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25:2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치 아니하
였더라 - "온전하 마음으로 행치 아니하였더라"란 문구(* )는 그
의 옳게 한다는 일에도(상반절) 결점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 예를 들면 (1) 그가 부친
을 죽인 자들을 죽여 복수한 것(3절)은 잘못한 일인데, 그 때에 그들의 자녀들을(율법
에 의하여) 아껴준 것은 잘한 일이 었음(4절). (2) 그가 유다 군대를 강화시킨 것은
잘한 일인데(5절), 그와 함께 북쪽 나라 이스라엘에서 10만의 용사들을 삯 내왔던 일
은 잘못이었음(6-9절). (3) 그가 담대히 에돔과 세일을 친 것은 잘한 일인데(11절),
그 때에 그가 포로 1 만명을 높은 바위 꼭대기에서 밀쳐 내려뜨려서 그들의 몸을 부숴
지게 한 것은 잔인한 일이었고(12절), (4) 그가 에돔과 세일을 이긴 것은 잘한 일이지
만(14절 상반), 돌아오면서 세일의 우상을 가져다가 섬긴 것은 큰 죄악이었다(14절 하
반).
위의 네 가지 논조로 보아서 아마샤는 여호와 보시기에 옳은 것을 행하느라고 하였
는데 거기에 옳지 않은 것들이 섞여 있어서 결국 그는 온전치 못한 자로 드러났다.
대하 25:3,4
모세 율법책에 기록한 대로 함이라(4절 중간) - 아마샤가 그 부친을 죽인(왕하 12:
20) 원수들을 죽일 때에 그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않았는데 그것은 "모세 율법"을 순종
한 행위이다. 신 24:16 참조. 아마샤가 그 왕정 초기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였으
니만큼 그 때에 유다 나라에는 서광(曙光)이 비취었을 것이다.
대하 25:5-9
여기서는 에돔과 싸우기 위한 아마샤의 군대 편성에 대하여 말한다. 아마샤가 북쪽
나라 이스라엘에서 10만 군인을 삯내어 온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은 옳지 않게
평가하고, 한 방법을 제시하면서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하였다.
이스라엘 군대로 왕과 함께 가게 마옵소서(7절 중간) - 그 때에 북쪽 이스라엘은 우
상주의 국가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았다. 이 원리가 이 세
상 국가들에 있어서는 잘 통하지 않고 다만 신약 교회의 모형이었던 유다에 한하여 통
한다. 이 세상 나라들 중에는 우상을 섬긴 나라로서 많은 민족들을 정복한 일이 얼마
든지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 나라들의 흥망이 전적 종교 문제로 좌우되
도록 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 나라들도 섭리적으로 주장하시지만 종교
문제로 직접 간여하시지 않고 어느 정도 방임하신다. 행 14:16 참조. 오직 유다 나라
는 신약 교회의 모형이었으므로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 원리는 신약 교회에도 응
용된다. 고후 6:14-16 참조. 이것을 보면 기독교회는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들과 합작할 수 없다. 숫자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포섭하여 실질상 주님
의 이름과 관계 없는 자들을 일꾼으로 세우게 되면 결국 주님의 원수들을 교회에 많이
용납하는 것이 된다. 이런 처사는 교회를 해롭게 하는 역효과를 가져온다.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내가 일백 달란트를 이스라엘 군대에게 주었으
니 어찌할꼬 하나님의 사람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으로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9절) - 아마샤가 잘못 작정했던 것(6절)을 하나님의 사람의 권면대
로 취소할 경우엔 100 달란트를 잃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므로 아마샤는 이 문
제 때문에 주저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의 말은 그것을 문제시 하지 말라는 것이
다. 이제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이보다 많은 것"을 주신
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하나님을 모시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상급이 되어주신다. 창 15:1 참조.
대하 25:11,12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약속) 에 순종한(10절) 결과 에돔을 물리치고 승리
하였다. 이 승리는 하나님이 그 약속대로 아마샤의 행동에 함께 하여 주신 결과였다.
역대기 저자는 이렇게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진실성에 유의하여 강조한다.
유다 자손이 또 일만을 사로잡아 가지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서 밀쳐 내려
뜨려서 그 몸이 부숴지게 하였더라(12절) - 이것은 유다 왕 아마샤의 잔인한 처사이
다. 하나님은 포로를 긍휼히 여기신다. 시 79:11, 102:20, 146:7; 사 14:17, 49:9; 애
3:34-36 참조.
대하 25:13
아마샤가...돌려보낸 군사들이 사마리아에서부터 벧호론까지 유다 성읍을 엄습하고
사람 삼 천을 죽이고 물건을 많이 노략하였더라 - 아마샤가 이스라엘에서 삯내왔던 군
인들의 신실치 못한 신분은 그대로 증명되었다. 그들은 쉽게 분노하였고(10절 끝) 마
침내 유다를 반격(反擊)하여 노략질해 갔다. 이런 자들이 아마샤와 함께 에돔 전쟁에
나아갔더라면 아마샤는 그들의 배신을 당했을 것이다. 역대기 저자는 이 이스라엘 군
인들의 믿을 수 없는 신분을 밝혀 하나님의 사람의 경고(7-8)의 정당성을 증명한다.
대하 25:14-16
아마샤가 승전하고 돌아오는 길에 "세일 자손의 우상들"을 가져왔고, 그것을 "자기
의 신으로" 세워놓고 "그 앞에 경배하며 분향"하였다. 사람은 그 심령이 부패하여서
이렇게도 쉽게 하나님을 떠나 우상과 짝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도 긍휼
을 베푸셔서 "한 선지자"를 그에게 보내어 그의 죄를 깨우쳐 주셨다. 그런데도 그가
그 선지자의 경고를 받지 않고 고집하다가 선지자의 예언과 같이 패망하였다(17-24).
역대기 저자의 필법(筆法)은 언제나 이렇게 하나님 말씀의 진실성을 증명하는 데 집중
한다. 롬 3:4 참조.
우리가 너로 왕의 모사를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였느냐(16절 중간) -
아마샤의 이와 같은 언사는 회개를 거절할 뿐 아니라 도리어 강퍅하게 의(義)를 대적
하는 심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후에 그 죄값을 받았다(27-28). 사람이 자기 잘못에
대하여 책임질 줄 모르고 강퍅해지면 그 다음에 그에게 찾아오는 것은 실패와 암흑과
멸망 뿐이다.
대하 25:17
유다 왕 아마샤가 상의하고 - 여기 이른 바 "상의하고"란 말(* )은 '충고를
받고'라는 뜻이다. 아마샤는 의로운 모사(선지자)를 버리고 악한 모사, 곧 아부자들의
권면을 받아들였다.
서로 대면하자 - 이 말(* )은 서로 만나 전쟁하자는 뜻이다.
대하 25:18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
여기 "가시나무"로 번역된 말(* )은 "엉겅퀴"(thistle)라고 번역해야 된다. 이
말은 '저주 받은 자'를 비유한다(창 3:18). "백향목"은 '하나님의 축복 받은 사람'을
가리킨다(호 14:5-7). 그리고 "짐승"은 '군대'를 비유한다.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고 한 것은 '교만하고 주제넘는 요청'
이라는 비유이다. 엉겅퀴가 백향목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 백향목을 향하여 혼인
관계를 맺자고 함은 교만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아마샤가 요아스에게 전쟁해보자고
함도 자기 처지를 모르고 덤비는 교만이라는 것이다. 아마샤가 이와 같이 옳게 꾸짖는
요아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요아스는 유다를 치려고 올라갔다.
대하 25:20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 곧, 하나님게서
그를 버렸으므로 그가 강퍅해졌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벌하시는 방법들 가운
데 한 가지가 여기에 계시되어 있다. 곧, 그가 죄인을 교만한 대로 내버려 두셨으므로
그 죄인이 정당한 경고도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죄인
에게 고집을 넣어 주심이 아니고, 그의 마음대로 행하도록 그를 내버려 두심이다. 사
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버림 받으면 교만해질 수 밖에 없다. 사람은 이렇게 교만
해질 바탕을 지녔으니(렘 17:9), 그 자신이 늘 위험하다.
대하 25:21-23
범죄하여 심령이 어두워진 "아마샤"는 선지자의 경고(15절)도 무시하고 교만하게
덤비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대패(大敗)하였다.
대하 25:25-27
아마샤가 그의 죄값으로 반란을 당하여 죽임이 된 것은 선지자의 예언대로(16절 하
반) 이루어진 사실이다. 끝까지 회개치 않은 그의 죄가 결국 그를 죽인 셈이다. 죄인
이 구원 받는 길은 회개하고 주님을 믿음인데 아마샤는 강퍅하게 회개하지 않았던 것
이다. 그의 부친 요아스가 우상 섬긴 죄와 선지자를 박해한 죄로 신하들의 반란을 당
하고 죽임이 되었는데(대하 24:25), 아마샤는 그것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고 부친과 꼭
같이 행하다가 그도 그 부친처럼 반란을 당하여 죽임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징계의
성격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한다.
대하 25:2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치 아니하
였더라 - "온전하 마음으로 행치 아니하였더라"란 문구(* )는 그
의 옳게 한다는 일에도(상반절) 결점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 예를 들면 (1) 그가 부친
을 죽인 자들을 죽여 복수한 것(3절)은 잘못한 일인데, 그 때에 그들의 자녀들을(율법
에 의하여) 아껴준 것은 잘한 일이 었음(4절). (2) 그가 유다 군대를 강화시킨 것은
잘한 일인데(5절), 그와 함께 북쪽 나라 이스라엘에서 10만의 용사들을 삯 내왔던 일
은 잘못이었음(6-9절). (3) 그가 담대히 에돔과 세일을 친 것은 잘한 일인데(11절),
그 때에 그가 포로 1 만명을 높은 바위 꼭대기에서 밀쳐 내려뜨려서 그들의 몸을 부숴
지게 한 것은 잔인한 일이었고(12절), (4) 그가 에돔과 세일을 이긴 것은 잘한 일이지
만(14절 상반), 돌아오면서 세일의 우상을 가져다가 섬긴 것은 큰 죄악이었다(14절 하
반).
위의 네 가지 논조로 보아서 아마샤는 여호와 보시기에 옳은 것을 행하느라고 하였
는데 거기에 옳지 않은 것들이 섞여 있어서 결국 그는 온전치 못한 자로 드러났다.
대하 25:3,4
모세 율법책에 기록한 대로 함이라(4절 중간) - 아마샤가 그 부친을 죽인(왕하 12:
20) 원수들을 죽일 때에 그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않았는데 그것은 "모세 율법"을 순종
한 행위이다. 신 24:16 참조. 아마샤가 그 왕정 초기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였으
니만큼 그 때에 유다 나라에는 서광(曙光)이 비취었을 것이다.
대하 25:5-9
여기서는 에돔과 싸우기 위한 아마샤의 군대 편성에 대하여 말한다. 아마샤가 북쪽
나라 이스라엘에서 10만 군인을 삯내어 온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은 옳지 않게
평가하고, 한 방법을 제시하면서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하였다.
이스라엘 군대로 왕과 함께 가게 마옵소서(7절 중간) - 그 때에 북쪽 이스라엘은 우
상주의 국가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았다. 이 원리가 이 세
상 국가들에 있어서는 잘 통하지 않고 다만 신약 교회의 모형이었던 유다에 한하여 통
한다. 이 세상 나라들 중에는 우상을 섬긴 나라로서 많은 민족들을 정복한 일이 얼마
든지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 나라들의 흥망이 전적 종교 문제로 좌우되
도록 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 나라들도 섭리적으로 주장하시지만 종교
문제로 직접 간여하시지 않고 어느 정도 방임하신다. 행 14:16 참조. 오직 유다 나라
는 신약 교회의 모형이었으므로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 원리는 신약 교회에도 응
용된다. 고후 6:14-16 참조. 이것을 보면 기독교회는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들과 합작할 수 없다. 숫자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포섭하여 실질상 주님
의 이름과 관계 없는 자들을 일꾼으로 세우게 되면 결국 주님의 원수들을 교회에 많이
용납하는 것이 된다. 이런 처사는 교회를 해롭게 하는 역효과를 가져온다.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내가 일백 달란트를 이스라엘 군대에게 주었으
니 어찌할꼬 하나님의 사람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으로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9절) - 아마샤가 잘못 작정했던 것(6절)을 하나님의 사람의 권면대
로 취소할 경우엔 100 달란트를 잃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므로 아마샤는 이 문
제 때문에 주저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의 말은 그것을 문제시 하지 말라는 것이
다. 이제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이보다 많은 것"을 주신
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하나님을 모시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상급이 되어주신다. 창 15:1 참조.
대하 25:11,12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약속) 에 순종한(10절) 결과 에돔을 물리치고 승리
하였다. 이 승리는 하나님이 그 약속대로 아마샤의 행동에 함께 하여 주신 결과였다.
역대기 저자는 이렇게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진실성에 유의하여 강조한다.
유다 자손이 또 일만을 사로잡아 가지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서 밀쳐 내려
뜨려서 그 몸이 부숴지게 하였더라(12절) - 이것은 유다 왕 아마샤의 잔인한 처사이
다. 하나님은 포로를 긍휼히 여기신다. 시 79:11, 102:20, 146:7; 사 14:17, 49:9; 애
3:34-36 참조.
대하 25:13
아마샤가...돌려보낸 군사들이 사마리아에서부터 벧호론까지 유다 성읍을 엄습하고
사람 삼 천을 죽이고 물건을 많이 노략하였더라 - 아마샤가 이스라엘에서 삯내왔던 군
인들의 신실치 못한 신분은 그대로 증명되었다. 그들은 쉽게 분노하였고(10절 끝) 마
침내 유다를 반격(反擊)하여 노략질해 갔다. 이런 자들이 아마샤와 함께 에돔 전쟁에
나아갔더라면 아마샤는 그들의 배신을 당했을 것이다. 역대기 저자는 이 이스라엘 군
인들의 믿을 수 없는 신분을 밝혀 하나님의 사람의 경고(7-8)의 정당성을 증명한다.
대하 25:14-16
아마샤가 승전하고 돌아오는 길에 "세일 자손의 우상들"을 가져왔고, 그것을 "자기
의 신으로" 세워놓고 "그 앞에 경배하며 분향"하였다. 사람은 그 심령이 부패하여서
이렇게도 쉽게 하나님을 떠나 우상과 짝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도 긍휼
을 베푸셔서 "한 선지자"를 그에게 보내어 그의 죄를 깨우쳐 주셨다. 그런데도 그가
그 선지자의 경고를 받지 않고 고집하다가 선지자의 예언과 같이 패망하였다(17-24).
역대기 저자의 필법(筆法)은 언제나 이렇게 하나님 말씀의 진실성을 증명하는 데 집중
한다. 롬 3:4 참조.
우리가 너로 왕의 모사를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였느냐(16절 중간) -
아마샤의 이와 같은 언사는 회개를 거절할 뿐 아니라 도리어 강퍅하게 의(義)를 대적
하는 심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후에 그 죄값을 받았다(27-28). 사람이 자기 잘못에
대하여 책임질 줄 모르고 강퍅해지면 그 다음에 그에게 찾아오는 것은 실패와 암흑과
멸망 뿐이다.
대하 25:17
유다 왕 아마샤가 상의하고 - 여기 이른 바 "상의하고"란 말(* )은 '충고를
받고'라는 뜻이다. 아마샤는 의로운 모사(선지자)를 버리고 악한 모사, 곧 아부자들의
권면을 받아들였다.
서로 대면하자 - 이 말(* )은 서로 만나 전쟁하자는 뜻이다.
대하 25:18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
여기 "가시나무"로 번역된 말(* )은 "엉겅퀴"(thistle)라고 번역해야 된다. 이
말은 '저주 받은 자'를 비유한다(창 3:18). "백향목"은 '하나님의 축복 받은 사람'을
가리킨다(호 14:5-7). 그리고 "짐승"은 '군대'를 비유한다.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고 한 것은 '교만하고 주제넘는 요청'
이라는 비유이다. 엉겅퀴가 백향목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 백향목을 향하여 혼인
관계를 맺자고 함은 교만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아마샤가 요아스에게 전쟁해보자고
함도 자기 처지를 모르고 덤비는 교만이라는 것이다. 아마샤가 이와 같이 옳게 꾸짖는
요아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요아스는 유다를 치려고 올라갔다.
대하 25:20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 곧, 하나님게서
그를 버렸으므로 그가 강퍅해졌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벌하시는 방법들 가운
데 한 가지가 여기에 계시되어 있다. 곧, 그가 죄인을 교만한 대로 내버려 두셨으므로
그 죄인이 정당한 경고도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죄인
에게 고집을 넣어 주심이 아니고, 그의 마음대로 행하도록 그를 내버려 두심이다. 사
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버림 받으면 교만해질 수 밖에 없다. 사람은 이렇게 교만
해질 바탕을 지녔으니(렘 17:9), 그 자신이 늘 위험하다.
대하 25:21-23
범죄하여 심령이 어두워진 "아마샤"는 선지자의 경고(15절)도 무시하고 교만하게
덤비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대패(大敗)하였다.
대하 25:25-27
아마샤가 그의 죄값으로 반란을 당하여 죽임이 된 것은 선지자의 예언대로(16절 하
반) 이루어진 사실이다. 끝까지 회개치 않은 그의 죄가 결국 그를 죽인 셈이다. 죄인
이 구원 받는 길은 회개하고 주님을 믿음인데 아마샤는 강퍅하게 회개하지 않았던 것
이다. 그의 부친 요아스가 우상 섬긴 죄와 선지자를 박해한 죄로 신하들의 반란을 당
하고 죽임이 되었는데(대하 24:25), 아마샤는 그것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고 부친과 꼭
같이 행하다가 그도 그 부친처럼 반란을 당하여 죽임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징계의
성격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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