라고 하였다.
   "주홍 같을찌라도". 주홍이란 히브리어 솨님(*        )은 거듭 물드린 것 (twice-
dyed)을 의미하는데, 지중해 동쪽 나라들에서 찰나무 곤충(Coccus ilicis)의 알(卵)로
만든 물감으로 물드린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쉬이 지지 않는 색깔이다. 붉은 색은 마
귀의 상징이고(계 12:3,9), 또한 죄악이 관영한 바벧론의 상징이다(계 17:4).  그러므
로 그 색은 남을 죽이며 멸망시키는 성격의 표상이다. 이렇게 죄악이, 악마적(惡魔的)
인 심각한 정도에 이르렀을찌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용서하시어 도리어  "눈  같이
희어"지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눈"의 흰색은 성결의  표상이다(시  68:14;전  9:8;단
7:9;마 17:2,28:3;계 1:14,3:4,5,4:4,7:9,13). 하나님께서 죄인을 이와  같이  만들어
주시는 것은, 그의 주권과 긍휼과 능력으로 하시는 일이다.
   그는, 죄인을 멸망시킬 수 밖에 없는 법칙에 매이신 분이 아니시다. 그는 자유하신
다. 그는 법칙을 초월하여 행하실 수도 있는 주권자이시다. 여기서 우리 죄인들이  구
원 소망을 가진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은 죄인 들을 긍휼히 여겨서  그들을  위하여
구원의 길을 마련하셨고(독생자를 보내셔서 속죄의 죽음을 당케 하시기로 함), 그것을
능력으로 이루신다(성령으로 죄인을 거룩케 하심).
   "진흥"이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톨라(*       )이니 푸른 색(靑色)이  조금  섞인
심홍색(深紅色)인데 이는 두로에 가까운 바다에 있는 많은 조개(shellfish)에서  난다
고 한다. 이것은 윗말, "주홍"과 다른 어떤 특별한 비유의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고
같은 의미를 역설(力說)하기 위한 중복체(重複體)에 속하는 표현이다. "양털 같이  되
리라". 이 말도 위에서 "눈과 같이 희어"지리라는 뜻의 중복체이다.

 

  사 1:19,20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
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
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라는 것은, 저희가 위의 회개하라는  말씀(16,18)에  순종하는
경우에 축복 받을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의 백성에게 이렇게  물질적
축복을 흔히 약속하셨다. 그러나 이런 축복도 그 이면(裏面)에는 그 백성에 대한 하나
님의 호의(好意)를 의미하는 것인 만큼 역시 영적 축복인 것이다.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그 때에 유대 민족의 죄악은  극도에  가까운  것이었다.
2-4, 10-15 참조. 그런 극도에 이른 죄악을 회개하지 않는 백성은 칼에 삼키움이 되는
전쟁의 재앙을 받을것 밖에 없다.

 

  사 1:21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
운데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었도다 - 구약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을 섬
김에 대하여 음행과 같은 죄악이라고 불렀다(신 31:16;출 34:15,16).  그러나  신약에
예수님께서는 심령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시대를 가리켜서도 음란한 시대
라고 하셨다(마 12:39,16:4). 그때에는 바리새 주의가 엄격하여 하나님을  섬겼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렇게 말씀하셨다(Delitzsch).
   하나님과 교회와의 관계가 부부(夫婦)에 비유된 것은 구약의 사상이다(호 2:19,20;
사 54:5,6;계 21:9). 이와 같은 신인 관계(神人關係)가 정상적(正常的)으로  유지되는
것은, 그 백성의 "공평"(곧, 公正)한 재판과 "의리"(의로운 행위)로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결핍한 때에는 이 거룩한 관계가 훼손(毁損)되나니 그것이  인간
측에서 "창기"와 같이 된 셈이다. "공평"과 "의리"는 여기서, 사람이 사람에게 대하여
가질 올바른 행위이다. 그러나 그것이 신인 관계(神人關係)의 순결성(창기와 같지  않
음)을 보존하는데 중요한 것이 된다. 우리는 여기서 종교(사람이  하나님에게  대하여
행하는 도)와 인륜(人倫=사람에게 행하는 법)과의 밀접한 관계를 볼 수 있다.  그러므
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
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다(마 5:23,24). 약 3:8-12;마 15:4-6 참조.
   우리 신자들이 사람에게 올바로 행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호의(好意)를 받을 수  없
나니 아무리 기도하여도 쓸데 없다. 딤전 2:8에는,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
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다. 벧전 3:7 참조.

 

  사 1:22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 여기서  "은"이나  "포도
주"는 유대의 관원들을 비유한다(Delitzsch). (1)칼빈(Calvin)은  여기  이른바  은의
"찌끼"나 "물이 섞인" 포도주는 좋은 것을 가장하는 외식이라고 해석하였고,  (2)델리
취(Delitzsch)는 이것이 이전 황금 시대 관원들의 좋은 덕(德)이 쇠퇴하고 지금은  그
찌끼와 그림자만 남았다는  뜻이라고  한다(Die  Gegenwart  ist  nur  Schlacke  und
schatten der Vergangenheit). 델리취의 이 말은, 옛글에 세쇠도미(世衰道美)라는  문
자와 같다.
   위의 칼빈의 해석이나 델리취의 해석은 둘 다 우리 문맥(文脈)을  정당화  시킨다.
사실상 이사야가 이 글을 쓰던 때는 황금 시대(21절 하반)가 지나간 뒤에  지도자들의
인품(人品)이 무가치하여졌던 것이다. 가장 좋았던 것이 부패하면 가장 나쁜 것이  된
다. 그렇게 무가치한 지도자들은 백성을 다스릴 능력이 없으니 만큼,  외식할것  밖에
없었다. 은의 찌끼는 은 같으나 은이 아니니 외식의 비유요, 포도주에 물을 섞은 것은
물을 남 모르게 섞은 것이니 역시 외식(外飾)의 비유이다. 하나님은 가(假)짜를  미워
하신다. 이름은 신자라고 하면서 실상은 믿음이 없는 자를, 그는 미워하신다. 그 이유
는, 거짓은 마귀의 성격이기 때문이다(요 8:44).

 

  사 1:23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 선지자가 그 땅의 방백
들(관리들)의 죄악을 책망함을 보니 백성들도 부패하였을 것은 명백하다. "윗물이  맑
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격언도 있지 않은가 ? 그 땅의 관원들이 "패역"하다 함은,  하
나님을 떠나 속화(俗化)된 것을 가리킨다(대하 24:17-22).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은, 그들이 돈을 탐하기 때문에(돈을 사랑하는 것이 만악의 뿌리이기 때문에=딤전
6:10), 도적들과 짝한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뇌물"을 받고 도적들을 놓아준
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진정한 관리가 아니고 가짜들이다(22절 참조). 또한 그
들이 고아나 과부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으니 관원의 책임을 하지 않음이다. 그들은,
그런 불쌍한 자들을 보호해 주기 위하여 그런 공직(公職)에 앉지 않았는가 ?
   하나님께서는 가짜 공직자(公職者)들을 가증하게 여기신다. 따라서 이런 가짜 공직
자들의 압제하(壓制下)에 있는 고아들이나 과부들에게 대한 그(하나님)의 관심은 크시
다. 그것이 그들(고아나 과부들)에게 큰 위로거리이다. 기독  신자들이  외로운  자들
("고아"나 "과부"같은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이 그들의 신앙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다.
약 1:27에 말하기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
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고 하였다. 여기 야고보서의 말씀이 진정한 종교 생활의 양면(兩面)을 보여준것과  같
이(불쌍한 자를 돌아봄과 또 자신은 세속에 물들지 않음),  이사야의  이  부분  말씀
(1:23)도 그렇게 한다. 곧,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패역"(하나님을 떠나서 세속에  물
들음)하여서는 안될 것과, 불쌍한 자들을 돌아보지 않으면 안될 것(하반절)을  보여준
다. 그러면 기독 신자의 신앙 생활의 양면을 좀 더 자세히 고찰하면 다음과 같다.
   (1)하나님 앞에서 패역하지 않음. 곧, 세속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을  위한  성별된
생활이다. 이것은, 주님을 믿으며 사랑하며 그의 이름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이다.  마
리아가 값진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부었는데, 그것이 가룟 유다에게는           
                              
낭비(浪費)와 같이 생각되었다. 그에게는 마리아의 그 행동이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
는 것만 못한 일로 생각되었다(요 12:1-5).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이  가난한  자들을
위함보다 신령한 일을 위한 더 귀한 희생으로 여겨 주셨다(요 12:7,8).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들을 위하여 물질로 희생함보다 주님의 신령한 일을  위
하여 희생하기를 원하신다. 학 1:4에 말하기를,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
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하였고, 학 1:8에는,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
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고 하였다.
   (2)신앙 생활의 또 한 가지 중요한 방면은 신자로서 불쌍한 자들을 돌아보아야  된
다는 것이다. 신자로서 가난한 자를 돌아보아야 될 일에 관하여, 약 2:12,13에 말하기
를,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을 행하
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하였다.

 

  사 1:24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수하겠으며 - 신  28:63  참
조.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관영한 자들을 멸하시기를 기뻐하신다. 그  이유는,  죄악이
관영한 자들은 그의 대적이기 때문이다. 그가 죄인들더러 회개하기를 권면하시며 기다
리시기를 여러번 하시되 그들이 끝까지 회개치 않는다면,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대
적하는 원수된 처지에 이름이다. 그렇게도 불회개(不悔改)를 고집하는 자들에게는  선
(善)이나 빛이 도무지 없으며 따라서 그들은 멸망 받아 아까울 것 없다. 그러므로  죄
인 생활의 이와 같은 단계에는, 하나님께서 간섭하신다.

 

  사 1:25

  내가 또 나의 손을 네게 돌려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너의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 "나의 손을 네게 돌려"라는 말씀은, 그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
한 하나님의 간섭을 이름이다. 그것은, 그가 재앙을 내림으로 그의 참된 자녀들을  회
개시키는 동시에, 외식하는 무리는 아주 강퍅하게 해서 멸망케 하는 것이다. "찌끼"와
"혼잡물"은 외식하는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22절 해석 참조. 구약 시대에나 신약 시대
에 교회를 해롭게 하는 것은 외식하는 지도자들이다. 그러므로  약  3:1에  말하기를,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
라"고 하였다.

 

  사 1:26

  내가 너의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 너의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
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이 되리라 하셨나니  -  "처음과
같이" 또는 "본래와 같이". 이 말씀은, 모세나 여호수아 같은 지도자들(의 때)과 같이
선한 지도자들을 일으키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느  시대를  가리키는가  ?
(1)혹설에 이것은, 유대 민족이 바벧론 포로에서 놓여나서  팔레스틴에  귀환(歸還)될
때에 지도한 스룹바벧이나 에스라나 느헤미야 같은 이들을 가리킨다고 하며,  (2)다른
이들은, 이것이 신약 시대에 신(新) 이스라엘 곧, 기독 교회가 사도들의 인도를  받을
사실을 예언한 것이라 하고, (3)또 다른이들은, 이것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성취될
일을 예언한 것이라고 한다(눅 23:42).

 

  사 1:27

  시온은 공평으로 구속이 되고 그 귀정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 -  여기  이른바
"시온"은 유대 민족 전체를 가리킨다. "공평으로 구속"이 된다 함은, 하나님께서 그들
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대로 필경 구원하심이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심은 그
의 공평한 성품의 발로(發露)이다. "그 귀정한 자"라는 말은, "돌아온 자"라는 뜻이니
바벧론 포로에서 돌아올 자들을 의미하든지 혹은 주님께로 돌아와서 믿을 자들을 가리
킨다. "의로 구속"한다 함은, 하나님의 의(義)에 의하여 그들이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
다. 하나님의 백성이 곤란을 당하고 있는 동안은 아무런 구원 소망이 없는 듯하다. 그
러나 때가 이르매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구원 행위는 나타나는 법이다. 사람의 도움 없
이 하나님의 의(義) 뿐으로 교회 구원의 힘이 된다(Calvin).

 

  사 1:28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자도 멸망할 것이라 -  하
나님께서 윗절에 그 백성 중 신실한 분자들에게는 구원 소망을 주는 동시에, 여기서는
외식자들의 멸망을 경고하신다. 교회에는 신실한 신자들과 함께 외식자들이  섞여  있
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일변 위로의 말씀을 주는(27절) 반면에 다른 한편 경고의 말씀도 준다.

  사 1:29
  너희가 너희의 기뻐하던 상수리 나무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너희의 택한 동산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며 - 그 때에 유대인들은 그늘진  상수리나무 아래서와 동산에서 우상을 섬겼다. 그러나 환난의 때에 그와 같은  미신(迷信)이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니 만큼 그들이 그 미신을 행하던 장소를 부끄럽게  여기리라고, 선지자는 경고한다. 신  16:21;왕상  16:33;왕하  16:4;겔  6:13,16:16,39;출 34:13;삿 3:7;왕상 18:19;사 17:8;미 5:14 참조. 여기서 이사야가 염두에  둔  환난은 어떤 것인가 ? 그것은 아하스왕이 만날 수리아와 에브라임으로 인한 전화(戰禍)였는지 혹은 히스기야왕 때에 있었던 앗수르의 침략이었는지 확실히 알기 어렵다.

  사 1:30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 본절에서는, 우상 섬기는 자들에겐 진정한 생명이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사 1:31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 - "삼오라기"는 메마르고 불타기 쉬운 것이다. 악인들은 참된 생명이 없기  때문에 저렇게 건조하다. 악인들의 악은 "불티"같다. 그러므로, (1)그들에게 선한  소원이 있어도 그것은 그들이 불티처럼 타지듯이 건조한 죄악 가운데서 스러지고 만다. (2)그들에게 저장되는 것은 장차 하나님의 불과 같은 보응을 당할 메마른 재료이다. 그것은 심판의 연료(燃料)라고도 생각될 수 있다. 비록 그들이 모든 행악을 잊어버렸을찌라도 그것이 다이나마이트(dynamite)와 같이 터질 날이 오고야 만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공지 박윤선 주석을 읽을 때에 내용이 없는 장
»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01장
65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02장
64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03장
63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04장
62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05장
61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06장
60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07장
59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08장
58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09장
57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10장
56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11장
55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12장
54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13장
53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14장
52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15장
51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16장
50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17장
49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18장
48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19장
47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20장
46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21장
45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22장
44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23장
43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24장
42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25장
41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26장
40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27장
39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28장
38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29장
37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30장
36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31장
35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32장
34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33장
33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34장
32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35장
31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36장
30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37장
29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38장
28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39장
27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40장
26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41장
25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42장
24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43장
23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44장
22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45장
21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46장
20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47장
19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48장
18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49장
17 이사야 박윤선 주석, 이사야 50장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

All the Bibles, Commentaries and Dictionaries here have their own rights.
All rights are reserved for them, not for us. Thanks! Praise our great God, Christ Jesus!

HANGL Lingua Franca 한글 링구아 프랑카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