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37:1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 이
것은, 악을 행하면서도 잘되는 듯이 보이는 자들로 인하여 성도는 마음에 불평을 품지
말라는 의미이다. 하반절의 말씀도 역시 이것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투기"(*
=테칸네)는 남의 왕성함을 보고 불쾌하게 생각하는 마음이니, 성도에게 합당치 않은
것이다. 사람이 진정한 의미에서 잘되거나 못되는 것은 하나님께만 달린 것이니, 각각
하나님께 자기의 장래를 맡기고 그날그날 의(義)를 행할 뿐이다. 투기하는 것은 진리
에서 탈선된 행동이다.
시 37:2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
"풀"이나 "채소"는 얼른 없어지고 마는 것처럼, 악인의 번영은 수명이 길지 못하다(욥
14:2; 시 90:5, 129:6; 사 40:6,7). 악인은 거짓된 방법으로 성공을 획책하므로, 오랫
동안 힘들이지 않고 쉽게 왕성하는 수가 있다. 그것은, 풀이 얼른 자라나는 것과 같
다. 그러나 부정한 수단으로 얻은 재물은 필경 복이 되지 못한다(잠 20:17, 21:6,
23:5). 이 사실을 생각할 때에 성도로서 어찌 악인의 형통함을 투기할 수 있으랴!
시 37:3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 신자가, 육체적 번영은 얻지 못했을지라도 불평
할 것은 없다. 그 이유는, 육체적 번영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함이 더 큰 축복이
기 때문이다. 그 의미에서 이 시인은, 이 귀절에서 여호와를 의뢰함을 고조한다. (1)
여호와를 의뢰함은 한 개의 관념 뿐이 아니라, 구체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생명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뒤이어 말하기를, "선을 행하라"고 한다. (2)그리고 선을 행하
기는 하나님을 의뢰함에서 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누가 진정한 선을
행할 수 있으랴. 신자가 선을 행하는 소망이 하나님의 보상에 있고, 또 선을 행하는
능력도 하나님을 의뢰함에서 받는다.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 여기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
어다"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레에 에무나(* )라고 한다. 우리 한역이
보여 주는 뜻은 이렇다. 곧, 성도가 하나님을 의뢰하면, 날마다 하나님의 성실된 보상
을 체험하게 되나니, 그는 그것으로써 만족하기를, 기름진 식물로써 하는 것보다 더
해야 된다는 것이다. 한역의 각주도 이와 동일한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한
역과는 다른 번역들도 있다. 곧, (1)"진리로 네 양식을 삼으라"는 것, (2)"불법하게
탈취한 것으로 살지 말고, 진실히 얻은 것으로 살라"는 것, (3)"견고히 누리라"는 것
등이다.
시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 하나님을 기뻐
하는 신앙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3절)보다 한층 더 자라난 믿음이다. 그것은 하
나님의 뜻을 자기의 뜻과 같이 여기는 생활 단계에 나아간 신앙이다. 그러므로 그의
기도와 소원이 성취된다.
시 37:5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 여기 "길"이란 말(*
=떼렉)은, 신자의 모든 염려되는 일들과 알 수 없는 전정(前程)을 가리킨다. "맡기라"
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꼴(* )이니, "굴리라"란 말이다. 큰 돌을 들고 등산하기
는 어려우나, 그것을 산꼭대기에서 밑으로 굴리기는 쉽고 또 유쾌하다. 근심의 짐과
죄짐을 가지고 승천하기는 불가능하되, 내 짐을 지시기 위하여 하늘에서 땅 위에 내려
오신 예수님에게 내 모든 짐을 맡기기는 쉽고 유쾌하다. 이것이 곧, 신앙으로 얻어지
는 안식이다.
시 37: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 이것은, 성
도가 그 길을 여호와께 맡긴(5절) 결과이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혹시 악도들 앞에서
억울함을 당하나, 하나님은 그것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신다. 성도가 그 억울한 것을
주님께 맡기며 기도할 때에, 주님은 그것을 귀정시켜 주신다. 그것이 곧, 성도의 "의
를 빛 같이 나타내어" 주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억울함을 당한 신자를 위하여 기
이하게 신원하여 주시고, 그를 높여 주시는 일이 있다. 영국의 엘리사벱 여왕은, 왕
위에 오르기 전에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적이 있었다. 그 때에 그는, 옥중에서 우유
배달하는 여자를 부러워하였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 자기가 44년동안 영국 여왕이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시 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 이것은, 신자가 견인 지구(堅忍持久)해야 할 것을 말함
이다. 곧, 모순과 역경에 있어서도 동요하지 않고 수난함이다. 성도가 수난(受難)하며
침묵함은, 세 가지 의미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곧, (1)왕적 침묵, 이것은 미천한
자리에서도 진리를 파수하며 필승의 시기(時期)가 올 줄을 확신하는 왕적 권위를 무언
중에 보여 주는 것이다. (2)예언적 침묵. 이것은, 그가 처한 역경스러운 환경 가운데
서도 진리의 음성을 조용히 탐색하는 태도이다. 그는 부절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한다. (3)제사장적 침묵.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죽은 제물 같이 신앙 정결을 위하여
수난자로서 희생됨을 말함이다.
시 37: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 분노는 혈기에
속한 것인 만큼, 그것은 외계의 불공정한 사태를 귀정시키지 못하고, 도리어 자신의
심령 속에 무질서를 발생시킨다. 그것은 악을 증가시킨다. 성도는 언제나 화평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남이 잘되기를 기원할지언정 시기(猜忌)와 질투(嫉妬)를 품지 않는다.
시 37:9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 악인은 일시 동안 득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실질에 있어서 그에게 복이 아니다. 그 이유는, 그가 그 득세한 것으로 인하여
죄를 더 범하고 그 죄 값을 잠시 후에 참흑하게 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
사이비한 행복을 만나지 않았더면 좋았을 뻔한 것이다.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 "여호와를 기대"한다 함은, 하나님
의 도우심만이 진정한 축복인줄 알고 대망하는 신앙을 말함이다. 그러나 그 대망은,
하나님의 원조보다도 하나님 자신을 만나는 것을 더 큰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땅을
차지한다" 함은, 어떤 경우에 여자적(如字的)으로, 이 세상에서 땅을 차지함을 가리킨
다. 그러나 이것이 영적 의미도 가지나니, 곧,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세의 기업 누림을
가리킨다.
시 37:10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 이것
은, (1)악인의 왕성 시기가 짧은 것과, (2)그 멸망은 하나님의 간섭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철두철미한 것을 가리킨다. 악인의 행복이란 것은, 죄악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
에 그 수명이 길지 못하다. 죄악 위에 의지하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마 7:26,27). 동양의 폭군이었던 진시황은, 만세토록 그 자손이 임금되기를 소망하였
으나, 제 2세 때에 그의 왕조는 무너지고 말았다.
시 37:11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 "온유한 자"(*
=아나위)는, 9절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와 같은 사람이다.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두
지 않는 자는, 폭력을 폭력으로 저항하려 할 것이다(Calvin). "땅을 차지하며"란 말
은, 9절 하반절에 해석되었다. 그 해석대로, 이것은 내세의 기업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것이 이 세상의 물질적 축복을 제외하는 것은 아니다. 의로운 개인이나 사회가 그
산업에서 실패할 이유는 없는 것 만큼, 필요하면 그 방면 축복을 언제나 받을 수도 있
다.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온유한 자"는 하나님만 소망하고 하나님으로만
만족하는 것인 만큼, 그의 심령은 늘 즐겁고 평화롭다. 하나님은, 하나님 제일주의를
가지는 성도와 함께 하시며, 지각에 뛰어난 평강을 그의 심령에 주신다(빌 4:6,7). 이
렇게 진정한 평강을 누리는 자는, 날로 더욱 평강이 풍성해지며, 내세에는 영원 무궁
한 평강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온유한 자 곧, 의인이 늘 평강을 누리는 이유는, (1)의
인은 하나님의 택한 자인 만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까닭이며, (2)하나님은 의(義)
의 편에 계시어 늘 구원의 역사를 하시기 때문이다. 잠 28:1에 말하기를, "악인은 쫓
아 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라고 하였다.
시 37:12,13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향하여 그 이를 가는도다 주께서 저를 웃으시리니 그
날의 이름을 보심이로다. - 이 두 귀절 말씀은, 앞절에 말한 "온유한 자"가 "풍부한
화평"을 누리는 이유를 밝혀 준다. 악인들이 일어나 온유한 자를 해하려고 여러가지
모략을 꾸밀지라도, 온유한 자의 화평은 계속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
한 운동을 보시고 웃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웃으시는데 성도가 울 필요는 없다.
하나님께서 웃으시는 사실 앞에서 성도가 우는 일은 종종 있으니, 그것은 성도 자신이
어두워진 까닭이다.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우리는 그 때에 기도하므로 영안이 밝
아져서 하나님의 웃으심을 볼 수 있으며, 비애 중에서도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예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위의 칼빈(Calvin)의 말과 같이, 성도는 기도로써야 악인들의 모함
중에서 주님의 낙관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날의 이름을 보심이로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하는 일을 보시고
웃으시는 이유를 지적한다. 하나님의 권능이 무한하시지만, 악인들을 당장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그 멸망의 시기(時期)가 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이 악
인을 이 세상에 용납해 두심도 무모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지
리하여도 악인 멸망의 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유익할 줄 알고 기쁨으로 견디어야 한다.
시 37:14,15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기어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 그 칼은 자기의 마음을 찌르고 그 활은 부러지리로다. - 이 두 귀
절은, 위의 12절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설한다. "가난하고 궁핍한 자"는, 인간 중에서
도 도움 받을 데 없는 성도들을 가리킨다. 악인들이 의인들을 해하려고 "칼을 빼고 활
을 당김"은, 그 최후 발악이다. 악도들이 이렇게 최후 수단으로 덤비는 때야말로, 성
도는 주님의 도움을 받을 때이다(시 119:126).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성도를 위
한 하나님의 구원 약속은, 고요하고 평안할 때를 상대한 것이 아니라, 가혹하고 무서
운 환난의 때를 상대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악인들이 최후 수단으로 성도를 해하려고
하나, 그렇게 하는 때는 자기들 자신이 멸망하는 때가 되고 만다. 그야 말로 자승자박
(自繩自縛)의 결과가 연출된다. 악자가 득세할 때에 두렵지 않다 할 자 누구리오. 그
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 때 그들의 위세는 그들의 자멸을 위한 것이니, 도리어 우
스운 것이다.
시 37:16
의인의 적은 소유가 많은 악인의 풍부함보다 승하도다. - "의인"은, 악인에게서 쫓
기는 수도 있고(12-15 참조), 또 그 때문에 물질이 궁핍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적은 힘과 소유가 오히려 행복스러운 생활을 준다. 그 이유는, (1)그 사소(些少)한 소
유라도,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주신 것인 만큼, 그것이 부족해지면 그가 또 주시
기 때문이며(17,18 참조), (2)그것은 불의하게 얻은 것이 아닌 고로, 유쾌하고 행복된
생활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진정한 생명은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고(눅 12:15) 의
(義)를 소유함에 있다. 의가 사람에게 요긴하기는, 고기에게 물이 요긴함과 같다. 마
13:43 참조.
시37:17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 - 히브리 원문에는 이 귀
절 초두에 "왜 그런고 하면"이라는 이유 접속사(* =키)가 있어서, 이 귀절이 윗절
말씀의 이유인 것을 밝혀 준다. "의인의 적은 소유가 많은 악인의 풍부함보다 승한"
이유는, "악인의 팔(악인의 믿던 힘)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기 때문이
다. 악인의 힘이 꺾어지는 것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밀하신
간섭으로 인하여 그렇게 된다. 의인은 비록 소유가 적어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배경이 되어 계시니 걱정이 없다.
시 37:18,19
여호와께서 완전한 자의 날을 아시니 저희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저희는 환난 때에
부끄럽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하려니와. - "완전한 자"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
로 테미밈(* )이니, 전연 무죄한 자를 가리키지 않고 순전한 자 곧, 하나님
앞에서 신앙 양심대로 행하는 자를 가리킨다. 그는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 만큼, 하나
님의 뜻대로 행하기를 힘쓰는 동시에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은 지체하지 않고 회개한
다. 그는 간사한 자와 반대되는 자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순전한 자의 "날", 곧, 그의
평생을 알고 계시다. 그의 알아 주심은, 냉냉한 객관식 지식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택한 백성을 사랑하시어 구원하시려고 친히 작정하심과, 또 친히 그대로 실행하실 줄
아심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시는 대상된 자의 기업, 곧, 그가 살며 즐기게
하는 소유물(* =나칼)은 영원히 다함이 없다. 하나님께서 그의 구원자이시며 보
호자시니, 그의 기업이 없어질 리는 없다. "부끄럽지 아니하며"란 말은, 실패하지 않
는다는 의미이다. 스펄죤(Spurgeon)은 말하기를, "환난도 오지만 구원도 오는 법이다"
라고 하였다(Calamity will come but deliverance will come also.). "풍족하려니와"
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이스빠우(* )니, "족하려니와"라고 번역해야 된다.
족한 것은 반드시 풍족함이라고 할 수 없다. 신자가 기근의 때에도 감사하는 생활을
가지는 한, 그 때를 통과하기에 족한 은혜가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된다.
시 37:20
악인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는 어린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 되어 없어지리로
다. - 곧, 환난 때에 "악인"은 멸망하고 만다는 의미이다. 환난 때에도 행복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의인 뿐이다. "악인"은 하나님을 믿지 않나니 그 때에 그가
무엇을 믿고 위로를 얻으며 살 수 있으랴. 그는 연기처럼 사라질 수 밖에 없다.
시 37:21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 "악인"은, 많은 재
산도 부족하게 여기며 탐심과 방탕의 노예가 되기 때문에, 남의 것을 꾸고도 돌려 보
내지 않는다. 그만큼 그는 소유를 많이 가지고도 빈궁한 생활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의인은 적은 소유를 가지고 검소한 생활을 하기 때문에 남는 것이 있다. 그는 남을 구
제할 수 있다. 그는 가난하면서도 넉넉한 생활을 하는 자이다. 결국 악인은 그처럼 부
하여도 멸망으로 향하여 가고, 의인은 흩어 구제하여도 땅을 차지하며 그 자손들도 형
통한다. 22, 25절 참조.
시 37:22
주의 복을 받은 자는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는 자는 끊어지리로다. - "땅을
차지"한다는 말에 대하여는 9절과 11절 해석을 참조하고, "끊어지리"라는 말에 대하여
는 2절과 10절 해석을 참조하여라. 인간의 잘되고 못되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이고 자기에게 달린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를 믿지 말고 하나님
을 바라보아야 된다. 곧, 그는 하나님만 믿고 그를 기쁘시게 할 뿐이다. 시 127편 참
조.
시 37:23,24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
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 "사람"이란 말(* =케베
르)이 여기서는 성도를 가리켜 사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갈 길을 미리 정
하시고 그대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가는 길을 기뻐하신다. 그들은 넘어져
도, 그 진로에서 아주 떨어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서 그 길을 가게 된다. 요셉이 감옥
에 갇힐 때에는 실패한 것 같았으나, 후에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었고, 요나는 바다에
던지웠으나 기도 응답으로 육지에 구원되었고, 욥은 고난 받은 뒤에 그 전에 소유했던
재산보다 갑절이나 부해졌다.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 성도는 넘어져도 근본적
손해는 보지 않는다. 롬 8:28 참조.
시 37:25,26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
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 다윗은,
여기서 자기의 경험에 근거하여 말한다. 그는, "의인"과 "그 자손"들이 버림 당할 일
이 없음을 역설(力說)한다. 이 귀절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물질적으로 잘 되는 것도
전연 하나님께 달렸다고 한다(이 말씀은, 어떤 특수한 경륜에 의하여 성도를, 또는 그
들의 자손이 가난해지는 일도 무시함이 아니다). 사람들은 장래 자기 자손의 생계를
위하여 많이 염려한다. 그것은 헛된 염려이다. 그들은 그런 염려를 하지 말고 의롭게
살기를 힘쓸 뿐이다. 곧, 물질 관계에 있어서 그들은 의로운 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된
다.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곧, 물질에 대하여 의롭게 관계하는 물질로 도와 줄
것이 있다는 말씀이다. 그들은 물질로 남을 도와 주니, 하나님의 갚아 주심을 받아 그
들의 자손도 물질적 축복을 받는다. 잠 19:17에 말하기를,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
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하였고, 잠 28:27에는 말하
기를,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시 37:27-29
이 귀절들은,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는 자의 받을 축복이 확실함을 보여준다. - 악
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 이것은, 3절 말씀 내용을 다시 꺼낸다. 곧, 성도는, 악인의
사이비한 행복을 인하여 불평하지 말고 선을 행하라는 의미이다. 죄를 떠나 선을 행하
는 생활처럼 행복된 것은 없다(시 1:1). - 그리하면 영영히 거하리니. - 이것은, 땅에
서 불의한 수단으로 잘되어 나가는 듯이 보이는 악인들의 형통 때문에, 성도가 그 마
음에 불평할까하여 위로하는 말씀이다. 성도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선을 행하면, 땅을
차지하며 거기 영구히 거하게 된다.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 히브리 원문에
는, 이 말씀 초두에 "왜 그런고 하면"이란 이유 접속사(理由接續詞) 키(* )가 있
다. 그러면, 선을 행하는 자가 "땅 위의 영구히 거"하게 되는(27절) 이유는, 하나님께
서 공의를 사랑하사 상선벌악(賞善罰惡)하시어 성도를 버리지 않으시는 까닭이다.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 - 이 시인은 이 진리를 여러 번
반복한다(9, 11, 22, 27). 그가 그렇게 한 목적은, 그 진리를 신자들에게 깊이 인상시
키려는 것이다. 사람들이 행복을 구하되 자력으로 그것을 얻을 듯이 덤빈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한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성도들만이 땅 위에 "영원히 거한"다고,
이 시인은 여기서 여러 번 말한다. 그들이 "땅을 차지한"다 함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
혜로 (1)물질적 생활 안정을 얻는다는 동시에, (2)하나님의 품 속에서 영구히 보호를
받으며, (3)마음 속에 평안을 누린다는 의미도 가진다(Calvin).
시 37:30,31
의인의 입은 지혜를 말하고 그 혀는 공의를 이르며 그 마음에는 하나님이 법이 있
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 이 귀절들은, 위에 많이 관설된 의인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하여 밝혀 준다. 그는 입술과 마음과 행실이 선한 자니, 그 "입"은 하나
님의 "지혜(혹은 의)를 말하고", "그 마음"에도 "하나님의 법(지혜)이 있"고, "그 걸
음"(행실)도 하나님의 법에서 탈선하지 않는 자이다. 이렇게 의인은 사언행(思言行)에
있어서 의로운 자이다. 그 의로움은, 물론 하나님을 신뢰함에서 받는 열매이고, 자율
주의(自律主義)의 산물(産物)이 아니다.
시 37:32,33
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으나 여호와는 저를 그 손에 버려 두지 아
니하시고 재판 때에도 정죄치 아니하시리로다. - 어느 시대에나 악인은 의인을 죽이려
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내버리시지 않는다. 의인이 순교하는 것은, 하
나님 앞에 버림 받음이 아니고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기 위한 은총이다.
의인(성도)는, 이렇게 하나님의 붙드시는 은혜 가운데서 악인을 이긴다.
랑게(Lange)는 이 귀절들에 대하여 강해하기를, "성도를 핍박하는 악인의 손이 길
다 할지라도, 성도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은 그들의 손보다 더욱 길고 굳세다"라고
하였다.
시 37:34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라. - 9절에는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란 말이 있는
데, 거기 "기대하다"란 말(* =카웨)은 여기 바라본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9절
해석 참조, 인간은 소망대로 행동하는 법이다. 헛된 소망을 가진 자는 헛된 일을 하
고, 선한 소망을 가진 자는 선을 행하게 된다. 이렇게 소망은 인간의 행위 동기를 성
립시킨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거룩한
행실을 가지게 된다. 신앙은 관념 뿐이 아니고, 구체적 행위를 가짐으로써 온전해 진
다. 그러므로 이 귀절에, "그 도를 지키라"라고 부언(附言)한다.
그리하면 너를 들어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다. - 9, 11, 29 절 해설 참조. - 악
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목도하리로다. -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1)악인들의
멸망은 확실하다는 것과, (2)그들의 멸망이 멀지 않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아는 성도
는, 악인이 일시 왕성하여 교회를 박해할 때에도 주님의 능하신 처분이 있을 줄 알고
안심할 뿐이다. 박해자들을 멸절시키시는 주님의 손이, 핍박 받는 성도에게는 구원이
아니고 무었이랴! 순교한 성도들은 불행을 당한 것이 아니고 모든 성도들 중에 으뜸이
된 것 뿐이다. 순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하나님께서 그의 가장 사랑하
시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인 것이다.
시 37:35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토에 선 푸른 나무의 무성함 같으나. - 이 귀절
의 "본토에 선 푸른 나무"란 말(* =에즈라크 라아난)을 70인역(LXX)
과 월겟역(Vulgate)은, "레바논의 백향목"이라고 번역하였다. 이것은 왕성한 나무를
생각케 한다. 우리 한역대로 보더라도, 그 뜻은, 기억할 수 없는 오랜 세월 동안 생장
하여 방대(尨大)한 나무가 되어, 가지가 왕성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Delitzsch). 이것
은 악인의 세력이 제멋대로 확장된 모습을 비유한다.
시 37:36
사람이 지날 때에 저가 없어졌으니 내가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도다. - "사람이 지
날 때에"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야아보르(* )니, "그가 지나갔다"는 뜻이다.
곧, 악인이 일시 왕성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자취도 없이 지나갔다는 말이다. 볼테아
(Voltaire)란 철학자는, 자기가 죽은지 백 년 후에는 성경이 없어진다고 하였지만, 그
의 말과는 정 반대로 그가 죽은지 백 년 후에 그의 집은 성경 파는 집이 되었다. 악한
볼테아(Voltaire)는 간데 없고, 성경은 영구히 보존된다.
시 37:37
완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로다. - 여
기 있는 두 가지 명칭, 곧, "완전한 사람", "정직한 자"등은 동일한 사람(성도)을 가
리킨다. "완전함"(* =탐)은 순전하여 간사하지 않음이고, "정직함"(* =야솰)
은 하나님 앞에서 가리움이 없이 바르게 나타남이다.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로
다". 이 말의 히브리어(* )는, "그 사람의 결국은 화평이
로다"라고 직역될 수 있다(Calvin). 그러나 델리취(Delitzsch)는, 그것을 또 달리 번
역하였다. 곧, "그 평화의 사람은 후손이 있음"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문맥에 부합
한다. 악인은 아주 망하나(36절), 성도은 후예(後裔)가 있나니, 특별히 영적 후손이
있다. 우리는, 위의 두 가지 번역 중 하나를 택할 만하다.
시 37:38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결국은 끊어질 것이나. 암 4:2, 9:1; 겔 23:25
참조.
시 37:39
의인의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그는 환난 때에 저희 산성이시로다. - "산성"은 히브리 원어로 마우즈(* )니, 호신처(護身處) 혹은 은신처(隱身處)를 의미한다.
시 37:40
여호와께서 저희를 도와 건지시되 악인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연고로다. - 하나님께 신뢰함은,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받는 방법이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음은, 곧바로 하나님에게 대한 불신임이니 큰 죄악이다. 믿음은 중요하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땅 위에 계실 때에 병자를 고치시면서, "네 믿음대로 되라"고 하셨다(마 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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