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6:1,2
성도가 성공할 수록 마귀의 무리는 시기와 질투로써 방해공작에 광분(狂奔)하는 법
이다.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2절 중간) - "오노 평지"는 베냐민 지파
의 땅에 있었는데 예루살렘에서 20마일 북쪽이고 룻다(Lydda)에 가깝다(스 2:33;느
11:35). 그들이 느헤미야를 촌으로 유인하려는 것은 그 지도자 한 사람을 해하여 이스
라엘의 손을 약화시키려는 계책이다. 마귀가 성도를 해하는 방법도 그로 하여금 거룩
한 무리에서 떠나도록 만들어 성도들의 교통(* )과 도움을 받지 못하
도록 함이다.
느 6:3
원수들이 느헤미야를 만나자고 하였으나 느헤미야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보통으로
는 성도가 남들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사랑이고 겸손이다. 그러나 악한 목적으로 요청
하는 데는 응하지 않아야 된다. 시 1:1 참조. 느헤미야는 원수들의 이런 요청을 담대
히, 또는 강경하게 거절하였다. 사람의 올바른 처세는 양보를 잘 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때에는 굳게 거절함으로 성공한다. 특별히 교회의 지도자가 원수의 위협
때문에 직책을 떠나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 아니니 그런 때일수록 충성해야 한
다(고전 4:2)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 하나님의 일(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은 그 어떠한
것이든지 큰 역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일을 반대하기 위하여 마귀의 무리가 방해를
계속한다. 느 2:19,4:1,7 참조. 영혼을 구원하는 일도 하나님의 큰 일인만큼 언제나
마귀는 그 일을 방해한다. 그 때문에 예수님은 영혼 구원의 길은 좁다고 말씀하셨다
(마 7:13). 요한 번연(John Bunyan)은 이런 뜻으로 자기의 꿈을 말한 바 있으니, 곧
"아름다운 왕궁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였는데 그 궁의 주위에는 무장한 원수들이 있어
서 거기에 들어가려는 자들을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더라"는 것이다.
느 6:4
저희가 네 번이나 이같이 내게 보내되 나는 여전히 대답하였더니 - 마귀는 성도를
시험할 때에 한 번만 하지 않고 여러 번 함으로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 인간은 연약하
여 이렇게 계속적인 꾀임에 넘어지기 쉽다. 느헤미야는 마귀의 이와 같은 계획을 알므
로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거절의 이유를 분명히 밝혀 말하기를, "이제 큰 역
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3절 중간)고 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일꾼을 기뻐
하신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시험과 역경을 뚫고 나아가는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리요 피란처이다.
느 6:5-7
원수들은 다섯번째 새로운 방법으로 도전해 왔다. 그 작전 방법은 거짓 선전이니,
곧 느헤미야가 왕이 되려고 반역 운동을 한다는 것이다. 마귀의 역사는 언제나 거짓으
로써 성도들을 두렵게 하여 하나님의 일에서 떠나도록 꾀한다. (1)성경의 말씀대로 바
로 믿어도 소용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를 신자들의 마음에 일으키며, (2)신자로 하
여금 불신자들의 비방을 꺼려 의를 행하지 못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위축케 한다.
느 6:8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하였나니 - 느헤미야는 원수의
거짓된 선전을 묵과하지 않았다. 성도들이 원수에게서 허무한 말로 비방을 받을 때에
묵과할 경우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자기를 변호할 경우도 있다. 잠
26:4-5에 말하기를,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네가
그와 같을까 하노라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그에게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고 하였다.
느 6:9
이는 저희가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저희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정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 마귀는 언제나 허세(虛勢)를 꾸며서 역사함으로
신자들로 하여금 두려움에 잠기도록 하려고 꾀한다.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헛된 염려
와 두려움으로 인하여 할 일을 못하며 의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게 되는가 ? 우리가 주
님만 믿고 담대히 설 때에 하나님은 함께 해 주시고 마귀는 물러간다. 수 1:5-6;벧전
5:8-9 참조. 우리 신자들은 언제나 마귀의 세력을 과대 평가하지 말 것이다. 우리는
의(義) 자체의 힘이 군대의 힘보다 크다고 생각해야 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의의
편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일(하나님의 일)을 낮게 평가하지 말아
야 된다. 모든 의로운 일은 어떤 것이든지 큰 일이다.
느 6:10
스마야가...이르기를 저희가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있고 그 문을 닫자 - "스마야"는 거짓 선지자인데 그는 도비야와 산발랏에
게서 뇌물을 받고 느헤미야를 유인코자 계책을 꾸몄다.
두문불출하기로 - 이 말(* )은 '갇혀 있었다'(was shut up)는 뜻이다. 이때
에 스마야가 자기 집에 갇혀 있었으니, 그는 참 선지자를 모방하여 행동 예언으로써
느헤미야에게 '위험하니 숨으라'고 경고한 것이다. 선지자들의 예언이 이런 상징적 행
위로 표현된 일이 있었다. 왕상 22:11 이하;사 20:2;겔 4:1-10,12::3-9 참조. 이때 스
마야의 목적은 느헤미야의 명예를 손상시키려는 것이었다. 곧, 만일 느헤미야가 스마
야의 말을 따라서 성전에 숨게 되면, 원수들은 그를 가리켜 비겁한 자라 하고, 또 하
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라고 악선전할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그의 지도자 자
격에 큰 손상을 입을 것이었다. 원수들은 이것을 노린 것이다.
느 6:11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 느헤미야는 이때에 사명 완수를 위한
자기 태도를 분명히 밝혔다. 즉 피신한다는 것은 그로서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자기 생명보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더 귀하게 여긴 말이다.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 이 말(*
)은 다음과 같이 개역되어야 한다. 곧,
"나 같은 자가 누구이기에 성전에 들어가서 살 수 있겠는가"라고. 이 말은 그가 이스
라엘의 지도자로서 비겁하게 숨어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다른 해석에, 느헤미
야는 자기가 제사장이 아니므로 성소에 들어갔다가 살 수 없음을 알고 이렇게 말한 것
이라고 한다. 민 18:7 참조. 또 다른 해석은, 그가 환관이었으니만큼(1:11) 고자였으
므로 성소에 들어갈 수 없음(레 21:16-23;신 23:1)을 알고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느 6:14
느헤미야는 원수의 계책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내 하나님이여...무릇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의 소위를 기억하옵소서 - 이때에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시간과 장소를 정하지 않고 수시로 기도하였다. 이것을 보면 그
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의 소유자였다. 하나님을 "내 하나님"이라고 한 말이 이 사
실을 말해주기도 한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지 않고는 이런 말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기억하옵소서"란 것은 그 원수들의 악행을 살펴 심판해 주시
기를 기도한 말이다.
느 6:15
"엘룰월"(* )은 일반 월력 8,9월에 걸친 달이다. 예루살렘 성이 "오십 이일
만에" 중건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된 일이었다. (1)그 일에 유다인들이 열성을
바쳤는데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열심이었고, (2)원수들의 방해 공작이 도리어 일꾼들
로 하여금 초 긴장된 심리로 역사하게 만들었으니 이것도 하나님의 섭리로 된 일이었
다.
느 6:16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 일이 너무도 빨리 이루어졌으니만큼 원수들
과 이웃나라 사람들까지도 그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잘되는 것을 보고도 기뻐하지 않고 도리어 시기하
며 두려워하는 것은 마귀의 심리이다. 그런 시기심과 두려움이 있는 자들은 낙심하기
도 한다. 그들이 그렇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적하시는 사실을 그들 자신
이 알기 때문이다.
느 6:17-19
"그 때에"란 말은 유다인들이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서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던 기간을 가리킨다. 그 동안 유다의 고위층 인물들도 산발랏과 도비야와 밀통해가지고 느헤미야를 낙심시키려고 계속 서신 왕래를 하여 왔었다. 그들이 (1)도비야와 또 그의 아들과 통혼(通婚)까지 하고서 느헤미야에게 해로운 공작을 하였고(18절), (2)그들이 이스라엘의 원수들에 관하여는 느헤미야에게 좋게 말하기도 하고, 또한 느헤미야에게 관하여는 원수들에게 좋지 않게 말하기도 하였으며(19절 상반), (3)또한 원수 도비야는 편지로 느헤미야를 위협하기도 하였다(19절 하반). 이렇게 그들은 배신, 참소, 위협 등으로써 느헤미야를 계속 괴롭혔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이 시키신 예루살렘 성 중건 사업을 관철하여 성공하였다. 신약 시대에도 성공하는 교역자들은 원수들의 괴롭힘을 잘 이기고 낙심하지 않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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