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7:1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 "이
름 "이라고 한 것은 명예와 다르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께 알려진 실상(實狀)을 가
리킨다. 우리는 신분의 아름다운 실상에서 만족해야 된다. 성경의 말씀은 명예를 구하
는 생활을 죄악시 한다(눅 16:15). 사람이 진실히 신앙 생활을 한다면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의 이름이 도리어 아름답다. 바울의 신앙 생
활이 그러하였다. 그후 6:8-10에서 그는 말하기를,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자 같으나 죽임
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하였다. 그렇다
면 바울은 명예에 대하여 관심이 없고 신앙 생활의 실상을 가졌던 것이다. 그것이 아
름다운 이름이어 많은 사람을 살려 주었다. 그의 역사는 컸던 것이다. 사람들은 향기
와 같이 알았다. 아니 그보다도 그의 향기에 끌리었다. 고후 2:15에 말하기를, "우리
는 구원 얻는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고 하
였다. 세상의 애국자도 실상으로만 움직이는 자라면 그 방면에 있어서 아름다운 향기
가 된다. 도산 안 창호(島山 安昌浩)선생이 일제 말기에 왜경의 눈을 피하여 산중에
숨어 있어 사람들이 나뭇군으로 가장하고 그에게로 찾아 와서 그의 애국 정신을 본받
았다고 한다. 그보다도 우리는 신자로서 사람들을 피하여 숨으려고 해도 숨어지지 않
은 믿음의 실상을 소유한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맞이한 사르밧 땅
과부는 죄 생각이 났다고 하였다. 이것은 그의 성결의 실상(아름다운 이름)의 역사였
다.(왕상 17:18).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이 말씀은, 출생하는 날은 무조건 나쁘다는
염세주의가 아니다. 이것은 비교적으로 하는 말씀이다. 왜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은가? 출생하는 자는 이 세상 죄악 가운데 나서 범죄하게 되는 반면에 죽는 자(하나
님을 공경한 자로서 죽는 자)는 죄와 상관이 없어지는 점에서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
때문이다. 요일 3:2에 말하기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
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고후
5:8에 말하기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하였다. 또 잠 14:32에는 말하기를,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
라"고 하였다.
전 7:2-4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
이 좋게 됨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 여기서는 사람이 육체적 희락(喜樂)에 빠짐보다 별세한 자의 유족을 방문
함이 낫다는 것이다. 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은 것이다(딤전 5:6). 사람이
초상집에 가서 인생의 죽음을 봄으로 깨닫는 것이 있다. 곧. (1) 사람은 다 죽으니 자
신도 마침내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2절 하반). (2) 죽음 문제로 근심하게 되면
서 그 마음이 부드러워진다(3절). 곧, 그 마음이 겸손하여지며 또한 죄를 회개하게된
다.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목사 맥쉰은,학생시절에 불신자였으나 자기 형님의 별세한
부고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 그 형의 시체를 보고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전 7:5,6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우매자
의 웃음 소리는 솔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 여기서는
사람이 충고를 잘 들음으로 잘 될 것을 보여 준다. 그와 동시에 그는 어리석은자("우
매자")의 거짓된 위로를 경계해야 된다고한다. "우매자의 노래"란 것은 악인의 거짓된
위로를 가리킨다. "우매자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다"고 하
는데 그것은 악인의 희락의 태도가 고르지 못하여 일시적으로 격동되나 잠간 후에 사
라진다는 것이다. 가시나무의 불타는 소리는 고르지 못한데 그것은 건전하지 못한 희
락을 비유한다. 어리석은어리석은 사람(악인)은 기뻐힐 이유가 없는 때에도 기뻐한다.
그러므로 잠25:20에 말하기를,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
음 같고 쏘다 위에 초를 부음 같으니라"고 하였다.
전 7:7
탐학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케 하느니라 - 이 말씀은
물질을 탐하는 마음은 어두워져서 의(義)와 불의(不義)를 분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기 때문에(약 1:15)그렇게 된다. 딤전 6:9-10에 말하기를,"부
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은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
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탐심으로 인하여 어두워저서 망한 자들에 대한 기록이 성경에 많이 있다. 예를 들
면, 롯의 아내(창 19:26), 아간(수 7:1), 게하시(왕하 5:20), 가롯 유다(요12:6)등이
다.
전 7:8
일의 끝이 시작되고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 여기 이른바 "일
의 끝"이란 것은 사람이 그 하는 일에 있어서 결실함을 말함이다. 그것이 "시작보다
낫다"는 것은 일을 시작만 하고 마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일을 시작하는 것은 귀하
지만 그것을 끝까지 이루지 못하고 중단할 때에는 도리어 많은 손실을 가져온다. 나무
의 과실이 성숙하는데 이르지 못하고 풋과실로 썩는다면 주인에게 실망을 줄 뿐이다.
그런데 일을 끝까지 성사하는 자들은 인내의 덕에 의하여 그렇게 된다고 할 수 있
고, 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극기(克己)보다 방종스러운 교만 때문이다. 그러
므로 본절 하반절은 말하기를,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라고 하였다. 다
윗은 사울의 박해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참았으므로 왕 위를 얻게 되었고, 사울은 교만
하였으므로 마침내 그 왕위를 빼앗겼다.
전 7:9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 분노는 보통
으로는 금한 마음으로 발하게 된다. 아무리 분노를 발할 만한 경우에도 마음을 잘 지
켜서 시간을 보내면 그 분노가 진정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분노를 천연(遷延)
시키는 지혜를 역설(力說)한다. 잠 15:18에 말하기를,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
를 그치게 하느니라" 하였고,잠 16:32에는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라
고 하였고, 잠 19:11에는, "노화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라고 하였다.
전 7:10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
라.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쩜이냐." 사람들은 흔히 과거의 고통을 잊어버리고
현재의 곤고에만 생각을 집중시킨다. 그래서 그들은 과거가 현재보다 낫다는 생각을
가진다. 솔로몬은 사람들의 이런 사고 방식을 옳지 않게 본다. 이 말씀은 과거를 잊어
버리고 미래를 바라보라는(빌3:13)기독교의 인생관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유교
(儒敎)는 사람들로 하여금 옛날로 돌아가기를 목표로 하여 가르쳤으니, 예를 들면 옛
것을 회복하라는 말(乃復其初)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내세
의 소망을 가지도록 한다. 이것을 보면 기독교는 소망의 종교이다. 이와 다르게 불교
는 멸상주의(滅相主義)를 주장하여 인간 존재의 멸절(滅絶)을 오히려 달게 여기는 염
세주의를 가르친다.
전 7:11,12
지혜는 유업 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하도다 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보호하는 것이 되나 지식이 더욱 아름다움은 지혜는 지혜 얻는 자의 생명을
보존함이니라 - 여기서는 "지혜(혹은 지식)를 높이 평가하였는데, 이 지혜는 세속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아는 지혜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1) 유업 같이 아름답다
고 함. "유업"이란 것은 여기서 영구히 계속되는 소유를 말한다. 참된 지혜는 이렇게
영원토록 가치 있는 것이다. (2) 생명을 보존시킴. 이 지혜를 소유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생명까지 보존함이된다. 잠 11:4에 말하기를,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
에 무익하나 의리는 죽음을 면케 하느리라"고 하였다.
전 7:13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것을 누가능히 곧게 하겠느냐 -이
것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인간이 고칠 수 없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
의 절대적 주권(主權)을 가리키는 말씀으로서 다음 귀절의 말씀 내용과 잘 통한다.
전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은 다음 설교로 대신한다.
1.형통한 날에는 기뻐할 것.
2.곤고한 날에는 생각할 것.
3.미래를 모르게 하신 하나님의 경륜
전 7:15,16
내가 내 헛된 날에 이 모든 일을 본즉 자기의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 중에서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
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 - "자기의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
는 의인"(15절)이란 문구에 있어서, "자기의 의로움" 이란 것은(특히 "자기"란 말이
중점시 되어야 하는 것인 만큼)다음 절(16절)의 "지나친 의"와 동일시되어야 한다. 그
러면 그 "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믿음의 "의"가 아니고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외식주의를 가리킨다. 이런 사람은 도리어 멸망을 자취한다.
일설에 의하면, 여기 "의"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義)라고 하면서 그 아랫말
"멸망"한다는 것은 그저 사람의 죽음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나 이해석은 문맥에 적
합하지 않다.
"악행 중에서 장수하는 악인"은 이 세상에서 악한 사람이 오래 살기도 하는 것을
가리킨다.
전 7:17,18
지나치게 악인은 되지 말며 우매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느냐 너
는 이것을 잡으며 저것을 놓지 마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
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 여기서 지나치게 악한 자도 때 아닌 죽음을 죽는다고 한다.
의도 지나치면(그 "의"는 물론 신본주의의 의가 아님)좋지 않지만 지나친악도 그렇다
(이 말은 조절된 악은 가하다는 뜻이 아님). 무엇이나 지나친 것은 화를 초래한다는
말씀이다.
전 19-22
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선을 행하고 죄를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염려컨데 네 종이 저주하는 것을 들으리라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 네 마음이
아느니라 - "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이 말
씀의 뜻은, 지혜가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는 것인 만큼 오직 그것으로만 치우친 행위
(16절)를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솔로몬은 세상에 의인이 전연 없다는 사실을 지혜
있게 명심하라고 한다(20절).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이 말씀은 나 자신도 죄인이니 남
들에게서 욕설을 들을 수 있는 것인 만큼 드 말 때문에 자극을 받지 말라는 뜻이다.
전 7:23,24
내가 이 모든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
나 지혜가 나를 멀리 하였도다 무릇 된 것이 멀고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 -
여기서는 솔로몬이 인류 사회의 깊은 데 있는 지혜를 찾아보려고 힘쓰지만 그것을 알
기 어렵다고 탄식한다. 솔로몬의 이 말씀과 같이 인생 문제는 인간의 연구에 의하여
해결될 수 없다. 인류의 철학사(哲學史)는 오늘날까지 그 실패를 말하는 것 뿐이다.
솔로몬은 무언 중(無言中)에 인생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는 하나님께 있다고 가르친다.
전 7:25,26
내가 돌이켜 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궁구하여 악한 것이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내가 깨달은즉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
고 손이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독한 자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저를 피하려니
와 죄인은 저에게 잡히리로다 - 솔로몬은 여기서 인생 문제에 대한 해결이 하나님께만
있다는 결론한다. 여기서 그가 깨달은 것은 실상 자기 마음의 산물이 아니다. 그는
벌써 선언한 바 있었으니 곧, 그 자신은 지혜자가 되려고 하였으나 지혜가 그를 멀리
하였다는 것이다(23절 하반). 그는 인간의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다고도 하였으니
(26절 상반). 인간의 마음에서 인생 문제 해결이 생길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일설에 여기 이른바 "여인"이란 말은 문자적으로 여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모
든 자율주의(自律主義)의 이방철학을 비유한다고 한다(Leupold). 세속적이고 정욕적인
철학(골 2:8;약 3:15)은 인간을 미혹시키는 음녀로 잘 비유된다고 할 수 잇다. 솔로
몬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성도만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세속 철학의 올무를 피한
다고 한다(26절 하반).
위의 해석은 여기 "여인"이란 말을 이방 철학에 비유하였으나 이 아래(27-29) 나오
는 말씀을 보면 그것이 문자 그대로 부도덕한 여자를 가리킨것이 분명하다. 솔로몬이
여기서 이와 같은 여자를 위험시 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멀리하며 또 하나님의 말씀
을 모르게 되는 원인이 이 세상을 즐기는 방탕한 생활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
기 "여인"이란 말은 방탕한 생활과 관계된 이 세상주의의 대표적 명칭이다.
전 7:27-29
전도자가 가로되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궁구하여 이것을 깨달았노라 내 마음
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여
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
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꽤를 낸 것이니라 - 여기서는 인생 문제를 해결
하는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는 자가 쉽지 않다는 것을 탄식한다. 물론 여기서 지적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지혜를 깨닫눈 자가 많지 않다는 것인데, 특별히 여자들중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진리를
깨닫을 수 있음에 대하여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기 어렵게 된 원인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진리를 인간에게 계시(啓示)하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특별히 타락 전에) 인간이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 순종하지 않고 자기의 꾀로 생명을 얻을것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을 거역했으므로 도리어 어두워졌다. 솔로몬의 이 말씀은 인류의 타락사(墮落史)를 성경적으로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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