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욥기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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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욥 15:1,2

  데말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가로되 지혜로운 자가 어찌 헛된 지식으로  대답하
겠느냐 어찌 동풍으로 그 품에 채우겠느냐. - 첫번 윤외(輪回) 변론은 끝나고 이제 두
번째로 그것이 다시 개시된다. 욥의 친구들 중에 제일 연로(年老)한 자 곧 엘리바스는
욥의 말을 기리켜 외식으로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라고 하며,  유명무실(有名無實)하여
동풍과 같다고 한다. 근동 지방의 "동풍"(*       )이란 것은 농작물에 무익할 뿐  아
니라 도리어 해로운 바람이다. 겔 17:10 참조. 엘리바스의 의견에는 욥의 변론은 경건
하지 못하고 동풍과 같이 무익할 뿐 아니라 도리어 해롭다는 것이다. 이 다음  귀절들
의 논조는 이 두 가지를 다시 강조한다. "그 품에 채운다"는 말은 욥의  마음  속부터
동풍과 같은 헛된 것이 가득 찼다는 것이다. 엘리바스가 욥을 이렇게까지 오해한 것은
이상하게 느껴지나 거기에 이유는 있다. 그것은 그가 연장자로서 세상 일에 대한 경험
은 많았을지 몰라도 영적 사리(靈的事理)에 대하여는 체험이 천박하였기 때문이다. 욥
과 같은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가면서 신앙을 지키는 의인은 종종 이렇게 찬박
한 신학자들이나 종교 업자(宗敎業者)들에게 오해를 받으며, 또 배척을 받기까지 하는
수도 있다.

 

  욥 15:3,4

  어찌 유조치 아니한 이야기, 무익한 말로 변론하겠느냐 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
는 일을 폐하여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 - 엘리바스는 여기서  욥을
오해하여 그는 경건을 해롭게 한다고 한다. 그러나 욥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당하는 고
난이 자기의 어떤 특수한 죄값이 아니라고 사실주의로 변혼해 왔다. 그것이 하나님 경
외를 장려하는 운동에 해로운 것인가? 하나님은 사실주의를 외면하시지 않고 때가  이
르면 사실 그대로를 나타내어 주신다.
   "묵도"란 말(*        )은, 홀스트(F.Horst)에 의하면 "묵상"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Biblischer Kommentar, Hiob I, 1969, s.222). 매튜 헨리(Matthew Henry)와 반스(Ba-
rnes) 등은 이것이 기도를 의미한다고 하였는데 이 해석이 우리 문맥에 잘  부합한다.
엘리바스도 기도를 중요시하였다. 매튜 헨리는 말하기를, "기도 없이 사는 자들은  세
상에서 하나님 없이 사는 자들이다." (Those who live without prayer certainly live
without God in the world.)라고 하였다. 엘리바스의 이 말이 옳기는  하나  욥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욥 15:5,6

 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택하였구나 너를 정죄한  것
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너를 쳐서 증거하느니라. - 엘리바스는 욥을  외
식자(간사한 자)로 간주하였다. 욥이 외식하였다면 엘리바스의 말이 그에게 해당될 것
이다. 외식자는 언제나 스스로 자기 자신을 정죄하는 말을 한다. 곧, 그는 자기도  선
을 행하지 않으면서 남들(선을 행하지 않는 자들)을 정죄한다(롬 2:1-3).

 

  욥 15:7,8

  네가 제일 처음 난 사람이냐 산들이 있기 전에 네가 출생하였느냐 하나님의 모의를
네가 들었느냐 지혜를 홀로 가졌느냐. - 어떤 학자에 의하면 여기 "제일 처음  난  사
람"이란 말이 선사 시대(先史時代)에 원인(Urmensch)이 있었다는 신화(神話)와 관련되
었다고 한다(G.Fohrer, Eliphas verwendet offenbar eine ursprunglich mythische Vo-
rstellung vom Urmenschen, die noch in Ez. 28:11-19 und Sir.  49:16  begegnet.  -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Das Buch Hiob, 1963,s.268).
   그러나 이와 같은 견해는 욥기의 인간관(人間觀)을 오해한 것이다. 욥은 최초 인간
을 흙으로 지음 받은 창세기 2장의 아담으로만 보았다(10:9). 아담 이전 곧 선사 시대
에 소위 원인(Urmensch)이 있었다는 사상은 성경에 없다. 엘리바스는  우리  본문에서
다만 가상적으로 말하는 것 뿐이고 어떤 신화와 관련시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잠 8:22-31의 내용과 같은 것을 가상하고 말한 것이다. 곧, 욥을 향하여 모든  인류보
다 먼저 있었던 지혜 자체와 동등인가 하는 질문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상적(假想
的)이고 시문학적(詩文學的)인 묘사이다.
   엘리바스의 이와 같은 언사는, 늙은 사람이 지혜에 있어서 젊은  자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도 하나님의 진리이다. 레 19:32에,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고 한 말씀이, 노인의 경험과 지혜를 존중히 하라는 의미이기
도 하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노인들의 말을 배척하고 소년들의 말을 받아 들인
결과 나라를 남북으로 분단시켰다(왕상 12:6-20). 그러나 엘리바스의 이 말이 욥의 특
수한 실정에는 부합되지 않는다. 영적 사리(靈的事理)에 있어서는 노인이라고 해서 반
드시 그 깨달음이 젊은이보다 앞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계시(啓示) 앞에서는  노
인도 아이 같이 낮아져서 잘 받아 들여야 한다(마 11:25).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
경험을 선입관념으로 가질 때에는 도리어 하나님의 배척을 받는다.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하신다(고전 1:27).

 

  욥 15:9,10

 너의 아는 것이 무엇이기로 우리가 알지 못하겠느냐 너의 깨달은 것이  무엇이기로
우리에게는 없겠느냐 우리 중에는 머리가 세기도 하고 연로하기도 하여  네  부친보다
나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 엘리바스의 이 논법은 사람이 연령이 높을수록 깨닫는 것
이 비교적 승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리 있는 말이다. 왕상 12:6-15 참조. 그러나 젊
은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그 지혜가 노인보다 승하다(시 119:100).

 

  욥 15:11-13

 하나님의 위로와 네게 온유하게 하시는 말씀을 네가 어찌 작다 하느냐 어찌하여 네
가 마음에 끌리며 네 눈을 번쩍여 네 영으로 하나님을 반대하고 네 입으로 말들을  내
느냐. - 엘리바스가 여기서 꾸짖은 내용은 다음과 같으니 곧, 욥이 (1)그 친구들을 통
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무시한다는 것, (2)마음을 붙잡지 못하고 도리어 마음에
끌려 눈으로도 좋지 못한 감정(적대하는 감정)을 나타낸다는 것, (3)심령으로도  하나
님을 대적하고 말로도 그리한다는 것이다. 욥에게 대한 엘리바스의 이와 같은  반박은
옳지 않다. 욥의 고난에 대한 엘리바스의 견해는 욥의 실정에 맞지 않는 것이고  욥의
특수한 실정을 생각할 때 욥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욥의
항변은 실상 비진리에 대한 것이고 하나님께 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엘리바스
는 욥의 이와 같은 항변을 하나님께 대한 불경건으로 간주하였다. 신앙  사상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 차이는 이렇게 심각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무엇
보다 먼저 진리를 바로 알아야 된다. 진실한 신자들을 핍박하는 것은 주로 무식의  소
치(所致)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
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고 하셨다(요 16:2).

 

  욥 15:14-16

 사람이 무엇이관대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무엇이관대 의롭겠느냐  하나
님은 그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의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하물
며 악을 짓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이겠느냐. - 여기서 엘리바스
는 인간의 전적 부패(total depravity of man)를 진술한다. 그렇게 말하므로 그는  스
스로 의롭다고 하는 욥의 주장을 공격한다. 그러나 그것은 욥을 오해하고 한  말이다.
욥도 인간의 전적 부패를 알고 있었다(9:20, 14:4). 다만 그가 변해(辯解)하는  것은,
자기의 당한 고난이 그의 어떤 특수한 범죄 때문이 아니라는 것 뿐이다. 여기  이른바
"그 거룩한 자들"이란 말은 천사들을 의미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거룩한 천사들도  부
끄러움을 느낀다(사 6:2). 그리고 맑은 하늘도 그의 보시기에는 맑다고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비유의 언사들은 하나님의 성결 앞에서는 깨끗하다고 할 인생이 없음을  가
리킨다.
   위의 말씀이 욥의 그때의 실정에는 맞지 않으나 그것이 하나님게서 계시하신  보편
적 진리인 것은 사실이다.  사람은 자기의 처지가 할 수 없는 죄인인 것을 알 때에 자
기 자신을 바로 아는 지혜자가 된다. 그 때에 그는 살 길을 찾게 되나니, 그것이 그리
스도를 믿는 믿음의 길이다(롬 1:17). 믿음의 사람 요한 번연(John Bunyan)은  말하기
를, "사람의 죄는 흐르는 물거품(水泡)이고 그 사람 자신은 그 흐르는 물이라"고 하였
으니, 그는 사람을 가리켜 죄악의 근원이라고 강조한 셈이다. 악을 행하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자가 인간이라면(16절 상반) 그는 사실상 목마른 자가 물을 사모하듯이  죄
악을 사모하는 자가 아닌가? 그는 죄악과 일체화 된 자라고 불리운 만하다.  그러므로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라고 하였고(롬 7:21), 또 말하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하였다(롬 7:24). 이렇게 자기를 바로  아
는 그가 그리스도의 구원을 더욱 찬송하게 되었다(롬 7:25).

 

  욥 15:17-19

   내가 네게 보이리니 나를 들으라 내가 본 것을 설명하리라 이는 곧 지혜로운  자들
이 그 열조에게서 받아 숨기지 아니하고 전하여 온 것이라 이 땅은 그들에게만 주셨으
므로 외인은 그들 중에 왕래하지 못하였었느니라. - 엘리바스는  여기서  다시금(10절
참조) 참된 지혜의 권위가 높은 연령에 달렸다는 사상으로 말한다. 렘  49:7을  보면,
에돔 사람들이 지혜의 전통을 자랑하였다는 말씀이 있다. 이것을 보아도 욥기는  아라
비아 지방과 관련되어 있다.
   "외인은 그들 중에 왕래하지 못하였었느니라."(19절 하반). 곧,  그들이  옛날부터
받아 내려온 전통적 지혜는 외래의 풍조나 사조(이단적 교훈)의 침범을 당하지 아니하
였다는 뜻이다(C.Van Gelderen, De Hoofdpunten Der Zielsgeschiedenis Van Job,1931,
p.39). 진리 변증에 있어서 이것은 권위주의(Authoritarianism)에 속한다. 우리는  그
것을 중요시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는 한 참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을 근거하고 설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엘리바스가 욥의 실정은 모르고 그저 그로
하여금 고래의 전통적 권위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도록 하여 이유 없이 자복하게  하려
는 노력은 헛되다. 하나님의 권위주의는 인간의 실정을 무시하고 임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인간)의 실정에 명중하는 메시지(Message)를 가지고 온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을 때에 그녀의 생애에 적합한 메시지를 전하셨다(요 4:1-26).

 

  욥 15:20-23

  그 말에 이르기를 악인은 그 일평생에 고통을 당하며 강포자의 햇수는  작정되었으
므로 그 귀에는 놀라운 소리가 들리고 그 형통할 때에 멸망시키는 자가 그에게 임하리
니 그가 어두운 데서 나오기를 바라지 못하고 칼날의 기다림이 되느니라 그는  유리하
며 식물을 구하여 이르기를 어디 있느냐 하며 흑암한 날이 가까운 줄을 스스로 아느니
라 환난과 고통이 그를 두렵게 하며 싸움을 준비한 왕처럼 그를 쳐서 이기리니. -  여
기서는 위에 관설된 지혜로운 자들의 전한 말대로 악인의 당할 환난과 벌에 대하여 자
세히 묘사한다. 곧, (1)악인은 한평생 고통을 당한다고 함(20절 상반). (2)그의  연수
는 보장되어 있지 않다고 함(20절 하반). 곧, 그에게는 안전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3)놀랄 만한 소식이 갑자기 들린다고 함(21절 상반). (4)형통하는 듯 하다가  갑자기
패망한다고 함(21절 하반). (5)절망의 처지에서 나올 길이 없다고 함(22절 상반). (6)
칼날과 같은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고 함(22절 하반). (7)유리하며 식물을 구하게 된다
고 함(23절 상반). (8)죄값으로 당할 환난의 다가옴을 느끼게 된다고 함(23절  하반).
(9)준비된 전쟁처럼 환난이 그를 찾아와서 정복한다고 함(24절)이다.
   위의 아홉 가지 비참한 일들은 죄악을 극도로 범하는 자들(25-28)이 당 할 것이다.
역사상에 이런 벌을 당한 자들의 실례는 많이 있다. 그런 것들을 많이 지내본  아라비
아의 지혜로운 자들이 후세에 이렇게 전한 것이다(18절). 범죄자들이 회개하지 않느다
면, 그 결국은 틀림 없이 위의 아홉 가지와 같은 비참한 일들을 당할 것이다.

 

  욥 15:25-28

  이는 그 손을 들어 하나님을 대적하며 교만하여 전능자를 배반함이니라 그는  목을
굳게 하고 두터운 방패로 하나님을 치려고 달려 가나니 그 얼굴에는 살이 찌고 허리에
는 기름이 엉기었고 그는 황무한 성읍, 사람이 살지 아니하는 집, 돌 무더기가 될  곳
에 거하였음이니라. - 여기서는 위에 진술된 악인이 어떤 자임을 말해준다. 그는 다음
과 같은 자이다. 곧, (1)하나님을 반대하는 자임(25-26). "두터운 방패로 하나님을 치
려고 달려 가나니"라고 한 말씀은 하나님을 반대하는 그의 정도가 어떻게 심각함을 알
려준다. 곧, 그는 방패를 가지고 하나님을 향하여 달려가며 대적한다는 것이다.  그것
은 그가 하나님의 교훈과 지도를 방패로 막듯이 적극적으로 대적한다는 것이다.  신자
들이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다른 방법을 대용하는 것은 방패를 가지고  하
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이다. (2)그는 교만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섭취하지  아니함(27
절). "살이 찌고 기름이 엉기었다"는 말씀이 그 뜻이다. (3)하나님이 멸망시키려는 곳
에 일부러 거처를 정함(28절). 옛날에 소돔 고모라는 하나님의 멸망이 내릴 만한 곳이
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기탄없이 거기서 살았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고 경고할 때에도 그들은 심판을 멸시하였다(창 19:14). 노아 때에 홍수로 죽은
사람들도 그런 심리를 가졌던 것이다.

 

  욥 15:29-32

  그는 부요하지 못하고 재산이 항상 있지 못하며 그 산업이 땅에서  증식하지  못할 것이며 흑암한 데를 떠나지 못하리니 불꽃이 그 가지를 말릴 것이라 하나님의  입김에 그가 떠나리라 그는 스스로 속아 허망한 것을 믿지 말 것은 허망한 것이 그의  보응이 될 것임이라 그의 날이 이르기 전에 그 일이 이룰 것인즉 그 가지가 푸르지  못하리니 포도 열매가 익기 전에 떨러짐 같고 감람 꽃이 곧 떨어짐 같으리라 사곡한 무리는  결실이 없고 뇌물을 받는 자의 장막은 불 탈 것이라 그들은 악한 생각을 배고 불의를 낳으며 마음에 궤휼을 예비한다 하였느니라. - 여기서는 악인의 받을 벌에 대하여  다시 추가적으로 말한다. (1)그들의 재산이 증가되지 아니함(29절). (2)늘 소망 없는  자리에서 살고 있음(30절). (3)나무 가지가 불에 마르듯이 쇠잔해짐(30절 하반).  (4)성공하기 전에 쇠패함(32-34). (5)불의를 계획적으로 삼출함(35절). 그들이 불의를 행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멸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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