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아가 03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아 3:1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찾았구나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구나  - 교회로 비유된 술람미 여인은 밤이 이르기 전에 신랑(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렸으나(2:17)이제는 피곤하여 침상에 누워버렸다. 여기 "침상"이란 말을 영적으로 어느 정도 타락됨을 비유한다. 신자는 영적 대망(靈的待望)이 계속되지 못하고 긴장이 풀릴 때에 타락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열 처녀 경우도 그와 마찬가지이다(마 25:5). 그러나 주님(혹은 주님의 은혜)이 더디 오셔도 대망의 긴장을 계속하는 자는 복이 있다. 다윗은, 그런 때에도 참아 견디며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이까" 하면서 은혜의 때를 기다렸다(시 13:1). 시 22:2; 사 26:9; 눅 12:37-38 참조.
   "마음에 사랑하는 자"란 말(*                   )은 "나의 영혼이 사랑하는 자"라고 개역해야 된다. 우리는 영혼으로부터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아 3:2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중으로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구나 - 여기 "성중"은 예루살렘 도시를 가리키는데 교회를 상징한다. "거리"나 "큰 길은 통행이 복잡한 곳으로서  일반  대중이 많이 다니는 곳이다. 신자는 일반 대중 속에서 주님을 만나기 어렵다. 그 이유는,  일반 대중은 신앙의 지도자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을 만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데 있다(왕상 19:12). 마 6:5-6 참조.  우리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으면서 성경 말씀과 및 하나님의 사용하시는 교역자("순행하는  자")의 교훈을 들어여 한다.

  아 3:3
  성중의 순행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 우리 본문을 보면 주님을 찾는 자의 노력이 끝까지 계속됨을 볼 수 있다. 그는 도시 가운데서도 찾아 보았고, 거리와 큰 거리에서도 찾았다. 그래도 만나지 못했으므로 그는 이제 파수 보는 사람들에게 묻기에 이르렀다. 하나님은 이렇게  간절히  찾는 자에게 만나 주신다. 그런데 주님을 찾다가 중단하는 사람이 있다. 그가 그렇게  되는 원인이 무엇인가? 그것은 주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을 끝까지 찾은 이가 있으니, 그것은 그가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성도는 자기 자동차가 아이를 치었을 때에 계속하여 암 5:4의  말씀("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을 외우면서 그 아이를 병원으로 운반해 갔다. 이상한 것은 그 아이에게 아무 상처도 없다는 진단을 받았으며, 그는 주님께 감사하였다고 한다.
   여기 "순행하는 자"는 파숫군을 가리키는데 이는 선지자나 복음의 사역자를 말한다(사 21:11-12, 52:8, 62:6; 겔 33:7; 단 4:13;17). 술람미 여인(교회나 신자)이  신랑(그리스도)을 만나기 위하여 순행하는 자(하나님의 사자)에게 문의 한 것은 잘한 일이다. 하나님의 사자 곧 파숫군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자이다(히  13:17;  사 42:6; 렘 6:17; 겔 13:17), 그런데 술람미 여인(교회)이 그들을 만난  즉석에서  신랑(그리스도)을 만난 것은 아니고 그들을 떠나자마자 그를 만났다.  이것은  사역자에게 대한 교회(신자)의 마음 자세가 어떠해야 될 것을 가르쳐 준다. 곧, 신자는 사역자 자신에게서 주님을 찾을 수 있는 듯이 생각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이다. 물론  파숫군(교역자)이 신자로 하여금 주님을 찾도록 지도해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게 되기는 파숫군을 초월하여 성령으로 말미암아서만 실현된다는 것이다.

  아 3:4
  그들을 떠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미 집으로,  나를 잉태한 자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 주님을 잃었던 도움이  교회(신자)가 주님을 찾아 만난 후에 깨닫게 되는 것은, (1) 교역자의 도움이 크기는 하였으나 그 난제 해결이 전적으로 그들의 도움 때문에 되였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 "그들" 곧, 교역자들을 떠나자 마자 주님을 만났으니,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 된 것 임을 보여준다. (2) 또한 낙심은 금물인 동시에 힘써 노력하면 된다는 것. 교회(신자)가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면 마침내 만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 54:7-8에 말하기를,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다.
   "그를 붙잡고...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술람미 여인(교회 혹은 신자)은  신랑으로 비유된 그리스도를 붙잡지 않았으니, 이것은 진실한 신자의 행동 원리이다. 마 11:12에 말하기를,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하였다.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의 계신 집에 사람이 많이 모여 용신할 틈이 없었을 때에 중풍 병자를 메고 온 네 사람은 지붕을 뜯고 구멍을 내어 그 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려  고침을 받게 하였다(막 2:1-12). 이것도 강청(强請)하는 신앙으로 행동한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고 하셨다(눅 11:8). 이런 강청적 태도로 나오는 신앙 행위는 루디아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말하기를,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하고, 바울 일행을 강원하여 자기 집에서 유하도록 하였다(행 16:15). 또
한 엠마오로 내려가면 두 제자도 다시 사신 예수님을 도중으로 만나서 저희와함께  집에 들어가도록 강권한 일가 있다(눅 24:29).
   "내 어미 집"이나 "나를 잉태한  자의  방"이란  말은  참된  교회를  비유한다(갈 4:26).

  아 3:5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
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 이 귀절에 대하여는 2:7의 같은 말씀  해석
을 참조하라.

 

  아 3:6

  연기 기둥과도 같고 몰약과 유향과 장사의 여러가지 향품으로 향기롭게도 하고  거
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고 - 여기 이른바 "연기 기둥...같은" 것은  많은  향연의
올라가고 있음을 가리키는데, 여기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를 비유한다(계 8:3-4). 이
것은 결국 복음의 영적 향기이다(고후 2:14-16). 이 "연기 기둥"같은것은 물론 그  아
래 나오는 말씀대로 몰약과 유향과 기타 여러가지 향품의 냄새로 성립되었다.
   "거친 들"은 이 세상을 비유한다. 그러면, 이 "거친 들에서 오는 자"는 천성(天城)
을 향하여 행진하는 진정한 성도들의 단체이다. 이 단체는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향기로울 것이 예언되었다. 호 14:45-7에 말하기를,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저희는 곡식 같이 소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
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고 하였다. 하나님께 헌신한 자
는 하나님께 향기롭다(레 1:9).

 

  아 3:7,8

   이는 솔로몬의 연이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인이 옹위하였는데 다 칼을 잡고 싸움
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을 인하여 각기 허리에 칼을 찼느니라 - "솔로몬"은
그리스도의 모형이기도 하다. 마 12:42을 보면,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
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
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고 하였다. 삼하 7:14에 하나님께서  솔
로몬을 가리켜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라고 하신 말씀이  역시  그리스도를
가리킨 예언이기도 하다(히 1:5 하반).
   "솔로몬의 연"이란 말(*                     )은 솔로몬이 만든 연을 가리킨 것인
데 그것은 옛날 한국에서 사용하던 가마와 같은 것이다. 거기에 신부가 탔으니,  신부
는 교회를 상징한다. 교회(성도들의 단체)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루셨다. 그들의  영
적 생명도 그가 지으셨고(시 100:3; 엡 2:10 상반), 그들의 의로운 행실도 그가  이루
어 주신다(엡 2:10 하반; 계 19:8). 고전 4:7, 6:19-20 참조.
   "용사 중 육십인이 응위"하였다는 것은 천사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보호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시어 성도들을 보호하시는 사실은  성경에  많이
나타나 있다(마 18:10; 행 5:19-20, 12:7-10). 하나님은 특별히 성도들로 하여금 범죄
하지 않도록 보호하신다(요 17:15).

 

  아 3:9,10

  솔로몬왕이 레바논 나무로 자기의 연을 만들었는데 그 기둥은 은이요 바닥은  금이
요 자리는 자색 담이라 그 안에는 예루살렘 여자들의 사랑이 입혔구나 -  "레바논  나
무"는 튼튼한 백향목을 말함인데 성화(聖化)된 인간성을 가리키고, "은"(銀)은 순결을
비유하고, "금"(金)은 변치 않는 것을 의미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비유한다
(Hudson  Taylor  Union  and  Communion,  1914,pp.38-39).  "자색   담"이란   말(*          
)은 "덮개는 자색으로 되었다"라고 번역될 수 있다. "자색"은 그리스도의 피를 비유한 것으로서  그  피로  허다한  죄를  덮는다(John  Gill,  Song  of  Solomon,   1854, pp.129-130).            

  아 3:11
  시온의 여자들아 나와서 솔로몬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 모친의 씌운 면류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 이 귀절은 술람미 여인(교회 혹은 신자)의  말이다.  이 말씀을 보아도 역시 아가서는 단순한 세속적인 연애시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독점적으로 사랑하려고 하지 않고 시온의 여자들의 주목을 그에게 집중시킨다. 여기 이른바 "솔로몬"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위하기를 원해야 된다(Hudson Taylor, Union and Communion, 1914, p.39).


Articles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