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18:1,2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 같은 사건을
진술한 대상 21:26-30에는 사무엘서보다 더 자세히 기록되었다. 그 말씀을 이 아래 해
석한다.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
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사자를 명하시매 저가
칼을 집에 꽂았더라(대상 21:26-27). - "화목제"를 드릴 때에는 "번제"도 함께 드린
다. 레 3:1-5 참조. 이것은 신자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해를 이루기 원하여 드리기도
하는 것이다(삿 21:4, 20:26). 이 때 다윗의 제사하는 목적도 그것이었다. "여호와께
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레 9:23-24; 대하 7:1 참조.
"불"은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하기도 하는데(히 12:29), 그것이 제물을 사르는 것은 하
나님께서 그 진노를 그 제물에게 쏟으시고 제사 드린 자와 화목케 되심을 의미한다.
이 때에 다윗이 여호와께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응답하심을 보고
거기서 제사를 드렸으니 옛적에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여호와의 장막과 번제단이 그
때에 기브온 산당에 있으나 다윗이 여호와의 사자의 칼을 두려워하여 감히 그 앞에 가
서 하나님께 묻지 못함이라(대상 21:28-30). - 다시 말하면 다윗이 이 때부터는 기브
온 산당에 가지 않고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제사드리기를 계속하였다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거기서 여호와의 응답을 보았으며(28절), 또한 거기 나타났던 여호
와의 사자의 칼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30절 상반).
왕상 18:3-6
오바댜는 크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3절 하반). - "오바댜"란 이름(*
)은 '여호와의 종'이라는 뜻이다. 그는 "크게 어호와를 경외하는 자"라고 하였으니
만큼 비범하게 여호와를 잘 믿은 자였다. 여기 "크게"란 말(* )은 '매우'(very
much)란 뜻이다. 경건에 대한 이와 같은 성경의 평가를 보면 성도들 중에는 불신 세력
과 직접 충돌하지 않고 은근하게 살면서(타협은 피하고) 하나님의 일을 참으로 돕는
자도 매우 잘 믿는 자로 인정된다.
굴에 숨기고(4절 하반). - 북쪽 이스라엘 나라의 갈멜산에는 석회굴이 많은데 약
1000개쯤 된다고 한다(J.A. Montgomery).
떡과 물을 먹였었더라(4절 끝). - 이세벧의 박해의 위협 아래 있었던 100명의 선
지자들이 매우 불행한 것 같았으나 실상은 그들의 피신 새활이 다행한 것이었다. 그들
은 그 기근이 극심한 때에 도바댜로 말미암아 왕궁으로부터 떡과 물의 공급을 받았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이 굴 숙에 고요히 거하면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복된 시간을 많이
가졌들 것이다.
왕상 18:8
가서 네 주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8절). - 이 말은 엘리야의 신
앙적 도전(挑戰)이다. 그는 아합을 만나라는 여호와의 말씀(1절)으로 인하여 담대하여
졌다. 그는 그를 잡아 죽이려는(10절) 아합에게 자기의 있는 곳을 알리기를 도리어 원
하였다.
왕상 18:10
내 주께서 사람을 보내어 당신을 찾지 아니한 족속이나 나라가 없었는데 저희가
말하기를 엘리야가 없다 하면 그 나라와 그 족속으로 당신을 보지 못하였다는 맹세를
하게 하였거늘. - 아합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외국에까지 수사망을 폈으나 그가 하나님
의 보호 아래 있는 엘리야를 찾지 못하였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지시와 인도를 따라서
이곳 저곳(어떤 때는 그릿 시냇가에, 또 어떤 때는 사르밧 땅에)에 머물렀을 뿐인데,
아합은 권세로써 그를 찾으려고 헛수고만 하였다. 하나님께서 핍박 받는 성도를 숨겨
주시는 일이 많다. 시 17:8,27:5,31:20,32:7 참조.
왕상 18:12-14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로 갈린다. (1) 오바댜는 그가 아합에게 엘리야의
있는 곳만 통고하고 그를 잡아주지 않는다면 그 자신이 아합에게 죽임이 된다는 것이
다. 그는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서 "여호와의 선지자"를 핍박자에게 잡
아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 때까지 이세벧이 죽이려는 선지자 "일백 인"을 숨
기고 "떡과 물"을 공급해 준다고 하였다(13절). (2) 그는 그 때까지 우상 숭배를 거절
하며 반대하는 선지자들을 숨겨두고 그들에게 떡과 물을 공급하고 있는데 만일 자기가
죽게 된다면 그 선지자들을 돕지 못하게 됴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엘리야의 있는
곳을 아합에게 고한 뒤에 하나님이 엘리야를 다른 곳으로 옮기신다면 자기는 틀림없이
죽임이 될 것이며, 따라서 건지자 100명의 생사 문제가 따른다는 것이다. 오바댜는 자
기의 생명보다도 100명의 선지자를 더 중요시한 것이다.
오바댜는 심히 악한 시대에 어디로 피하지도 않고 악을 행하는 왕궁에 있으면서
당당히 관직을 가지고 신앙을 지켰다. 성경은 그를 가리켜 "크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라고 하였다(3절). 그는 악의 근거지에서도 악과
타협하지 않고 악인들과 마찰을 피해가면서 지혜롭게 처신하였다. 그는 자기의 생명을
하나님께 바치고 여호와의 선지자들에게 식량을 공급했다. 그 일이 발각되는 날에는
그는 죽임이 될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것을 보면,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자들은 이
세상 표면에 나타난 자들만 아니라 세상이 모르는 가운데도 일사(一死)를 각오하고 하
나님을 위해 충성하는 자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나만 남았다"는 엘리야의
말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자 7000인이
아직 남아있다고 말씀하셨다(왕상 19:18).
왕상 18:15,16
엘리야가 이르되 내가 모시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오
늘날 아합에게 보이리라(15절). - 엘리야의 이 맹세 때문에 오바댜는 아합왕에게 엘리
야의 거처를 알게 하였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 )은 '모든 피
조세계(被造世界)의 세력들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이니, 천사들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 이스라엘의 군대뿐 아니라 자연계의 모든 능력들을 주관하시는 자라는 말씀이
다(C. Van Gelderen, Korte Verklaring Der Helige Schrift, De Boeken Der Koningen,
1956,pp. 173-174). 엘리야가 하나님의 이와 같은 명칭으로 맹세할 때에 오바댜는 당
장 그로 말미암아(엘리야로 말미암아) 권능이 나타날 것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그
러므로 오바댜는 지체하지 않고 아합에게로 찾아간 것이다.
왕상 18:17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 곧,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꾸짖기 때문에
아합을 위시하여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괴로움을 당하였다. 계 11:10
참조.
왕상 18:18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
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 엘리야의 이같은
답변은 진리에 입각하여 담대하게 아합과 맞선 말이다. 그는 이스라엘에 한재(旱災)를
초래한 원인이 아합의 우상주의 죄악임을 정면으로 지적하였다. 그가 이렇게 담대하여
진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셔서 능력으로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권위(權威)를 배경하고 외치는 엘리야에게 그 포악한 아합도 감히 손을 대지 못하였
다.
왕상 18:19
온 이스라엘과 이세벧의 상에서 목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 오십 인과 아세라의 선
지자 사백 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 - "만군의 여호와"를 모신 선
지자 엘리야는 그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수많은 우상주의자들과 대결할 것을 제안하
였다. 이것은 "바알의 선지자"들의 거짓됨을 드러내기 위한 그의 신앙적 도전(挑戰)이
다.
왕상 18:20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보내어 선지자들을 갈멜산으로 모으니라.
- 아합은 엘리야의 책망하는 말을 듣고 그의 부탁대로 바알 선지자들을 갈멜산으로 모
이도록 명령을 내렸다. 우선 이것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되어진 일이다. 엘리야를 만나
기만 하면 죽이려던 아합이 어떻게 이렇게 부드러워져서 엘리야의 제안에 순응하게 되
었던가!
갈멜 산맥은 지중해를 향하여 팔레스틴 서북쪽으로 뻗었는에 거기에 골짜기들이
많다.
왕상 18: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 이것은 엘리야가 민중을 향하여 여호와께 대한 분명한 태도 결정을 촉
구한 말이다. 그들의 미온적(微溫的)인 태도는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은 것이다. 수
24:14-15 참조. 엘리야는 어제 그들로 하여금 신앙적 결단을 가지도록 하기 위하여 여
호와만이 참된 신(神)이심을 하나님의 권능에 의하여 보여주려 하였다.
왕상 18:22-24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
는 사백 오십 인이로다 그런즉 두 송아지를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
니이니라. - 이 귀절들은 여호와께서 참되신 하나님 이신 사실을 두 가지로 말한다.
(1) 단 한 사란이라도 여호와로 더불어 동행하면 여호와와 상관 없는 많은 사람들을
이긴다는 것. (2) "불로 응답하는 신"이라야 참된 신(神)이라는 것. 이것은 창 15:17;
레 9:24;대하 7:1에 근거한 믿음의 결단이다. 그런데 이 점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
은 거 짓 선지자가 사신(邪神)에 의하여 하늘에서 불을 내린다고 한 말씀(계 13:13)이
다. 이 경우(거짓 선지자의 경우)의 것은 거짓 이 적인 만큼(살후 2:9) 담대한 신앙가
들이 시험해 보면(요일 4:1) 가짜로 드러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 엘리야가 언급
한 "불"의 역사는 어떤 종류의 적대 요소들이라도 이겨내는 초자연적인 참된 불로 성
립될 것이었다. 이런 확신으로 엘리야는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도랑과 제단에 물을 가
득히 부었다(32-35).
왕상 18:26
바알 선지자들은 송아지를 잡아서 바알 신에게 바치고 불의 응답이 나타나기를 기
도하였으나 아무런 응답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침부터 낮까지" 드린 그들의 기도는
헛되었다. 뛰놀더라(* ). 이것은, 그 미신 종교에서 취하는 하나의 종교 의
식(儀式)으로서 춤추는 순서이다. 탈굼역(Targum)은 이 말(* )을 "미친 듯
이 뛰었다"(leapt madly)라고 번역하였다.
왕상 18:27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을 "조롱하여" 말하면서 그의 여호와 신앙의 담력을 드러
냈다.
저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 "묵상"하는 자는 사람이고 신(神)이 아니다. 엘
리야의 이 말은 조롱하는 것이니 바알이 참된 신(神)이 아니라는 것이다.
잠간 나갔는지 혹 길을 행하는지. - 이 말도 참된 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이
것은 인간에게 한해서 사용되는 말인데 엘리야가 이것을 바알신에게 사용하여 그 섬길
가치 없음을 지적한다.
혹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 참된 신은 주무시지 않는다(시 121:3-4). 이
상의 표현들은 조롱하는 말로써 우상의 헛됨을 지적한 것이다.
왕상 18:28
그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하더라. - 이것은
바알 숭배의 악한 풍속이다(신 14:1;렘 16:6,41:5,47:5). 레 19:28 참조. 우상교도들
은 인간의 고행(苦行)과 자학(自虐)을 그들의 신(神) 앞에서 공로(功勞)로 간주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義)만 우리의 구원 근거로 믿는 기독교와 정반대 된다.
왕상 18:29
"진언"이란 말(* )은 그들의 소위 예언을 가리킨다. 학자들은, 이것이
입신적 경향으로 떠드는 것(Extaische razen)을 가리킨다고 한다(C.Van Gelderen,
Korte Verklaring Der Heilige Schrift, De Boeke Der Koningen, 1956, p. 185).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 아무 돌아보는 자도 없더라. - 여기
"없고"란 말(* )이 세 번 나온 것은 우상 종교의 무가치를 역설(力說)하기 위한
것이다. 우상교도들은 아무리 기를 써도 소용이 없다.
왕상 18:30-35
엘리야는 여호와께서만 참 하나님이신 사실을 보여주기 위하여 백성을 가까이 불
러 모았다. 그는 여호와의 초자연적 권능을 그들에게 확실히 보여줄 확신에 차 있었
다. 그는 여호와의 초자연적 권능을 그들에게 확실히 보여줄 확신에 차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이적이 뚜렷이 나타나도록 하기 위하여, (1) "돌로 단을 쌓고" 단 주위를 파
서 "도랑"을 만들고(32절), (2)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단 위에 올려놓은 "번제물과
나무 위에 ... 세 번" 부으라고 하였다(33-34).
"곡식 종자 두 세아"(32절 하반)는 30 리터 정도의 분량이다. 이만한 분량을 "용
납" 한다 함은, 그저 부어 넣음을 의미하는지, 혹은 심는다는 뜻인지 확실히 알기 어
렵다. 만일 그만한 양의 곡식 종자를 심을 만한 면적이라면 상당히 넓은 도랑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제단 둘레에 이런 도랑을 만들어 물을 가득히 채운 목적은 인공적(人
工的)으로 그 단에 불을 붙일 수 없음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엘리야는 그 때에 거기
둘러 선 무리로 하여금 이렇게 하나님의 기적(奇蹟) 외에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도
록 만든 것이다.
이 부분(30-35)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영적 교훈을 받는다. (1) 제단을 수축함
에 있어서 "열 두 돌"을 취하였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의미 심장하다. 그는 북쪽 이스
라엘의 선지자였지만 그 나라(열 지파)만 위한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열 두 지파, 곧
선민(選民) 총수를 위한 제단을 수축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참 종교를 그 백
성 전체에게 그대로 회복하는 데 만전을 기하였다. (2) 그가 여호와의 제단에(제물에)
초자연적(超自然的)인 불이 내릴 것을 믿고 그 제단과 제물에 물을 흠뻑 부었다. 이것
은 인간에게 있어서 불가능한 일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하실수 있다고 믿은 큰 믿음
이다. 수많은 바알 선지자들의 항거 앞에서 엘리야의 종교개혁은 여호와의 권능으로만
실현된다는 영적 의미가 이 일로 드러나고 있다. 자연 법칙으로 생각할 때에는 많은
물이 있는 곳에 불이 침범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리는 불은 그 많은 물을
말리울 수 있다.
왕상 18:36,37
이 부분은 엘리야의 기도 내용이다. (1) 그는 언약의 하나님을 믿고 찾았음(36절
상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는 일찌기 그들에게 가나
안 땅을 주시기로 언약하셨고, 또 궁극적으로 그들의 자손 가운데서 메시야가 나실 것
도 언약하셨다. 그 언약은 마침내 성취된 것이다. 이렇게 언약의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진실하신 하나님이시다. (2) 엘리야는 여호와께서만 참 하나님이신 사실과 자기가 그
의 종이라는 사실을 그 민중에게 알게 하여주시기를 구하였음(36절 하반). 이 기도의
응답으로서는 그 순간에 하늘에서 불이 내리는 기적밖에 다른 것은 기대되지 않았다.
그의 이와 같은 기도는 오직 여호와를 위한 것이었다. 그는 여호와를 위하여 바알 우
상주의를 파멸하려고 이 때까지 싸워 왔다. 18-19 참조. (3) 이스라엘 민중으로 하여
름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도록 하여주시기를 구하였음(37절 하반). 그의 이와 같
은 기도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는 도기에서 한것이다. 하나님이 들으실
만한 기도는 이렇게 사욕을 떠나 공익을 위한 것이다. 신 9:18-21 참조.
왕상 18: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량의 물을 핥
은지라. - "여호와의 불"은 초자연적으로 내려은 불을 가리킨다. 레 9:24; 대상
21:26; 대하 7:1 참조. 그것이 자연계의 불이 아닌 증거는 "번제물과 나무"만 아니라
"돌과 흙"도 태웠으며, "도랑의 물"까지 증발시킨 사실이다.
반 겔데렌(C. Van Gelderen)은, 여기 이른 바 "여호와의 불"이 '벼락'으로 해석된
다고 하여도 이 때에 그것이 하나님의 특수 간섭으로 된 것이니 일종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왕하 1:12;욥 1:16 에도 벼락불을 가리켜 "여호와
의 불"이라고 하였다고 한다(Korte Verklaring Der Heilige Schrift, Koningen, 1956,
pp. 193-194). 그러나 겔데렌의 이 해석은 적합하지 않다.
왕상 18:39,40
이 때에 모든 민중이 말하기를,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 )은 "여호와 그는 그 하나님이시로다"라고 번역되어
야 한다. "그 하나님"이란 말(* )은 '유일하신 하나님'이란 뜻이다. 곧,
그 하나님 밖에는 참 하나님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 민중도 여호와 편에 확립하게 된
마당에 바알의 선지자들은 숙청을 당할 수 밖에 없도록 되었다. 민중은 그들을 체포하
는 데 동원되었고, 엘리야는 그들을 기손시내로 데려다가 죽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
씀(신 13:1-18, 17:2-6)대로 실행된것이다.
왕상 18: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 3
년 반 동안 가물던 재앙의 원인이 제거된 때에 하나님의 진노도 끝났다. 엘리야는 이
사실을 알고 당장 비 내릴 것을 확신하였다. 이것은 영음(靈音)을 듣는 데 밝은 하나
님의 진실한 종들에게 공통된 체험이다.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비가 방금 쏟아질 것이
라고 예고하였다.
왕상 18:42,43
엘리야는 비오기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는 산 꼭대기로 올라가
서 (1) "땅에 꿇어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였고(42절), (2) 비의
징조가 나타날 것을 믿고 "일곱 번" 기도하였다(43절). 약 5:17-18 참조.
왕상 18: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
나이다 가로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
가소서 하라 하니라. - 엘리야는 "손 만한 작은 구름"이 보인다는 말만 듣고도 소낙비
가 내릴 것을 내다보았다. 그러므로 아합에게 부탁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라고한 것이다. 이렇게 그는 비가 내리기 전에도 큰 비가
올 것을 기도 중에 확신하였다. 고로 이런 기도는 일종 예언이기도 하다. 17:1 참조.
왕상 18: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
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 엘리야가 이렇게 "아합 앞에서" 달린 것은 무슨 뜻인
가? 이것은 그의 겸손과 봉사의 심리를 보여준 것이다. 그가 조금 전에 바알 선지자들
을 엄격히 숙청한 것은 잔인도 아니고 교만도 아니었다. 그것은 여호와의 대리자로서
이스라엘의 악한 지도자들을 벌한 공의로운 처사였다. 인간 엘리야는 극히 겸손하였
고, 또한 그 왕아합을 사랑한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니, 그것은 그가 아합 앞에서 뛰어
가면서 그를 보호한 행동이다. 그는 이 때에도 아합의 회개를 바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