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20:1,2
"마온 사람"은 페트라(Petra)의 동남쪽 12마일 지점에 있는 '마안'이란 곳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바다 저편 아람에서. - 여기 이른바 "바다 저편"은 사해 건너편을 가리키고, "아
람"(* )은 본래의 원본에는 "에돔"(* )이었을 것인데 서사자가 잘못 베낀
것으로 생각된다. "하사손다말"(* )은 사해 지역에 있는 도시였다(창
14:7).
대하 20:3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
하라 공포하매. - 여호사밧의 신앙이 여기 나타나 있다. 그는 위기를 당하여 무슨 일
보다도 먼저 자신이 기도를 하였고, 또 민중으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였다. "금식"은
기도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 "간구"란 말(* )은 만나기 위하여 계속하여 찾는 행
동을 가리키는 것이니, 따갑게 계속하여 찾는 것을 가리킨다.
대하 20:4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
구하더라. - 그들이 모인 것도 중요하고 간구한 것도 중요하다. 여기 "간구한다"는 말
(* )도 계속하여 찾는다(Seek)는 뜻을 가진다.
대하 20:5-12
이 부분에는 여호사밧의 기도가 기록되었으니, 역시 그의 확고한 신앙을 보여준
다. 그는,
(1) 여호와를 "하늘의 하나님"(* )으로 믿음(6절 상반). 이
것은 천하의 모든 민족을 다스리실 능력이 있는 하나님(6절 하반)을 가리킨다. 그 어
느 민족이든지 하늘 아래 있다.
(2)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신 사실을 믿음(7절). 이것
은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말해준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인 사실을 나타낸다. "주의 벗"이란 말의 "벗"(* )은 '사랑하
는 자'란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의 택한 백성(아브라함의 자손) 사이에는 사랑
의 관계가 중점적인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신 것은 그들
에 대한 사랑을 기억시키심이다(사 41:8-10). 그와 마찬가지로 천국을 거저(믿음으로)
받은 그리스도 신자들(그들은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임)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기도할 때마다 담대해야 된다.
(3)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을 확신함(8-9). 그는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의지하였다. 이 말씀은 대하6:22-42의 말씀(특별
히 28-31)을 간추린 것이다. 대하 7:1에 보면 솔로몬이 기도를 마쳤을 때에 불이 하늘
에서부터 내려왔다. 이것은 기도는 응답된다는 진리를 계시한 기적이다.
(4) 배은망덕하고 선을 악으로 갚는 자는 망한다고 함(10-12 상반). 이와 같은 진
리에 근거하고 기도하는 자의 마음은 하나님의 신원(伸寃)해 주심을 확신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 모압과 암몬을 침해하지 않고 아껴주었는데(신 2:8-9,19) 이제
그들은 이스라엘을 침략해 왔다. 이것은 선을 악으로 갚는 죄악이다. 잠 17:13 참조.
(5) 능력 없고 약한 민족인 유다가 오직 주님만 바라본다고 함(12절). 여기 "오
직"이란 말(* )은 주님을 바라보는 단 한 가지 일만 함을 강조함이다. 하나님은 약
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전 1:27).
대하 20:14
이 귀절에는 여호사밧에게 승리의 약속을 전해 준 "야하시엘"의 족보에 대하여 기
록되었다. 여기서 그의 부조(父祖)들 중 5대조(五代祖)까지 소급하여 말함으로 그 때
여호와의 영이 입하신 것이 엄밀하게도 역사적 사건임을 강조한다. 성경에 기록된 사
건들은 초자연적이고 기적적이지만 겸하여 우리가 확신할 만한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이다.
대하 20:15-17
"야하시엘"로 말미암아 전달된 하나님의 승전의 약속은 몇 가지로 여호사밧과 민
중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었다. (1)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고 함(15절). 두려워하
던 신자들도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한 마디로써 용기와 담력을 얻게 된다. 그 이유
는 하나님의 말씀은 권위와 함께 영감으로 임하기 때문이다. (2) 그 때 전쟁은 사람에
게 속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함(15절 하반). "하나님께 속한 것"이란
말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3) 유다의 군데가 적병을 만나게 될 곳
을 지리적으로 자세히 말함(16절). 이런 자세한 예언은 그것을 듣는 자들로 하여금 하
나님의 기적적 도움이 임할 것을 확신케 하였을 것이다. (4) 유다 군인들은 싸울 것도
없이 하나님의 승리를 구경하게 된다고 함(17절).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 이 말씀은, 그 전쟁에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간섭
하셔서 승리하게 하실 것을 보장한다.
대하 20:18,19
승전의 약속을 받은 여호사밧과 온 유다 백성은 그 약속이 성취되기도 전에 감사
한 뜻으로 "여호와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레위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이것
은 그들의 신앙이 진실함을 증명한다.
대하 20:20-22
여기서는 여호사밧이 전장(戰場)에서 신앙적으로 그의 군인들을 지도한 사실을 말
한다. 곧, 그는 민중더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고 하였다(20절 하반). 그
는 여호와를 신뢰함이 국가의 견고함(안전 보장)을 성립시킨다고 하였다. 이것이야말
로 신앙(信仰)을 소유했으면 그것이 바로 실상(實狀)을 소유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
미이다. 히 11:1 참조. 그는 약속을 믿는 그것이 벌써 승리인 줄 알고 민중으로 하여
금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였다(21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22절 상반). - 여기"복
병"이란 말(* )은 유다 측에서 숨겼던 군인들을 가리킨 것이 아닐 것이다.
이 때에 유다 측에서는 전쟁할 마음조차 없었다(17절). 이것은 적의 군대들 중에서 의
외에 한 부대가 돌연히 일어나서 자체 안에 반란을 일으키고 저희끼리 죽이게 된 것을
가리킨다. 일설에 이것이 갑자기 일어난 천군(天軍)을 가리킨다고 하지만 그런 일에
대한 표현은 여기 나온 말씀과 다르게 되어 있다. 왕하 6:17, 19:35 참조.
대하 20:25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 동안에 취하고. -
이 때에 모압과 암몬 족속이 물건을 그렇게 많이 가지고 전쟁에 임한 것은, 그들이 유
다 백성을 팔레스틴에서 아주 쫓아내고 거기에 거주하려 한 까닭이었다(Delitzsch).
11절 참조. 그것은 가나안 땅을 유다 민족의 기업으로 주신(창 15:18; 수 1:2)여호와
의 뜻을 거역한 행동이었다. 그러니만큼 여호와께서 그 전쟁에 기적적으로 간섭하신
것이다.
대하 20:26-28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26절 상반). - "브라
가"란 말(* )은 송축을 의미하는 히브리어의 음역이다. 그곳은 헤브론에서 예
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있다. 현재는 드고아서쪽에 있는 와디 베라이쿠트(Wady
Bereikut)라는 골짜기이다. 그곳에서 유다 민중이 전쟁에 승리케 하신 여호와를 찬송
(송축)하였기 때문에 그 이후로 이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 이 때에 유다 민중은 승리
의 즐거움으로 이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 이 때에 유다 민중은 승리의 즐거움으로 "예
루살렘"에 오되 "여호와의 전(성전)에"까지 나아갔다고 한다.그들은 곧바로 성전을 목
표하고 직행하였던 것이다.이것은 그 승리가 여호와로 말미암은 사실을 확신한 행동이
다(28절).
대하 20:29
이방 모든 나라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 함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
워한 고로. - 유다 군인 들은 전쟁도 하지 않고 여호와를 찬송하는 일만 하였는데(21
절) 적군들은 패하였다. 이런 놀라운 사건은 명백하게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을 보여
준 것이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나타날 때에는 하나님을 모르던 자들도 두려
워하게 된다(수 2:9-11). 그리고 공포심은 사람들을 무력하게 만들어서 아무 일도 못
하게 한다.
대하 20:30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 본서의 저자가 여기서 "유다 나라"라고 하지
않고 "여호사밧의 나라"라고 한 것은 여호사밧의 믿음에 독자들의 주의를 끌려는 것이
었다. 여호사밧의 믿음으로 말미암아(3-13) 그 나라에 평안이 임한 것이다. 개인 신자
들의 마음에도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평강이 있다. 우리 심령의 불안은 원수 마귀의
역사로 되는 것이니, 그것을 정복하실 이는 하나님 밖에 없다. 우리가 참된 기도를 하
나님께 드릴 때에 하나님의 간섭으로 진정한 평안이 임한다.
대하 20:33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마음을 정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께
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 "산당"(* )이라는 것은 본래 가나안 족속들이 가
졌던 것인데 인가(人家) 가까운 언덕에 있었다(민 22:41;왕상 11:7,14:23; 왕하
17:9,23:5,8).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날 그것들을 파괴하도록 명령을 받
았었다(민 33:52). 신 33:29 참조. 그런데 어떤 때에는 그들이 여호와를 위하여 산당
을 시설하고 거기서 예배하는 일이 허락된 적도 있었다. 곧, 하나님이 실로의 성막을
버리셨던 시기(성전이 아직 건축되지 않았던 시대)에 (삼상 9:12-14,19,25,10:5; 왕상
3:2,4; 시 78:60-61, 67-69)는 그런 일이 허락되었었다. 또 북쪽 나라 이스라엘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는 것을 금지하였으므로 그곳의 경건한 신자들이 부득이 산당
에서 여호와께 예배한 일이 합법화 되었던 것이다(왕상 18:30-31). 이런 부득이한 예
외를 제외하고는 이스라엘이 산당을 폐지하도록 명령 받았다(왕상 13:1-2; 호 10:8).
유다의 경건한 왕 여호사밧이 산당을 폐지하지 않은 것은 그의 잘못이 었다. 여호사밧
이 이렇게 산당을 폐지하지 아니한 결과는 하반절이 말한 대로, "백성이 오히려 마음
을 정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다. 이 말씀의 히브리어
(* )는, 70인역
(LXX)처럼 (
) "그 백성이 그 현재까지 그 열조의 하나님을 향하여 그 마음을 똑바로 정하지
않았도라"라고 개역되어야 한다.
대하 20:35-37
여기서는 우상주의자와 교제하며 합작한 여호사밧의 잘못을 지적한다. 그는 아하
시야와 합작하여 배를 지어 오빌로 가서 금을 가져오려고 하였다(왕상 22:48). 그러나
그 후에 선지자의 예언과 같이 그 배가 파선되고 말았다(37절). 성경은 어디서나 하나
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사실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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