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36:1
악인의 죄얼이 내 마음에 이르기를 그 목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하니. -
"악인의 죄얼이 내 마음에 이르기를". 이것은, 그가 악인의 죄악을 볼 때에 자기 마음
속에 깨닫는 것이 있다는 의미이다. 이 깨달음은, 그 악인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우리가 남의 행위를 보고 그 사상을 추측할 수 있다. 여기 있는 "내 마
음에"란 말(* )이, 70인역(LXX)과 수리아역(Syriac)과 아라비아역
(Arabian)에는 "그의 마음에"(* )라고 되어 있다. 후자가 옳다면, 그
뜻은 이 시인의 마음이 아니고 악인의 마음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이 귀절의 뜻은, 그
악인의 죄행이 그의 마음 속에 아첨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할 것 없다고 말한다는 것
이겠다. 델리취(Delitzsch)는 이 해석을 취하였다.
시 36:2
저가 스스로 자긍하기를 자기 죄악이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
라 함이로다. - "자긍"한다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헤켈릭(* )이니, "미끈하
게 함"(smooth over)을 의미한다. 곧, 그것은 아첨한다는 뜻이다. 악을 행하면서 스스
로 생각하기를, "괜찮다 괜찮다"하니 그것은 스스로 자기에게 아첨함이고, 동시에 스
스로 속음이고, 스스로 멸망의 길로 직행함이다. "자기 죄악이 드러나지 않고 미워함
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란 말(* )을 직역(直譯)하
면, "자기 죄악이 드러나 미움을 받는 건에 관하여"이다(Lange). 그러면 이 귀절의 뜻
은 이렇다. 곧, 자기의 죄악이 드러나 미움 받을 일에 대하여는, 그가 스스로 자기 마
음에 아첨하여 "괜찮다"고 한다는 말씀이다. 여기 "죄악"이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아
웬(* )인데, 선에 정반대되는 심한 악을 말함이다(잠 16:29)
시 36:3
그 입의 말은 죄악과 궤휼이라 지혜와 선행을 그쳤도다. - 우리 입술은, 남에게 은
혜를 베풀고 진리를 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악인들은 그와 반대로 혀로써 남을
해하고 또 비진리를 말하기 위업(爲業)한다. "지혜와 선행을 그쳤도다"란 말(*
)은 직역하면, "지혜롭게 행하여 선히 행하기는 그쳤도다"라고 할 수 있다. 곧, 그들
은 전적으로 악화되고 말았다. 지혜는 선을 행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선행을 목적하지 않고 되는대로 행하는 난폭한 자에게는 지혜가 벌써 불필요한 것이
되고 말았다. 지혜가 그치매 선행도 그칠 것이다.
시 36:4
저는 그 침상에서 죄악을 꾀하며 스스로 불선한 길에 서고 악을 싫어하지 아니하는
도다. - "침상"은 자기 반성과 회개하기에 적합한 곳이다(4:4). 그러나 악인은 오히려
그곳에서 악의 계획을 꾸민다. 그것을 보면, (1)그는 심령의 깊은 부분에까지 악이 가
득한 자요, (2)선한 기회도 악행에 이용하는 자요, (3)돌연히 악에 끌려서 악을 행하
게 되는 자가 아니고 계획적으로 악을 행하는 자이다.
"스스로 불선한 길에 서고 악을 싫어하지 아니하는도다". 곧, 그 악인이 외래에 강
요나 유혹에 끌려서 마지 못하여 죄악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또는 기탄 없이
죄악을 즐거워하여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시 36:5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 "하
늘에 있"다 함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부족과 과실을 초월하여 높은 데서 인간을
보호하고 계심을 말함이다. 우리가 불행히 주님께 범죄하여도, 주님의 인자는 무너지
지 않고 위에서 우리를 그냥 권고하고 계신다.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이
말씀에 대하여는 해석가들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진다. (1)하나님의 말씀하신대로 이루
어진 것이 공중인데, 그의 말씀의 진실성이 공중(公衆)보다 크다는 뜻. (2)주님께서
그 택한 백성에게 언약하신 것을 모두 성취하시므로, 그것은, 환하게 높이 솟아 있는
공중과 같이 밝히 증명되고 있다는 뜻. (3)스펄죤(Spurgeon)은 말하기를, "공중이란
말(* =쉐카킴)은 구름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환난을 비유한다. 주님께서 그
택한 백성에게 주신 언약은 많은 환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실히 이루어진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위의 첫째 해석이나 둘째 해석이 옳을 것이다.
시 36:6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물과 같고 주의 판단은 큰 바다와 일반이라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보호하시나이다. - "하나님의 산"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큰 산물을 가
리키는데, 그것은 불변 부동(不變不動)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택한 백성의 모든
억울한 사정을 귀정시키는 공의는, 태산 같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주의 판단은 큰 바다와 일반이라". 바다는 깊어서 다 측량할 수 없음과 같이, 하
나님의 심판 행위도 오묘막측한 방면이 많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도 성도들에게는
사랑을 의미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심판으로 의하여 악인을 징벌하심이 없으면,
성도의 억울한 사정이 귀정되지 못한다. 혹설에 의하면, 여기 "큰 바다"(*
=테홈 라빠)는 홍수를 의미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가 홍수처럼 엄하여
피할 자 없음을 비유한다고 한다(Lange). 그러나 그 해석은 이연하지 않다. "큰 바다"
(* )는 실상 큰 깊음(great deep)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오묘
막측한 처사나 심판이 인간에게 신비로운 사실을 가리킨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보호하시나이다". 이 귀절 상반에서 다윗은, 주님의
심판에 대하여 말하다가 여기서 주님의 인자에 대하여 다시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주
님의 심판도 인자를 결여(缺如)한 것이 아닌 사실을 알 때에 하나님의 이 두 가지 속
성(仁慈와 審判)이 서로 대립이나 충돌 없이 전후에 인접하여 기록될 수 있다고 믿어
진다. "사람과 짐승을 보호하시나이다"란 말씀은, 하나님의 인자가 얼마나 큰 것을 지
적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사람 뿐 아니라 짐승까지도 보호하신다. 마 10:29 참조.
이것을 보면, 우리 인간으로서야(더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성도로서야) 얼마나 그
를 신앙하고 안심할 만한 것인가! 그 뿐 아니라, 성도들은 이 말씀을 볼 때에, 하나님
의 너그러우신 덕
시 36:7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인생이 주의 날개 그늘 아
래 피하나이다. - "날개 그늘". 이것은, 암닭이 그 병아리를 날개 아래 보호하여 외적
(外敵)의 해를 면하게 하고, 또 온기와 위안을 주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이다(신
32:11; 시 17:8,57:1, 63:7, 91:4).
시 36:8
저희가 주의 집의 살찐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수로 마시우시
리이다. - "주의 집의 살찐 것"이란 것은, 부자의 집에 쌓여 있는 각양(各樣) 좋은 식
료품을 생각하고 비유적으로 하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각양 영량(靈糧)을 비치(備
置)하시고 성도들에게 공급(供給)하신다. 여기 "주의 복락의 강수"(*
=나칼 아다네햐)는 "당신의 기쁨의 강수"란 뜻이니, 에덴 동산의 강수를 암시한다. 이
것은, 영적으로 인생을 만족하게 하는 은혜의 풍부함을 가리킨다.
시 36:9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 "주
의 광명". "광명"은 모든 생명을 발생시키는 능력을 가진다(요 1:4). 이 우주(宇宙)에
광명이 없었더면 생물들이 없었을 뻔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무엇보다 먼저 빛을
지으신 것이다. 인자(仁慈)는 빛에 비유될만하다. 주님의 사랑이 나타나지 않으면, 인
간은 참된 생명과 행복을 얻지 못한다.
시 36:10
주를 아는 자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하시며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의를 베
푸소서. - 여기 이른 바 "주를 아는 자"나, "마음이 정직한 자"는, 같은 종류의 사람,
곧, 성도를 가리킨다. "주를 아는 자"는 하나님의 계시(啓示)를 소유할 뿐 아니라
(Gunkel), 그 계시에 신뢰하며, 지적으로만 아니고 온 인격이 관계된 심령으로 주를
아는 자이다(J. Ridderbos). "주의 의를 베푸소서"란 말은, 주님께서 그 백성을 모든
억울한 가운데서 건져 주시는, 정의를 실시하여 주시기를 구하는 뜻이다.
시 36:11
교만한 자의 발이 내게 미치지 못하게 하시며 악인의 손이 나를 쫓아내지 못하게
하소서. - "교만한 자"는 하나님과 사람을 겸하여 무시하는 불경건한 자이다. 여기서
는 그 교만한 자가 사울이었던지 혹은 압살롬이었을 것이다. 이 귀절 말씀은, 다윗이 원수에게 붙잡힐 위험이 있던 때에 지은 듯하다.
시 36:12
죄악을 행하는 자가 거기 넘어졌으니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날 수 없으리로다. -
"거기"란 것은 주님의 심판하시는 장면을 의미한다. "넘어졌으니"(* =나펠루)
란 말이 과거사(過去詞)이지만, 실상은 시간적 과거가 아니다. 그것은, 이 시인의 기도가 응답되어 그 원수가 패망할 것을 확신하는 의미에서 채택한 그의 어법(語法)이다. 리델보스(J. Ridderbos)는, 이것을 확신 완료 사상(de perfecta der zekerheid)이라고 하였다. 곧, "다윗은 그 원수의 패망을 기뻐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개인주의(個人主義)에서 그리한 것이 아니고, 그 자신의 문제가 하나님의 것과 동일시(同一視)되는 지식에서 그리하였다"라고 하였다(De Paslmen I,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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