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 1: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 주전 538년에 바벧론은 "메대사람 다리오"(Darius B. C.
538-536)로 말미암아 정복되었다(단 5:30-31). 이 다리오의 시대에 선지자 다니엘이 벌써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참된 신이심을 그 나라 백성들에게 증거한 바 있었다(단 6:1-28). "고레스"란 이름(* )은 파사말 쿠루스(Kurus)의 음역이다. 이사야는 이 이름을 두 번 예언하였다(사 44:28,45:1).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 - 하나님께서 범죄한 유다를 징벌하여 바벧론에 내어주셨는데(B.C.586), 그는 일찌기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유다 예루살렘의 황폐(유다 민족이 포로된 후)가 "70년 동안" 계속되리라고 예언하신 바 있었다(렘 25:11,29:10). 단 9:2 참조.
응하게 하시려고 - "응한다"는 말(* )은 완성을 의미한다. 민 23:19에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고 하였다.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 여기 이른 바 "감동시킨다"는 말(* =일으킨다는 뜻)은 하나님께서 고레스로 하여금 유다 민족을 해방시켜서 예루살렘 성전을 짓게 할 마음이 일어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사 44:28,45:1,13 참조. 역사가(歷史家) 요세푸스(Josepus)에 의하면 고레스가 이사야서를 읽고 이런 선한 결심을 했다고 한다(Ant. XI. 1-2). 그러나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어떤 근거를 가졌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또 다른 추측은 아마도 그 때에 유다인들이 선지자들의 예언(바벧론의 멸망과 고레스의 승리와 유다인 해방에 관한 예언)을 고레스에게 알려주었으므로 그가 유다인 해방을 힘썼을 것이라는 것이다(H. H. Grosheide, Commentaar op het Oude Testament, Esra Nehemia I, 1963, p.68). 그러나 우리는 이런 추측을 할 필요가 없다. 고레스가 유다인에게 호의를 가지게 된 것은 본문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신 결과이다.
스 1:2
하늘의 신 여호와(* ) - "하늘의 신"이란 칭호는 '초월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킨다. 그리고 "여호와"(* )란 성호는 '영원 존재자'란 뜻인데(출 3:14,15) 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언약하신 것을 영원히 살아 계셔서 지켜 실행해 주실 것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언약과 계시에 관련된 것이다.
위의 두가지 성호를 합한 것("하늘의 신 여호와")은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참되신 신(神)을 가리켜 말한 칭호이다(단 4:2,34). 고레스는 참되신 하나님이 곧바로 이스라엘의 여호와라는 의미로 여기서 이렇게 말하였다. 파사 왕들은 그들이 정복한 다른 민족들이 섬기던 신들을 채납(採納)하였으나(Bickermann) 고레스는 그런 정도가 아니고 이스라엘의 "여호와"를 최고의 참 신으로 알았다. 그는 그 때부터 200년전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사 41:25,44:28,45:1)에 의하여 그런 지식을 가지게도 되었을 것이다. 일찌기 메대 사람 다리오(B.C.538)도 다니엘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권능을 깨달았던 것이다(단 6장).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메대 파사 왕족 가운데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 이 말씀은 고레스가 파사 뿐 아니라 바벧론도 통치한다는 것이다. 여기 문제가 생긴다. 단 5:31에 의하면, 바벧론을 정복하여 점령한 왕이 "메대 사람 다리오"라고 한다. 그러나 이 난제는 다음과 같이 해결된다. 메대 사람 다리오는 고브리야스(Gobryas)와 동일인(同一人)이며 고레스의 부하로서 바벧론 지역만을 통치하는 부속 왕이었다는 것이다(R.D.Wilson, Studies in The Book of Daniel, 1917,p.133). 단 6:1에, 메대 사람 다리오가 방백 120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였다고 했는데 이 말씀도 그가 파사까지 다스렸다는 의미가 아니고 그가 고레스왕 아래서 바벧론을 그런 방법으로 지배하였다는 것이다(같은 책, pp.141-142).
윌슨(R.D.Wilson)은, 메대 사람 다리오가 고레스의 부하 고부리야스(Gobryas)와 동일한 사람이라는 증거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1)옛날에는 한 사람이 두 가지 이름을 가졌던 일이 많았다는 것(Studies in The Book of Daniel, 1917,pp.138-139). (2)고브리야스는 앗수르말이고 "권세의 소유자"란 뜻인데 그것이 파사말 다리오와 같다는 것이다(Studies in The Book of Daniel, 1917, p.139).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 여기 "나를 명하사"란 말(* )은 "나에게 찾아오셔서"라고 개역되어야 한다. 이것을 보아도 고레스가 영감(靈感)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스 1: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이 문구는 "예루살렘에 계신 그가 그 하나님이시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그 하나님"이란 말(* )은 '유일하신 신 곧 참 신'이란 의미이다. 고레스는 참 하나님이 이스라엘에만 알려진 사실을 믿었다.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 느부갓네살왕이 유다의 예루살렘을 치고 성전을 불살라 파괴한(대하 36:19) 후 하나님의 예언대로(렘 25:11;단 9:1-2) 70년을 지나서 고레스왕이 성전 재건을 명한 것이다. 이 세상 임금들 중 여호와의 종교에 대하여 박해하는 자도 있으나 하나님이 원하시면 찬성하는 자도 등장한다. 공산주의자들이 기독교를 박해하므로 그들 세계에 복음 전도의 문이 닫혀 있지만 다시 그 문이 열릴 때도 오고야 말 것이다.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 이것은 가장 큰 축복의 언사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모든 일에 형통한다. 창 39:3 참조.
스 1:4
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우거하였든지 그곳 사람들이 - 여기 이른 바
"남아 있는 백성"이란 말(* )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키고, "그곳 사람들"은 바벧론 사람들을 가리킨다(S.Ottli). 고레스는 바벧론 사람들에게 명하기를 귀국하는 이스라엘을 물질로 도와주라고 하였다. 이것은 일찌기 모세의 인솔하에 출애굽하던 이스라엘에게 되어졌던 일과 같다(출 3:22,11:2,12:35-36). 바벧론에서 이스라엘이 해방되어 돌아올 일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도 예언하였다(사 10:20-22,11:11,16,28:5). 그러므로 고레스의 이 조서는 사실상 그의 작품이 아니고 구약의 역사적 사실을 잘 아는 유다인(에스라서 저자)의 것이라고 하는 학자들도 있다(H.H.Grosheide). 그러나 고레스가 그 관대한 처사에 있어서 이런 말을 못했을 리도 없다.
스 1:5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 고레스의 유다인 해방과 성전 건축 명령을 따라서 유다로 돌아가는 자들은 바벧론에 살던 유다인들 중에서 오직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결단을 내린 자들이었다. 언제나 참된 구원에 참여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자들이다. 요 6:44;롬 8:14 참조. "유다" 지파는 본래 지도자 격으로 축복 받았으니(창 49:8) 이때에 광복의 행렬에도 선두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베냐민" 지파는 모든 지파들 중에 가장 미약해졌었으나(삿 21:6) 하나님의 은혜로 이와 같이 기쁜 일에 참가한 것이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성전 재건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함께 출발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스 1:6
그 사면 사람들이...즐거이 드렸더라 - 하나님의 일이 핍박 중에 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주위의 후원을 받으며 되는 경우도 있다. "돕고"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는 '후원함', 혹은 '강화시켜 줌'을 의미한다. 바벧론 사람들이 이렇게 물질로써 성전 건축을 후원한 것은 하나님의 일에 이바지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었다. 왕상 5:7-10 참조.
스 1:7-11
여기서는 전에(주전 586년)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벧론으로 옮겨갔던 여호와의 전 기명(殿器皿)들을 고레스가 도로 내어준 사실에 대하여 말한다. 사람들은 폭군이 득세하는 시대에는 그 권세가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듯하여 탄식하지만 철석 같이 시행되던 폭군의 명령도 무력해지는 좋은 때가 반드시 오는 법이다. 하나님은 이방 왕의 마음도 주장하신다(1:1). 잠 21:1 참조. 그러므로 침략국의 압제 아래 있는 성도들은 소망 중에 즐거워할 수 있다. 때가 이르면 하나님이 그들을 풀어놓아 주실 것이다. 오늘날 공산국가들의 위협에 대해서도 신자들은 두려워할 것 없다.
느부갓네살왕이 예루살렘에서 옮겨갔던 성전의 기명들도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회복되고야 말았다. 이것은 그 회복 운동이 여유있게 된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백성만 근근히 돌아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은 그 성전의 기명까지도 돌려진 것이다. 사 49:24-25에 보면 "용사의 빼앗은 것을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 승리자에게 사로잡힌 자를 어떻게 건져낼 수 있으랴마는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강포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구원할 것임이라"고 하였다.
바사 왕 고레스가 고지기 마드르닷을 명하여(8절 상반) - 여기 "명하여"로 번역된
히브리어(* )는 '감독으로 하여'란 뜻이다(Alfred Bertholet). "미드르닷"(* )이란 이름은 바벧론말 "미트라다투"(Mitradatu)와 같은 것이다.
세스바살(8절 끝) - 이 이름은 스룹바벧에 대한 파사식 이름으로 생각하는 학자
(Samuel Ottli)가 있다. 그러나 벧돌렛트(Bertholet)란 학자는 그 두 이름을 같은 것
으로 볼 수 없다고 한다(* noch V.II,5:14,16 ist nicht mit Serubbabel zu
identifizieren.-Kurzer Hand-Commentar, 1902, Die Bucher Esra und Nehemia,s.2).
그러나 델리취(Delitzsch)는 세스바살이 스룹바벧과 동일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는 에스라서(3:8,5:2,16)에 근거하여 이와 같이 주장하였다.(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Ezra, Nehemiah, Esther, Eerdmans, 1970,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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