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시편 03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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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32:1,2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 이 두 귀절은, 하나님 앞에 사죄  받
은 자의 행복에 대하여 말한다. 사죄 받는 일에 대하여 여기서 세 번이나 중복하여 말
함은, 그 사죄 받는 일의 확실함과 행복됨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여기 "사함을  얻음"
(*        )은 치워버린 바 됨이고(시 103:12). "가리움을 받음"(*        )은,  하나
님의 눈에도 보이지 않도록  됨이고(시  85:2;  잠  10:12).  "정죄를  당치  않음"(*             
 
)은 죄로 간주되지 않음을 가리킨다(삼하 19:23; 롬 4:6-8). 위의 세 가지 표현은, 하
나님께서 회개자를 사해 주심이 얼마나 철저함을 보여 준다. 한역(韓譯)대로 2절 초두
에, "마음에 간사가 없고"(*                          )란 말이  히브리  원어에서는
본절 끝에 있으니, 그것이 문의상(文意上) 차례에 맞는다.  그러므로  어순(語順)대로
맞춘 뜻은 다음과 같다. 곧, 하나님 앞에서 사죄 받은 자는 행복된 자인데, 그는 간사
하지 않은 자라는 것이다. 간사하지 않은 자는, 죄을 가리우지 않고 회개하므로  하나
님 앞에서 사죄를 받는다.

 

  시 32:3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 곧,  다윗이  그
죄악을 하나님께 고백하기 전에 심리 고통이 심하여 몸의 진액이 마르므로 뼈가  쇠해
진다는 말이다. 죄는 이렇게 독한 것이다. 그것을 우리의 속에 가두어 두면,  그것은,
거기서 우리 속에 생명을 소멸시킨다.

 

  시 32: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
나이다(셀라). -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란 말의 누른다는 말은,  히브리
원어 틱빠드(*        )의 의역(意譯)이다. 그 직역(直譯)은 무겁다는  뜻이다.  죄를
고백하지 않으므로 심리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심한데, 거기 하나님의 진노의 손이  영
적으로 무겁게 첨부되므로 설상가상을 이룬다. 그 뿐 아니라 그는  영적으로  고갈(枯
渴) 상태에 빠진다. 그의 심령에는 하늘 생수가 공급되지 않고 하늘이 무쇠하늘  처럼
되어 버린다. 그는 영적 한재(旱災)를 당하고 있다. 죄 때문에 이렇게 고통하는  정도
는, 아직 회개(悔改)는 아니다.

 

  시 32: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
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주께서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 - 잠 28:13 참조. 누구든지
자기 양심 앞에서 죄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사죄 받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죄를 자복하는 자는, 사유함을 받는다. 하나님 앞에 죄를 자복함이  사죄를  가져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죄인이 자복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 죄를 몰라서 사하시지  못하
시는가? 그런것은 아니다. 죄를 자복함은 하나님께 그 죄의 내용을 알리려는 것이  요
점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 대한 그 죄인의 태도를 바로 결정시킴이다. 곧,  (1)
그가 진심으로 죄를 자복함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비행을 인정함이다. 그것은,  사
람 앞에 체면이나 세우려고 사람의 눈가림이나 하는 정도의 것이 아니다. 죄인이 그만
큼 자기 죄를 진실히 인정할 때, 하나님께서 그 태도를 기뻐하신다. (2)그 자복  행위
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신앙이다. 그러므로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실패
케 하지 않으시며 헛되지 않게 하신다.

 

  시 32:6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
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 "이로 인하여   기도할지라"란 말은,
윗절에 말한 것 같이 사죄의 은혜가 확실히 있으니 만큼, 기도하라는 의미이다.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신 4:29; 사 49:8,55:6; 렘 29:13 참조.
   "기회"란 것은 영적(靈的)인 기회를 의미하고, 시간적인 기회를 가리키지  않는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그 백성을 만나고자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때가 시간적으로 특정되어 있다고 할 것은 없다. 어느 때나 우리가 전심으로  회
개하며 하나님을 찾으면 그를 만날수 있다. 그러므로 심판 때 전에는 언제든지 주님을
찾아 만날 기회가 된다.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란 말씀  뜻
은, 회개하며 주님을 찾는 자가 환난 중에서도 구원 받는다는 것이다.

 

  시 32:7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
다(셀라). - 이 귀절은, 회개한 다윗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로워진 것을 밝혀  준다.
그가 회개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대하여 노하신  태도를  취하셨던  것이다(4
절).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그에게 "은신처"가 되셨다. 그러므로 다윗은, 앞으로도 많
은 환난 중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을 것이니 만큼, 찬미의 노래 가운데서 살고  있
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시 32:8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 어떤  학자들은,
이 귀절의 발언자가 하나님 자신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도 다윗을 발언자로  생각
함이 옳다(Delitzsch).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겠다는 말씀은 그들을 개별적으로 취급
하며 정녕히 가르치겠다는 뜻이다. 다윗은 친히 자기의 회개를 통하여 사죄의  행복을
체험한 고로 남에게 회개를 권면할 용기를 가진 것이다(시 51:13).

 

  시 32:9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 - 인간은 짐승과 달라서 회개하는 마음
이 있다. "말이나 노새"와 같은 짐승은, 강제로 지배하지 않으면 복종시킬  수  없다.
회개의 정신이 있는 사람은 이런 짐승과 같지 않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짐
승 같다고 하였다(시 49:20).

 

  시 32:10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
다. - 이 귀절은, 불회개자와 회개자의 받는 보응의 차이점을 보여 준다.  불회개자는 비애로써 보응을 받고, 회개자("여호와를 신뢰하는 자")는 풍성한 하나님의 인자를 받는다.

  시 32:1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 여기 "의인들"이란 말은 회개자들을 가리킨다. "정직한 너희"란  말도 역시 그러하다. 이 세상에 애착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즐거워할 줄 모른다.  그러나 회개자들은 세상과 죄악이 주는 비애를 이기고 여호와를 즐거워하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즐거움을 가지면 원망과 불평이 없어지고 신앙 생활이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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