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43:1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치 아니한 나라에 향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 "경건치 아니한 나라"란 말은, 히브리 원
어로 고이 로 카시드(* )라고 한다. 이 말을 직역하면 "무자비한
나라"이다. 이것은 이방 나라를 의미한다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이방적인 불신앙으로
동하며 다윗을 핍박한 사울과 그 정권을 가리킨 듯하다(Calvin). 이것이 하반절에는,
"간사하고 불의한 자"란 명칭으로 바뀐다. 그 해석을 참조하여라. 하나님께서 모든 억
울한 사정을 다 신원해 주시는 줄을 알고 있는 성도는, 악한 자에게서 어떤 억울함을
탓하지 않고 그것을 적게 여겨 묵과한다. 그러나 그 악한 자가 끝끝내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할 때에는, 그가 그 억울한 사정을 하나님께 애소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개인의 육신 사정이 펴이기를 위한 애소(哀訴)는 아니고, 하나님을 섬기
는 길이 열리기를 위한 것이다. 그것은 3 절 말씀이 잘 밝힌다.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여기 "간사"란 것은, 신앙에 대하여
적성 요소(敵性要素)이다. 간사한 자는 믿음의 도(道)에 들기 어렵다. 그 이유는, 이
런 자는 미끄러워서 진리를 설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간사하고 불의한 자는
무가내하한 악인이니, 하나님께서도 아주 내어버리실 자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그 기
도에 이런 사람 상대로 하나님에게 고소함이, 원수를 사랑하는 정신에 배치되지 않는
다. 원수를 사랑하라 함은, 하나님의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시 43: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어늘 어찌하여...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
니나이까. - 여기 "힘"으로 번역된 히브리 원어 마우즈(* )는, 실상 "피난처"
를 의미한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알고 의뢰함은 신앙이니, 그것이 벌써 이적이다.
이런 신앙으로야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힘 있는 도언적 기도(挑言的祈禱), 곧, "어찌
하여"라는 질문식 기도를 할 수 있다. 이런 참된 도언적 기도는, 벌써 하나님의 응답
을 얻은 것과 같은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그 도언적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이
가까왔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시 43: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 하나님의 원조가 나타나지 않을 때에는 우리의 심령이 답답하고 갑갑하여 캄캄한 밤
중이나 흐린 날을 당한 듯한 느낌이 생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때는
흐렸던 날이 개어 태양 빛이 반깝게 비치는 듯하다. 그러므로 이 시인은 여기서 "빛"
을 보내어 달라고 비유로 말한다. "진리"는, 하나님께서 성도를 어김 없이 보호하여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 이행의 신실성을 가리킨다. 그것을 "보낸다"함은 그 약속의 실
시를 의미한다.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곧, 성막 있는 곳에서 추방된
처지에서 이제는 그곳(성막 있는 것)으로 돌아가게 해 주시기를 구함이다.
시 43:4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 그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조를
받는다면, 그 떠났던 가족이나 친족들을 만나려고 찾아가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전
(殿)에 나가려고 한다. "나의 극락의 하나님"이라는 히브리 원어 엘 심카트 낄리(*
)는, "내가 기뻐하는 기쁨의 하나님"이라고 직역할 수 있다. 곧, 그에게는 하나님만이
기쁨의 대상이라는 의미이다. 그는, 모든 것을 다 잃었을지라도 그에게서 하나님만 떠
나지 않으면 기쁠 것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이 시인이 하나님을 가리켜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라고 한 것은, 하나님에게 대한 그의 개인 관계의 친밀성을 표시한다. 이렇게 말함은, 주님으로써 자랑하는 그의 심정을 내어놓음이다.(고전 1:31)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그는 목소리로만 주님을 찬송할 것이 아니라, 악기로도 하겠다고 한다. 이것을 주님을 찬송함에 있어서 최선을 다함이다.
시 43: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 이 귀절은 이 시인의 자책(自責)을 표시한다. 그가 현재에는 고난 중에 있으나 멀지않아 거기서 구출될 것이므로, 현재 일시 일어나는 낙심을 극복한다. 고난 중에서 낙심하지 않을 영웅이 없다. 그러나 그 낙심을 이기는 자가 지자(智者)이다.
"내 얼굴을 도우시는 하나님". 이것은. 난색(難色)을 띠고 있던 수난자를 하나님께서 도와 주심으로 얼굴에 희색(喜色)을 가지도록 하심을 말함이다. 42:5의 해석을 참조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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