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19:1
평안히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 여호사밧이 "길르앗 라못" 전쟁에서 "평안히"(*
)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 이 말씀에 암시되어 있다. 여호사밧이
참가하지 않아야 할 전쟁에 왕복 차림으로 출전하였다가 원수에게 아합왕으로 오인되
어 하마트면 죽임이 될 뻔하였었다(대하 18:29-31).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구원을 받았다. 다만 아합왕만은 선지자의 예언대로(대하 18:18-27) 전장에서 죽었다.
대하 19:2
선지자 "하나니"는 유다 왕 아사를 꾸짖고 투옥되었었는데(대하 16:7-10), 그의
아들 "예후"는 여호사밧을 책망하였다.
이것은 선지자가 아합을 도와준 여호사밧의 죄(왕상 22:1-36; 대하 18:1-34)를 염
두에 두고 한 말씀이다.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의 편이 되어주는 악한 행동이다. 시 15:4은 "망령된 자"를 멸시해야 된다고 하였
다. 시 139:21-22 참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 이 "진노"는 다음 장(20장)에 기록된 모압과 암
몬의 침략전쟁이다.
대하 19:3
왕에게 선한 일도 있으니. - "선한 일"이라는 말(* )은 "선
한 일들"이라고 개역되어야 한다. 여호사밧의 선한 일들은 하반절 말씀이 알려주었으
니 아세라(가나안 민족들이 섬긴 女神像)와 산당까지도 폐지하고 여호와만 섬긴 것이
다(대하 17:6). 선지자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의 선(善)을 보시고 그 당할
환란(患亂) 중에서 그를 아껴주실 것이라고 암시하는 것이다. 대하 12:12 참조. 선지
자의 이 말씀대로 후에 과연 암몬과 모압이 유다를 침략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
호사밧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물리쳐주셨다(대하 20:1-23).
"오로지 하여"란 말(* )은 '너의 마음을 예비하여'란 뜻이
니, 성의있게, 혹은 마음을 확정함을 가리킨다.
대하 19:4
브엘세바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지까지. - 이것은 유다 전국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민간에 순행하며 저희를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고. - 여호사밧
은 친히 행차하여 전국을 순회하면서 민중을 가르쳐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
였다. 이것은, (1) 그가 일찌기 우상주의자 아합과 교제하면서도 종교적으로는 아합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을 증명한다. (2) 그가 민중을 이렇게 인도함은 아합을 도와주었
던 그의 잘못을 회개한 증거이다. 회개는 말보다 행동으로 열매를 맺어야 한다.
대하 19:5-7
여호사밧은 또 한 가지 의로운 행동으로써 회개의 열매를 맺았다. 그것은 민중에
게 공의를 실시한 일이니, 그가 전국 각처에 재판관들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공의로
운 재판을 시행토록 한 것이다. 곧, 재판할 때에, (1) "삼가하라"고 함(6절 초두).
(2) "여호와를 위하라"고 함(6절 하반). (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행하라
고 함(7절 상반). 그리고 (4) 여호와를 본받으라는 의미의 부탁도 하였다(7절 하반).
대하 19:8
이 귀절에서는 예루살렘에 설립된 최고 법정에 대하여 말한다. "예루살렘에서"라
고 번역된 히브리어(* )는 "예루살렘"라고 개역되어야 한다. "레위 사람
과 제사장"에게는 본래 재판장 자격이 부여되어 있다(신 17:8-9). 그리고 "족장"이란
말(* )은 "아버지들의 우두머리들"(Chief of the fathers)이라고
번역될 수도 있으니, 이들은 재판에 노숙한 어른들이다.
여호와께 속한 일(* ). - 이것은 종교적 판단에 관한 일들을 가
리킨다. "예루살렘 거민의 모든 송사를 재판하게 하고"라는 말(*
)을 델리취(Delitzsch)는, 11절 내용을 따라서 우리 한역과 달리 취급
하였으니, "왕에게 속한 모든 일들을 판단하게 하니라 그들(여호사밧과 그 동행자들)
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나 우리 한역은 70인역(LXX)을 따
른 것이다. 우리가 70 인역( )을 무시할
수 없다. 벤징겔(Benzinger), 키텔(Kautzsch)등이 역시 70인역(LXX)과 동조한다.
대하 19:9,10
여호사밧은 재판장들더러 "여호와를 경외하고 충의와 성심으로" 재판하라고 부탁
한다. "충의"로 번역된 말(* )은 '진실'을 의미하고, "성심"으로 번역된 말
(* )은 '편벽됨이 없는 온전한 마음'을 가리타다. 이 세 가지(경외, 충
의, 성심)는 그들의 재판에 있어서 여호와께 범죄하지 않도록(10절) 되기 위하여 부탁
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신본주의 정치이다.
대하 19:11
여기서는 예루살렘 최고 법정에서 시무할 지도자들에 대하여 말하고, 또 거기서
수종들 레위인들에 대하여 말한다.
여호와께서 선한 자와 함께 하실지로다. - 이 결론의 말씀을 보아도 여호사밧의
신앙이 참으로 독실했던 것이 알려진다. 그는 여호와의 축복이 없이는 유다 나라가 잘
될수 없다고 확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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