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욥 28:1,2

  은은 나는 광이 있고 연단하는 금은 나는 곳이 있으며 철은 흙에서 취하고 동은 돌
에서 녹여 얻느니라. - 욥은 사람들이 귀하다는 금, 은, 동, 철의 출처가  이  세상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는 이 세상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
(20절) 이 말씀 중에 암시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는 금이나 은에 비할
수 없이 귀하다.

 

  욥 28:3,4

  사람이 흑암을 피하고 끝까지 궁구하여 음예와 유암 중의 광석을 구하되 사람 사는
곳에서 멀리 떠나 구멍을 깊이 뚫고 발이 땅에 닿지 않게 달려 내리니 멀리 사람과 격
절되고 흔들흔들 하느니라. - 여기 "음예와 유암"이란 말은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이
란 뜻이다. 이것은 땅속 가장 깊은 데를 가리키는 말로서 그 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임
을 말해준다. 사람들이 보다 귀한 하나님 경외(敬畏)의 지혜를 소홀히 하면서  금이나
은을  찾아 만나기 위하여는 저렇게 모험을 무릅쓴다.  

 

  욥 28:5,6

  지면은 식물을 내나 지하는 부로 뒤집는 것 같고 그 돌 가운데에는 남보석이  있고
사금도 있으며. - 지면에서 경작하는 일은 식물(植物)을 산출하는 것이어서  안전하고
고요하다. 그러나 지하의 광업은 불을 취급함 같아서 위험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금은과 보석은 위험한 지하에 있다. 이 점에 있어서도 우리는 인류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다. 곧, 인류 생활에 있어서 식물은 금은 보석보다  필요하니만큼
하나님께서 그것을 땅 속 깊은 데 저장하시지 않고 땅의 표면에 산출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매튜 헨리(Matthew Hennry)는, 금은 보석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에
간직된 사실도 영적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곧, (1)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애착하는
마음으로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는 뜻이 있고, (2)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들을 발로  밟
듯이 마음에 애착하지 않게 하려는 뜻이 있다고 한다. 잠 23:5 참조.

 

  욥 28:9-11

  사람이 굳은 바위에 손을 대고 산을 뿌리까지 무너뜨리며 돌 가운데로 도랑을 파서
각종 보물을 눈으로 발견하고 시냇물을 막아 스미지 않게 하고 감취었던 것을 밝은 데
로 내느니라. - 여기서도 사람들이 금은 보석을 찾느라고 많이 고생하는 광경을  보여
준다. 사실상 금은 보석은 인간의 생명을 구원하는 필수품은 아니다. 그것들도 소멸되
는 날이 온다(행 8:20).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들의 종이 되어 노고를 아끼
지 않는다. 참된 지혜 곧 그리스도를 소유한 베드로는 않은뱅이에게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걸
으라"고 하였다(행 3:6). 그는 금이나 은보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귀히 여겼다.

 

  욥 28:12-14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의 곳은 어디인고 그 값을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사람 사는 땅에서 찾을 수 없구나 깊은 물이 이르기를 내 속에 있지 아니하다 하며 바
다가 이르기를 나와 함께 있지 아니하다 하느니라. - "지혜" 곧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이 세상의 어느 곳에도 없다. 그것은 땅에도 없고 바다에도 없다.  하나님께서
만 그것을 아시며, 또 계시(啓示)해 주신다(27절). 인간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만
하나님을 참으로 알 수 있다. 그는 자력(自力)과 자율(自律)로써는  하나님을  아는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오직 계시 의존  사색이  필요하
다. 성경에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
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
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한다(고전
1:20-21).
   사람들이 자유주의에 입각하여 생각하기를, "우리가 우리의 지능으로  중립적(中立
的) 처지에서 편격 없는 연구를 통하여 우주를 참되이 알 수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도 알 수 있다." 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속은 생각이다. 유
신론(有神論)이 참된 한(限), 하나님은 절대적 신(神)이시므로 인간은 첫걸음부터  하
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아래 있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야 할 진리 지식은 하나님을 제외
하고는 성립될 수 없다. 인간의 지능 작용이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성립될 수 없다. 인
간의 지능 작용이 하나님을 제외하고 자율적으로 흐른다면, 그것은 참된 지식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그 행동이 벌써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權威)를 무시하고 나타난  것이
니 만큼 갈수록 하나님과 멀어질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자율주의에 의지하여  우주
를 참되이 알고자 하며 하나님을 찾아 보고자 하는 것은 편견 없는 중립 태도가  행위
가 아니다. 그것은 진리에 대하여 큰 반역을 일으킨 무서운 편견이다. 그 이유는 유신
론이 옳은 한 하나님이 절대적 신이시니 인간에게 하나님 의존 사색이 아닌 중립 태도
가 있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에게 대하여 인간이 중립적 사색을 가진다면, 그
것은 벌써 비절대가 절대에 대하여 절대로 여기지 않으면서 자기를 절대와 동등시  하
는 모든 거짓을 포함하는 무서운 편견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비유된다.  곧
빛을 의지해서만 볼 수 있는 눈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편견 없이 모든 것  보기
를 원한다."고 하며 태양 빛을 떠나서 아무 다른 빛과도 관계하지 않고 중립적으로 편
견 없이 모든 것을 참되이 바로 보리라고 한다면, 그 눈은 어두운 것만을  볼  뿐이요
모든 것을 참되이 바로 분별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 때에 그 눈은 참으로 진리에 대하
여 편견없이 바른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을 참 지식이라고 하면서  계시의존  사색에
의한 지식 행위를 하여야 한다. 인간은 피조물이고 하나님을 절대적 창조자이신  것만
큼 인간은 그 사색함에 있어서 그 출발이나 진행이나 종말에 있어서 계시 의존 사색을
유일한 사색 방법으로 삼아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인간은 범죄하여  형벌을  받아서  
그 지능이 어두워졌다. 성경에 말하기를 인간은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죽었다고  하였
으니(엡 2:1), 그것도 인간이 죄를 말미암아 어두워져서 하나님을 모르게  된  사실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인간은 이렇게 자율적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는자가  되었으니
만큼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우리는  하나
님의 말씀을 믿음으로만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런 예외도  용납하지
않는 철칙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계시와 말씀을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하나
님을 상고할 때에는 아무런 효과도 없으며 소용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육안(肉
眼)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보려고 할 때엔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옛날부터 인류 역사상에 불행하게도 자율주의로 흘러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
고 지나간 사람들이 많았다. 다만 예수님 말씀과 같이 어린 아이 같은 사람 곧 하나님
의 계시의 말씀을 진실히 믿는 자만이 하나님을 알도록 되었다.  헬라의  인식론(認識
論)이든지, 동양의 철학이든지 모두 다 자율주의였고 따라서 하나님을  몰랐다.  헬라
철학에도 하나님이라는 말과 창조라는 말이 없지는 않으나 그것은 참된 하나님과 참된
창조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원론적(二元論的) 의미가 아니면  범신론적(汎神論
的)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초대의 헬라 철학자들은 우주와 신, 이둘이 다 영원하다고
생각한였으니, 그것은 신관(神觀)에 있어서 절대적 참신을 알지 못한  그릇된  학설이
다. 헬라 철학의 왕성기에 있어서 우리는 플라톤(Platon)을 그 초점으로 연구한다. 혹
시 사람들이 오해하여 플라톤 철학이 기독교의 유신론(有神論)과 서로 통함이 있는 줄
로 잘못 생각한다. 바울 모아(Paul More) 교수는 플라톤이 기독교의 기초를  예비하였
다고 잘못 말하였다. 그러나 플라톤은 자율주의자였고 따라서 참 하나님을 모른  것이
너무도 명백하다. 플라톤은 가르치기를, 사람이 자기의  지능(知能)으로  영원계(永遠
界)에 대하여서까지도 깨달을 수 있다고 하였으며, 이 지능을 그 주요 속성으로  가지
는 영혼이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받을 필요 없이도 자율적(自律的)으로 이상 세
계(理想世界)에 잘 수 있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인간의 영혼이  자율적으로도  잘되어
갈 수 있음을 가르치는 극단적 자율주의이다.
   인간은 그 어느 시대에나 자기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 그것이 인간의
자율 사색의 역사(歷史)이다. 자율주의는 하나님을 떠나 자기를 하나님  같은  권위에
않히는 것이다. 하와는 이런 주의의 선봉이었으니 그것이 그의 타락이었던 것이다. 그
는 마귀가 시험할 때에 자율주의에 입각하여 마귀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을  달아보는
재판장의 자리를 취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자기의 마음이 그 권위에 있어서  하나님의
마음과 같다는 것이며, 또한 마귀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 그릇
된 태도이다. 그것이 그의 범죄 사상이며, 하나님을 떠나서 타락하는 출발점  이었다.
그가 마귀의 말을 듣기 전에 벌써 참람하게도 생각하기를, "아마 마귀도 모든 것에 대
하여 하나님처럼 알 것이다"라고 하였고, 자기는 그 둘 사이에 판단자가 되는  권위가
있는 줄로 착각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독일무이(獨一無二)하신 절대적  권위
를 무시한 죄악의 시작이다. 자율주의는 하나님을 절대의 주님으로 알지 않는  동시에
하나님을 무시하고 나가는 사색이다. 따라서 이 사색은 그  첫걸음에서부터  하나님을
무시하고 나섰으니 그런 사색의 행진은 영원히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 이것이  하나
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모르게 되어진 인류 역사이다.

 


  욥 28:15-18

  정금으로 바꿀 수 없고 은을 달아도 그 값을 당치 못하리니 오빌이 금이나 귀한 수
마노나 남보석으로도 그 값을 당치 못하겠고 황금이나 유리라도 비교할 수 없고  정금
장식으로도  바꿀 수 없으며 산호나 수정으로도 말할 수 없나니 지혜의 값은 홍보석의
값보다 귀하구나 구스의 황옥으로도 비교할 수 없고 순금으로도 그 값을 측량하지  못
하리니. - 사람에게 하나님을 참으로 알게 하는 지혜(하나님의 계시)는 이 세상  사람
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금은 보석보다 귀하다고 한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권능을 돈
으로 사고자 하는 요술장이 시몬을 구짖었다(행 8:18-23). "정금"이란 말은  히브리어
(*      )의 뜻으로 보아 순수한 금을  가리킨다.  금에  대한  말은  다시  중복된다
(16,17,19). 이렇게 중복한 이유는 사람들이 무엇보다 그것을 귀중시 함을 강조하려는
까닭이다. 욥은 이밖에 여러가지 보석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이 세상 사람들이  귀하다
고 생각하는 보석들을 총동원하여 말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혜"에
비교될 수 없다고 그는 역설(力說)한다.

 

  욥 28:20-22    

  그런즉 지혜는 어디서 오며 명철의 곳은 어디인고 모든 생물의 눈에 숨겨졌고 공중
의 새에게 가리워졌으며 명망과 사망도 이르기를 우리가 귀로 그 소문을 들었다  하느
니라. - 여기서는 다시 "지혜"의 있는 곳을 탐문한다. 12-14절 참조. "멸망과 사망"은  
죽은 자들이 가는 음부 곧, 가장 깊은 처소를 가리킨다. 이 귀절들(20-22)은 물론  시
문학적(時文學的)표현으로서 우주의 가장 깊은 곳에도 지혜는 없다는 뜻이다.
   "귀로 그 소문을 들었다" 함은 그 음부에 가 있는 영(靈)들도 지혜에 대하여는  거
리가 멀다는 뜻이다.

 

  욥 28:23-26

  하나님이 그 길을 깨달으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 이는 그가 땅 끝까지 감찰하시며
온 천하를 두루 보시며 바람의 경중을 정하기며 물을 되어 그 분량을  정하시며  비를
위하여 명려하시고 우뢰의 번개를 위하여 길을 정하셨음이라. 곧,  하나님께서만  "지
혜"를 아신다는 뜻이다. 그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전지자(全知者)이시며 창조자이시다.
우리 인생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도록 하실이는 전지 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  자
신이시다.

 

  욥 28:27,28

  그 때에 지혜를 보시고 선포하시며 굳게 세우시며 궁구하셨고 또 사람에게  이르시
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하셨느니라. - 여기 "그 때에"란
말은 위(25-26)에 진술된 창조의 때를 가리킨다.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란  말씀에
대하여는 이 아래 나오는 설교를 참조하여라.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敬畏)한다는 것은 예배 의식이나 제도로 요점을  삼지  않는
다.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그 요점이다.
   1. 하나님만이 경외의 대상임.
   사람들은 피조물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해야 된다. 창 1:28
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땅을 정복하고 모든 피조물들을 통치하라고 하셨다. 사람
의 심령이 피조물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그것들에게 사로잡히지 않아야 하나님을  알
게도 되고 사랑하게도 된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두려워하게  되
면, 결국 우상 숭배자가 되고 만다. 사람이 우상을 섬기기 시작하면 한 가지만 섬기지
않고 무수히 섬긴다. 일이 그렇게 되는 이유는, 피조물은 인간을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도인들은 3억 5천이나 되는 많은 우상을 섬긴다고 한다.  그들은  심지어
소까지도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데도 소가 농작물을 해하는  것
을 방임한다니 참으로 어리석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인류에게 알려 주시는 방법은 어떠한가? 그는 계약 관계에 의하
여 그 자신을 인류에게 알려주신다. 다시 말하면 그는 말씀하시고 그대로 이루시는 원
리에 의하여 그의 의로우심과 자비로우심과 완전하심과 특별히 그의 진실하심을  드러
내셨다. 신구약 성경은 바로 그의 계약 행위와 관계된 말씀 체계이다. 그러므로 "하나
님이 계신 줄을 어떻게 아는가?"라고 하는 질문에 대하여 우리의 간단한 대답은,  "성
경말씀을 주신 이가 바로 하나님이시다."라고 할 것이다. 그것은 가장 간단한  대답이
지만 구체적이고 또 완전한 대답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약이 얼마나 아름답고 완전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된다. 그 계약
은 몇 날 혹은 몇 달 동안 효과있는 것이 아니고 영원토록 효력  있는  말씀이다.  시
111:5에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 언약을  영
원히 기억하시리로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그 계약이 이루어지기 전에도 그것을  바라
보고 믿음과 소망으로 즐거워하고, 그 계약이 성취된 뒤에도 무한한 기쁨을 가져야 마
땅하다. 우리는 모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계약에 의하여  이렇게
밝히 아는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두려워한다. 이와 같은 경외(敬畏)가 바로 신앙이다.
   우리가 이와 같은 신앙을 가지게 됨도 우리 자신에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
도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 속에 형성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은혜를 받는
다는 것은 물질이나 권세가 그 밖에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다. 우
리가 만일 이런 것들을 중점적인 은혜로 받는다면 우리는 썩어질 세상에 속할  뿐이며
잘못하면 그런 것들을 소유함에 따라 발생되는 모든 허영과 죄악을 연출시킬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것을 중점적인 은혜로는 받지 않는다. 우리가 받는 참다운  은혜란  것은
계약의 말씀을 깨달음과 체험함으로 주님을 더 잘알고 믿게 됨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란 말씀(잠 1:7)은 모든 다른 지식들도 하
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사용되어야만 참된 유익이 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을 경외
하는 것으로 지배되지 않는 지식은 인류에게 해독을 줄 뿐이다. 하나님  경외가  없는
기계 문명의 발달은 결국 인간을 기계화하는 경향으로 떨어진다. 이렇게 나아가다가는
결국 인간에게는 의리와 자비 같은 것도 찾아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인간들은 결국  공
리주의(公利主義)로만 흘러서 인간미(人間美)를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
을 공경하지 않는고로 자기 자신들과 남들을 유익하게 하는 모든 지혜에서 단절될  것
이다. 그것은 결국 세계의 멸망을 가져온다.
   2. 하나님을 참되이 공경해야 됨.
   (1)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되 마귀가 두려워하는 정도로 하면 안됨. 마귀는  하
나님을 두려워하기는 하나 하나님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약 2:19에  말하기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하였다.  야
고보의 이 책망은 행함이 없이(사람 없이)하나님을 믿는다는 자들을 상대한 것이다.
   (2)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되 바로와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을 두려워 한  것처럼
하면 안됨. 바로와 느브갓네살도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날 때에  두려워하며  찬송하였
다. 바로는 우박 재앙을 보고 자기는 범죄하였다고 하였다(출 9:27). 느브갓네살은 다
니엘의 꿈 해몽을 듣고 다니엘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라고 하였다(단 2:47). 하나님의 이적을 보는 장면에서야  누가
그를 두려워 하지 않으랴 ?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경외보다 이적이 나타나지 않는  때
에도 그를 두려워하는 것을 진정한 것으로 여기시고 더욱 기뻐하신다.
   (3)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되 바리새교인처럼 하면 안됨. 외모로는 경건을 나타내면서도 그 마음이 정결하지 않으면 그것은 도리어 속이는 죄악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심령을 요점으로 보신다(시 51:6).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공지 박윤선 주석을 읽을 때에 내용이 없는 장
42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01장
41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02장
40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03장
39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04장
38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05장
37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06장
36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07장
35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08장
34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09장
33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10장
32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11장
31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12장
30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13장
29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14장
28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15장
27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16장
26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17장
25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18장
24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19장
23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20장
22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21장
21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22장
20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23장
19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24장
18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25장
17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26장
16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27장
»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28장
14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29장
13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30장
12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31장
11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32장
10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33장
9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34장
8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35장
7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36장
6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37장
5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38장
4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39장
3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40장
2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41장
1 욥기 박윤선 주석, 욥기 42장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

All the Bibles, Commentaries and Dictionaries here have their own rights.
All rights are reserved for them, not for us. Thanks! Praise our great God, Christ Jesus!

HANGL Lingua Franca 한글 링구아 프랑카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