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4: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 여기 내 의의 하나님 (* =엘로헤 치데키)은, "나의 하나님 곧, 의의 하나님"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의(義)는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덕이다. 다시 말하면,그는 그의 의를 근거하여 그의 백성을 구원하신다(사 40장-50장). - 곤난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 곧, 과거에 나를 환난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시니 현재에도 그리하실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이렇게 과거의 신앙 체험에 근거하여 신념있게 구한다."곤난 중에 나를 너그럽게"(* =히르카브타 리)라 함은, 그 자역(子譯)대로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갈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넓고 평안한 데로 구원해 내신 것을 의미한다.
시 4:2
인생들아. - 이 말은 희브리 원어로 뻬네 이쉬(* )니, 하나님의 권능을 이길 수 없는 약한 사람들이란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다윗의 원수들이 비록 강하고 많아도 역시 사람들이요 하나님은 아니니, 그들이 하나님의 종 다윗을 해햐려고 하여도 소용 없다. -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셀라). - "좋아하고"란말(* =테에하분)은, 사랑한다는 뜻이다.압살롬의 무리는 중심에서 부터 "허사"(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 다윗을 대적하는
하는 허사)를 사랑하는 정도로 악하였다. 다윗은 여기서 자기의 왕적(王的) 영광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알고 그것에 반대하는 자는 하나님을 반대하는 자로 여긴다. 압살롬과 같은 자는 다윗의 왕위를 반대하고 전쟁을 일으켰으니,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시 4: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 곧,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위하여 다윗과 및 기타 성도들을 택하여 세우셨으니만큼, 그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아무도 끊지 못한다는 뜻이다. "경건한 자"란 말은 희브리 원어로 카시드(* )라고 하는데, "총애(寵愛)를 받는 자"란 의미, 곧,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받는 자란 말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그 사람을 사랑하심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그리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야 잘났건 못났건,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의 요구가 있어서 택하신 것이니, 그 총애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택하셨"다는말(* =히플라)은, 현저한 방법으로 현저한 지위에 구별하여 세움을 가리킨다.(Delitzsch).
시 4:4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떨며"란 말은 희브리 원어로 리게주(* )인데, "분내어"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러므로 칠십인역(LXX)은, 이 문구를 "분내어 범죄치 말지어다"( )라고 하였다. 이 번역이 올다면, 그 뜻은, 죄 지은 것을 스스로 분히 여겨서 더 범죄하지 말라는 것이다. -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셀라). - 다윗은, 그의 원수들이 회개하고 바로 서기를 원하여 이 말씀을 쓴 것이다. 그는, 그들이 맹목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고요히 반성하기를 부탁한다. 사람이 잘 때는 다른 모든 일들과 관계를 끊고 마음눈이 자기에게로 향하기 쉬운 때니, 자아 반성에 매우 유조(有助)한 시간이다.
시 4:5
희의 제사를 드리고. - "의의 제사"(* =지브케 체덱)는, 동물(動物)의 희생보다 의로운 행실로써 함을 말함이다.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될 만한 의로운 일은 무엇보다 상한 심령, 곧, 회개하는 마음이다(시 51:16,17). -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 - 여기 "의뢰"한다 함은 희브리 원어로 빠타크(* ) 라고 하는데, 상대자를 신용할 뿐만 아니라, 그에게 나 자신을 가까이 하고 맡김을 이름이다.이것은 아라비아말 바사타와 어원(語原)을 같이 한다. 아라비아 말 바사타는, 본래 과단성(果斷性),쾌활성(快活成), 광활성(廣闊成)을 의미한다. 신앙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보는 것
이상으로 확실성 있게 간주하는 태도이며 행동이다. 좁은 마음이나 고루(固陋)한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이렇게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시 4:6-8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 많은 사람들은, "누가 우리에게 선을 보이리오"하면서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좋은 것을 찾고 있다. 그러나 성도는 여호와의 얼굴 빛 곧, 그의 은고(恩顧)를 사모한다. 그 이유는, 그것을 얻을 때의 즐거움이, 이 세상만 사랑하는 자들이 곡식과 포도주가 풍성할 때에 가지는 즐거움보다 크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런 신령한 즐거움을 가질 때에, 원수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히 잘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