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20:1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 히스기야가 그의 질병에 대하여 말한 내용은 사
38:10-16 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너는 집을 처치하라 - 곧, 왕으로서 하여야 할 국정인계(國政引繼)를 단행하라는 것
이다. 사 38:1에는 "네 집에 유언하라"는 말씀도 있다. 이 때에는 그의 아들 므낫세가
나기 전이었다. 왕하 21:1 참조.
왕하 20:2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 이것은 다른 일들을 제쳐놓고 여
호와만을 찾는 전심 기도의 태도이다. 그는, 질병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신 줄 알고 하
나님의 도와주심을 간구하였다(사 38:13,16).
왕하 20:3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
서 - 히스기야의 이 기도는 그의 업적(業蹟)보다 그의 신앙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주의 보시기에"란 히브리어(* )는 '당신의 면전'이란 뜻이니 그가 주님을 대
면하여 살아온 것(이것은 그의 신앙임)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가 "선하게 행한 것"은
행동으로 표현된 신앙이다. 왕하 18:5-6 참조. "진실과 전심"의 신앙은 여호와의 기뻐
하시는 것이다(신 30:6; 시 51:6). 그가 여기서 자기의 신앙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 것
은 자기 자랑이 아니고 자기의 신앙 생활을 솔직히 고백하는 것 뿐이다. 이런 솔직한
고백은 다윗도 하였다(시 17:1).
심히 통곡하더라 - 신앙의 눈물은 귀하다. 다윗은 자기 눈물을 보관해 두기를 원하
였고(시 56:8), 예레미야는 울기를 원하였고(렘 9:1), 바울은 디모데의 눈물을 생각하
여 그를 보기 원하였다(딤후 1:4). 신앙적 기도나 회개의 진실성과 간절성에서 솟아나
는 눈물은 귀하다. 하나님은 이런 눈물을 기뻐하신다. 시 6:6-9; 겔 11:19-20 참조.
왕하 20:4-6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응답하신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고 하심(5절). 히스기야의 "기도"는 전적으로 주님만 바라
본 기도였으니(2절 참조), 여호와께서 들으실 수 밖에 없었고, 그의 "눈물"은 간절한
소원의 표현이었어으니(3절 끝) 여호와께서 보셨다. (2) "삼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
라가게 되리라고 하심(5절 끝). 곧, 제 3일에는 그의 병이 완전히 치료되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려고 성전에 올라갈 것이라고 하신다. 제 3일은 예수님이 죽으셨
다가 부활하신 날이니, 구약에 구원 관계로 나오는 "제 삼자리"이란 말은 그 사건(예
수님의 부활) 예언관 관련된 듯하다. 요나도 큰 물고기 뱃속에 3일 동안 있다가 나왔
다(욘 1:17). 마 12:39-40; 호 6:2 참조. (3) "십오 년"을 더 살게 해주시겠다고 하심
(6절 상반). 이렇게 그의 앞날 생명의 연수가 알려진 것이 광음을 아껴 선을 행할 그
에게는 필요하였다. (4)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시겠다고 하심(6절
하반).
내가 나를 위하여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 곧, 다윗에게 주
신 그의 언약(삼하 7:14-16) 때문에 그 때에 유다 민족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이다. 왕
하 19:34 해석 참조.
왕하 20:7
이사야가 가로되 무호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종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 히스기야의 죽을 병이 치료됨은 하나님의 기적으로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5-6)은 아무래도 이루어지고야 말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 이사야의 말씀은 기적
과 반대되는 순자연적 치료법을 지시하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무화과 반죽"은 무화
과를 이겨서 만든 덩어리(a mass consisting of compressed figs)를 가리킨다. 이것이
종처에 약이 된다는 학설도 있기는 하다(Celsii Hierob. III. p. 373). 설혹 그렇다고
해도 이 때에 하나님의 종처가 그렇게 완전히 나은 것은 하나님의 특수 간섭으로 된
것이다(대하 32:34). 이 사건은, 다음 귀절들(8-11)에 기록된 징조가 있은 뒤에 있었
을 것인데 저자가 앞당겨서 말한 것이다.
왕하 20:8
무슨 징조가 있나이까 - 히스기야는 자기 병이 기적적으로 낫게 될 징조를 구하였
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권능을 의심해서 그렇게 청구한 것이 아니고 자기의 신앙을
더욱 견고케 하려는 것이었다. 그의 부친 아하스는 징조를 구하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였으나(사 7:10-12) 그는 자진하여 징조를 구하였다. 호기심(好奇心)이
나 불신앙의 고집으로 징조를 구함은 옳지 않지만, 신앙하는 자로서 더욱 그 신앙을
견고케 하려고 그리함은 정당한 것이다.
왕하 20:9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 이 말씀은
징조를 보여주시는 데 있어서 관대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하나님께
서는 특수한 일에 대하여 징조를 보여주시기를 원하신다. 히스기야 시대에는 해 그림
자에 의하여 시간을 밝혔는데, 그것을 표시하는 기계를 가리켜 "일영표"(* )
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런 기계를 바벧론에서 사용했던 사실이 확인된 것으로 보아(He
rodotus, II, p. 109), 일찌기 아하스왕이 거기서 수입하였으리라고 추측된다. 고대인
들이 여러가지 종류의 일영표(日影表)를 제조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Martini, Abhand
iung von den Sonnenuhren der Alten, LPZ. 1777).
왕하 20:11
해 그림자로 십도를 물러가게 하셨더라 - 이 때에 해의 그림자가 "10도"를 물러간
것은 자연 법칙을 초월한 것이다. 이 현상은 광선의 굴절(屈折)이 기적적으로 변동되
어 이루어졌는지, 혹은 하나님의 특수 간섭으로 일어난 지진으로 이루어졌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어쨌든 그것은 이사야의 기도에 의한 하나님의 간섭으로 되어진 기적이
었다.
왕하 20:12,13
바벧론 왕이 사신을 유다에 보낸 이유는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여호와의 기적으로
고침 받았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이 때에 히스기야가 마땅히 그들에게 여호와를 증거
했어야 할 것인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도리어 유다의 보물들을 자랑하며 그들에게
모두 보여주었다. "부로닥발라단"은 "므로닥발라단"이란 이름(사 39:1)을 가리킨다.
이 두 이름의 첫자 "부"와 "므"는 비슷한 소리를 내는 것이니 큰 차이 없는 외래어 발
음이라고 본다.
병들었다 함을 듣고(12절 중간) - 이것은 병들었다가 기적으로 나았다는 소식을 들
었다는 것을 간단히 말한 것이다. "그의 내탕고"란 말(* )은 그의 재물 창
고들을 의미한다.
왕하 20:14,15
선지자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세 가지 의문, 곧 "무슨"(* ), "어디서"(*
), "무엇"(* )이란 말로 자세히 캐물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대언자 격(代言者
格)으로 왕 앞에서도 두려움없이 권위 있게 대질(對質)하는 심사였다. 이에 대하여 히
스기야도 사실대로 답변하였다. 그의 말에 아무런 변명이 없는 것은 그의 진실성을 보
여준다.
왕하 20:16-18
이사야는 히스기야의 죄악 때문에 유다에 임할 벌이 무엇임을 지적한다. (1) 왕궁
의 모든 보물들이 바벧론으로 옮김이 되리라고 함(17절). 이 예언이 이 때로부터 100
년 이내에 성취되었다. 왕하 24:13 참조. (2) 히스기야의 자손이 바벧론으로 사로잡혀
가리라고 함(18절). 이 예언과 같이 바벧론 왕 느부갓네살 대에 유다 왕족이 많이 바
벧론으로 사로잡혀 갔다(왕하 24:15, 25:6-7). 단 1:3-7 참조.
유다에 임할 이 무서운 벌이 히스기야의 죄 때문에만 임한다면 그것이 너무 과중한
벌이라고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왕들의 죄와도 관련되었다. 예를 들면
므낫세왕의 죄도 유다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왕하 21:10-16, 23:26-27, 24:3-4).
왕하 20:19
만일 나의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 "태평"이
라는 말(* )은 전쟁 없는 평안을 가리키고, "진실"이란 말(* )은 하나님
께서 그 약속하신 은총(왕하 19:32-34, 20:6)을 그대로 이루어 주심을 가리킨다(Deli-
tzsch). 히스기야는 이 두가지("태평과 진실")가 자기의 사는 날 동안 계속되는 한,
이사야의 예언은 선하다는 것이다. 그의 이 말은 개인주의나 이기주의로 표현된 것일
까? (Seventh-day Adventist Commentary, Volume 2, 1954, p. 968). 그런 것이 아니
다. 히스기야의 이 말은, 하나님의 예언이 그 약속 내용대로(6절) 될 것이니만큼 그 말씀 자체가 선하다는 뜻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이해 관계나 그 자손들의 이해 관계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
왕하 20:20
유다 왕 역대지략 - 왕상 14:19에 있는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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