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4:1,2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으며 재를 무릅쓰고 성중
에 나가서 대성통곡하며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으니 - 모르드개의 이와 같은 행동이
슬픔의 표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창 37:34,44:13 참조.
(1)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이같은 행동이 기도(회개)와 관련되었으니만큼(수 7:6;
사 37:1;단 9:3), 모르드개도 이때에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이다. 다만 문제되는 것은
에스더서에는 "여호와" 혹은 "하나님"이란 성호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커밍(James
Elder Cumming)은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해결한다. 곧, 유다인들이 어떤 때에는 "여
호와"(혹은 "하나님")란 이름을 신성시하여 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The Book of
Esther, 1907,pp.10-14). 이 해석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와 달리 백스터
(J.S.Baxter)는 말하기를, "파사 시대의 유다인들은 아직 본토에 돌아가지 않고 외국
에 머물러 있었으니만큼 그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저자는 그들의
구원과 하나님의 이름을 결부시키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 그
의 이름을 결부시키지 않으신다. 파사 시대의 유다인들은 그 후대의 불신(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유다인들의 모형이기도 하다. 불신 유다인들에 대하여도 하나님께서 특수
간섭하시지만 하나님의 이름은 그들에게 가리워져 있다"고 하였다(抄譯)(Explore The
Book III, 1956,pp.280-281). 그러나 이 해석은 자연스럽지 않다. 모르드개와 같은 의
인이 그 때에 타락한 신자였다고 할 수 없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연약한 신자
들, 또는 타락한 자들에게 그의 이름을 알려주신 실례가 성경에 있지 않은가 ? 민
22:21-35 참조.
(2)모르드개의 행동은 이스라엘 민족의 비참한 처지를 천하에 알리려는 목적도 가
졌다. 그는 미천한 의복("굵은 베"옷)을 입고 대성통곡함으로 전국에 자기 민족의 위
기를 알린 것이다. 호쇤더(J.Hoschander)도 이 점에서 같은 해석을 하였다(The Book
of Esther In The Light of History, 1923,pp.186-187).
진실한 신자는 억울하게 역경을 당하였을 때 고자세(高姿勢)로 발악하거나 남들을
공격하는 태세로 악선전에 나서지 않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고요히, 혹 필요하다면
대중에게 그 사정을 알릴 수도 있다. 모르드개가 그 때에 민족적인 애통을 공개했으므
로 말미암아 유다 민족의 난제가 해결되기도 하였다. 슬픈 일을 당하고도 슬퍼할 줄
모르는 자들은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 반응이 없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
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
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라고 하셨고(눅 6:21 하반), 또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
가 애통하며 울리로다"라고 하셨다(눅 6:25 하반). 심령이 강퍅한 사람도 재앙이나 징
계를 받으면 그의 강퍅한 마음도 부드러워지면서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러므로 회개
의 눈물은 귀하다. 왕하 20:5;시 56:8 참조.
(3)토마스(Major W.Ian Thomas)는 이 부분(1-3)에서 다음과 같은 풍유적 의미를 찾
는다. 1)모르드개의 슬픔은 성령의 슬픔이고, 에스더는 사람의 영이고, 아하수에로왕
은 혼이고, 하만은 육체(부패성)를 비유한다고 함. 2)그 때에 왕궁에서 권세를 잡은
하만(육체)이 쫓겨나기 전에는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수 없었던 것과 같이, 사람이
거듭나지 못하여 육체(부패성)가 그의 영과 혼을 지배하는 동안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함. 3)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하만의 악을 인식시키려고 힘썼고 마침내 에스더
는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것처럼,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남으로 육체의 죄악을 깨닫고
또 죄악과 싸운다고 함(If Iperish, 1967,pp.35-52).
위의 토마스의 풍유적 해석이 본문의 목적한 뜻인지는 문제건이다. 그러나 성경의
중생 원리를 에스더서의 재료로 표현해 보는 것은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번연(John Bunyan)의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이 성경의 일정한 본문 해석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기독도(基督徒)의 구원 과정을 일반적
비유로 맞추어 본 결과이다.
에 4:3
왕의 조명이 각 도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곡읍하며 부르짖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 "왕의 조명"이란것은 하만이 왕의 이름
으로 만들어 선포한 것이다. 그것은 유다인들을 전멸하라는 명령이다(3:13). 여기 "금
식"이란 말은 그 때에 대중이 금식기도한 것을 가리킨다. 대중의 금식기도는 하나님이
장려하신다(욜 1:14,2:12). 이와 같은 금식기도는 니느웨 사람들이 실행하였고, 그 결
과로 멸망할 뻔한 니느웨가 구원 받았다(욘 3:5-10). 그리고 이스라엘 민중이 바벧론
에서 돌아오기 직전에 에스라가 역시 대중에게 금식기도를 선포하였다(스 8:21). 역경
을 당한 자들이 금식기도함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힘있게 의지하기 위함이다.
에 4:4
굵은 베를 벗기고자 하나 모르드개가 받지 아니하는지라 - "굵은 베"를 입고 "대성
통곡"하는 모르드개의 사정을 모르는 에스더는 그의 의복을 갈아 입히려 하였다. 그러
나 모르드개는 거기 응하지 않았으니, 이 점에 있어서도 그는 투지만만(鬪志滿滿)한
대장부의 기세를 보여준 것이다. 그는 옳은 주장과 생사를 같이하는 지도자의 정신을
가진 자였다.
에 4:5-9
민족의 슬픔을 걸머지고 초지일관(初志一貫)한 모르드개는 마침내 깊은 왕궁에 묻
혀있는 에스더에게 그 때 유다 민족이 당면한 위기가 무엇인가를 자세히 전달하게 되
었다. 에스더는 하나의 약한 여성이었으나 그 시점에 있어서 하나님이 세우신 유일한
구원 방편이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모르드개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인간
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도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을 바로 알고 그에게
접촉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세우신 사람들을 방편으로 삼으시고 일하신다. 누구
든지 자기의 당한 문제를 안고 기도하는 것은 첫째로 할 일이다. 그러면서도 모르드개
처럼 사람이 할 일은 해야 된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일하신다. 잠 16:1 에 말하
기를,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고 한다.
사람이 일을 "경영"하기는 해야 된다.
자기의 당한 모든일(7절 상반) - 3:1-6 참조.
왕의 부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수효(7절 하반) - 3:9 참조.
수산궁에서 내린 조서(8절 상반) - 3:12-15 참조.
에 4:10,11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청원대로 실천하려 함에 난관이 있음을 말하였으니, 곧 파사
왕국의 법에 임금의 허락이 없이는 비록 왕후라도 그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에스더의 중심은 아직 신앙적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에 4:12-14
모르드개의 제안대로 하기에 난색을 띤 에스더는 다시 그의 권면을 듣고 힘을 얻었
다(16절). 신자가 이 세상에서 의를 행하려면 언제나 난관을 만난다. 이런 때에 비록
약한 자라도 신앙이 강한 자의 권면을 받고 힘을 얻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러므로 성경
은 서로 붙들어 주며 권면하라고 가르친다(살전 5:14). 옳은 권면을 받아들여 유익을
얻은 자들은 많다. 예를 들면, 다윗(삼상 25:23-35), 나아만(왕하 5:13-14), 나다나엘
(요 1:45-49) 등이다.
이 부분에 나타난 모르드개의 강한 신앙 인격은 다음과 같다. 그는 에스더에게 말
하기를, (1)"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고 함
(13절 하반). 여기 이른바 "면한다"는 말(* )은 도피한다는 뜻이다. 에스더에
게 전한 모르드개의 말은, 공동체가 당할 환란 앞에서 개인적으로 피할 길이 있다고
하여 그 길을 취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특수한 환란 때에 신자들이 단합하여 그
난관을 통과해야 할 문제 앞에서 누구든지 개인주의로 행하지 말 것을 가르친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신자들도 환란을 피할 수 있다. 잠 22:3;마 10:23 참조. (2)"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리라"고
함(14절). 유다인들의 과거 역사로 보아 현재 그들이 당하는 환란은 하나님의 진노가
해제됨과 동시에 물러가고 그들은 구원을 받게 될 것이 명백하였다. 파사 시대로 말하
면 유다인들이 그 죄값으로 당하던 바벧론 포로 생활이 끝난 때라고 할 수 있다. 그러
므로 하나님 앞에서 살던 모르드개는 이 진리를 확신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원
수 하만의 손에 그 백성을 내어주시지 않을 줄로 확신하였다. (3)"너와 네 아비집(모
르드개의 집)은 멸망하리라"고 함(14절 하반). 에스더가 왕후의 지위에 있으면서 동족
의 멸망의 위험에서 건져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자신과 그 가문이 멸망 받을 죄라는
의미이다.
의인의 경고는 사람들로 각성케 하여 신앙을 정비케 한다. 모르드개는 위의 세 가
지 논리로써 에스더를 깨우쳤다. 사람은 그 받은 사명에 충성하지 않을 때에 존재의
가치를 상실한다. 왕후가 된 에스더는 분명히 그 때에 유다 민족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원할 사명을 지녔던 것이다.
스펄죤(Spurgeon)에 의하면, 이 부분(13-14)에서 중요한 두 가지 뜻을 취할 수 있
다. (1)개인의 이해 문제와 공동체. 사람은 그의 소속 공동체를 떠나서 혼자 잘 될 수
는 없다. 에스더에게 대한 모르드개의 말("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 그 뜻이다. 다른 사람들이 다 무식해도 나 홀로 많은 지식을 가지면 된다든지, 다
른 민족들은 예수를 모르고 멸망 받아도 나 한 사람이 믿고 구원 받으면 된다는 것은
나 자신도 멸망할 심리이다. 그것은 남들도 구원 못하고 나 자신도 멸망케 하는 개인
주의이다. (2)받은 은혜와 그 책임. 신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은 그 자신을 위
함이 아니고 남들을 봉사하기 위한 것이다. 모르드개의 말("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
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이 이 사실을 가리킨다.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은혜(영적 은혜, 혹은 일반적 은혜)를 받았다면 그것은 우리가 남들을 도와줄 책임을
맡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처지에서 그 받은 은혜를 가지고 남들을 도와주어야 한
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고 우리 자신만을 위하여 산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것
을 가지고 사복(私腹)을 채우는 도적이 된다.
에 4:15,16
여기에 나타난 에스더의 신앙 인격은 다음과 같다. (1)그는 시녀로 더불어 "밤낮
삼일" 동안 금식하기로 결심함(16절 중간). 여기 이른바 "금식"(* )은 식음을 폐
지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원칙적으로 남을 도와줌과 기도하기 위하여 육체를
제재하는 것이다(사 58:4-12). 어거스틴(Augustine)은 말하기를, "금식은 두 개의 날
개를 가져야 하는데 기도와 구제이다"라고 하였다(On. Ps. XLII Cap.8, Opp.ed.Migen,
IV.1,82). (2)그는 동족의 금식을 요청함(16절 상반). 에스더는 필히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동포들의 합심기도를 부탁하였으니, 그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과 기도 응답
을 확신한 증거이다. (3)그는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겠다고 함. 여기 이른바
"규례"(* )는 왕의 부름을 받기 전에는 왕 앞에 나아가지 못하는 법을 가리킨다.
에스더는 의를 위하여 일사(一死)를 각오한 것이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16절 끝) - 이것은 에스더가
신앙 결단을 한 말인데 "망했으면 망했지 !"(망한다는 말은 죽는다는 뜻임)라고 자역
(字譯)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과거사(過去詞)는 미래의 일인 죽음을 눈 앞에 확실한
현실처럼 보고서 말한 것이다. 한스 바르드케(Hans Bardtke)도 이 문구를 그런 뜻으로
보았다(Das Perfektum wird hier zum Ausdruck einer Tatsache verwendet, die" als
in der Zukunft vollendet vorliegende bezeichnet werden soll".-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Das Buch Esther,1963,s.335). "죽으면 죽으리이다"란 말은 주로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1)죽음이 찾아오는 때에 사람은 그것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 그것은 사람마다 가는 길이다(왕상 2:2). 에스더는 죽음 앞에서 평안한 마음을 가
진 것이다. (2)의를 행함이 생명이라는 것. 에스더의 결심은 죽음 때문에 의를 버리지
는 않겠다는 것이다.
에 4: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 대로 다 행하니라 - 모르드개는 의를 위하여 남을
가르치기도 하였지만(13-14) 남에게 순종도 잘 하였다. 이 말씀에 뒤이어서 70인역
(LXX)에는 이때의 모르드개의 기도가 기록되어 있다. 그것을 이 아래에 옮기고 비판하
려 한다.
"모르드개는 주님의 모든 행위와 처사를 기억하면서 기도하기를, '모든 것을 다스
리시는 주님이시여 ! 우주는 주님께 속하였으니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면 막
을 자 없나이다. 이는 주님께서 하늘과 땅과 하늘 아래 모든 놀라운 것들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당신님은 모든 것들의 주님이시니 만큼 주님을 반항할 자는 없읍니다. 주
님은 모든 것을 아시나이다. 주님이시여 ! 내가 교만한 하만에게 절하지 않은 것이 나
의 교만이나 무례에서 된 것이 아닌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내가 이스라엘을 위하
여는 그의 발뒤꿈치에라도 입맞출 수도 있읍니다. 다만 나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 위에 두지 않으려고 하만에게 꿇어 절하지 않았읍니다. 주님이시여 ! 왕이시여 !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여 ! 당신님의 백성을 아끼시옵소서. 사람들이 우리를 멸망시키
려고 하나이다. 그들이 당신님의 옛기업을 멸망시키려 하나이다. 당신님이 애굽에서
당신님을 위하여 구속하신 분깃을 등한히 하시지 마옵소서. 내 기도를 들으시사 당신
님의 기업에 긍휼을 베푸시고 우리의 슬픔을 연회로 바꾸어 주시옵소서. 그렇게 하심
으로 우리로 당신님을 찬송하며 살게 하옵소서. 당신님을 찬송할 입을 막히지 않게 하
옵소서. 모든 이스라엘이 힘껏 부르짖는 것은 그들이 종말이 가까왔기 때문입니다'라
고 하였다."
우리는 70인역(LXX)의 이 기록이 반드시 원본에 속한 것이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기록에 대한 학자들의 반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이 첨가된 문구의 문투가 히브
리어에서 번역된 것 같지 않고 후대의 헬라어 원작으로 생각된다는 것. (2)탈굼(아람
어역 구약)이나 수리아역 구약이 이 첨가문들을 포함하지 않았다는 것. (3)이 첨가문
들이 에스더서 내용과 다소 상충되므로 에스더서 저자의 원작으로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Carey A. Moore, The Anchor Bible, Esther, 1971,pp.LXIII-LXIV). 우리는 위
의 모르드개의 기도를 강단에서 말하지 않아야 된다. 70인역(LXX)에는 위의 모르드개
의 기도에 뒤이어서 에스더의 신앙적 결단과 기도가 더 첨가되어 있다. 그것을 여기에
소개하고 비판하려 한다.
"에스더는 놀라서 주님께로 피하였다. 그는 화려한 옷을 벗고 고난과 애통에 적합
한 옷을 입었으며, 향을 버리고 재와 불결한 것으로 머리에 덮어쓰고 완전히 낮아졌
다. 그가 화장하던 머리털을 흐트러지게 하였다.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님께 기
도하여 말하기를, '내 주님이시여 ! 당신만이 우리의 왕이 십니다. 당신 밖에 도울 자
없는 외로운 나를 도우소서. 그 이유는 내가 나의 생명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족속 가운데서 듣기를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모든 나라들 가운데서 택하시고 우리
조상들을 택하사 영원한 기업을 삼으셨다 하더이다. 그리고 당신께서 약속하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 행하셨나이다. 지금 우리가 당신님을 거스려 범죄하였나이다. 그래서
당신님이 우리를 우리 원수들에게 내어주셨나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들의 신을 높
인 까닭입니다. 당신님이 정당하십니다. 주님이시여 ! 그러나 원수들은 우리의 괴로운
종살이의 처지를 보고도 만족하지 않고 그들의 신들과 약속하고 당신님의 약속을 폐지
시키려 하며 당신님의 기업을 없애버려 당신님을 찬송할 자들의 입을 없애려 하나이
다. 그리고 당신님의 제단의 영광을 없애버리고 우상을 찬송하는 이방인들의 입을 열
게 하려 하나이다. 그들은 죽을 왕을 영원히 우상화 하려고 하나이다. 주님이시여 !
당신님의 왕권을 존재하지도 않는 신들에게 내어주시지 마소서. 그들이 우리의 무너짐
을 보고 비웃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그들의 음모를 실패케 하소서. 이 음모를 시작한
자를 실패자의 표본으로 삼으소서. 주님이시여 ! 우리의 환란 중에 당신님을 계시하소
서. 나에게 용기를 주소서. 신들의 왕이시며 모든 정부의 주재자시여 ! 나로 하여금
사자 앞에서 설득력 있게 하소서. 그로 하여금 우리를 대적하는 자를 미워하게 하시옵
소서. 그리하심으로 그 원수와 및 그와 동조하는 자들이 끝나게 하소서. 당신님의 손
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당신님 밖에 도울 자 없는 외로운 나를 도우소서. 당신님은 무
엇이든지 아시나이다. 내가 악인들의 외식을 미워하는 줄을 당신님이 아시며, 내가 할
례 받지 않은 자들의 침상을 싫어하는 줄도 당신님이 아시나이다. 당신님은 내가 궁지
에 몰린 것을 아시나이다. 내가 조정에 나타날 때에 내 머리 위에 쓰는 높은 지위의
상징을 내가 싫어하는 줄 주님이 아시나이다. 나는 그것을 월경누더기 같이 싫어하나
이다. 내가 조정에 있지 않는 때에는 그것을 쓰지 않나이다. 당신님의 종이 하만의 식탁에서 먹지 아니하였사오며, 귀족 파티를 칭찬하지 않았고, 제사(祭祀)의 술도 마시지 않았나이다. 내가 이곳에 온 후 지금까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신 주님 밖에 다른 것은 즐거워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모든 것을 이기시는 능력 있는 하나님이시여 ! 절망하는 자의 소리를 들으시고 악인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주님이시여 ! 나의 두려움에서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하였다."
우리는 이상과 같은 70인역(LXX)의 내용이 반드시 원본에 속한 것이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강단에서 이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로 말하지 않아야 된다. 1:1에 대한 해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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