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20:1-4
"벤하닷"(* )은 '하다드 아람(神)의 아들'이란 뜻인데 아람왕의 일반
적 존호(尊號)이고 왕 개인의 서명이 아니다. 칼칼 조각문(Qarqar inscription)이 이
사실을 알려준다(John Gray, 1 and 2 Kings, a Commentary, 1964, p. 374).
왕 삼십 이인. - 이 문구에 대하여 스타데(Stade)란 학자는 모순성을 느껴 말하기
를, 이것은 32 병거의 장관에 대한(22:31) 말씀을 착각한 기록이라고 하였다
(Montgomery,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the Books of Kings, 1951, p.
320). 그러나 옛날 다른 지역에서처럼 아람 영토 안에도 많은 도시 국가들이 있어서
그 도시마다 왕들이 있었다. 아람 왕 에살하돈(Esarhadon)때에는 왕 22 명이 있었고,
아술바니발(Ashurbanibal) 때에도 역시 그만한 수효의 왕들이 있었다. 이들은 아람 왕
에게 복속한 자들이었다. 아람 왕은 그들과 함께 큰 군대를 거느리고 이스라엘을 침약
하여 왔다. 이 때에 아합와은 그의 나약한 성품을 그대로 드러냈으니, 벤하닷의 요구
(3절)를 다 응해주는 굴욕적 태도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4절). 이 점에 있어서 "아
합"은 마귀의 요구대로 순응하는 약한 인간성과 같다. 5절 이하에서는 나약한 인간 아
합의 처사를 몇 가지로 지적한다. 나약은 부패성의 일면이다.
왕상 20:5-7
아합의 나약한 순응을 지내 본 벤하닷은 아합의 집 뿐 아니라 그 신복의 집도 약
탈하겠다고 한다. 인류에게 대한 마귀의 역사도 이와같다. 마귀에게 순응하는 자는 점
점 더 마귀의 손아귀에 깊이 빠지게 된다. 아합은 이 때에 스스로 서지 못하고 모든
나약한 자들의 표본 격으로 약하게 처사하였다. 그는 자기의 의지로 당연히 거절해야
할 문제 앞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던 것이다(7-8). 누구든지 하나님을 의뢰 하지
않을 때에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약자가 된다.
왕상 20:9
이 귀절에 기록된 아합의 말은 또 다시 그의 나약한 성품을 드러낸다. 아합은 이
스라엘(神政國)의 왕이면서 이방의 우상 섬기는 왕을 "내주 왕"(* )이
라고 하며 비굴한 태도를 취한 것이다. "이것"(* )이란 것은 벤하닷의 둘째 번
요구, 곧 아합의 왕궁만 아니라 그 신하들의 저택들까지 수색하여 그 좋은 것들을 약
탈하겠다는 것이다(6절). 이것은 벤하닷의 첫째 요구(3절)보다 더 가혹한 것이다. 아
합은 단호히 거절해야 될 일에 있어서 도리어 유약하게 말하기를, "내가 할 수 없나이
다"(* )라고 하였다. 곧, 자기의 힘으로 실행할 수 없다는 뜻
이다. 왜 그는 의지적(意志的)으로 하지 않겠다고 거절하지 못하였던가?
왕상 20:10
아람 왕 벤하닷의 언사는 이 때에 매우 교만하게 나왔다.
사마리아의 부스러진 것이 나를 좇는 백성의 무리의 손에 채우기에 족할 것 같으
면(10절 중간). - 이것은 이스라엘의 수도(首都) 사마리아의 무너진 티끌로써도 무수
한 아람 군대의 손을 채울 수 없다는 강력한 말이다. 이것은 자기 군인들의 수효를 자
랑하는 교만이다. 그는 "신들"의 이름으로 맹세하기까지 하면서 자기의 말을 보장하였
다. 이것은 극도의 교만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
이"이다(잠 16:18). 그는 마침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벌을 받았다.
13,19-21, 29-30 참조. 아합왕은 나약하여 모든 죄와 타협했으므로 그 어리석음 때문
에 후에 벌을 받았거니와, 벤하닷은 그 교만 때문에 당장 벌을 받게 되었다. 잠 26:12
에 말하기를,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
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고 하였다.
왕상 20:11
갑옷 입는 자가 갑옷 벗는 자 같이 자랑치 못할 것이라. - "갑옷 입는 자"는 아직
전쟁할 처지에 있는 자이고, "갑옷 벗는 자"는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오는 자이다. 아
람 왕은 아직 갑옷 입는 자로서 갑옷 벗는 자(승리자)처럼 교만하게 자랑하므로 아합
은 이 말로써 은근히 그를 비웃은 것이다.
왕상 20:12
벤하닷이 왕들과 장막에서 마시다가 이 말을 듣고 그 신복에게 이르되 너희는 진
을 베풀라 하매 곧 성을 향하여 진을 베푸니라. - 여기 이른 바 "마시다가"란 말(*
)은 '술을 마시던 중에 있었다.'는 뜻이다. 16절 참조. 그들이 술에 취하여 전쟁을
시작하였으니 그 작전이 옳게 될 리는 만무하였다. 우리의 영전(靈戰)에 있어서도 마
찬가지이다. 신자로서 이 세상 오락을 따르는 자들은 언제나 실패한다. 딤전 5:6에 말
하기를, "일락을 사랑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하였다. "진을 베풀라"(*
)는 것은 작전의 태세를 갖추라는 뜻이다.
왕상 20:13
아합이 악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직도 참으시고 그로 하여금 교만한
아람 왕을 이길 수 있게 해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하나님은 어떤 죄보다도 교만한 죄
를 더욱 미워하신다(잠 3:34 상반). 그가 아람으로 패전케 하실 이유가 아람 왕의 교
만 때문이라는 것은 선지자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 암시한다. 선지자가 말한 대로 (1)
"이 큰 무리를 보느냐"라고 한 말씀(13절 중간)은 확실히 아람 왕의 자랑하는 큰 군대
를 문제시할 것 없다는 것이다. (2)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고 한 말씀(13절
끝)은 아람 왕의 교만한 말, 곧 "신들이 내게 벌한다"고 한 말에 도전하는 듯하다. 다
시 말하면, 아람왕이 군인의 숫자를 자랑하여으며 또 그의 믿는 "신들"을 자랑하였는
데(10절), 은밀한 가운데 계신 하나님은 그의 교만한 말을 다 들으시고 이제 선지자를
아합에게 보내셔서 이스라엘의 승리를 보장해 주신다는 것이다.
왕상 20:14,15
작전 계획을 묻는 아합의 말에 선지자의 대답은 주로 두 가지를 밝혀준다. 곧,
(1) 전쟁에 나갈 자들은 "방백의 소년들"이라는 것(14절 상반). 여기 "소년들"이란 말
(* )은 '청년들'(young men)이란 뜻이다. 이들은 지방 장관들("방백들")이
부리는 경호대원들인데 그 총수가 232인 정도이다. 이 밖에 다른 사람들 7000명이 이
들과 합세하여 군대를 편성하였으나 아람 군대(10절)에 비하면 극히 미약하였다. (2)
이번 전쟁에서는 아합이 먼저 공격을 시작해야 된다는 것(14절 하반). 이것이야 말로
선제 공격(先制攻擊)의 병법이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에는 언제나 급속히 순종함이
승리의 비결이다. 그런 일에 있어서 태만하고 또 소극적 태도를 취함은 불신앙이다.
왕상 20:16-21
아람 왕은 패전하고 이스라엘은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쟁에 있어서 아람 왕의 실
패의 원인은, 그런 비상시에 그가 안일 방종하였던 사실(16절 하반)과 또 교만하였던
사실(18절)이다. 이때에 이스라엘은 선지자의 말대로 순종하여 적군보다 먼저 나가(17
절 상반)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비록 부족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
는 때에는 그의 도와주심을 받게 된다.
각각 적군을 쳐 죽이매(20절 상반). - 이 문구(* )는 "그
들이 각각 자기의 사람을 치매"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곧, 그들이 각각 자기의 적수를
쳤다는 의미이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소수였지만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앞에 당
하는 적군을 공격함에 성공한 결과 아람의 많은 군인들은 질겁하여 도망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수의 정병(精兵)이 각기 책임을 다하면 무수한 적병도 무너진다. 하나님의
교회도 이렇다. 곧, 소수의 교인들이라도 그들이 각기 책임을 사수(死守)하게 되면 무
수한 마귀의 군대가 도만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친히 훈련시키신 열 두 사람이 각기
책임을 다하였으므로 온 세계에 복음이 퍼졌다.
이스라엘 왕이 나가서 말과 병거를 치고 또 아람 사람을 쳐서 크게 도륙하였더라
(21절). - 아합은 악한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아함의 악한 왕 벤하닷
을 치는 데 사용하셨다. 이런 의미에서 잠 16:4 하반에 말하기를,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였다.
왕상 20:22-27
이 부분에는 (1) 선지자가 이스라엘 왕더러 전쟁할 힘을 기르라고 경고한 말씀이
있도(22절), (2) 다른 한편 아람 왕의 신하들이 그왕에게 전쟁 준비를 하도록 권면한
말이 기록되었다(23-25). 그런데 이스라엘 왕 아합은 선지자의 말대로 실행하지 않았
으나(27절), 아람 왕은 그 신하들의 말대로 행하였다(25끝, 27끝).
왕상 20:29,30
이스라엘은 선지자의 말씀(22절)을 순종하지 않았는데 다만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서 승리한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독하는 아람 왕의 신
하들의 말 때문이었다. 그들의 말이 "저회의(이스라엘의) 신은 산의 신"이라고 하였으
니(23절),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이다. 천지 만물의 대주재(大主宰)를 하나의
산신(山神)이라고 한 것은 그를 멸시한 말이다. 하나님은 그 이름을 모독하는 자들을
급히 벌하신다. 사 48:11 참조. 그는 그의 말씀을 순종치 않은 아합을 시켜서라도 그
들을 벌하신 것이다. 아람의 패전 원인을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28 절의 말씀
이 그런 내용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해가 돌아오면(22절). - 이것은 다음 해의 봄철을 가리킨다. 그 때는 시기적으로
전쟁에 유리하였다고 한다.
저희의 신은 산의 신이므로(23절). - 아람 신(神) 아다드(Adad)는 산신으로 불렸
는데 (Langdon, Mythology of all Races, p. 39), 그들이 이런 미신 사상으로 이스라
엘의 여호와를 생각한 듯하다.
골방으로 들어가니라(30절 끝). - "골방"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
는 "골방 안에 골방"이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왕상 20:31-34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승전한 뒤에 아합왕의 잘못한 일을 지적한다. 그것은 그가
아람 왕 벤하닷을 놓아준 죄악이다. 아합은 자기의 나약한 성품 때문에 아람 왕의 계
교에 계속적으로 넘어간 것이다. (1) 아람 왕의 신하들이 굵은 베띠를 띠고 슬픈 모습
으로 이스라엘 왕(아합)에게 나아와 저희 왕의 살려달라는 청원을 전할 때에(31절) 아
합은 아람 왕을 가리켜 "나의 형제"라고 하면서 지나친 동정을 하였음(31-32). (2) 아
합은 벤하닷의 신복들의 아첨하는 말을 듣고 즉시 벤하닷을 불러내어 자기 병거에 태
웠음(33절). (3) 벤하닷이 거짓되이 화친조약을 청할 때에 아합은 지혜없이 쉽게 응종
하고 그를 놓아주었음(34절). 아합이 이와같이 행한 것은 하나님의 원수까지 동정한
그의 나약한 성품의 열매이다. 의(義)를 떠난 동정심은 모든 죄악과 야합하는 간악한
마음이다. 그러므로 나약은 포학과 마찬가지로 죄악을 먹고 마시는 악독한 성품이다.
왕상 20:35-40
이 부분에서는 아합이 아람 왕을 포로로 잡아가지 않고 놓아 준 것을 책망하기 위
하여 어떤 선지자가 취한 행동을 말해준다.
너는 나를 치라(35절 하반). - 선지자는 상처를 받아서 상이군인의 모습으로 아합
왕 앞에 나타나려고 "그 동무"에게 자기를 "치라"고 말하였다. 38-39 참조. 그의 이
명령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것이었다(36절). 그런데 그 동무가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사자에게 물려 죽었다. 이런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가 죽어 마
땅한 사실을 보여준다.
그 사람이 저를 치되 상하도록 친지라(37절). - 이 말씀을 보면, 주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 취급에 있어서 각오해야 될 중요한 행동 원리를 알 수 있다. 그것은 그
들이 인정을 돌아보지 말고 할 말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 선지자는 자기 자신이 상
하도록 매 맞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라면 그 매를 요청할 정도로 순종하였고, 그를
친 사람도 사정을 보지 않고 상처가 나도록 쳤다.
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그 눈을 가리워 변형하고 길 가에서 왕을 기다리다가(38
절). - 그가 이렇게 상이군인으로 위장한 목적은, 그 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합왕으로 하여금 양심적으로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사람이 선한 목적을 위하여
일시 자기 정체를 가리우는 것은 특수한 경우에 취할 수 있는 일이다.
네가 은 한 달란트를 내어야 하리라(39절 끝). "은 한 달란트"는 130 파운드 정도
의 무게이다. 그 시대에 가난한 자가 그런 중량의 은을 낼 수 없고 그 한평생 종노릇
함으로 배상(賠償)할 정도였다. 그 선지자는 이 말씀으로써 아합의 저지른 과오의 책
임을 추궁한 것이다. 즉 아합이 아람왕을 놓아준 죄책은 크다는 것이다. 42절 참조.
네가 스스호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40절 하반). 아합의 이같은 판
결은 그 자신이 아람 왕을 놓아준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이 된
셈이다. 그 선지자가 상이군인으로 위장(僞裝)한 목적이 아합으로 하여금 이와 같이
판단케 하려는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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