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9:1-3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
름병을 손에 가지고...예후를 찾아...그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
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아엘 왕을 삼노라 하였느니라 하고 - 엘리사는 "예후"에게
기름을 붓는 일을 실행함에 있어서 노쇠한 자기보다 민활한 청년을 적임자로 생각하였
다. 그 이유는 이제 아합의 집을 멸망시킬 혁명의 때는 왔고, 예후에게 기름을 붓는
일은 화급히 실행되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때마침 이스라엘왕 "요람"(여호람)은 아람
왕 하사엘과 전쟁하다가 부상 당하여 이스라엘에 돌아와 치료 중이었고(14 하반-16),
그 전쟁에 사령관인 예후는 일선(길르앗 라못)에 남아 있었다. 기회가 기회이니만큼
예후가 시급히 왕권을 잡아야 될 것이었다. 이와 같은 거사(擧事)는 혁명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위적(人爲的)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다. 엘리사는 그 스
승 엘리야를 계승하여 예후에게 기름 붓는 일을 실현시켰다. 왕상 19:16 참조.구약 시
대는 신약 시대와 달라서 선지자가 이스라엘 정권의 할 일에 대하여 직접 간여하여 그
방향과 진로(進路)를 제시하였던 것이다.
"길르앗 라못"은 그 때에 이스라엘 군대가 아람 왕 하사엘과 전쟁하면서 주둔했던
곳이다. "그 형제"란 말(2절 하반)은 전우(戰友)들을 말함이고, "골방"이란 말(*
)은 '방 안에 방'(chamber within chamber)이라는 뜻인데 가장 깊은 방을
가리킨다. 이렇게 밀실(密室)에서 기름을 부으라고 한 이유는 그 기름을 붓는 "소년
선지자"의 권위 문제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의혹거리가 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예후에게 기름 부을 사명을 받은 그 "소년 선지자"는 엘리사의 하라는 대로 수
종드는 것뿐이었다. 그러니만큼 그는 예후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는 접촉을 피하고 예
후에게 할 일만 하고 급히 퇴장하였다(10절 끝). 주님의 종들은 이렇게 처신해야 될
것이다. 그들은 자기의 사명만 다할 뿐이고 자율적(自律的)으로 모든 문제되는 일들을
맡아 감당할 듯이 자신을 가지면 안된다. 그 이유는 권위(權威)는 주님께만 있고 자기
들 자신에게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들도 주님만 알아주시는 은밀한 가운데서 맡은
사명을 실행한 것으로 끝내고 자신에게 대하여 그 이상 아무런 능력의 여유를 느끼지
않아야 된다.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치 말지니라(3절 끝) - 소년 선지자를 보내는 엘리사의
이와 같은 부탁은, 그로 하여금 그 기회에 맡은 사명 이외의 다른 일에는 일체 접촉하
지 않도록 당부한 것이다.
왕하 9:4-10
엘리사의 제자는 그 지시대로 어김없이 실행했다. 다만 7-10절의 예언은, 엘리사가
지시한 내용(3절) 이상으로 첨부한 말씀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 말씀도 본래는 엘리
야의 예언이다(왕상 21:21-23). 그가 이 예언을 엘리사에게서 들은 그대로 증거하였을
것이다. 그레이(John Gray)는 이 말씀(7-10)이 그 "소년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편집자(소위 신명기사상의 학파에 속한 편집자)가 첨부한 것(Deuteronomic
Expansion)이라고 한다(I & II Kings, 1963, p. 487). 그러나 이 학설은 하나의 추측
에 불과하다.
매인 자나 놓인 자나(8절 중간) - 이 말은 "종과 자유인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 하며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게 할지
라(9절 하반) - "여로보암의 집"의 멸망에 대하여 왕상 14:10에 예언되었는데 그대로
성취되었고(왕상 15:29), "바아사의 집"의 멸망에 대하여는 왕상 16:3-4에 예언되었는
데 역시 그대고 이루어졌다(왕상 16:11).
문을 열고 도망하니라(10절 끝) - 소년 선지자는 그 스승 엘리사의 지시대로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끝까지 순종하였다.
왕하 9:11
그 미친 자가 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더뇨 - 예후의 전우(戰友)들, 곧 요람왕의
신하들은 어찌하여 "선지자의 생도"를 가리켜 "미친 자"(* )라고 하였을까 ?
그들은 선지자의 예언 성취를 이해하지 못하므로 그렇게 선지자의 권위를 몰랐던 것
같다. 언제나 불신앙의 무리는 거룩한 일을 올바로 취급할 지식이 없기 때문에 망령된
말도 거침없이 한다. 렘 29:26 참조. 예수님도 불신앙에 속한 자들에게서 미쳤다는 말
을 들으셨고(요 10:20), 사도 바울도 그런 말을 들었다(행 26:24).
대답하되 그대들이 그 사람과 그 말한 것을 알리라 - 예후의 대답은, 그들도 장차
그 젊은 선지자의 신분과 그의 말한 내용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왕하 9:12
당치 않은 말이라 - 이 문구의 히브리어(* )는 '거짓말'이라는 뜻이다. 곧,
그들은 예후의 말(11절 끝)이 사실과 맞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는다 하셨다 하
더라 - 예후의 이 말은 여호와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그 동료들에게 전한 것이다. 이
말씀은 6절 하반에 기록된 선지자의 말씀의 인용이다.
왕하 9:13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취하여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가로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 - 예후의 동료들은 그 소년 선지자를 "미친 자"라고 조
롱하던 처지였다(11절). 그런데 예후에게 믿음을 주신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들
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예후를 "왕"으로 추대한 것이다. 그들이 저희 옷을 "예후의
밑에 깐"것은 그를 왕으로 높이는 행위이다. 마 21:8 참조. 이것을 보면 선지자를 미
쳤다고하던 자들도 하나님의 감화만 받으면 즉시 변화하여 새 사람으로 출발 할 수 있
다.
왕하 9:14,15
이 귀절들은 예후의 혁명 시기가 적당한 때였음을 알려준다. 그 때는 이스라엘 왕
이 부상하여 후방에 돌아와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필요
한 일을 하게 하실 때에는 적당한 기회를 주시는 경우가 많다.
왕하 9:17-20
예후는 이스라엘 왕 요람을 치려고 진군(진군)하였다. 이스라엘의 파숫군의 보고를
받은 왕이 예후에게 두 차례나 군병을 보냈지만, 그들이 모두 예후에게 포로되었다.
내 뒤로 돌이키라(18절 중간) - 곧, 예후가 왕의 사신에게 자기를 따르라고 하는 말
이다.
그 병거 모든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의 모든 것 같이 미치게 모나이다(20절 하반) -
예후의 성격은 열광적(熱狂的)이었으니만큼 이 때의 그 군사 행동도 그러하였다. 이것
은 그의 혁명 운동이 그렇게 광적(狂的)으로 잔인한 것이었음을 암시해준다. 그의 예
언(7-10)과 같이 아합 왕실(王室)을 심판하심에 있어서 이런 인물을 그 주동자로 세우
신 것이다. 여기 하나님의 주권적(主權的)인 역사가 있으나 그 역사가 인간의 자유(예
후의 자유)와 그의 책임을 제외시키는 것은 아니다. 예후의 혁명에 개재되어 있는 죄
악은 예후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이었다.
왕하 9:21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그 병거를 타고 가서 예후를 맞을새
- "요람"과 "아하시야"가 예후를 맞은 것은, 그와 접전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아람과
싸우던 그에게서 일선의 전황을 들으려 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대항해 보
지도 못하고 죽임이 된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쉽게 죽임이 된 것은 아합 왕실을 심판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특별히 "나봇의 토지"에서 이스라엘 왕 요람
이 죽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예언 성취를 위한 하나님의 간섭으로 이루어진 것
이다. 왕상 21:19 참조.
왕하 9:22
요람이 예후를 보고 가로되 예후야 평안이냐 - "요람"의 물음은 길르앗 라못에 있
는 이스라엘 군대의 실정에 대한 것이었다.
네 어미 이세벧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 "이세벧의 음
행"은 그 여자의 우상주의를 가리키고(왕하 16:31-33, 18:19, 19:2; 게 2:20). "술수"
는 그 여자가 추종한 거짓 선지자들의 속이는 말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이런
술수를 좇지 못하도록 금지하셨다(출 22:18; 레 19:26,31, 20:6,27 ; 신 18:10-12; 대
상 10:13; 사 8:19).
왕하 9:24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기어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저가 병가 가운데 엎
드러진지라 - 엘리야의 예언(왕상 19:7)대로 "예후"가 "요람"을 죽였고, 또 그 시체가
나봇의 토지에 던짐이 되었다(왕상 21:19). 이렇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그
내용으로 하는 진실 그 자체이다.
왕하 9:27,28
이 때에 "아하시야"도 예후의 군사들에 의해 죽임이 되었다. 악인과 짝하는 자는
그 악인이 당하는 환난에 동참하게 된다. 그러므로 시 1:1 에 말하기를, "복 있는 사
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한다.
왕하 9:30
예후가 이스르엘에 이르니 이세벧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 이세벧의
죽음의 위험이 임한 때에도 심령을 반성해 보지는 않고 외모만 단장하였다. 심판이 사
람들의 외모를 따라 변동되는 것은 아니다.
왕하 9:31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 "시므리"는 바아사 왕실을 반역하여 멸절시킨 후 7일
동안 왕 노릇했던 자이다(왕상 16:8-15). 이세벧이 예후를 시므리와 같은 자라고 한
것은 극단적으로 그를 모욕하는 말이다.
왕하 9:32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 예후는 그 때의 민심이 거의 아합 왕실에서 떠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포섭하는 데 별로 힘들
지 않게 이루었다. 왕하 9:15 하반, 18-19 참조. 이세벧을 죽이려는 이 마당에서도 그
는 자기 편으로 사람들을 이끌려고 한 것이다. 이것은 인적 자원(人的資源)을 최대 한
도로 활용하기 원하는 그의 지혜로운 처사이다.
두어 내시가 예후를 내다보는지라 - "내시"(* = 사리심)는 왕궁의 궁녀
(宮女)들을 관할하는 환관(宦官)이다. 그들까지도 아합 왕실을 배반하고 예후의 혁명에 가담하였다.
왕하 9:34
저는 왕의 딸이니라 - 이세벧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이다(왕상 16:31).
왕하 9:35-37
그 두골과 발과 손바닥 외에는 찾지 못한지라(35절) - 이세벧의 몸둥이는 개들이
물고 가서 먹었기 때문에 찾을 수 없었다. 이것도 역시 "엘리야"의 예언 성취이다. 왕상 21:23 참조. 예후 자신이 이 예언을 기억하고 설명적으로 인용하였다(36-37). 그는 이렇게 예언 성취를 인식하면서 혁명을 지도하였다.
하나님은 악인도 특별한 일에 사용하신다. 예후는 악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은 아합의 가문을 심판하시는 일(왕하 10:30-31)에 그를 사용하셨다. 잠 16:4에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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