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시편 08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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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
 하나님이여 침묵치 마소서..... - 주석가들은 이 시가 여호사밧왕의  통치  시대에
기록되었다는 데 대체로 일치한다. 나도 이 견해에 쉽게 동의 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 경건한 왕은 수많은 원수의 무리들과 무서운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는  본래
암몬과 모압 족속으로 더불어 전쟁을 벌였는데, 그 군대는 수리아에서 뿐만 아니라 먼
나라에서까지 동원되었다. 그리하여 그 군대는 숫자로 유대를 거의 압도하였다. 이 시
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멸망시키고자 함께 소집된 원수들의 명단을 열거한  것을  보면
이 시가 그때에 기록되었다는 좋은 근거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성경 역사는 레위인 중
에 하나가 영의 감동으로 예언하여 왕에게 승리의 확신을 준 사실과 그 레위인들이 여
호와 앞에서 노래를 불렀던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그토록 큰 위험 가운데서  거룩한
왕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가 가장 심각한 환난 속에 빠져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
에서 진지함과 열심에 가득차 있는 기도를 볼 수 있다. 이러한 감정은 반복해서  첫머
리에 나오는 "침묵치 마소서.....잠잠치 말고 고요치 마소서"라는 말씀을 하게 만들고
있다. 이 말씀으로 신실한 자들은 만일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구원하가기로 작정하셨다
면 서둘러서 구원해 주시도록 함으로써 이 일을 행하실 기회를 잃지 않으시기를  기대
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느 때까지 그의 도움을 지연시키시든지간에 우리가 인내로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함을
알고 겸손하게 하나님께서 속히 이루어 주실 것을 기도하도록  허락해  주신다.  내가
'잠잠치 마소서'라고 번역한 말씀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자신에게 잠잠치  마소서'인
데, 어떤 사람들은 '주님 자신의 일에 침묵을 지키고 있지 마소서'라고  번역하고  있
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치게 문장을 다듬은 것이 되어 보다 구체적인  주의를  요하고
있다. 이 표현 양식은 '주님 자신을 억제치 마소서'라는 것과 같은 표현이다. 이 말씀
에 대한 것은 다른 여러 곳에서 말한 바가 있으므로 여기서 다시  말한다면  쓸데없는
낭비가 될 것이다.

 

83:2-3
 대저 주의 원수가 훤화하며..... - 앞절에서 나온 기도를 보다 강조하여  말함으로
써 신실한 자들이 모든 인간적 측면에서 원수들의 맹렬한 공격과 간교한 책략에  짓눌
려 사망에서 피할 소망이 전혀 없어졌음이 확증되고 있다. '저희가  훤화하며  머리를
들었나이다'라는 말씀은 그들이 자신들을 내세우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원수들의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은 크게 용기를 잃게 된다. 그들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 간구하여 하나님의 계속적인 사역으로 교만한 자들을 억
누르도록 하는 길뿐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할  때  하나님께
자기 원수들의 완악함을 말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교회를 괴롭히는 자들을  "주
의 원수"라고 부른 사실은 주의해서 살펴볼 가치가 있다. 우리의 원수가 하나님의  원
수도 된다는 것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확신의 근거를 마련해 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원수들을 대적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자비
로우시고 값없는 언약의 열매 중의 하나이다. 이 약속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보호하심
아래 둔 백성들의 축복이 침해받을 때는 그와 동시에 하나님 자신의 위엄이  침해받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큰 힘의 근원이 된다. 한편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
람들과 화평하게 살도록 하자. 또한 우리가 사람들의 손에 환난당할 때 부당하게 고난
을 겪고 있음을 하나님께 확신 있게 호소할 수 있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처신을  정당
하게 갖도록 하자. 원수들의 교만하고 격렬한 공격은 간교하게 위장될 수가 있다.  그
러나 그들이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다는 사실로  만족함으로써
하나님께 속해 있는 영광을 그에게 돌리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분노를 쏟아 놓
는 자들의 교만을 깨뜨리시고 그들의 간교함을 물리치시는 것은 모든  세대를  통하여
익히 해오신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원수의 덫과 함정에 빠져들었다는 생각을  갖
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선지자는 여기서 적절하게 우리가 최고의 위로와 소망을  내
다보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주의 숨긴 자"라고 불러 주신다고 말한다. 어떤  사
람들은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도움과 보호가 이성이나 감각의
눈으로 보기에는 분명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마치 다른 곳에서  하
나님의 백성들의 생명을 가리켜 "감취었다"고 말한 것(골 3:3)과 똑같다는 것이다. 그
러나 이 해석은 지나친 억지 해석으로 본문의 내용이나 본래의 단어 구조에도 전혀 조
화되지 않는다. 이 말씀은 단순히 우리가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어 있음을  가
리킨다. 비록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는 악한 자들과 교만한 자들의 생각대로  드러나는
것같이 보일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감추인 능력으로 보호를 받고 있다. 따라서 또 다
른 시편에서는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
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시 27:5)라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지켜 주심 속에 감추일 수 있는 자는 다만 자신의  힘을
의지하려는 것을 모두 포기해 버리고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자들
뿐이라는 점이다. 자기가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충분히 가졌다고 자만하는 믿음으로 대
담하게도 투쟁에 뛰어들거나 마치 두려움이 전혀 없는 자처럼 막무가내인 사람들은 결
국 옳지 못한 신뢰의 결과가 가져다 주는 것들로 괴로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
로 우리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 피난처를 삼고 최상의 보호를 구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의 연약함을 하나님의 품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83:4
  말하기를 가서 저희를 끊어 다시 나라가 되지 못하게.....하자 하나이다. - 적의에
찬 세력들의 악함이 교회를 완전히 진멸해 버리려는 생각으로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맹렬함을 불어넣어 주는 풀무 노릇을 했던 암몬 족속들과  모압
족속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제한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하갈 사람과 수리아 사람과 다
른 민족들도 그들 못지 않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항하는 증오와 분노로 가득차  있었
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멸망시키고자 무기를 취했었으므로 우리는 이 귀절의 거만한 말
이 연합된 모든 무리들이 한 말이라고 마땅히 생각할 수가 있다. 그들은 피차  계약을
맺고 서로가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려고 반감에 찬 열심과 용기를 가지고 돌진했다. 이
러한 잔인한 증오심을 자극시킨 최초의 장본인은 시초부터 계속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진멸시키고자 애쓰며, 이 목적을 위해서는 결코 자기의 자식들에게  격분시킴을  쉬지
않는 사단임에 틀림없다. "저희를 끊어 다시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여"라는 말씀은 그
들의 뿌리나 가지를 진멸하여 민족 또는 백성으로서는 끝장이 나도록 하는 것을  의미
한다. 이 말씀은 하반절의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다시는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라는
말에서 더욱 분명하게 밝혀지고 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흔히 전쟁이 가져다  주는
결과처럼 이 전쟁이 원수들의 세력 아래 정복당함으로 인한 결과와 비교해 볼때  적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원수들의 잔인성이 목표로 삼고 있었던 것은 그들의 완
전한 멸망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의 영속적인 지속의 근거가 되는 하나님의  작정
을 철폐해 버리고자 하는 것이었다.

         저희가 일심으로 의논하고 주를 대적하여 서로 언약하니
         곧 에돔의 장막과 이스마엘인과 모압과 하갈인이며
         그발과 암몬과 아말렉이며 블레셋과 두로 거민이요
         앗수르도 저희와 연합하여 롯 자손의 도움이 되었나이다(셀라)(5-8).

 

83:5-8
 저희가 일심으로 의논하고..... - 하나님의 교회를 압제하여 전복시키고자 서로 힘
을 모았던 수많은 무리들이 여기서 열거되고 있다. 수많은 나라들이 하나의 강력한 동
맹국을 형성하여 그들의 세력과 가히 비교도 안되는 나라를 멸망시키고자 결속했기 때
문에 자기들의 힘을 가지고서는 그들을 전혀 막아낼 도리가 없는  난국에  처했으므로
하나님의 이적적인 도우심이 필요했다. 분명히 소망이 없는 형편에 처했던 훌륭한  아
사왕은 진실로 이러한 고귀한 기도를 드렸다.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
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대하 14:11).  경건
한 왕에게 이토록 담대한 용기를 주셨던 동일한 성령께서는 온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이 시를 기록케 하시므로 모든 신자들로 하여금 용기를 얻어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도우심을 간구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에도 성령께서는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간
구하는 일을 방해하는 위험이나 어려움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 앞에  이
말씀을 주고 계신다. 온 세상이 모두 합해 우리를 대적할 때에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하는고"(시 2:1)라는  말씀으로
철벽(鐵壁)을 삼는 것이다.
   이 말씀이 마치 거울처럼 하나님의 교회가 시초부터 당해 온 운명을 우리에게 실례
로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유익이 될 것이다. 바로 받아들이기
만 하면 이 말씀은 오늘날 온 세상이 우리를 대적하기 위해 정렬하고 있음을 볼지라도
심한 낙심에 빠지지 않도록 해줄 것이다. 우리는 교황이 얼마나 극악무도하게  우리를
대적하기 위해서 온 세상을 불태우는가를 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어디로 눈을 돌리
든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적의에 차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
게는 아무런 이상한 일도 생기지 않으리라는 분명한 확신에 한 번 도달하기만 하면 우
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피조물의 도움없이도 모든 세상이 시도한 것들을 완전히 좌절시
킬 수 있는 그의 능력을 갑작스럽게 행사하실 때까지 옛날의 교회가 당한 처지를 생각
하고 용기를 얻어 끝까지 인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에서부터 거룩한 자들에게 부여될 도움이 예비되었는가 하는 모든 의심을 그들
의 마음에서 제거시키기 위하여 선지자는 확고하게 밝히기를 교회를 진멸시키려는  자
들은 교회를 보호하고 계시는 하나님께 전쟁을 벌이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우
리의 도움이 되어 주시겠다고 선포하신 약속이 "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
를 범하는 것이라"(슥 2:8)는 귀절에 들어 있다. 다른 시편에서 "나의 기름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시 105:15)라고 족장들에 관해 말한 것도 모
든 선지자들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결케 하셨던 그 기름부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완전한 안전을 보장하는 말하자면 하나의 방패가 되게 하실 것이다.
   여기에 열거되어 있는 열방들이 공공연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의 종들이 부당하게 공격받는 것을 보면 그들과  원수들
사이에 개입하여 종들 편에 서 주시기 때문에, 이 귀절이 그들을 가리켜 "주를 대적하
여 서로 언약하니"라고 표현한 것은 정당한 것이다. 이 귀절은 오늘날의 교황주의자들
을 가리킨다고 유추할 수 있다. 그들이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강한 뜻을  가지고  있을
때에 누군가가 그들에게 '너희가 하나님보다 더 강한가'라고 묻는다면 그들은 곧 대답
하기를 '우리는 옛날 거인들의 흉내를 내어 하늘을 향해 공격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우리에게 행한 모든 상해는 자신을 공격한
것이라고 선포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마치 망대에 앉아 가만히 적그리스도의  열성자들
이 조만간 슬픔과 침울한 경험을 하게 되는 멸망의 앞날을 믿음의 눈으로 멀리서 바라
볼 수 있다.
   "일심으로 의논하고"라는 표현을 어떤 사람들은 '가장 큰 마음의 노력과  진지함으
로 말하고'라고 번역한다. 마음으로 행한 것을 마음의 진지함과 각오를  가지고  행한
것을 뜻함은 우리에게 매우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조금 앞에서  탄식한
감추어진 악한 계교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어떤 주석가들은 "에돔의 장막"이란 말씀이 전쟁 무기를 가리킨다고 보고 이  귀절
을 이 원수들의 전쟁을 지연시키기 위해서 장막을 잘 치고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
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 나라들이 장막에서 살고 있는 관십을 비유하는 것으로  보
인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과장된 표현으로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즉 이 전쟁에  가
담한 그들의 열성이 매우 대단하여 그들이 포진하고 있는 곳에서 자기들의 장막을  칠
정도로 용기를 가졌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언급된 나라들의 하나하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는 말하지 않겠다.  그
들 중 대부분은 성경에 자주 언급되어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앗수르와 나머지  나라들
을 가리켜 "롯 자손의 도움이 되었나이다"라고 말한 것은 롯의 자손의 악함을 보다 가
중시키기 위한 것임이 틀림없다. 그들이 자기들의 친척을 대적하기 위해 낯선  민족들
을 도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잔인한 행동이다. 그러나 그들이 직접 먼저 나팔을 불
고, 자기들의 암호로 형제를 멸망시키기 위해 앗수르와 다른 민족들의 도움을  불러들
였을 때 그들의 야만적인 비인간성은 가장 심각한 혐오감을 부를 수밖에 없었지  않았
을까? 요세푸스는 직접 기록하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그들의 변경을 지나감으로써 하나님의 엄하신 명령에 따라서 그들의 피를 흘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므로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들은 유대인들이 자기들과 같은  피를
나누었고 하나의 공통된 조상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 그들을  대적해서
적의에 찬 모험을 시작할 것이 아니라 그들도 역시 지극한 친절로 보답해야 되지 않았
겠는가? 그러나 교회가 외부의 원수들에게 공격을 당할 뿐만 아니라 그릇된  동족들의
손에 훨씬 더 큰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말하자면 교회의 운명과도  같다.  오늘날에도
가장한 그리스도인보다 더 우리들을 대적하기에 심히 미쳐 있는 사람은 없다.

         주는 미디안인에게 행하신 것같이, 기손 시내에서 시스라와 야빈에게
         행하신 것같이 저희에게도 행하소서
         그들은 엔돌에서 패망하여 땅에 거름이 되었나이다
         저희 귀인으로 오렙과 스엡같게 하시며 저희 모든 방백으로 세바와
         살문나와 같게 하소서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목장을 우리의 소유로 취하자 하였
         나이다(9-12).

 


83:9-11
  주는 미디안인에게 행하신 것같이, 기손 시내에서 시스라와 야빈에게 행하신 것 같
이..... - 신실한 자들은 자기들이 당하고 있는 매우 쓰라린 압제를 탄식함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보다 더 빨리 자기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는 생각으로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장 절망적인 상태에 빠졌던 때에 하나님께서 베푸셨던 많은 구원의 실례들
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귀절은 하나님께서 압제 아래 놓여 있는  자기
종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것을 지혜롭게 지연시키고 계신다는 것과 그들의 최후의 궁
지에 다다른 것으로 보일 때에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이적의 방법을 나타내신다는  것
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귀절에서 선지자는 두 개의 다른 역사를 한데 묶고 있
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는 "주는 미디안인에게 행하신 것같이, 기손  시내에서.....
저희에게도 행하소서"라는 말씀을 한 문장으로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
귀절 가운데 야빈과 시스라의 살해당한 사실을 삽입시키고 있다. 따라서 두 개의 역사
를 각기 구별해 내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옛적에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매우 빈번하게 행하셨던 이적들을 자기 자신과 다른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기억나게 하려는 목적을 충분히 나타내고 있다. 그가 말하려는 주요  내
용은 자기 원수들과 매일 자주 싸움을 벌이고 이리 앞에서 떨고 있는  자기의  가련한
양들을 이리들로부터 구해 내시는 하나님이 지금도 그와 똑같은 구원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능력을 확실히 가지고 계심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의 손을  통
해 자기 백성들을 구해 내셨던 그 놀라운 방법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삿 6-7장). 기드
온이 겨우 3백명으로 비교도 안될 만큼 많은 군인을 보유하고 있던 막강한 군대와  싸
움을 벌이는 모험은 전적으로 어리석은 것으로 보여졌다. 기드온의 군대는 일생을  매
인 상태로 지내오던 자들이었으며, 그들의 군주들이 보기에는 웃음거리 정도에 불과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안 사람들은 자기들의 칼을 돌려 자기네들끼리 죽이게  되
고 말았다. 인자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와 똑같은 선하심을 시스라와  야빈왕을  죽이실
때 보여주셨다(삿 4:13). 여자 사사 드보라의 명령을 받은 바락은 군인 몇 사람만  데
리고 그들의 막강한 군대와 담대히 싸우면서 그 두 무리를 모두 무찔렀다. 또 군대 장
관 시스라는 정쟁터에서 용감하게 죽지 못하고 은밀한 곳에 피신했다가  여자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성도들은 공포에 질리거나 절망에 빠질 것이 아니라 이 구원의 실례를
통해서 때에 따라 자신을 굳건히 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 실례를 통해서 자기
백성들이 인간적인 도움의 근원을 찾지 못하고, 자기에게 의지할 때마다 자신만이  그
들을 방어해 줄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계심을 직접 보여주셨다. 이  놀랍고도
예사롭지 않은 구원의 모습을 보고 성도들은 하나님이 자기 교회를 보호하시는 놀라운
사역자시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들은 가장 충만한 확신으로 용기를 얻어 하나님의  숨
결 안에서만이 자기들의 모든 원수들을 물리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
다. 이러한 의미로 미디안 사람들의 죽음을 말한 것은 이 귀절만이 아니다. 이사야 선
지자도 이 사건을 교회 회복에 관한 진리로 말했다.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
다"(사 9:4)라고 교회 회복에 관한 진리로 말했다. "그들은.....땅에 거름이 되었나이
다"라고 한 말씀은, 첫째로 그들의 시체가 땅에서 썩어졌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고,
둘째로 그들이 거름처럼 발에 짓밟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두  번째  해석을
대부분이 받아들이고 있으나 나는 첫번째 것도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엔돌에서
패망하여"라고 말한 이유를 확인하기는 약간 곤란하다. "엔돌"이란  이름은  여호수아
17장 11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마 야빈왕의 군대가 이곳에서 패망했던 것 같다. 어
떤 사람들은 여기서 "엔돌"은 그들이 공개적으로 눈으로 볼 수 있게 패망했다는  개념
을 나타내기 위해서 총괄적인 이름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
나 나는 이 견해에 찬동할 수가 없다.
 

83:12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목장을 우리의 소유로..... - 이방 원수들은  또
다시 무법한 강도처럼 하나님의 기업을 탈취하고자 했던 하늘의 임금을 대적하는 반역
죄에 대해서 비난받고 있다. 우리가 확실히 믿기로는, 그들은 그러한 죄악을 범할  생
각이 없었음을 많은 말로 맹세했을 것이다. 그러나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들은  이
스라엘 백성에게 섬김을 받는 하나님을 멸시했으므로 여기서 하나님의 기업을  빼앗으
려는 죄악을 범했다고 책망받는 것은 정당한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들은  뻔뻔스
럽게도 참되신 하나님께 비난을 퍼부었고, 그의 거룩하고 엄위하심을 최고도로 멸시했
으며, 그들의 마음은 자기들의 생각해 낸 것들로 도취되어 있었다. 만일 그들이  중대
한 모독행위를 하지 않았다 해도 그들이 괴롭혔던 모든 것들은 하님께서 자기의  보호
아래 두고 계시는 거룩한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불명예를 돌리도록 한  것들이었다.
"하나님의 목장" 또는 달리 해석하여 '하나님의 집'이라는 명칭은 유대를 가리킨 것인
데, 이 표현 양식은 적지 않은 위로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가운데서
영원토록 거하시고자 하는 생각에서 또는 우리들을 자기의 교회 위에 높은 지위로  올
리사 귀하게 여기시고 마치 집을 지키는 자기 자신의 가장 값진 것들에게 하듯, 즉 하
나님께 큰 경외를 드리려는 생각에서 자신을 우리들과 연합시키셨다.

         나의 하나님이여 저희로 굴러가는 검불같게 하시며 바람에 날리는
         초개 같게 하소서
         삼림을 사르는 불과 산에 붙는 화염같이
         주의 광풍으로 저희를 쫓으시며 주의 폭풍으로 저희를 두렵게 하소서
         여호와여 수치로 저희 얼굴에 가득케 하사 저희로 주의 이름을 찾게
         하소서
         저희로 수치를 당하여 영원히 놀라게 하시며 낭패와 멸망을 당케 하사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13-18).


83:13-17
 나의 하나님이여 저희로 굴러가는 검불 같게 하시며..... - 악한자들이 교회를  조
롱하고 파괴하려고 할 때에는 보통 견딜 수 없는 교만으로 부풀어올라 있기 때문에 영
감을 받은 시인은 하나님께 그들이 수치를 당하도록 해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그들이
엎드러지고 깨어지고 부끄러운 절망에 떨어지지 않고서는 자기들의  교만을  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결과로 "저희로 주의 이름을  찾게  하소서"(16절)라고
말한 것은 그들이 참된 회개, 즉 순전한 회심을 갖게 해주실 것을 말함이 아니라 진실
로 나는 회개의 첫째 단계란 사람들이 환난으로 인하여 낮아지게 되고 그리하여  자신
을 기꺼이 겸손하게 낮추는 것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 귀절이 의미하는 것은 애굽왕
바로의 경우처럼 단지 억지로 노예처럼 굴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악인들이 재난을  당
할 때는 종종 잠간 동안이나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들은
또다시 곧 자기들의 위선으로 뒤덮인 광기(狂氣)를 부리게 되고,  자기들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교만과 반역을 드러내고 만다. 선지자가 바라는 것은 악인들이 원하든 원하
지 않든간에 자기들이 벌을 받음이 없이 피함으로 말미암아 터뜨렸던  분노가  최소한
억제된 상태로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서 채찍을 내리사 하나님을 깨달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사실은 17절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17절에서 그는 그들이 영원토
록 멸망당하게 해달라고 명확히 기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기도는 그가 앞에서 그들이
회개하도록 기도하는 것과 전혀 상반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필요없이
그토록 많은 말들을 한데 보아 놓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한편으로는  버림받
은 자들이 자주 벌을 받으면서도 결코 바로 서지 못함으로써 때때로 새로운 힘과 용기
를 불러일으키려는 것이요, 또 한편으로는 그들이 곧 썩어지고 말 외적인  큰  번영에
안일하게 파묻혀 있을 뿐 도저히 설득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교회를 억압하
는 자들이 향해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보응의 무서움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83;18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 이 귀절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구원의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악인들이 항거할 수 없는 능력을 행사
하시는 분으로 깨닫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아는 단순한 지
식이 아니라, 전에는 참된 종교를 멸시하던 이방인들이 마침내 하나님께서 자신을  율
법에 계시하신 것과 유대에서 경배를 받으신 것, 그리고 그분만이 참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는 특별한 종류의 지식이다. 그리고 또 기억해야 할 것은 여기에서 말하는 지식은
단지 곧 사라져 버리는 것, 즉 뿌리나 그것을 자가게 해줄 생명력의 물줄기가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악인들은 기꺼이,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복종하
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거짓 순종하는, 다시 말해서 감히 분노를 드러내지는  못하고
할수없이 하나님 때문에 눌려 있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마음에서  나
온 것이 아니라 마지못해 나타나는 하나님에 대한 경험적인 인식이다. 대명사*      
      (아타;당신)는 강조형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모든 거
짓된 신들을 암암리에 대조하고 있다. 이 기도의 요점은 이렇다. '주여, 저희로  자기
들이 자신을 위해서 만들어 낸 우상들은 신들이 아니요, 실제로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하소서.' 진실로 하나님께서 바라는 것은 빛을 피하게 하여 그들이  한때는  구름으로
자신을 가리고, 다른 때는 깊고도 두터운 흑암의 그늘에 빠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
나 하나님은 그들을 설득시켜 그들이 몰라서 묻어 버리고자 했던 자신에 관한  지식을
갖도록 해주신다. 또 세상은 무분별하고 수치스럽게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자기
가 장난삼아 생각해 낸 것으로 돌리고 있는데, 이러한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는  "여
호와라 이름하신 주"라고 말할 때에 바로 고쳐진다. '지존자' 또는 '실제로  존재하는
자'란 말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하나님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 불신자들이 아무리 하나
님의 영광을 산산조각 내려 애써 보아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완전  불변하시기  때문이
다. 독자들은 내가 바라하는 대조법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어느 민족이든 신을  섬기
지 않을 만큼 야만적인 나라는 없다. 모든 나라들은 자기들을 위해 독특한 신들을  만
들어 내고 있다. 심지어 모압 족속, 에돔 족속과 나머지 족속들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 능력과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능력과  권위가  유대의
국경을 초월하지 못한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수리아왕은 하나님을 가리켜  "신은  산
(山)의 신"(왕상 20:23)이라고 불렀다. 사람이 만들어 낸 이러한 터무니없고 불합리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한계는 단 한 마디로 반증되어지며, 그 당시 온 세상에  침투해
있던 모든 미신들은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신성의 본질이 되는 이름으로 불
렀을 때에 전복되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의 모든 우상들이 완전하게 부서지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여호와란 이름을 홀로 독차지할 수가 없으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란 말씀이 언급되었는데, 이는 우리가 가장 주의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 말씀이다. 일반적으로 미신 숭배자들은 하나님을  그의  이름으로 남겨 두는 것, 즉 두어마디의 말만으로 남겨 두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마치 하나님의 위엄이 그 무의미한 칭호 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평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이 마치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주권을  가지지 못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다른  대상물이  설정됨으로써 모호하게 된 것처럼 생각하고, 그런 식으로 자신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는  것은  받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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