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10:1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원통함을 발설하고 내 마음의 괴로운 대로 말하리
라. - 여기 "원통함"(* )이란 말은 "수심"이란 뜻이다. "발설하고"로 번역된 히
브리어(* )는 "나에게 향하여 발설하리라"는 뜻이다. 곧, 수심을 하나님 상
대로 발설하지 않고 자기 자신 상대로 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악한 마음으
로 하나님을 원망함이 아니다.
욥 10:2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옵시고 무슨 연고로 나로 더불어 쟁변
하시느지 나로 알게 하옵소서. - 이것은 욥의 기도이다. 그의 하는 말이 표면에 있어
서 원망과 같이 보인다(1절). 그러나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
는 진실한 기도를 할 수 없다.
욥 10:3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취시
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 - 욥은 여기서 하나님께 대하여 질문식으로 진리를 밝힌다.
그리하면 그는 은근히 그 진리대로 신념을 가지고 자기의 고난을 이기는데 힘을 얻는
다.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는가 하는 질문에 있어서 욥은 사실상
하나님이 그의 피조물을 학대하신다고 결론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시문학적(詩文學
的)인 어법으로서 하나님께서 그 지으신 인생을 학대하실 리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이와 같은 어투의 내막을 모르고 욥이 이 점에 있어서
원망과 불평을 말한 듯이 잘못 해석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하셨을 때에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신 것이
아니고 다만 그때에 하나님이 그를 버리신 것 같이 취급하셨음에 대하여 신앙적으로
말씀하신 것 뿐이다. 만일 욥의 이와 같은 어투를 모두 다 원망과 불평으로 해석한다
면 약5:11이 말한 대로 욥이 어떻게 인내의 표본이 될 수 있으랴?
"악인의 꾀에 빛을 비취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 여기서도 욥이 원망과 불평을
말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욥이 그 때에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처사가 불공평하게
된 것 같이 느껴졌으므로 악인들이 도리어 기뻐하게 될 것이 아닌가 하고 탄식함이다.
그래도 이 말은 궁극적 의미에서 하나님을 원망한 것은 아니고 장차 하나님의 공평한
처사가 나타날 것을 바라보면서 한 것이다.
욥 10:4-7
주의 눈이 육신의 눈이니이까 주께서 사람의 보는 것처럼 보시리이까 주의 날이 어
찌 인생의 날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날과 같기로 나의 허물을 찾으시며 나
의 죄를 사실하시나이까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을 줄을 아시나이다 주의 손에서 나
를 벗어나게 할 자도 없나이다. - 여기서는 욥이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처사가 지나
치게 심각하시다는 듯이 말한다. 곧, 하나님께서 자기의 죄를 알아보시려면 재앙을 보
내시지 않고라도 그의 지혜로 아실 수 있을 것인데 어찌하여 육신의 눈으로 살펴보는
사람처럼 오래 동안 시간을 잡으시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또 혹은 짧은 세월 동안에
살고 잇는 인생이 어떤 기간 안에 남의 죄를 알아 보기 위하여 서두르는 것처럼 하나
님께서 자기를 심사하실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고 탄식한다. 그러나 욥의 이와 같은
말도 하나님에게 대한 원망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처럼 그리하실 리가 없다는
신념을 마음 속에 지니고 있으면서 위로를 받는다.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7절 상반). 욥은 위의 몇가지 질문
에서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심사 행위가 어떠하심을 말하였다. 그리고 여기서는 그
가 당연한 그 환난의 원인이 될 만한 범죄 사실은 자기에게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만
큼 그는 그 때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고난에 자기는 해당되지 않음을 밝힌다. 여기서도
그는 원망의 태도로 말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소망을 가지고 진리를 밝히는 것 뿐
이다.
"주의 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자도 없나이다."(7절 하반). 곧, 하나님은 욥을 취
급하심에 있어서 그렇게 심각하게 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붙잡
으시면 누가 그를 그의 손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겠는가? 욥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전
지(全知) 하심과(4-7절 상반) 또는 그의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심을(7절 하반) 믿는다.
이런 신앙의 소유자가 하나님께 대하여 원망을 품지 않았을 것은 명백하다. 그의 이와
같은 신앙이 그로 하여금 당면한 그 고난에 대하여 참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었을 것
이다. 그러므로 욥의 이 부분 말씀은 시문학적(詩文學的)으로 자기의 당하는 고난을
하나님 앞에서 탄식하는 것 뿐이고 불평하거나 낙심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런 시문
학적인 표현 속에 하나님의 궁극적 구원에 대한 소망을 표시한다.
욥 10:8-12
주의 손으로 나는 만드사 백체를 이루셨거늘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 보내려 하시나
이까 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가
죽과 살로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뭉치시고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권고
하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 욥이 여기서는 앞에서 말한 3절의 내용을 길게 설
명한다. 곧, 자기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이신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멸하실
까 하고 의문한다. 그러나 그의 이와 같은 의문은 신앙 없이 표현된 것은 아니다. 그
는 자기의 당면한 고난을 하나님께서 제거해 주시기를 믿음으로써 애처롭게 호소하고
있다.
"주의 손으로 나를 만드사 백체를 이루셨거늘."(8절). 여기 이른바 "백체"란 말(*
)은 "전체적으로 완전하게"(wholly and completely)를 의미한다. 이것은 하
나님께서 인간을 휼륭하게 지으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렇게 지으신 것은
그를 존중히 여기신 증표이다. 그러니만큼 하나님께서는 그를 멸망시킬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욥이 뜻밖에 죽을 지경의 고난 중에서 신음하게 되었으니, 그로서
는 우선 하나님을 향하여 질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질문은 그의 심령 속에
신앙을 지니고 나온 것이다. 그 이유는 욥은 본래부터 하나님의 오묘하신 주권을 믿는
성도였기 때문이다. 그는 일찌기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라고 하였다(2:10).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다는 말씀(9절)과 "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셨다는 말씀(10절)을 보면, (1)인간은 자기의
육체로 인하여 교만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 이유는 인간의 육체를 흙이요 또 그와
같은 물질이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2)인간은 자기의 몸을 천대할 수도 없다. 그
이유는 그것을 만드신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골 2:23참조. 우리의 몸이 낮고
찬하지만 하나님은 하늘의 보화 곧, 복음을 거기에 두시기 원하신다(고후 4:7). 하나
님의 능력은 우리의 약한 것을 통하여 더욱 강하게 나타나신다(고후 4:16, 12:10).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권고하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12절). 하나님
께서 특별히 사람에게만 영(靈)을 주시고 또 영을 보호하시는 의미에서 성결케 하신
다. 그러므로 히 12:9에서 하나님을 가리켜 "모든 영의 아버지"라고 하였다. 인간에게
대한 하나님의 이와 같은 특수 취급을 아는 욥으로서는 고난 중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를 구원하실 이는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밖에 없다. 시 100:3에 말하기
를,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
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고 하였다. 시 17:7, 22:10,
45:11; 욥 35:10-11 참조.
욥 10:13
그러한데 주께서 이것들을 마음에 품으셨나이다 이 뜻이 주께 있은 줄을 내가 아나
이다. - 여기 "이것들"이란 말은 14-17절의 내용을 말함이다. 곧 하나님께서는 욥이
범죄한 경우에라도 용서하시지 않을 것과 욥이 의로울지라도 역시 계속적으로 재앙을
주실 것이라는 내용이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욥을 지으시고도 이렇게 엄혹하게 그를
취급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욥의 이와 같은 말은 그가 당면한 가혹한 듯한 고난
의 현실을 그대로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것 뿐이고 그가 이런 말로써 하나님의 오묘하
신 주권(主權)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2:10 참조.
욥 10:14-17
내가 범죄하면 주께서 나를 죄인으로 인정하시고 내 죄악을 사유치 아니하시나이다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오며 내가 의로울지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올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목도함이니이다 내가 머리를 높이 들면 주께서 사자처
럼 나를 사냥하시며 내게 주의 기이한 능력을 다시 나타내시나이다 주께서 자주 자주
증거하는 자를 갈마들여 나를 치시며 나를 향하여 진노를 더하시니 군대가 갈마들어
치는 것 같으니이다. - 여기서 욥이 지적한 것은 자기의 가상적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엄격한 감시 및 징벌에 대한 것이다. (1)자기가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죄인으로
인정하긴다는 것(14절). 여기 "범죄"란 말(* )은 일반적 범죄를 말하고 특별히
중대한 것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범죄를 죄악으로 인정치 아니
하신다면, 그것은 그의 성결을 무시하심이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의 죄를 그대
로 인정하신다. (2)하나님께서 극악한 죄를 당장 벌하신다는 것(15절). 여기 "악하면"
이란 말의 히브리어(* )는 극도로 악한 것을 의미한다. (3)자기가 비록 의로울지
라도 하나님께서는 머리를 들지 못하도록 계속적으로 환난을 보내시어 자기를 괴롭히
신다는 것. 여기 이른바 "증거하는 자를 갈마들여"란 말(* )은 증거하는
자(욥을 괴롭히는 환난을 가리킴)를 새로이 계속 보내신다는 의미이다.
이 부분(14-17) 말씀은 얼핏 볼 때 하나님께 대한 욥의 원망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이 점에 있어서 우찌무라(* )는 욥을 잘못했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
였다. "기다리시라 욥이여, 당신의 눈은 지금 아주 감겨져 있으니 지금 하나님에게 관
한 당신의 추측은 하나도 그의 진상을 파악하기에 족하지 못하외다. 밤이 밝기를 기다
리시라, 그리하면 만물이 모두 분명해지리이다. 하나님은 광명 가운데서 신앙의 눈으
로써만 잘 우러러 볼 수 있는 것이외다. 암흑 중에서 이성의 손으로써 찾을 수 없는
것이외다. 당신은 지금 희망 없는 철학자를 본받아 하나님을 생각해보려는 것이외다."
라고 하였다(* ).
그러나 우찌무라의 이와 같은 비평은 옳지 않다. 그 이유는 이 부분 말씀은 (1)욥
이 하나님께 자기의 고난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자가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신앙으로만 성립되며, 신앙에는 원망의 요소를 내포할 수 없다. (2)
욥은 그 때에 풀기 어려운 고난의 문제를 안고 현실 그대로를 말하면서도 그 마음 속
에는 깊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어법은 성경에 많이 있다. 다윗
도 환난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아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라
고 하였으니(시 13:1), 이것은 원망이 아니고 오래 참아 기다리는 신앙이다. 그 뿐만
아니라, (3)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당하는 난관과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점을
그대로 솔직하게 내어놓고 해결 받기를 원한다. 외모에 경건을 단장하는 것보다 사실
그대로를 가지고 하나님을 찾아 의논하는 자가 도리어 하나님 앞에 합당하다.
욥 10:18-21
주께서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찜이니이까 그렇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기운
이 끊어져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아니하였을 것이라 있어도 없던 것 같이 되어서 태에서
바로 무덤으로 옮겨으리이다 내 날은 적지 아니하니이까 그런즉 그치시고 나를 버려두
사 저으기 평안하게 하옵시되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옵소서 이 땅은 어두워서 흑암 같고 죽음의 그늘이 져서 아무 구별이
없고 광명도 흑암 같으니아다. - 욥은 그 당하는 고난을 견딜 수 없어서 또 다시 자기의 출생을 한탄한다. 그리고 그는 생전에 평안을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한다. 이것은 인간의 상정(常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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