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3: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를 때가 있나니 - 이 말 씀은 범사가 하
나님의 오묘하신 주권에 의하여 이렇게 혹은 저렇게 되어지는 기한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는 소망을 하나님께만 두고 그의 말씀을 순종
할것 밖에 없다.
전 3: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 이말씀은 인간의 날
때와 죽을때가 하나님의 작정 속에서 된다는 일반적 의 미일수도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 지지 않는 다는 예수님의 말씀(마 10:29)도 이와 같
은 뜻을 반영시킨다고 하였다. 곧, 하나님께서 교회로 하여금 열매를 맺어 왕성하게도
하시고, 또는 그 교회로 하여금 환난을 다하게 하신다는 뜻(시 85:6: 사 66:7)이라고
하였다. 그는"죽을 때"란 말이 고난 당할 때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이것이 인간의 행사가 아니고 하나
님의 행사를 가리키는 한, 농부의 파종이나 추수 같은 것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루폴드(Leupold)의 해석과 같이 역시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를 비유한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일을 비유하여 "포도나무를 심으셨다"고 하였으며(시
80:8),그가 그 교회를 옮겨 가신 것을 가리켜 뽑으셨다고 말하기도 한다(시 80:12).
전 3:3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 여기서도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를 비유로 진술한다. 죽인다는 것은 징계하심을 비유하고,
치료시킨다는 것은 사랑으로 다시 회복시키심을 가리킨다. 욥 5:17-18; 호 6:1-3 참
조. 헌다는 말과 세운다는 말이 역시 상반절의 뜻과 같은 것이다.
전 3: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 이 말씀도
한 개인의 흥망 성쇠에 대하여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역시 교회가 역
경에 처하였다가 은혜로 구원 받게 되는 사실도 가리킨다. 시 126:1-6 참조.
전 3: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때가 있으며 - 이 부분의 말씀도 역시 하나님의 처사를 비유하는 것인 만큼 인간의
하는 어떤 일을 가리킨다고 할 수 없다. 돌을 버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파괴시키심을
비유하고, 돌을 거둔다는 것은 그가 다시 중수(重修)하심을 비유한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장중에서 끊임 없이 변천한다. 안는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을 비유한다.
전 3: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 이 말씀도
인류에게 대한(특별히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와 처사를 가리킨다. 교회도 어떤
때에는 하나님의 버림을 당한 것 같이 그 죄로 인하여 비참한 자리에 떨어진다. 눅
15:3-10; 시 74:1-11, 121:3-8 참조.
전 3: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 이 말씀은
인간이 슬퍼할 때와 위로 받을 때가 있음을 가리킨다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이 부분
말씀(1-8)이 하나님의 행사(行事)를 진술한 것이 분명한 것인 만큼, 여기서도 하나님
의 섭리를 비유하였다고 생각해야 된다. 이 말씀은 인간에게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때
와 및 그의 화해의 때를 비유한다. 욥 5:18; 호 6:1-2 참조.
전 3: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이
말씀도 인간에게 대한 하나님의 처사를 가리킨다.
전 3:9,10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 곧,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실 때도 있지만
그의 죄악 때문에 그를 미워하실 때도 있다는 것이다. 땅 위의 전쟁도 하나님의 섭리
에 의하여 성립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위에 진술된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에 대한 인간의 무지를 지적한다.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 주장하시며 이렇게 되게 하시고 저렇게도 되게 하신다. 인생은
그 되어지는 일들의 기한을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기의 뜻대로 무엇을 이루려
고 애쓴다. 그러나 그 일들이 그들의 뜻대로 되어지는 것은 아니다.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主權)은 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배워야 되며 순종해야 된다.
전 3:11
하나님의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
셨도다 - 곧, 천하 만사가 하나님의 때에 맞도록 되어지는 한(限)에는 모두 아름답다.
잠 16:4 참조.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때와 기한을 모르는 어두움 속에서 애쓰고 있
게 된다. 그는 그런 답답한 처지에서 경성(警醒)하여 마음의 자세(姿勢)를 바로 가져
야 된다. 곧, 그 자신은 할 수 없는 자임을 깨닫고 영원(하나님)을 사모하여 믿어야
된다.
전 3:12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
고 - 사람이 선(善)을 행한다는 것은 여기서는 남들에게 유익한 일을 행하는 것을 말
한다. 이것은 나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정도의 선이 아니고 신본주의(神本主義)의
선을 말함이다. 공자(孔子)는, "덕으로써 덕을 갚고 직함으로 원수를 갚으라"(以德報
德以直報怨)고 하였으나,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너
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정하라"고
하셨다(마 5:46-48). 이과 같은 선은 사람의 보수를 바라보고 하는 것이 아니고 여호
화를 의뢰하고 행하는 것이다(시 37:3). 사람은 남을 유익하게 하는 선을 행하므로 자
기 자신도 궁극적 유익을 거둔다. 약 2:13에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하
였고, 요일 4:17에는,"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함이니"라고 하였다. 요일 4:18 참조.
전 3: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하므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
한 알았도다 - 이 귀절은 다음과 같이 개역될 수 있다. 곧,"또한 사람마다 수고한 것
에서 먹고 마시며 만족을 얻음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라고. (1) 사람
이 수고하지 않고 먹고 마심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림이니(창 3:19) 죄악이다. 그러므
로 수고한 열매를 먹는 것이 복이된다. 시 128:2에 말하기를,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라고 하였다. 사람이 노력하며 수고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2) 누구든지 일이 없으면 나태해진다. 나태한 자는
마음 속에 각양 죄를 범하게 되며 또 그 행동에도 잘못된 것이 많아진다. 그 뿐 아니
라 그의 건강도 쇠약해진다. 그러나 사람이 일을 부지런히 하면 그의 심신이 아울러
규율 생활을 하는 것인 만큼 강해진다. (3)일을 할 수 있고 또 그 수확으로 먹게 된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 아는 자는 더욱 기쁨을 얻는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그
에게 왜 기쁨이 없으랴?
전 3:14,15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수도 없나
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
았도나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
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 세상의 만사가 기한이 있고 또 변한다. 그러나 이
렇게 만사를 변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변치 않는다. 이렇게 변동 없으신 하나
님의 주권(主權)은 우리로 하여금 그를 경외(敬畏)하게 한다. 주재자(主宰者)가 없으
신 이렇게 한결 같은 통치가 있을 수 없다. 만일 주재자의 통치가 없이 만사기 우연에
내버리움이 되었다면 우주 만물은 무질서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네 절기(春夏秋
冬)의 순서도 일정하지 않을 것이다.
전 3:16
내가 해 아래서 또 보건대 재판한는 곳에 악이 있고 공의를 행하는 곳에도 악이 있
도다 - 곧, 이 세상 법정에서는 재판장들이 의인과 악인을 공평히 재판하여 구별하지
않는 일이 있다. 저작자 솔로몬은 이점에 있어서 두 가지로 위로를 받는다(17-18).
곧, (1) 하나님은 장차 의인과 악인을 공정히 구별하여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
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불공평한 대우를 받을지라도 오래 참아서 하나님의 공정하신
심판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2) 인간 사회의 불의한 재판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람
들을 겸손해 지도록 시련하신다는 것이다. 그들이 불의한 통치자들의 처사로 인하여
비참하게 죽을 때에는 자기들이 육신 생활의 허무함을 더욱 깨닫게 된다.
전 3:17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목적과 모
든 일이 이룰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 이 세상에서 억울함을 당한 자들이 심판 날
에 하나님의 신원해 주심을 받는다는 것은 성경에 많이 있다(사 10:1-4; 시
37:12-15). 모든 순교자들은 이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담대히 또는 기쁘게 생명을 내
어 놓았다.
여기 이른바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란 말씀은 현세에서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일
을 귀정(歸正)시키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그가 내세(來世)에 모든 사람을 심판
하실 것을 가리킨다. 12:14 에서도 내세의 심판을 말씀한 것이 분명하다. 거기 이른바
"은밀한 일"을 심판한다는 것은 내세의 심판을 가리킨다. 고정 4:5 참조.
전 3:18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였노라 - 여기서 전도자는 이 세상
에서 불의한 재판(16절) 때문에 고난 받는 자의 또 한 가지 위로 되는 점을 보여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 악인들의 불의한 재판을 통하여 인생을 시험하신다는 것이
다. "시험하신다"는 말(* )은 사람들을 시련에 의하여 겸손케 만드는 것을 가리
킨다. 곧, 시련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학대를 받아 죽는 육신의 죽음에 있어서는
짐승과 같음을 깨닫고 육신 중심으로 살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스코트랜드의 유명
한 목사 맥쉰(McCheeyn)은, 어렸을 때에 자기 형의 시체를 보고 인생의 육신의 헛됨을
깨닫고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왔다.
전 3:19,20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
일한 호홉이 있어서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
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흠으로 말미암았음으로 다 흠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속으로 가
거니와 - 곧, 사람들의 육신의 죽음은 짐승의 죽음과 같고 또 헛되다는 뜻이다. 사람
이 이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 한탄하는 때에만 그가 영혼 본위로 살게 된다. 인생들로
하여금 이 단계에 이르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환나과 고통으로써 그들을 시련
(試鍊)시켜 겸손케 만드신다(18절).
전 3:21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 이 말씀은 인생이 겸손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전엔 내세에 대하여 무지하다는
것 뿐이고 저자 자신이 내세의 존재를 의심한다는 뜻이 아니다. 도리어 이것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알래로 내려가는 사실에 대한 저작작의 지식과 신념
을 전제(前提)한 말씀이다. 인간의 영혼의 장래가 짐승과 다르다는 것을 12:7에서도
밝혔다.
전 3:22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분복이라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 상반절의 의
미는, 사람으로서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맡은 일에 충성하며 기뻐함이 제일이라는 것
이다. 그 이유는 하반절에 기록되었으니, 곧, 사람이 한 번 죽으면 다시는 이 세상에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함다.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
가 누구이랴." 이 말씀의 뜻은 사람이 죽으면 그의 뒤에 될 일(그의 죽은 뒤에 이 세
상에서 될 일)을 보려고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한 번 살고 두 번 살지 못하는 고로 현세에서 자기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는 사상은 인류에게 중요하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고 하셨고(마 6:34), 히 3:13에는, "오직 오늘이라 일켤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명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팍케 됨을 면하라"고 하였고, 히 9:27에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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