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8:1,2
다윗은 그의 군대를 세 대(三隊)로 나누고 각각 군장을 세워 전투를 지휘하게 하였
다.
"요압, 아비새, 잇대"는 용맹무쌍한 장군들이다. 이스라엘에서 군사를 세 부대로 나
누는 것은 명장 기드온이 사용하였던 병법이다. 삿 7:16 참조. 이것은 소수를 가지고
도 적의 많은 수효를 분렬시켜 무력하게 만드는 전술이기도 하다.
나도 반드시 너희와 함께 나가리라. - 다윗이 자기의 군대를 사랑하며 아끼는 정신
이 여기서도 나타났다. 그는 자기도 그들의 전투에 협력하겠다고 굳게 결심한 것이다.
여기 "나도"란 말(* )과 "나아가리라"란 말(* )은 역설체(力
說體)로서 다윗의 굳은 결심을 보여준다.
삼하 18:3,4
백성들은 가로되 왕은 나가지 마소서 ...왕은 우리 만 명보다 중하시오니 왕은 성에
계시다가 우리를 도우심이 좋으니이다(3절). - 이것은 다윗의 군대가 그 지도자를 사
랑하며 아끼는 귀한 정신을 나타낸 말이다. 그들이 감심으로 그 지도자를 아끼고 자기
들 자신이 희생되기를 원한 것은 벌써 승리를 내다보게 한 것이다. 전쟁에 있어서 정
신 무장은 무엇보다 먼저 요구되는 것이다.
삼하 18:5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 - 다윗은 이 말로써 "그 전쟁에서 승리할 것과 그 아
들을 용서할 생각을 보여준다"(H.W. Hertzberg, bezeugt seine Siegeszuversicht,
aber auch seine Bereitschaft zur Vers hnung.-Die Samuel b cher, in Das Alte Tes-
tament Deutsch).
삼하 18:6-8
에브라임 수풀에서 싸우더니(6절 하반). - 이 고장 이름을 "에브라임 수풀"(*
)이라고 한 것은 그곳이 에브라임 땅에 속한 까닭이 아니고 입다가 그곳에
서 에브라임 사람들을 많이 죽였던 까닭에 그렇게 불리우게 된 것이다(삿 12:1-6). 이
땅은 요단강 동쪽 건너편 "마하나임"에 가까운데 바위들이 많고 숲이 우거진 곳이다.
그 땅에서 사면으로 퍼져 싸웠으므로(8절 상반). - 다윗의 신하들, 곧 요압고 가아
비새와 잇대는 능숙한 병법으로 압살롬의 많은 군인들을 그 숲 속으로 분산시켰으므로
큰 전과(戰果)를 거두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의 군인들은 미리부터 그 숲 지대의 지
리를 알았기 때문에 적의 군대를 그리로 유도(誘導)하여 승리하게 된 것이다. 적을 험
한 지대로 이끌어들여 패하게 만드는 것은 옛날부터 유명한 '유도작전'이란 병법이다.
삼하 18:9
압살롬의 머리털이 상수리나무에 걸려서 그의 몸이 매달리운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었다. 여호와께서 이미 압살롬의 반역 행위를 벌하시기로 작정하셨다(삼하 17:14 하
반). 그가 전에는 그 머리털로 자랑하였고, 사람들의 칭찬도 받았던 것인데(삼하
14:26) 이제 그 머리털 때문에 패전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자랑거리는 무
엇이든지 그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해가 된다. 눅 16:15 참조.
삼하 18:10-12
은 열 개와 띠 하나(11절 끝). - 이것은 은 열 세겔과 공훈을 표시하는 띠를 가리킨
다.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머리털이 걸려 매달렸다는 보고를 받은 요압은 그 보고자
에게 압살롬을 죽이지 않은 것을 추궁하면서 친히 가서 압살롬을 직접 찔러 죽였다.
그는 일면 다윗을 도우면서도 다른 한편 다윗의 뜻을 어기는 자였다. 삼하 18:5 참조.
그런데도 다윗은 오래 참으며 그를 용납하고, 그에 대한 처사를 하나님께 맡겼다. 삼
하 3:39; 왕상 2:5-6 참조.
삼하 18:16-18
이 부분에는 반역자 압살롬의 말로(末路)와 그 당한 수치를 보여준다. 이것은 멸시
와 천대를 받은 무덤이다. (1) 그 시체는
"큰 구멍"에 던지우고 돌무더기에 쌓였음(17절). (2) 그가 생전에 만들어 둔
"비석"이 이제는 그의 수치를 후대에 전하는 것이 되었음(18절). 그의 이름이 비석
에 남은 것은 도리어 부끄러운 일이다.
아들이 없음을 한탄함이라(18절 중간). - 삼하 14:27에는 압살롬의 아들이 "셋"이라
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그가 무자(無子)하다고 한다. 이것은 아마도 그에게 본래 세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모두 일찍 죽었기 때문일 것이다.
삼하 18:19-21
"사독의 아들 아히마이스"가 승리의 소식을 다윗왕에게 전하기 위하여 떠나려 할 때
에 요압이 그를 만류하고 그 대신에
"구스 사람"을 보냈다. 그러나 아히마아스가 너무도 간절히 원하므로 요압은 그도
보냈다. 그러므로 다윗에게 기별을 가지고 간 자가 둘이었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다
시 성경의 역사성(歷史性)에 대하여 감탄한다. 이 장면에 중요한 것은 다윗에게 전쟁
의 승리를 보고하는 일이었다. 이런 경우에 일반 역사가들은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하
지 않는다. 그런데 본서의 저자는 그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예컨대 요압
이 아히마아스를 만류시키려다가 나중에는 그를 보내게 된 것과 같은 것이다.
삼하 18:24-26
"성문루"는 '성문 지붕'을 가리킨다. 파숫군이 거기 올라간 것은 감시하기 위함이
다. 일선의 전황을 기다리던 다윗은
"혼자"서 달려오는 자를 전령(傳令)인 줄로 알았다.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느니라(27절). - 다윗은 아히마아스에게 대하여
안심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삼하 18:28-30
다윗은 전황을 보고하려고 달려 온 두 사람에게 꼭 같은 말로 물었으니, 그것은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29,32)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다윗이 일국의 왕으로서
신하들 앞에 드러낸 그의 약점이기도 하다. 그는 마땅히 그의 군인들의 안부를 물었어
야 할 터인데 반역자인 아들에 대하여 관심이 더 컸던 것이 사실이다.
삼하 18: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 다윗의 슬픔은 압살롬이 반역자로서 회개하지 않은 채 영원히 망한 데 대한 것이다. 의인의 죽음에 대한 슬픔도 있지만 특별히 불의한 자식의 멸망에 대한 그의 슬픔도 자연스럽다. 다윗에게 있어서 압살롬은 늘 문제로 남아 있었는데 그의 죽음이 그에게 슬픔을 자극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왕으로서 그런 슬픔을 억제하고 압살롬의 반란 때문에 일반 민중이 희생된 것을 슬퍼했어야 될 것이다. 매튜 헨리는 이 귀절을 해석하면서 다윗의 이 슬픔은, (1) 하나님의 처사에 대한 불순종이요, (2) 개인의 혈육에 대한 애정에 치우쳐 이스라엘 공동체에 베푸신 하나님의 긍휼에 대하여는 무관한 태도라고 지적하였다(Matthew Henry's Commentary on the Bible, I. Sovereign Grace Publishers, 1972, pp.83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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