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역대하 2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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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27:1

 

요담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오세라 - "요담"(* )이란 이름은 '여호

와는 완전하시다'란 뜻이다. 그가 왕이 되기 전에 그의 부친 웃시야 대신으로(섭정왕

으로) 유다를 다스린 일도 있었으나(대하 26:21) 웃시야가 별세한 뒤에 계승하여 정식

으로 왕이 된 것이다.

그 모친의 이름은 여루사라 사독의 딸이더라 - "사독"(* )은 대제사장

"사독"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상 6:12 참조.

 

 

대하 27:2

 

요담이 그 부친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 이것은, 웃시야의 범죄 전 신앙 생활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였던 것을 가리킨다. 대하 26:4-5 참조.

여호와의 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 히브리 원문에는 이 문구의 초두에 "다만"

이란 말(* )이 있어서, 요담이 그 부친의 잘못한 점(성전에 들어가서 분향한 일)

은 삼가한 것을 힘있게 지적한다.

백성은 오히려 사악을 행하였더라 - "사악을 행하였다"는 말(* )

'부패하게 행하였다'는 뜻이다. 그 시대에는 유다 민족이 우상을 많이 섬겼고 사회 도

덕은 타락하였다. 5:7; 1:5 참조. 그 때에 백성이 이렇게 부패해진 원인은 요담

왕이 "산당"(* )을 폐지하지 아니한 사실에 있었다(왕하 15:35). 산당은 어떤

특별한 과도기에 여호와를 섬기는 곳으로 사용된 적이 있었으나 일반적으로는 우상 섬

기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산당은 타협주의의 온상이었다. 종교의 정화(淨化)를 위하여

는 산당도 폐지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유다의 많은 왕들이 이 일을 단행하지 못

하였다. 그 결과로 민중이 우상주의로 기울어졌고 그들의 도덕도 부패하게 되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참되이 유지하려면 근본적 진리 문제(지엽적인 해석 문제 말고)

에 있어서는 타협주의를 금물로 알아야 된다.

 

 

대하 27:3,4

 

"여호와의 전 윗문"은 성전의 북쪽 문이고, "오벧성"은 예루살렘성의 동남쪽에 있

었다.

유다 산중에 성읍을 건축하며 - 예루살렘에서 헤브론으로 가는 방면에 많은 산들이

있는데 거기에 성읍을 건축한 목적은 국방을 위한 것이다. "영채"(* )

요새(要塞)를 의미하고, "망대"(* )는 침략해 오는 적군을 발견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후에 민중이 이런 군사 시설을 의뢰하고 부패하여졌을 때에 선지자들은

그들을 책망하였다(8:14).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국방과 군사 시설을 원칙적으

로 반대하시지는 아니하신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보다 그런 것들을 더 의지할 때에

는 그가 그들의 행동을 죄악시하신다. 21:30-31에 말하기를,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라.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하였다.

 

 

대하 27:5,6

 

여기서는 요담이 여호와를 공경하는 동안(6) 암몬 자손이 그에게 조공(朝貢)하게

된 사실에 대하여 말한다. 오늘 신약 시대에서도 보통으로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잘 믿

는 동안 불신자들이 교회를 권위있게 보며 존경한다. 5:11-13 참조. "은 일백 달란

"는 약 187,500(미화)의 가치이고, "밀 일 만석"은 약 4,813,240리터의 용량이다.

 

 

대하 27:7-9

 

여기서는 요담왕의 종말에 대하여 말한다. 1절 상반의 내용이 8절에 거듭 나온 것

은 저자의 부주의로 된 것이 아니다. 서론에 나온 말이 결론에 다시 나오는 것은 도리

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중복체 때문에 저자가 사용한 문원(文源)이 두 가지였다

고 추측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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