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39:1-4
산 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의 새끼 낳을 기한을 네가 알 수 있
느냐 그것이 몇 달만에 만삭이되지 아느냐 그 낳을 때를 아느냐 그것들은 몸을 구푸리
고 새끼를 낳아 그 괴로움을 지내어 버리며 그 새끼는 강하여져서 빈들에서 길리우다
가 나가고는 다시 돌아오지 아니하느니라. - 여기 "산 염소"란 말(* )은
"바위의 염소"란 뜻인데 인적 없는 깊은 산의 석굴에서 살며, 그 털색이 바위의 색과
같아서 사람의 눈에 잘 뜨이지 않는다. "암사슴"이란 말(* )은 사실상 앞에 언
급된 산 염소의 암놈을 말함이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찾아 보기도 어려운 짐승까지도
그가 양육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는 위대하시고 놀라운 일들을 하시지만 역시 이런 짐
승들도 양육하신다. 마 6:26 참조.
욥 39:5-8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하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내가
들로 그 집을, 짠 땅으로 그 사는 처소를 삼았느니라 들나귀는 성읍의 지꺼리는 것을
업신여기니 어거하는 자의 지르는 소리가 그것에게 들리지 아니하며 초장이 된 산으로
두루 다니며 여러가지 푸른 것자르 찾느니라. - 들나귀는 사람들에게 길들임이 되지
않는 동물로서 들에서 자유로이 산다. 여기서 이 짐승은 인간에게 부림이 되는 나귀와
대조된다. 이와 같은 대조는 7절에 암시되고 있다.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이 점
에 있어서 자유하며 제 멋대로 사는 들나귀는 식물을 찾기에 곤란하지만(6,8) 인간에
게 봉사하는 나귀는 먹을 것을 많이 받는다고 하였다.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
게 하라"고 하신 그 진리(살후 3:10)를 여기서도 찾아보게 된다.
이 부분(5-8) 말씀이 강조하는 점은 사람에게 지배되지 않는 들 나귀의 자유도 하
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뜻대로 안되는 일들이 많은데 그런 것
들도 하나님의 관할 아래 있다는 영적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욥 39:9-12
들 소가 어찌 즐겨 네게 복종하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네가 능히 줄로 들 소를
매어 이랑자르 갈게 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쓰레를 끌겠느냐 그
것이 힘이 많다고 네가 그것을 의지하겠느냐 네 수고하는 일을 그것에게 맡기겠느냐
그것이 네 곡식을 집으로 실어오며 네 타작 마당에 곡식 모으기를 그것에게 의탁하겠
느냐. - "들 소"(* )는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삼림 속에 사는 짐승인데 힘이 강
하고 사람에게 길들임이 되지 않는다. 그 힘이 사람에게 이용되면 유용할 것이지만 그
렇게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 들 소에 대한 말씀을 살펴 볼 때에 몇 가지교훈을 발견
한다.
(1) 인간이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은 결과로 많은 짐승들은 사람에게 복종하지 않게
된 것이다. "땅이 네게 가시 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하신 말씀(창 3:18)은 동
물계의 반역 현상도 포함한다고 할 만한 함축 깊은 말씀이다.
(2) 힘과 재능이 풍부하면서도 봉사와 순종심이 없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들 소
와 같은 자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들 소를 보고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부족을 깨
달아야 한다. 들 소와 같이 신임성이 없는 자는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일을 맡지
도 못한다.
(3) 하나님의 섭리는 들 소의 생리에도 깊은 관계를 가진다는 것을 발견한다. 들
소가 저렇게 사람의 관할에 들지 않음과 같이 우주 만물 가운데는 많은 힘 있는 것들
이 인간에게 이용되지 않고 있다. 우리의 고난을 막아 줄 만한 자연의 힘은 아직도 무
진장으로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 한(限) 인간은 그것에 손을 대어 보
지도 못한다. 우리는 고난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뿐이며 그를 신뢰할 뿐이다.
욥 39:13-16
타조는 즐거이 그 날개를 친다마는 그 깃과 털이 인자를 베푸느냐 그것이 알을 땅
에 버려 두어 모래에서 더워지게 하고 발에 깨어질 것이나 들짐승에게 밟힐 것을 생각
지 아니하고 그 새끼에게 무정함이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하며 그 구로한 것이 헛되
게 될지라도 괘념치 아니하나니 그러나 그 몸을 떨쳐 뛰어갈 때에는 말과 그 탄 자를
경히 여기느니라. - 일설에, 타조가 "날개를 침"은 그 기쁨을 표시 함이라고 한다. 그
러나 그보다는 타조가 그 날개의 힘을 자랑함이라고 해석함이 옳을 것이다. 타조가 날
지는 못하지만 뛸 때에는 그 날개를 펼치므로 더 빨리 달리게 된다고 한다(18절). 그
러므로 타조에게는 날개가 자랑거리이다. 그래도 그 날개가 자비를 베풀지는 못한다.
곧, 그것이 그 낳은 알을 건사하지는 않는다(14-16절). 타조가 그 낳은 알을 품지 않
으며 건사하지 않음은 그놈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그런데 17절에는 타조가 저렇게 어
리석은 것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지혜를 주실 뿐 아니라 짐승에게도 지혜를 주신다.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받을 자 없다(고전 4:7). 어떤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지 않는 경륜도 무모한 일은 아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을 받지 못하여
고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는 줄 알고 소망
중에 기뻐해야 된다.
욥 39:19-22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혔느냐 네가 그것으로
메뚜기처럼 뛰게 하였느냐 그 위엄그러운 콧소리가 두려우니 그것이 골짜기에서 허위
고 힘 있음을 기뻐하며 앞으로 나아가서 군사들을 맞되 두려움을 비웃고 놀라지 아니
하며 칼을 당할 지라도 무러나지 아니하니 그 위에서는 전동과 빛난 작은 창과 큰 창
이 쟁쟁하며 땅을 삼킬듯이 맹렬히 성내며 나팔 소리를 들으면 머물러 서지 아니하고
나팔 소리 나는 대로 소소히 울며 멀리서 싸움 냄새를 맡고 장관의 호령과 떠드는 소
리를 듣느니라. - 이것은 하나님께서 군마(軍馬)의 힘과 용맹과 충성을 칭찬하신 말씀
이다. 곧, 그 말은 두려워하지 않으며 또 후퇴하지도 않고 나팔 소리를 따라서 그 탄
자의 지도대로 순종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군마로써 영적 교훈을 암시해 준
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군마와 같아야 된다. 그런데 군마의 힘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이 이 부분 말씀의 요점이다. 19절 찬조. 그처럼 모든 영적 능력과 용기와 담력도
하나님께서 주신다. 시 62:11에 말하기를, "하나님이 한 두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
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라고 하였다.
욥 39:26-30
매가 떠 올라서 날개를 펼쳐 남방으로 향하는 것이 어찌 네 지혜로 말미암음이냐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의지함이냐
그것이 낭떨어지에 집을 지으며 뾰족한 바위 끝이나 험준한 데 거하며 거기서 움킬 만
한 것을 살피나니 그 눈이 멀리 봄이며 그 새끼들도 피를 빠나니 살륙 당한 자 있는
곳에는 그것도 거기 있느니라. - 매가 남쪽으로 가는 것은 그것이 기후를 따라서 이동
하는 후조(候鳥)로서 가지는 지혜이다. 렘 8:7참조. 후조에서 지혜를 주시는 이도 하
나님이시다.
독수리의 지혜는 어떠한가? 그것은 (1) 높은 낭떨어지에 보금자리를 정하며
(27-28), (2) 멀리서 그 움킬 만한 것을 보며(29절), (3) 그 새끼들에게 먹을 만한 것을 가져다 준다(30절). 곧, 그것들로 하여금 짐승의 피를 빨아 먹도록 해 준다. 짐승들에게 이런 지혜를 가지게 해 주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그의 전지전능을 명심해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