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시편 08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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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
 우리 능력 되신 하나님께.....즐거이 소리할지어다..... - 이 시는 아마도  유대인
들이 거룩한 모임을 갖는 절일(節日)에 부르기 위해서 기록된 것 같다. 서론에는 하나
님께서 정해 주신 경배의 순서가 언급되고 있다. 그들은 회막에서 벙어리 상태로 있어
서는 안 되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드리는 경배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태하게 있는
것도 아니며, 냉정하고 공허한 의식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여기에 기록된
대로 행함으로써 자기들의 믿음이 하나가 되도록 힘써야 하는 일, 그들의 경건함을 공
개적으로 고백하는 일, 또 이 경건의 전진을 계속하는 일, 힘써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열심으로 찬양하는 일, 그리고 우리가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택하셨던 그
거룩한 언약에 거역하지 않고 한결같이 머무은 일을 해야 했던 것이다.
   율법에 따라 절일에 그런 것들을 사용한 것을 볼 때, 우리는 오늘날 참된 신자들이
함께 모일 때마다 종교적인 행사를 수행할 때 가져야 할 목적, 즉 자기들이  하나님으
로부터 받은 은총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발전시키는  것
과 믿음이 하나임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사람들이 믿음의 교훈을
아표세우고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다면 그들은 헛되고 무익한 의식으로 하나님을  조롱
할 뿐이요, 또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을 기억하여 찬송하려 하지  않을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진실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꺼버린 채 다만  외면적인
의식만을 행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귀절을 통하여 성도들은 성전에 함께 모일 뿐만 아니라, 자기들이 그곳에 모인  목
적, 즉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베풀어 주신 값없이 거저 주신 은혜로운 언약이 자기들
의 기억을 다시 새롭게 하여 믿음과 경건심을 더욱 증진시키고, 그리하여 자기들이 하
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총들이 찬송되어지며, 따라서 자기들의 마음이 감사를 드리게 된
다는 것도 배워야 한다. "소고, 수금, 비파"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으
며, 동일한 말씀이 반복되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서는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제는 복음의 분명한 빛이 율법의 그늘을 없애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보다 더 단순한 형
식으로 경배되어지며, 선지자들이 다만 당시대에만 해당되는 것으로 말했던 것들을 흉
내내는 것은 어리석은 과오를 저지르는 것임을 배워야 한다. 이 귀절에서  교황주의자
들이 이것을 변형시켜 흉내내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월삭"이란 다른 모든  고상
한 절기 등을 포괄해서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제사는 매일 빠짐없이 드려졌다  .
그러나 율법에 나타난 명령에 따라 성도들이 함께 성전에 모이는 날들을 가리켜  과장
된 표현을 사용해서 '희생의 날들'(절일)이라고 불렀다.


81:4
  이는 이스라엘의 율례요..... - 앞에서 훈계한 것을 더욱 효과있게 하기 위헤서 이
귀절에서는 이 율법 또는 율례가 영원하신 언약을 비준하기 위헤서 하나님의 옛  백성
들에게 주어졌던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또 언약에는 당사자드가 상호간에  협
정이 있으므로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례라고 말하며, 하나님은 언약을 맺으실
때 스스로 이 율례를 자신의 정당한 권리로 삼으셨다고 선포된다.


81:5
 하나님이 애굽 땅을 치러 나가시던 때에..... - 히브리어  *           (에두트)를
어떤 사람들은 '경배하다'라는 뜻을 가진 *        (아다)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이
말을 요셉의 '영광'또는 '장식물'이라고 번역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 말은 *      (우
드;증명하다)라는 동사에서 온 것으로 '증거' 또는 '언약'으로 번역해야만 할 것이다.
요셉의 이름이 특별히 언급된 것은 야곱이 죽은 후 열두 지파가 갈라졌을 때 그  선민
가운데서 지파에 속하지 않는 본래의 혈통(first  original: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
과 관련된다. 그 당시는 유다 지파에 주권이 있지 않았고, 르우벤도 그 상속권에서 탈
락되었기 때문에 요셉의 후손은 마땅히 은총이 전달되는 도구로서 가장 탁월한 지파가
되었고, 그의 형제들과 온 민족의 아버지와 배양자(培養者)가 되었다. 더우기  하나님
께서 그에게 이 영광을 베푸시기를 약속하신 그때 그 백성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다
는 샤가실에 특별히 호소함으로써 그 거룩한 언약이 찬양되고 있는데, 이는  백성들이
구원받게 된 조건은 그들이 자기들에게 베풀어진 은혜애 대한 기억을 새롭게 하기  위
해 지정된 날에 함께 모임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가시던  때에'라
는 말씀은 하나님과 백성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마치 목자가 양 떼들보다 앞서 나아가듯, 또는 장군이 그 군대보다 앞서 나아가듯  자
기 백성보다 앞서 나아가시는 분으로 말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표현  방식이다.
'애굽땅 위'라는 말씀을 어떤 사람들은 애굽보다도 그 위치가 높았던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애굽에서 나와 유대로 올라갔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단순한 의미
로 보아, 하나님을 인도자로 삼은 백성들이 애굽땅에서부터 자유롭게 방해를 받지  않
고 나옴으로써 그 거민들이 용기를 잃고 간담이 서늘해져서 그들이 나아가는 길을  감
히 방해할 수가 없었다는 의미로 본다. 선지자는 백성들의 구원을 더욱 높이 찬송하면
서 온 백성의 이름으로 자기가 포악한 상태에서 건짐을 받았음을 표시하기 위해 "내가
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었나니"라고 한다. 그 사회를 묶어 주는 최고의 끈이 되는 언어
가 서로 통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산다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은 없다. 언어란 사실
상 마음의 형상이요, 거울이기 때문에 서로 교제하는 데 말을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은
숲속의 짐승들보다 못하다. 이사야 선지자는 무서운 형벌을 말할 때 "네가 강포한  백
성을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그 백성은 방언이 어려워서 네가 알아 듣지  못하며  말이
이상하여 네가 께닫지 못하는 자니라"(사 33:19)라고 했다. 따라서 백성들은 하나님께
서 베풀어 주신 은혜가 너무도 고귀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
기들이 아들을 수 없은 말을 하는 애굽 사람들로부터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81;6
 내가 그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어 주신 은총들과 그들이 하나님께 의무를 행하도록 하였던 많은  경우를  열거한
다. 그들이 구원받았던 그 속박이 괴로울수록 자유는 더욱더 바람직하고 값진  것이었
다. 그러므로 심히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는 것, 즉 벽돌을 만드는 수고와 그  외의
노예적이고 고생스러운 일들을 말한 것은 이런 처음 상태와 나중 형편을 비교하여  구
원받는 축복의 위대함을 보다 정확하게 말하려 한 것이다. 이제는 이 사실을 우리에게
적용시켜 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우리의 마음에 그 의미를 새겨보도록 하자. 하나님은
우리의 어깨에서 벽돌 짐을 벗기시고 우리의 손에서 별돌 가마를 놓게 하실 뿐만 아니
라 우리를 사단의 잔인하고도 비참한 학정에서 구하사 음부의 깊은 곳에 빠지지  않도
록 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졌던 것보다 훨씬 더 엄하고도 거룩
한 유형의 의무감을 하나님께 지고 있는 것이다.


81:7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 이 귀절에서도 동일한 주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들이 환난 중에 부르짖었다는 것을 나는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
렸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자기들의 괴로움을 잡다한 부르짖음으로 극단적으로  표현하
는 자들이 가끔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환난을 당하던 이 백성들에게는 어느 정도  거
룩한 것이 남아 있었고, 그들은 자기들의 조상들과 맺은 약속을 잊지 않았다.  그러므
로 나는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확신한다. 종교를 가지지 않고 결코 하나님
께 기도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자들도 어떤 극심한 환난에 짓눌리게 될때는 은밀한
본성의 자극을 받아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자 하는 감동을 받는다.이러한 점에서  언
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데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었다고 보는  것
이 보다 가능하다. 하나님께 도움받게 될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진실한  기
도를 드릴 수 없기 때문이 이 부르짖음은 보다 효과적으로 그들에게 오직  하나님만이
자기들에게 구원을 베푸신 분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뇌성의
은은한 곳"이라는 말씀을 지나치게 한정하여 해석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로  백성들의
탄식함을 애굽 사람들이 못듣도록 하셨고, 그 소리를 애굽 사람들이 들어도  더  이상
화를 내지 못하게 하셔쌀고 한다. 그러나 그 의미는 단순한 것으로 백성들이 은밀하고
도 놀라운 방법으로 듣고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구출을
받으리라는 증거가 나타났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하나님은 그들에게 얼굴을 마주
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은혜를 보다 더 값있게 하시기
위해서 "므리바 물 가에서" 그러한 증거를 보여주시면서 그들은 그것을  받을  가치가
없었다고 책망하셨다. 그곳은  그들이  악하고  완악한  기질를  나타냈던  곳이다(출
17:7). 따라서 이 말씀의 뜻은 '너희의 악함이 그때에 심히 노골적으로  나타났으므로
내가 너희의 어떤 공로를 보고 행할 것이 아님을 이 사실이 분명히  보여준다는  것이
다. 이런 책망은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필히 해당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단의 강포 아래서 환난당할 때 부르짖는 우리의 탄식 소리를 들어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의 구속의 대가가 되시는 자신의  독생자를  정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도 우리의 마음을 복음과 성령으
로 밝히시어 그의 은혜에 참여하는 자가 되도록 부르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불평을 늘어놓고, 심지어 교만하게 하나님을 반역하기까지 한다.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대로 버려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
        도다(8-12).


81:8
 내 백성이여 들으라..... - 보다더 효과적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귀절에서 교사의 성격을 띠고 찾아오시어 회중 가운데서 다정
하게 말씀해 주신다. 이것은 모든 모임이 다 사람들을 믿음과 참된  경건에  이르도록
하는 하나님의 음성에 합당치 않고 무익하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
다. 우리는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자. 이 몇 마디의 식사(式辭)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주의를 기울여 듣지 않고서는 절기를 순전하고 올바르게 지킬 수  없
다는 것을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의 손,발,눈과 다른 모든 인격이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들의 귀를 열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배우려는 자만 자기의 종으로 여기신다는 교훈을
여기서 배울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증거라히라"는 말씀을 통해서 자신이 엄숙한  방
법으로 언약을 맺고  자신의 말씀에 더욱 권위를 부여하심을 나타내고 있다. 하반절에
나오는 '이스라엘이여 너희가 내게 귀를 기울이면'이라는 말씀은 종종 감정적인  표현
으로 사용된 것과 비슷한 당돌한 표현으로써 내가 생각하기에는 보다더 진지함을 나타
낸다고 본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다음 귀절과 연결시켜 '이스라엘이여 만일  너
희가 내게 귀를 기울인다면 너희 안에는 이방신이 없을 것이니라'라고 번역한다. 그러
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후회하시는 말로 보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간접적으로 자기가 오만하고 배반하는 이 백성들을 불신함과 또 그들이 순종하고 교훈
을 받으려 함이 거의 없음을 말한다.
 

81;9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 여기에서는 언약의 처음  계명이  제출됨과
아울러 거의 전체가 요약되고 있다. 즉 하나님만이 가장 뛰어나신  분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이스라엘이여 너희가 내게  귀를  기울이면
너희가 나만으로 만족하고자 하는 것, 그 이상의 것을 너희에게 요구하지 않게 될  것
이요, 너희는 다른 신들을 좇지 아니할 것이라.' 나는 이 해석을 비난하지 않는다. 하
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자기가 그토록 자주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곳에서
가르쳤으므로 자신만이 누려야 할 영광을 다른 것들에게 허용하는 것을 질투하는 신이
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확증한다. 이와 동시에 참된 종교적 경배는 순종과 더불어 시작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  그러나  모세가  말한  순서는  다르다.  (출
20:3,4; 신 5:6,8)이 귀절에서는 하나님은 자기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심
으로써 그들이 자기들을 위해서 어떤 새로운 신을 만드는 일을 금하고 계시지만, 여기
서는 금지 명령이 먼저 주어지고 그 이유를 자기들의 그의 백성으로 구속해 주신 하나
님으로 풍성한 만족을 누여야만 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의 보좌를 차지하시는 길을 예비하기 위해 이 말씀을 하신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백성들에게서 우상 숭배를 내쫓아 버리려 하신다.  이것들은  우리의
마음속에 깊은 신앙으로 뿌리박기 전에 뽑아 깨끗게 하지 않으면 안될 것들이다.


81: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백성들을 위하여 행하셨던 구원을 언급하심으로써 그들에게 재갈
을 물려 자기에게 경배를 드리게 하여 그들을 자기의 보호 아래 놓아 두신다.  그리고
이제는 대대로 그들의 욕구를 채워주고 만족시켜 줄 모든 축복들을  풍성하게  공급해
주실 것을 확신케 해주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기 위해서 사용하신  세
가지 말씀은 배타적이고 그에게만 해당되는 것인데, 하나님은 그들이 자기를 떠나  얼
마나 악하고 불경건하게 행하고 있으며, 다른 신들을 구하는지를  보여주므로  특별히
주의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첫번째 자신을 여호와라고 불러 자신의 본래 가지고
계신 권리를 주장하고 있고, 또 새로운 신을 만들어 내는 것이 사람의 능력을  초월한
일이라고 선포하신다. 하나님께서 '나는 여호와로다'라고 말씀하셨을때, "나"라는  대
명사는 강조형이다. 애굽 사람들은 하늘과 땅의 조물주에게 예배하는 것을 방해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는 그들이 잘못을 저지른
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신시켜 주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언제든지  자기
들이 생각해 낸 것을 하나님으로 경배하며 무엇이든지 특별한 구실을  붙여  그것으로
자신을 옹호하려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여호와이심을 밝히신 후에 그 결과와  경
험, 즉 애굽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분명하고도 항거할 수 없는 증거를 통해서  옛
날 그들의 조상들과 약속을 통해서, 자신의 신격(神格)을 증명하신다. 이것이 그의 두
번째 말씀이다. 그때에 나타났던 능력은 그 자체를 떠나서는 결코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래 전 아브라함과 맺으셨던 언약에 의하기  때문이다.  그
구원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 못지 않게 자신의 신실함의 증거를 보여 주신다.
따라서 마땅히 찬송이 그로부터 나오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신
을 계속 백성들에게 내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계속 믿음을 가진  자들
이 되도록 지켜 주실 준비를 갖추고 그들의 조상들이 경험했던 것과 같은 것을 자녀들
에게 똑같이 체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확신시켜 주시면서 자신의 인자하심을 끊임없
는 것으로 말한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는 귀절에서 "넓게 열라"는  표
현은 하나님의 은총이 나타나는 데에 방해되는 생각을 암암리에 정죄하고 있다  .우리
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백성들이 가난하다면 그  비
난은 전적으로 그들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그 이유는 자기들이 필요로 하는  축복들을
받기에 충분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며, 또한 그들의 불신앙이  자동적으로  자기들에게
흘러나오는 축복을 배척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입을 열라고  명하실  뿐만
아니라 더 고상한 은혜의 풍성함을 보이심으로써 아무리 우리의 요구가 크다 해도  우
리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는 점을 암시하였다. 이 귀절을 볼 때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방울방울 가냘프고도 부족하게 임하는 이유는 우리의 입이 너무 좁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들이 궁핍하여 굶어 죽어가고 있는 이유는 그들의 입을 완전히 다
물어 버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싫어하거나,  교
만하거나, 정신이 돌아버려서 하늘로부터 자기들에게 임하는 모든 축복들을 거절해 버
리고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 축복들을 완전히 거절해 버리지 않는다 할지라도  단
한 방울만이라도 취하기가 어려운 것은 그들의 믿음의 상태가 풍성한 공급을 받지  못
하도록 막아 버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셔들이고 이해하지 않는 것과  또
하나님과 더불어 만족을 누리는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것은 인류가 부패했다는 명백
한 증거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이 귀절에서 외부의 의식을 통해서 자기에게 경배를 드
려야 할 것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단지 하나님의 텅빈 이름만 부르는 것을 귀한  것으
로 여기지 않으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위엄이 두세 마디 말 속에 들어 있지 않기 때문
이다. 하나님께서 이름을 중요시하는 것은 우리의 소망이 하나님에게서부터 다른 대상
에게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또는 의와 구원과 모든 축복에 대한 찬송이 하나
님을 향하는 데서부터 다른 데로 변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부르심으로써 오직 자신에게만 신격이 있음을 주장하시고,  우리
를 만족하게 하고 충만하게 하는 모든 축복들을 풍부히 소유하고 계시다는 사실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81;11-12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직접 너그럽게 받
아들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자기의 인정에 넘친 찾아주심을 멸시하는 것에 대해
서 탄식하신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오래도록 계속해서 그들을 권고해 주셨음에도 그들
은 언제나 귀를 가리고 그의 음성을 듣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탄식하신 것은
하루 동안의 반역이 아니라, 그들이 시초부터 항상 어리석고 완악한 백성들이었고, 계
속 똑같은 오만을 가지고 있음에 대한 탄식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언약을  맺으
사 양편이 거의 동등한 요구를 할 수 있도록 해주심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지 못하도록 하며, 그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 행위는 참으로  기괴한  고집이다.
자기들의 무지함을 구실삼아 그 죄책을 경감하려는 여지를 없애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는 자기가 맹세하는 배척과 멸시를 당했다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
하였도다"라는 귀절만 보아도 그들의 마음들이 이 세상의 신에 매혹을 당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다음 귀절에서 나오는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버려두어"라는 말씀에 대한 이
유인데, 어떤사람들은 이12절은'그 마음의 생각대로'라고번역한다. 어근 *        (쇼
레르)는 '생각들'이라는 말에서 온 단어로 정확하게 '배꼽'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말을 사람들이 마음속에 있는 생각, 또는 마음에 품고 있는 강퍅함을  가리키는  말로
번역한 것은 매우 적절한 번역이다. 그런데 시편에는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동일
한 것을 두 번씩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이 말을  '생
각'이라고 하는 것이 더 좋다고 본다. 그 이유는 곧 이어서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도
다"라는 말씀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서 자기 백성들
이 선하고 유익한 교훈에서 떠나 타락한 마음을 가지게 될 때에는 마땅히 형벌을 내리
신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고삐로 묶듯 그의 말씀을 방편으로  하여
우리들을 다스림으로써 우리들이 왜곡된 생각을 좇아 곁길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해주
신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서 그의 선지자들을 거두심은 그들의 완악하고 부패한 뜻
에 따르도록 쇠사슬을 늦추어 그들이 마귀의 길에 빠지도록 하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
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실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종류의 형벌이요, 하나님께서 자기의 평
안을 보류하시고 우리들의 왜곡된 길에 나아가도록 내버려 두심으로써 우리에게  회개
와 치유를 베풀지 않으시면 우리는 완전히 소망이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된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망하시는 그 뜻은 우리에게 심판의 무서움을 경고하여
심문이 있기 전에 우리를 불러내어 회개를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이상 수고를 기울이는 것은 낭비에 불과하다는 것과 자신의 수고가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는 자기의 평안을 모두 거두어 버리시며, 이것을  통
해서 우리의 구원을 관심의 대상으로 삼기를 중단해 버리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
르쳐 주신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서 벗어나 무모하게 자기
의 평안을 모두 거두어 버리시며, 이것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을 관심의 대상으로 삼기
를 중단해 버리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사람이  하
나님의 인도하심에서 벗어나 무모하게 자기의 뜻대로 사단이 원하는 곳으로 질질 끌려
다닌다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따라서 이 말씀은 보다 포괄적인 의미, 즉  하
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다 지나 버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이 절망적인  편견에
따라 봉다 잘되기를 바라는 모든 소망을 끊어 버리고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방해를 받
지 않고 행하도록 내버려 두셨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귀절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이 배척하기 전까지는  공평하게  베풀어진다는
생각을 추론해 내고 있으나, 이것은 매우 애매한 추측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들은 간과하시면서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는 자비롭게 대해 주기를 기뻐하셨
고 특별하고도 배타적인 특권을 그들에게 주어 자기와 특별한 관계를 갖도록  하셨다.
나는 이러한 구분이 오늘날에는 철폐되어, 복음의 메시지가 세상을 자신과 화목케  하
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것으로 되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
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른 여러 곳에서라기보다 또 한 곳에서 어떻게 경건괸  교파들
을 일으키시는가를 안다. 만일 하나님께서 자기가 부른 자들을 자신에게로 효과적으로
이끌지 않으신다면 다만 외적 소명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귀
절은 사람이 자신이 생각하는 뜻을 따라가도록 버려졌다는 것보다 더  무서운  형벌이
없다는 것과 또한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구원의 길은 육체적 지혜를 따르는 것을 포기
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내 백성이 나를 청종하며 이스라엘이 내 도 행하기를 원하노라
        그리하면 내가 속히 저희 원수를 제어하며 내 손을 돌려 저희 대적을
        치리니
        여호와를 한하는 자는 저에게 복종하는 체할지라도 저희 시대는 영원히
        계속하리라
        내가 또 밀의 아름다운 것으로 저희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케 하리라 하셨도다(13-16).

 

81:13
내 백성이 나를 청종하며(만일 내 백성이 나를  청종했었더라면-칼빈사역).....  -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그 명예스러운 칭호를 말함으로 그들
의 수치스럽고 배은망덕한 행위를 보다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깊이 생각해  보면
그들의 사악함이 이중으로 가중되고 있음을 보게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기의
백성으로 부르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 가장낯선 사람들과 하나도 다를  바
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탄식하셨다. "소는 그 임
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
닫지 못하는도다"(사 1:3)라고 내가 '만일.....했더라면'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분사
*      (루)는 조건을 나타낸다기보다는 바람을 나타내는 말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 귀절이 분명히 하나님께서 사람처럼 울고, 탄식하고, 애통해하시면서 '자기들
의 가장 좋은 것을 주의깊게 예비하기를 고의적으로 거절하는 이  백성들의  불쌍함이
여'라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처럼 자기 자녀들을 바로잡기 위한 모든 가능한 방
도를 다 행해 보신후에, 그들의 형편이 전혀 소망이 없는 것을 아시자 한 마디의 슬픔
을 한숨과 탄식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고 계식 가
때문이 아니라 다른 방도로는 우리를 향해 가지시는 사랑의 위대하심을  표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거의 같은 말로 백성들의 완악함을 탄식했던 모세의  노래
에서 "그들이 지혜가 있어서 이것을 깨닫고 자기의 종말을  생각하였으며"(신  32:29)
이 귀절을 빌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암암리에 유대인들을 꾸짖어 그들이 큰  외부
적인 번영의 상태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자기들의 강퍅함이 유일한 원인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심어 주고자 한다.
   만약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곧은 목을 꺾으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셧아다면
이 탄식은 공허하고 근거없는 것이며, 또 하나님께서 이렇게  행하시기를  기뻐하시지
않고 자신을 사람에게 비유하여 심각한 슬픔을 나타낼 이유가 없다고 하는 반론이  제
기된다면, 나는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 때문임을, 즉 고난의 원인이 바로 우리들  안에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러한 형식의 말을 사용한 것이라고 답변할 것이다. 우리
는 여기서 전혀 다른 것은 하늘이 땅에서 먼 것처럼 서로 다른 것이 뒤섞여 있음을 깨
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내려와서 모든 사람들을 빠짐없이
초대하심으로 어떠한 자도 실망시키지 않으신다. 신실하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모두가 자기들이 헛되게 부르심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제적인 경험을 통해서 발견
하고 깨닫게 된다. 동시에 우리는 말씀이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는 들어가지만 다른 사
람에게는 다만 그 소리를 듣는 것에 그치는 차이점을 하나님의 은밀하신 선택의  의도
에서 그 근거를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을 때에  우리의
어리석음에 대한 하나님의 탄식, 즉 눈물에는 전혀 모순이 없다.  하나님께서  외적인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초청 속에서 하나님은 자기가 아버지이심을 보여주신다. 이
러한 탄식의 형식을 빌어 여전히 자신을 아버지이심을 보여주신다. 이러한 탄식의  형
식을 빌어 여전히 자신을 아버지의 형상으로 나타내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아야 하는
가? 하나님이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겔  18:32)라고  하신
것은 이 말씀의 모든 내용을 막힌 것 없이 냉정하게 제시해 준다. 하나님은  죄인들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로 돌아오기를  바라시
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엄저 자기들의 돌같은 마음을 새 마음으로 변화시키기  전에는
자기의 자유 의지에 따라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  참으로
이 변화는 어거스틴이 현명하게 말했듯이 창조 그 자체의 놀라우신 변화의  사역이다.
그러면 무엇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똑같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가?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섭리들을 억지로 파악하려 할  것이  아니라,
그의 말씀 안에서 그의 뜻에 대해 밝혀 주신 계시로 만족해야 한다는 사실을 겸손하고
절제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나아와  물으라'(사
21:12)고 하는 말씀을 받는 자들의 구원을 바라고 계신다고 말하는 데는 가장  정확한
근거가 있다. 하반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청종하는 것에 대하여 정의를 내릴  수  있
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 찬송하는 것으로 충분하지가 못하다. 왜냐하면 위
선자들도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곧 무엇이나 진리라고 인정하고, 마치  당
나귀가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듣기는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귀절은 우리
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시킬 때에라야만 하나님께 귀를 기울였다고 말할
수 있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81;14
 그리하면 내가 속희 저희 원수를 제어하며..... -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들에게 임한 모든 환난은 자기들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그
들의 원수들은 위로부터 받는 힘이 아니고서는 자기들에게 싸움을 걸어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택한 백성들을 인도하사 모든 원수를 물리칠 수  있도
록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들이 자신의 말씀을 거역해 자기에게
비난을 할 만한 모든 근거를 없애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만약 그들의 죄악이  방해하
지만 않았던들 이 언약이 그들에게 시행되지 못한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확고히  말씀
하신다. 하나님은 분명히 암암리에 그들에게 상기시켜 주시기를 그들이  전에  얻었던
승리들은 자신들의 군대의 힘에 기인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이 이기도록 해주셨
다고 하신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인해서 그들의 지키기 위한 자신의 능력
행사를 철회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완악함 때문에 자기 손에 있는 칼로 그들을 치
시며 그들의 원수들은 해를 입지 않고 평온하게 남아 있도록 하셨다.


81;15
 여호와를 한하는 자는 저에게 복종하는 체할지라도(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이 저에
게 복종했었을 터이며-칼빈사역)..... - 여기에서도 앞 귀절과 동일한 생각이 담겨 있
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멍에를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더
욱 방종해졌을 때 지나칠 정도로 불경건하게 대담히 행동하지만 않았더라면 자기의 원
수들도 자기들의 권위에 겸손히 복종했었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 원수들을 여호와
의 대적이라고 부른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어리석음을 책망하려는 의도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자기들 사이에 맺어진 언약의 결속을 깨뜨려 버림으로  하나님에게
서 분리되었다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자신들의 공동의 적인 원수들과의  싸움
에서 자신의 편이 되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다. 마치 세상의 임금들이 자기의 동맹국과
맺고 이 방법을 통해서 위증(僞證)하거나 언약을 파기한 책임을 지는 자들에게 앙갚음
을 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리없이 약하게 하나님을 속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
원수들과 함께 하셨다고 선포하고 있다.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그  공공연한  원수들을
벌하시지 않은 채 내버려 두시며 자신의 영광의 존속을 잠시나마 중지하시는가?  이는
하나님의 목적이 이 원수들과 반역적이며 불순종하는 자기의  백성들을  대조시키므로
자기 백성들을 복종시키려 함이 아니고 무엇인가? 만일 우리가 "복종하는"이라고 번역
한 *          (카하쉬)라는 말의 의미는 앞에 나온 시편에서 설명한 바가 있다. 버림
받은 자에게 임한 평안은 하나님께서 은밀한 쇠사슬로 그들의 분노를 억제시키고 계시
지 않는 한 기대할 수 없음을 이 귀절은 말하고 있다. 쇠 철창 속에 갇힌 사자는 계속
그의 사나운 본성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자기에게 대여섯 발짝 정도로 다가오는  사람
이라 할지라도 물어 산산조각으로 찢지 못한다. 이 말씀은 악한 자들에  대한  말씀이
다. 그들은 우리의 멸망을 고대하지만 자기들이 품고 있는 것을 행할 수는 없다. 진실
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맹렬함과 오만함을 나추시고 떨어뜨리사 그들이 온유하고  겸
손함으로 옷을 입도록 해주신다. 요컨대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의 원수들이  이스라
엘 백성을 공격하여 오만하게 그들을 압제하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하여
오만하게 그들을 압제하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 때문이라는 것과 만일  그
들이 계속 겸손하여 하나님께 순종하기만 한다면 이 원수들은 자기들을 섬기는 상태에
이르게 되리라는 것을 말한다. "저희 시대는 영원히 계속하리라"라는  말씀은  언약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그들이 밀과 꿀이 풍성하여 완전히 만족하게 되어질 것을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끝날까지 그들의 보호자요, 감시자가 되실  것
을 엄숙히 선포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그토록 갑작스럽게 임한 변화는 그들이  신
중하게 모든 행복한 상태를 포기했었기 때문에 그들을 비난하는 형태를 띠게 된  것이
다. 이와 똑같은 내용이 땅의 소산에도 적용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밀과 꿀이 풍성할
것으로 그들에게 약속해 주신 땅에서 그들이 굶주리는 고난을 당하는 것은 그들의  악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 '기름진것'이란 이 말씀을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면 순전한 곡식을 비유적으로 가리킨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반석에서 나오는 꿀"이란 말씀은 그 꿀이 바로 반석에서 흘러나온 것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만족시켜 주는 데 실패한 사실을 과장해서 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는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기만 했었다면 어디에서나 반석의 틈에서 꿀을 찾을 수 있었던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의미는 백성들의 완악함과 사악함이 중단시키지만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은혜가 끊기지  아니하고 똑같은 방법으로 계속 흘러나왔을 것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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