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사무엘하 19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삼하 19:1-3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의 죽음 때문에 슬퍼한다는 소식이 백성에게 들려서 그  날에
는 승전의 기쁨도 없이 모든 백성이 패전한 자처럼
  "가만히 성으로" 들어갔다. 이 때에 다윗이 그의 슬픔을 숨겼더라면 좋았을  뻔하였
다. 지도자는 자기 개인 문제로 인한 기쁨이나 슬픔을 억제해야 되며, 또  숨겨야  될
때도 있다. 그 이유는 그는 민중의 공복(公僕)이기 때문이다.


  삼하 19:4-7

 요압이 다윗에게 잘못한 것이 많았으나 이 때에는 왕 앞에 할 말을 한 것이다. 그것
은 사태를 바로 수습하도록 한 좋은 충고였다. 요압의 충고는 다음과 같다. (1)  왕은
왕 자신과 그 가족을 구원해 준 신하들에게 부끄러움을 준다고 함(5절). (2) 왕은  자
기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미워한다고 함(6절 상반). (3) 왕
은 압살롬이 살고 왕에게 충성하는 신하들이 죽었더면 오히려 마땅하게 생각하였을 것
이라고 함(6절 하반). (4) 왕의 신하들을 위로하라고 함(7절 상반). (5) 왕이 만일 나
가서 신하들과 백성을 위로해 주지 않으면 이 날 밤으로 그들이 다 왕을 떠날  것이라
고 하였다(7절 하반). 요압의 이같은 말은 아주 강경하고 공의로운 논리였다.  집권자
(執權者)앞에서 직언(直言)하는 자가 충성된 자이다. 잠 27:6 상반 참조.


  삼하 19:8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 다윗이 옳은 말을 잘 받아들인 것은 그의 고상한  덕
이다. 그는 시편에 말하기를,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
리의 기름 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치 아니할지라"고 하였다(시 141:5 상반).
다윗이 이 때에 "성문"에 앉은 것은 그가 백성을 위하여 일하려고 행동을  취한  것이
다.
  모든 백성이 앞으로 나아오니라. - 곧, 군대가 왕의 앞에 나왔다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 이것은 압살롬을 따르던 민중이 모
두 다 도망하였다는 뜻이다.


  삼하 19:9,10

  이스라엘 모든 백성은 다윗의 과거 공적을 회고하면서 이제 다시 다윗을 예루살렘으
로 복귀시키고자 여론을 돌렸다. 다윗은  이 때에 승전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자진하여
왕위에 복귀하지 않고 조용히 민중의  여론을 기다리며 피동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이
것은 그의 덕스러운 처신이었다. 이는  그가 비록 승전하였지만 자기 가문(家門)의 수
치는 그대로 남아있는 처지에서 자숙(自肅)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춘 그의 겸비
이다. 이것은 또한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평화롭게 복귀되기를 위하여 기다리는 그의
신앙이기도 하다. 징계(懲戒)의 무서운 바람이  스쳐간 그 자리에서 아직 상처가 아물
지 않은 성도의 심령은 고요히 주님의 인도하심만을 사모해야 된다. 주님께서 그의 의
로우신 길로 인도해 주심만이 생명이요 복이 되는 줄 확신하고 잠잠히 기다려야 된다.
시 119:67, 71 참조.


  삼하 19:11-13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환도하는 일에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을 내세워서 일하게 하였다. 그가 그들에게 명한 것은,
(1) 이 일에 유다의 장로들을 참여하도록 함과(11-12), (2) 압살롬의 반역 운동에  가
담하였던 아마사를 요압 대신으로 등용할 뜻을 아마사에게 통고하도록 한 것이었다(13
절). 다윗의 이 둘째 처사는 지혜롭지 못했던 듯하다. 아마사를 등용함이 원수를 사랑
하는 선(善)이 될지는 몰라도, 압살롬의 반란 진압에 공이 큰 요압을  해임하려  함은
잘못이 아닌가? 요압이 그에게 순종하지 않은 일은 있었어도(삼하 18:5, 11-15)  아마
사처럼 반역자 노릇(삼하 17:25)은 하지 않았다. 그가 아마사를 용서하는  길이  하필
그를 요압의 자리에 앉히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던가? 다윗이 이렇게 처사한  뒤
에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삼하 20:8-13).


 삼하 19:16-18

  요단까지 돌아온 다윗은 전에 자기를 저주한 바 있었던
  "시므이"(삼하 16:5-8)를 만나게 되었다. 시므이와 시바의 무리가 요단강을
  "밟고 건너"왔다(17절 끝)는 의미의 말(*        )은 급히 내려왔다(rushed down)는
뜻이다(Revised Standard Version). 시므이가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 라고 말하였는데(20절), 베냐민  자손인
그가 어찌하여 이 때 자기를 가리켜 "요셉의 온 족속"(*                     )에  속
한 자라고 하였을까?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러나 그 때에 베냐민  지파도
요셉 계통에 포함시켜 말하는 풍습이 있었으니(민 2:18-24, 10:22-24; 시 80:1-3), 이
것이 문제될 것은 없다. 시므이가 이 때에 다윗을 찾아온 것은 복구된 다윗의  권세를
두려워하여 취해진 행동이다. 그러므로 그의 이 행동에는 계획적인 것이 보인다.  (1)
그가 누구보다도 먼저 찾아온 것이 그렇다. 16절의
  "급히"하였다는 말(*        )과 20절의
  "먼저 내려와서"란 말(*                 )이 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2) 그
가 대중을 거느리고 나아온 것도 다윗을 크게 환영한다는  제스추어(gesture)로  보인
다.
  이 때에 다윗은 시므이의 영접을 받았고, 또 그를 죽이려는 아비새를 꾸짖었다.  그
날은 기쁜 환도(還都)의 날인 만큼 그는 시므이를 향하여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와 같은 처사가 시므이를  무
죄하다고 함은 아니다. 왕상 2:8-9의 해석 참조.


  삼하 19:24-29

 왕이 저에게 물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뇨
(25절). - 다윗은 전에 시바에게서 므비보셋에 관하여 들은 바 있었지만(삼하  16:3),
므비보셋을 만난 이 자리에서 본인의 말을 직접 듣기를 원하였다. 이것은  사리(事理)
를 옳게 분별해서 바로 처리하고자 하는 지혜로운 처사이다. 모든 송사는 양편의 말을
다 들어보아야 사건의 진상(眞相)을 바로 규명할 수 있다.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은
다윗의 피란길에 그와 동행하지는 못하였으나 왕이 예루살렘을 떠난 날부터 그의 고난
에 정신적으로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발도 씻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빨지 않고
있었다.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 나는 절뚝발이이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타고 왕
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나의 종이 나를 속이고 종 나를 내  주  왕께  참소하였나이다
(26-27 상반). - 므비보셋의 대답으로 그의 종 시바의 허물이 드러났다. 그러나  다윗
은 이 장면에서도 시바를 벌하지 않고 너그러이 용서하고, 전에 속아서 그에게 전속시
켰던 므비보셋의 재산을 피차간 나누어 가지라고 하였다(29절). 그는 이렇게 두사람에
게 모두 피해가 없도록 원만하게 처사하였다. 다윗은 이번 내란(內亂) 때문에  빚어진
모든 불상사에 더 이상 아무도 벌할 마음이 없었던 듯하다. 그는 반란군이 진압된  이
시점에서는 되도록 고요히, 그러고 평화롭게 환도(還都)하기를 원한 것 같다.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29절 상반). - 28절에 보면 므비보셋이  자기의
가문에 대한 것과 자기가 다윗에게 은혜 입은 일을 진술하였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런
말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삼하 19:31-38

 다윗은 환난 때에 자기를 도와준
  "바실래"(삼하 17:27 끝-29)를 후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바실래는 순수한  동기로
왕을 공궤한 자기 중심을 토로하면서 자기는 어떠한 보상도 원치  않는다고  거절하였
다. 바실래의 이와 같은 행위는 하늘의 상을 받을 만한 귀한 일이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을 선대한 것으로 만족하였던 것이다. 그는 자기 대신으

  "김함"(*        )을 왕에게 추천하여 왕의 은총을 받게  하였다(37-38).  "김함"에
대한 바실래의 관계를 우리는 알기 어렵다. 헬라어역의 어떤 사본(寫本)들(Biblia Hebraica 참조)은 그를 바실래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문구(*                  )를  가지
고 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보(Josephus)도 그렇게 말한다(Antiq. VII, 274).

  삼하 19:40,41
 "온 이스라엘 사람"이란 말(41절 초두)은 "온 이스라엘"을 대표한 무리를 가리킨다. 이스라엘(유다 지파 이외의 다른 열 지파들)의 절반은 유다와  동조하였는데(40절  하반), 그 남은 절반이 이렇게 "온 이스라엘"을 대표한다고 하면서 불평을 울린 것이다. 그들의 불평은 유다 지파의 사람들이 다윗왕의 환도에 단독으로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유다 지파의 행위를   "도적" 행위라고 규탄한 것이다.

  삼하 19:42,43
 이 때에 유다 지파 사람들의 대답은 자기들이  "왕의 지친"(*                , 왕과 가깝다는 뜻)이기에 그렇게 한다는 것이었다. 다윗이 벌써 이 일에 있어서 그들과 한 지파된 인연에 호소하며 그들의  솔선  협력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11-12). 그들은 그의 요청에 호응한 것이며, 음흉한 동기를  가지지 않았다. 그들은 또한 왕에게서 아무런 특혜(特惠)를 받은 일이 없음을 밝혔다.  다윗의 환도가 옳은 일인 한에 있어서 근친(近親)의 인연으로 후원함은 정당하다.  그리고 이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주장은 자기들도 다윗의 환도 운동에 관심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것은 그들은 왕께 대하여 "십분을 가졌다"는 것이다. 여기
  "십분을 가졌다"는 말(*                    )은 이스라엘은 열 지파니만큼 한 지파 유다보다 왕을 영접하는 데 있어서 '열 몫이나 담당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Articles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