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욥기 3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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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욥 30:1

  그러나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기롱하는구나 그들의 아비들은 나의  보기
에 나의 양 떼 지키는 개 중에도 둘만 하지 못한 자니라. - 욥은 여기서 졈은  자들이
연장자를 존경하지 않음을 탄식한다. 5계명의 말씀은 부모만 아니라 부모 같은 선배들
도 존경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레 19:32 참조. 그 때에 환난 당한 욥은 천대하
는 젊은 자들이 있었다. 5계명을 지키지 않는 시대는 타락한 시대이다(사 3:5).
   "개 중에도 둘만 하지 못한 자"는 그  행위가  극도로  타락한  자를  말함이다(신
23:18). 그러므로 욥의 이와 같은 말은 경제적 조건을 따라서 사람을  천대함이  아니
다. 31:18 참조. 사실상 욥은 여기서 종교 윤리적 표준에 의하여 사람의 신분을  날카
롭게 평가하고 있다. 그것은 교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셩결을 사모하는 열심이다.


  욥 30:2

  그들은 장년의 기력이 쇠한 자니 그 손의 힘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랴. 여기 "그들"
이란 말은 윗절에 있는 "젊은 자의 아비들"을 가리킨다. "장년의 기력"이란 말은 무엇
을 성취시킬 만한 힘(power of completing any thing)을 가리킨다(A. Barnes). 이  아
래 귀절들이 보여줌 같이 그들은 몸이 수척하여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물론 그들이
이렇게 되어진 원인은 그들의 도덕적 타락에 있었다. 8절의 "그들은 본래 미련한 자의
자식"이란 말의 해석을 참조하여라.

 

  욥 30:3,4

  그들은 곧 궁핍과 기근으로 파리하매 캄캄하고 거친 들에서 마른 흙을 씹으며 떨기
나무 가운데서 짠 나물도 꺽으며 대싸리 뿌리로 식물을 삼느니라. - "마른 흙을  씹는
다"는 말은 광야에서 나는 풀 뿌리 같은 것을 씹으면서 식료를 삼는다는 뜻이다. 그런
풀 뿌리를 씹을 때에 그 뿌리에 묻은 흙도 씹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빈천하
게 살았다. 욥은 여기서 그들의 빈천한 처지를 비웃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받은  죄값
을 묘사한다.
    "짠  나물"이란  말(*       )은  해초(海草)의  어떤  종류를  가리킨다고  한다
(Bochart). "대싸리"란 말(*        )은 로뎀나무를 가리킨다. 그 때에  아라비아에서
는 타락하고 빈천한 자들이 그 나무뿌리를 먹었다고 한다.

 

  욥 30:5-7

  무리는 도적을 외침 같이 그들에게 소리지름으로 그들은 사람  가운데서  쫓겨나서
침침한 골짜기와 흙 구덩이와 바위 구덩이에서 살며 떨기나무 가운데서 나귀처럼 부르
짖으며 가시나무 아래 모여 있느니라. - 그들은 정상적으로 사회에서 거처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사람들은 그들을 무서운 짐승을 만난 것 같이 놀라
며 두려워한 것이다. 그들은 도적으로 취급되었다(Dhorme). 이것을 보면 욥이  그들을
지탄한 것은 그들의 도덕적 타락 때문이고 그들의 빈천한 생활 때문이 아니었다. 진정
한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를 멸시한다. 시 15:4에 말
하기를,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라고 하였다. 시 139:21-22 참조.

 

  욥 30:8

  그들은 본래 미련한 자의 자식이요 비천한 자의 자식으로서 고토에서 쫓겨난  자니
라. - "미련한 자"란 말(*     )은 지식이 없는 자란 뜻이 아니고  무신론자(godless)
로서 도덕적으로 타락한 자를 가리킨다(S.R. Driver, G.B. Gray,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Job, 1964, Part II, Philological Notes, p.211). 욥은 여기서
자기의 비참한 처지를 묘사하기 위하여 그를 천대 멸시하는 자들의 비참한 꼴을  진술
한 것이다. 그가 전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대를 받았으나 지금 사회에서  버림  받은
자들에게서까지 멸시를 받는 다고 한다(C. Van Gelderen, de man  die  voorheen  zoo
geerd  werd,  is  nu  een  spot  van  de  verworpelingen  der   maatschappij.-De
Hoofdpunten Der Zielsgeschiedenis van Job, 1931, p.61).
이 말씀(8절)을 보면 욥은 여전히 불결하고 불의한 자를 배척하는 심리를  지니고  있
다. 그것이 성도에게 있어 합당하다. 성도는 "망령된 자" 곧,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들
을 멸시한다(시 15:4). 그러나 그의 그 멸시는 그들의 영혼을 멸시함이  아니고  다만
그 사람의 거룩됴 못한 죄를 멸시하는 데서 그친다.  롬 12:9에 말하기를, "사랑엔 거
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고 하였다. 요이 1:10-11 참조. 사람을  사랑
하되 그 악은 미워하라는 의미에서 유 1:23은 말하기를,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고 하였다.

 

  욥 30:9-11

  이제는 내가 그들의 노래가 되며 그들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그들은 나를  미워하여
멀리하고 내 얼굴에 침 뱉기를 주저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내줄을  늘어지게
하시고 나를 곤고케 하시매 무리가 내 앞에서 굴레를 벗었음이니라. - 이 부분에 진술
된 재로 욥이 사람들에게 받은 모욕은 극히 심한 것이었다. (1) 조롱거리가 됨.  남의
고난을 노래로 조롱함은 모욕의 극단이다. 그것은 남의 고난을  기뻐하기까지  하면서
멸시한 것이다. (2) 얼굴에 침 뱉기움이 됨. 고난 받는 자를 싫어하며 멀리하되  대면
하여 침을 뱉기까지 함도 멸시의 극단이다.
   욥은 재앙으로 인한 고통도 견디기 어려운데 이제 설상 가상(雪上加霜)으로 비루한
무리에게까지 멸시를 당한다. 그러나 욥은 그 역경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다고 굳게 믿
었다(11절). 19-23절참조. 고난 받는 자로서 그 고난이 하나님에게서 온 줄을 알고 하
나님을 원망하지 않는 것은 큰 신앙이다. 욥은 이 때에 원망한 것이 아니고 다만 모든
일에 주권 자이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자기의 고난의 원인도 그에게 있다고 하며  기도
한다. 욥은 고난 중에서도 기도 생활을 계속하였다(16:17).
   자기 고난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다고 생각하여 그에게 부르짖는 자는 구원 얻을 소
망이 확실하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어 주시는 살아 계신 인격적  신이시다
(5:18). 고난의 원인이 무의 무정(無意無情)한 우연(Chance)에 있다면 그  수난자에게
는 절망 뿐이겠다. 욥은 그 고난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다는 의미로  말하기를,  "이는
하나님이 내 줄을 늘어지게 하시고"(11절 상반)라고 하였다. 이 말은 비유의 언사인데
하나님께서 욥으로 하여금 무기력(無氣力)하게 만드셨다고 함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욥을 핍박하는 무리들로 하여금 굴레 벗은 것처럼 못할 일이 없이 저희 마음대로 하게
하셨다는 뜻이다.

 

  욥 30:12-15

  그 낮은 무리가 내 우편에서 일어나 내 말을 밀뜨리고 나를 대적하여 멸망시킬  길
을 쌓으며 도울 자 없는 그들이 내 길을 헐고 내 재앙을 재촉하는구나 성을  크게파괴
하고 그 파괴한 가운데로 몰려 들어오는 것 같이 그들이 내게로 달려드니 놀람이 내게
임하는구나 그들이 내 영광을 바람 같이 모니 내 복록이 구름 같이 지나갔구나. -  여
기서는 욥이 자기의 원수들이 군대와 같이 달려들며 파괴 해위를 한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 진술한 대로 "멸망시킬 길을 쌓으며"란 말(12절), "내 길을 헐고"란 말(13절),
"성을 크게 파괴하고"란 말(14절)들은 모두 다 전쟁 용어이다. 욥은 이렇게 자기에 대
한 비류들의 박해가 얼마나 불가항적인 것임을 탄식한다. 성도는  자기에게  당착하는
난관이 불가항적(不可抗的)인 것을 볼 때에 그것을 우연에 돌리지 않는다. 그는  그것
을 하나님의 섭리로 보고 그를 바라본다. 16-23 참조.
   "낮은 무리"란 말(*      )은(12절) "할 수 없는 자들"(wertches) 곧,1-8절에 묘사
된 악인들을 가리킨다. 15절의 "영광"이란 말(*      )은 고상함을 가리키고,  "복록"
이란 말(*       )은 부요(富饒)를 의미한다.
   욥은 의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불의한 자들의 압제를 받았다. 이일은 이 세
상에 종종 있는 의인들의 억울함을 위로한다. 곧, 그들이 욥의 경험을 보고 이런 부조
리가 마침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해결된다고 확신하게 된다.

 

  욥 30:16,17

  이제는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녹으니 환난날이 난를 잡음이라 밤이 되면 내 뼈가 쑤
시니 나의 몸에 아픔이 쉬지 아니하는구나. - 여기서는 욥이 육신의 고통을 다시 진술
한다. 신앙자라고 해서 육신의 고통에 대하여 무감각한 것이 아니다. 신앙자는 그것을
그대로 느끼면서도 타락하지 않도록 투쟁한다. 괴로운 영적 투쟁도 역시 신앙의 한 방
면이다. 신앙자도 그 마음에 항상 기쁨과 평안만이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욥 30:18,19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하여 옷이 추하여져서 옷깃처럼 내 몸에 붙었구나  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고 나로 티끌과 재 같게 하셨구나. - 이 부분 말씀은, 하나님
의 큰 능력에 의하여 욥이 병들어서 그의 영예로운 옷 모양이 이제는 추하여졌다는 뜻
이라고 한다(Segond, Crampon), 그러나 돌메(E. Dhorme)는  해석하기를,  "하나님께서
그 강한 힘으로 붙잡으시되 옷을 붙잡듯이, 또는 옷 깃을 붙잡듯이 하신다"는  뜻이라
고 한다. 곧, 욥이 원수에게 붙잡히듯이 붙잡혔다는 것이다. 어느 해석이 옳은지 우리
가 알기 어려우나 욥이 이 말씀으로 자기의 고난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린 것만은 분명
하다.
   이 말씀은 원인의 표현 같이 보이나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고 욥이 자기 고통의 원
인을 하나님께 돌리는 신앙의 표현인 것이다. 11절 해석을 참조하여라. 이와 같은  신
앙의 탄식은 애 3:1-18에도 있다. 그 말씀을 자세히 읽기 바란다.  


  욥 30:20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나 주께서 대답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굽어
보시기만 하시나이다. - 여기서는 욥이 하나님께 기도하였으나 그의 응답을 받지 못함
에 대하여 탄식한다. 고난에 빠진 사람은 오직 기도하는 것만이  그의  살  길인데(약
5:13), 기도 응담을 받지 못하는 그는 절망할 만한 처지에 빠진 것이다. 그런데도  불
구하고 그는 끝까지 낙심하지 않았다. 그는 말하기를, "주께서 굽어보시기만 하시나이
다"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사정을 자세히 아시면서도 도와 주시지 않
음을 말한다. 이 말씀을 보아서 욥은 영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태도와 모습까지도 예민하게 느끼는 정도로 그를 바라보았다.


  욥 30:21,22

  주께서 돌이켜  내게 잔혹히 하시고 완력으로 핍박하시오며 나를 바람  위에  들어
얹어 불려 가게 하시며 대풍 중에 소멸케 하시나이다. - 여기서는 욥이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취급은 미워함과 핍박함과 같고, 그르 바람으로 휩쓸어감과  같이  하신다는
것이다. 바람에 불리운 먼지나 모래는 아무 목적도 없이 이리저리 요동함이 될뿐이다.
그와 같이 욥은 그 때에 아무 이유도 없이 비참한 처지로 떨어지고 있는 듯이  그에게
느껴졌다. 그는 이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연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는 이와 같은 비참한 처지를 하나님께 호소하며 기도를 계속하였으니, 그것이 그의 신
앙이다.

 

  욥 30:23,24

  내가 아나이다 주께서 나를 죽게 하사 모든 생물을 위하여 정한 집으로 끌어  가시
리이다 그러나 사람이 넘어질 때에 어찌 손을 펴지 아니하며 재앙을 당할  때에  어찌
도움을 보르짖지 아니하겠는가. - 욥은 여기서 자기의 죽을 수밖에 없는 사실을  내어
본다. "모든 생물을 위하여 정한 집"이란 말은 무덤을 의미한다. 욥은 이렇게  자기의
미래가 캄캄하여도 끝까지 하나님을 찾는다.  

 

  욥 30:25,26

  고생의 날 보내는 자를 위하여 내가 울지 아니하였는가 빈궁한 자를 위하여 내  마
음에 근심하지 아니하였는가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 - 욥은 여기서 전날에 행한 바 자기의 의로운 행실을 회고하여 본다. 그는 의
를 행하는 자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줄 알고 궁핍한 자들을 돌아보았다. 그의  그와
같은 생활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었고, 그가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보고 선을 행
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마 6:1-4).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때에 화(禍)를 받고 있는 것
은 자기로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모순되어  보이는  것이
결국에 가서는 해결을 받게 된다. 이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욥기의 요점이다.  

 

  욥 30:27-31

  내 마음이 어지러워서 쉬지 못하는구나 환난 날이 내게 임하였구나 나는 햇볕에 쬐
지 않고 검어진 살을 가지고 걸으며 공회 중에 서서 도움을 부르짖고  있느니라  나는
이리의 형제요 타조의 벗이로다. 내 가죽은 검어져서 떨어졌고 내뼈는 열기로 하여 탔
구나 내 수금은 애곡성이 되고 내 피리는 애통성이 되는구나. - 여기서는 욥이 자기의
병고에 대하여 다시 진술한다. 곧, (1) 마음이 쉬지 못한다고 함(27절), (2) 살이  검
어졌다고 함(28절 상반), (3) 공회 중에 서서 부르짖는다고 함(28절 하반), (4)  부르
짖는 소리는 이리나 타조의 슬픈 울음과 같다고 함(29절), (5) 피부는 떨어졌다고  함
(30절 상반), (6) 뼈는 탔다고 함(30절 하반), (7) 울음소리를 낼 뿐이라고 함((31절)
등이다.
   욥이 자기의 병공에 대하여 이렇게 역설한 것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이런 고통 중에서도 끝까지 참으며 하나님을 바라본 것은 만고에 모본이 될  만하다.  그가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그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약  5:11에 말하기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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