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3:1-3
"여호람"은 그 부모의 우상주의를 어느 정도 내버렸다. 그것은 죄악을 제거하는 개
혁 운동이었으니 소망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가 이 개혁 운동을 끝까지 관철하지 못
하였으니만큼 그 일에 열매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곧, 그 자신도 아합 왕가(王家)가
받을 화(禍)에서 이탈되지 못한 것이다. 9:24 참조. 그는, 죤 번연(John Bunyan)의 글
에 표현된 "두 길 가는 자"(Mr. facing-bothways)와 같아서 죄와 타협한 자였다.
왕하 3:4,5
"여호람"이란 이름이 왕하 8:16이후부터는 "요람"으로 불리웠는데 이것은 "여호람"
을 줄인 이름이다.
"모압 왕 메사"의 이름(* )은 모압 비문(Moabite Stone)에도 나와 있으니,
이 부분 기사가 역사적 사실인 것이 이것으로도 증명된다. 모압 비문은 1868년 8월 19
일에 클라인 목사(Rev. F. Klein)가 모압의 디본(Dibon)이란 옛도시의 폐허에서 발견
한 것이다. 메사왕은 그모스의 아들로서 30년 동안 모압을 다스렸다.
"양을 치는 자"란 말(* )은 양을 '소유한 자'라는 뜻도 가진다. 모압 땅에는
목장이 많았으니 그 왕이 많은 양들을 소유했을 것이다. 모압이 이스라엘에게 복속하
기는 다윗 시대부터 된 일인데(삼하 8:2) 죄악이 가득 찬 아합왕과 아하시야의 시대에
그들이 이스라엘을 배반하기 시작하였다. 왕하 1:1 해석 참조.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을 벌하실 때에 그 이웃의 적대 행위를 방편으로 사용하시기도 한다. 잠 16:7 참조.
왕하 3:6,7
여호람은 모압을 치려고 이스라엘 군대를 동원하기 시작하였다. 여기 이른 바 "점
고하였다"는 말(* )은 사열(査閱), 혹은 검열하였다는 뜻이다. 여호람은 남쪽 나
라 유다의 군사 원조까지 얻도록 하였다. 이 때에 유다 왕 여호사밧이 이스라엘과 합
작함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았다(대하 19:2).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이 전쟁에 있어서도 여호사밧을 도와주셨다. 14절 하반 참조. 이 일에도 하나님의 오
래 참으시는 덕이 계시되었다.
왕하 3:8-12
에돔의 광야길(8절 하반) - 이 "길"은 사해 남쪽으로 돌아 에돔의 북쪽 산을 통과
해서 남쪽으로 모압에 들어가는 길이었다. 이 길에는 골짜기를 따라 시냇물이 흐른다.
그것이 행군(行軍)에 매주 좋은 조건으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군대가
그 길을 택하여 진행하던 중 이렛만에 물이 없어 곤란을 당하게 되었다. 이렇게 사람
의 계획대로 일이 되어지지 않을 때에 여호람은 실망하였으나(10절), 경건한 여호사밧
은 전과 같이(왕상 22:5)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아보기 원하였다(11절).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그에게로 내려가니라(12절 하반) -
그들이 엘리사를 부르지 않고 친히 찾아감은 이 때에 그들이 당했던 곤란 때문에 겸손
해진 증표이다. 그 때에 에돔 왕은 유다에 예속되어 있었으니만큼(삼하 8:13-14) 유다
왕 여호사밧과 동행하였다.
왕하 3:13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
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 이것은 여호람과 그의 부모의
우상주의를 꾸짖는 엘리사의 담대한 말이다. 하나님을 배경하고 말하는 하나님의 대언
자는 왕의 권세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다.
이스라엘 왕이 저에게 이르되...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
려 하시나이다 - 이것은 여호람의 겸손히 애걸하는 말이다. 그는, 자기만 아니라 다른
두 왕(에돔 왕과 유다 왕)도 함께 사지(死地)에 떨어졌다고 하면서 엘리사의 도움을
청한 것이다. 어떤 때에는 악인도 살기 위하여 의인에게 애걸하는 태도를 취한다(Mat-
thew Henry).
왕하 3:14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
으리이다 - 이 말도 매우 날카로운 책망이다. 이런 책망이 아니고는 타협주의자요 권
세 있고 교만한 여호람의 마음을 찌를 방법이 없었다. 선지자는 상대방이 듣든지 말든
지 그에게 자극성있는 말을 한 것이다. 잠 25:11-12, 27:5 참조. 이것이 파숫군의 책
임이다(겔 2:7). 여기 이른 바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라 함은 그의 선한 일
을 알아 준다는 뜻이다. 여호사밧에게 잘못도 있었지만, 그가 산당 외에 다른 우상들
을 철폐한 선한 일을 행하기도 하였다(왕상 22:43). 하나님께서는 신자의 현재의 과오
때문에 과거에 그의 잘한 일까지 무시하시자 않으신다. 실상 이 때에 여호사밧이 악한
왕 여호람을 돕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합당치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도 그의
행한 선을 보아주시며 그를 아껴 주신다. 대하 19:1-3 참조.
왕하 3:15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
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 - 엘리사가 이 때에 "거문고 타는 자"를 불러 거
문고를 타게 한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 (1) 일설에, 이것은 엘리사가 입신 상태(ecs
tasy)에 들어가기 위한 방법인데 이런 입신 방법은 이스라엘에서만 아니라 아라비아에
서도 사람들이 사용하였다고 한다(T.H. Robinson, Prophecy and the Prophets in Anci
ent Israel, New York, 1923, p. 32; W. Robertson Smith, The Prophets of Israel,
London, 1897, p. 392; The Interpreter's Bible III. 1939, p.200). 그러나 이 해석
은 옳지 않다. 성경의 예언자들은 입신을 구하지 않았다. 또 그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방법은, 자주 의식(자주의식) 없는 상황에서 실현된다는 입신과 다르다. 선지지
달은 자주 의식이 분명한 가운데 계시를 받았던 것이다(H. Bavinck). (2) 카펜터(Car-
pent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때에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 여호람을 책망하느라고
매우 흥분되었으니만큼, 이제 그의 마음이 가라앉아 앉정되어야 하나님의 고요한 감동
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 때에 그에게는 거룩한 음악의 도움이 필요하였다고 한
다(C. Van Gelderen, Korte Verklaring Der Heilige Schrift, Koningen II. 1956, pp.
383-384). 성령의 은혜를 받으려는 자는 그 마음이 하나님께 향하도록 준비되어야 한
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하여 먼저 거문고 소리를 듣기 원한 것처럼, 신
약 시대에 기독 신자들이 모여서 예배하기 전에 하나님을 찬송하며 심령의 자세를 준
비하는 것은 성경적이다. 그러나 이렇게 준비하는 행위도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해야 된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좋은 일도 죄됨을 면치 못한다(롬 14:23).
왕하 3:16-17
이 때에 엘리사가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 지시한 예언은, (1) "골짜기에 개천을 많
이 파라"고 함(16절). (2) 비가 온 일도 없이 그 개천에 "물이 가득"하게 되리라고 함
(17절). (3) "모압 사람"들이 패전하게 되리라는 것이다(18-19).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
희 육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17절) - 곧, 그들의 진지(陣地)와 그 근방에는
비가 오지 않아도 그 물이 골짜기에 가득하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과연 얼마 후에 이
예언이 성취되었는데(20절), 그것은 멀리 에돔 동쪽 산악 지대에 폭우(暴雨)가 많이
내려 그 물이 이 골짜기로 흘러 왔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위하여 이렇게 먼
거리의 기상(氣象)도 주장하신 것이다.
왕하 3:18,19
이 부분에는 모압 사람들의 패전과 이스라엘의 승리에 대하여 자세한 예언이 기록
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1) 모압의 모든 아름다운 성을 정복할 것이라고 함. (2)
모압의 좋은 나무들을 벧 것이라고 함. (3) 모압의 모든 샘을 메우리라고 함. (4) 돌
로 모압의 모든 좋은 밭을 헐리라는 것 등이다(19절). 얼마 후에 이런 자세한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은 놀랄 만하다. 24-25절 참조. 성경은 어느 부분이든지 하나님의 말
씀이 그대로 이루어짐을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진실성을 증거한다.
왕하 3:20-25
이 때에 모압의 패전 원인은 그들의 착각 때문이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실패케
하시는 때에는 그들의 판단력도 어두워지는 법이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구원하시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떤 처지에서든지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볼 수
있다.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25절 상반) - 엘리사의 예언에는(19
절 하반)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라"고 하였으니, 이 차이점은 다음과 같이 해결된
다. 곧, "밭을 헐리라"는 말(* )은 밭을 못쓰게 만든다는 뜻이다. 밭에 돌을
많이 던져 가득히 채우면 그 밭은 못쓰게 된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표현이 실질에
있어서는 서로 같다.
"기르하라셋"(* )은 (25절하반) 그 때에 모압의 수도(首都)였다(사
16:7; 렘 48:31,36). 그것이 오늘날까지 케락(Kerak)이란 이름으로 남아 있다.
왕하 3:26,27
모압 왕은 전세(戰勢)가 저희 편에 불리한 줄 알고 최후 발악으로 포위망을 뚫고
비교적 허약한 에돔 왕 측으로 돌격해 오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일이 여의(如意)치 못하므로 그는 자기의 "맏아들"을 취하여 성 위에서 "번제"를 드렸다(27절 상반). 이것은 그모스 신(神)에게(혹은 몰렉神에게) 제사하는 가증한 행위이다. 레 18:21,20:2-3 참조.
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이 임하매(27절 하반) - 여기 이른 바 "크게 통분함"이란 말(* )은 "큰 진노"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의미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증한 일을 행하여 범죄한 자는 모압 왕인데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진조가 임했을까? 여기에 난제가 있다. 그러나 이 난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해석된다. (1) 고등 비평가 스네이드(N.H.Snaith)는, 여기 "크게 통분함"(큰 진노)이란 말이 모압 신(神) 그모스의 진조를 가리킨다고 하며, 모압 지방에서는 모압 신이 그 땅을 지켜주는 효과를 나타냈다고 한다(The Interpreter's Bible III. 1954, p. 203). 그러나 이런 해석은 미신(迷信)을 진리와 동일시하는 억설이다.(2) 또 다른 학설에 의하면, 모압 왕이 자기의 맏아들을 그의 신(神)께 번제로 드린 사건 후에 이스라엘이 어떤 과오를 범한 일이 있어서 그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결국 엘리사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에게 유리하였던 전세가 불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학설은, 저자가 이스라엘의 실수에 대하여는
침묵하였다고 한다. 이 때에 이스라엘의 패전한 기록은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모압 비문(Moabite Stone)에도 나타나 있다(The Westminster Dictionary of Bible, 1944. pp.
403-404). (3) 다른 설에 의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에, 자기들이 모압 수도(首
都)를 포위하였으므로 모압 왕이 저렇게 악독한 죄를 범하였으니만큼 이스라엘에 당장 여호와의 진노가 내려 무서운 재앙을 당할 것 같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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