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5:1-6
이 부분에는 압살롬이 어떻게 민중의 인기를 얻었는지 자세히 진술되었다. (1) 출입
할 때에 위엄을 보여줌(1절). 그가 자기 앞에 호위하는 자들("전배")을 50명이나 세웠
으니만큼 위엄이 당당하게 보였으리라고 생각된다. (2) 송사 때문에 왕을 찾아오는 자
들을 이끌어서 친절을 베품(2-6). 그는 백성들 앞에서 재판장으로 자처하였고, 그에게
오는 자들을 붙들고 입맞춤으로 그들의 마음을 도적질하였다. 그의 이와 같은 활동에
는 자기에 대한 거짓 선전, 민중을 속임, 그들에게 아첨하는 불의가 가득하였던 것이
다. 모든 거짓된 지도자들은 언제나 자기의 야욕을 채우기 위하여 이와 같이 간교한
수단을 쓴다.
삼하 15:7-12
압살롬이 정탐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보내어 이르기를 압살롬이 헤브론
에서 왕이 되었다 하라 하니라(10절). - 압살롬의 반역 운동은 점점 노골화되어 이제
는 "헤브론"을 근거지로 하고 자기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포하기 위해 준비를 갖추었
다. 그는, (1) 자기가 그술에 망명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 앞에 서원한 그것을 실행하
기 위하여 헤브론으로 가겠다고 왕의 허락을 받았다(7-9). 그의 이와 같은 청원은 거
짓말이었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거짓으로 시작하는 법이다. (2) 온 이스라엘 민중을
포섭하여 자기를 왕으로 추대케 하려고 전국적으로 일시에 거짓 선전을 펴도록 하였다
(10절). 민중은 흔히 거짓 선전에 넘어가기 쉬운 것이다. 불의한 자들이 이런 속이는
방법에 의하여 기습적(奇襲的)으로 일시 동안 권세를 잡기도 한다. (3) 예루살렘에서
떠날 때에 200명을 속여서 자기를 따르게 하였고, 또 자기 부친의 모사 아히도벧(대상
27:33)도 자기와 합류하게 하였다(11-12).
삼하 15:13-18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을 막으려는 생각은 없이 예루살렘에서 도망해 나가기에 급급
하였다. 그가 이렇게 행동한 사실에 대하여 몇 가지 해석이 있다. (1) 압살롬의 반역
행위가 자기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라고 함. 삼하
12:11, 16:10-12 참조. 그러나 이 해석은 정당하지 않다. 그 이유는 다윗이 도망하면
서도 작전을 계획하였기 때문이다(31-37). (2) 그가 그의 범죄로 인하여 이제는 담력
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함(잠 28:1 상반). 그러나 이것도 역설이다. 25절에 보면 다윗
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렸다. (3) 그가 전략상(戰略上) 예루살렘을 떠난 것이라고
함. 이 해석이 타당하다고 할 이유는, 다윗이 도중에서도 전략을 세웠고(31-37), 후에
는 전쟁하였기 때문이다(삼하 18장). 만일 그가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더라면
작전 준비가 안 되었으니 패하게 될 것이 분명하고, 또한 예루살렘은 전화(戰火)에 휘
말려 들어갔을 것이다(14절).
후궁 열 명을 남겨두어 궁을 지키게 하니라(16절 하반). - 이렇게 "후궁들"을 남겨
두게 된 것도 삼하 12:11의 예언이 성취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삼하
16:20-22 참조.
"모든 그렛 사람"(18절 중간)은 블레셋 사람들을 가리키고(삼상 30:14),
"모든 블렛 사람"(18절 중간)도 블레셋 사람을 가리킨다. 이런 이방인들도 다윗에게
귀화(歸化)하여 충성하였던 것이 알려진다.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육백인"(18절 하반)에 대하여는 삼상 27:1-3, 30:10; 삼하
2:1-4을 참조하라.
삼하 15:19-22
블레셋에서 다윗을 따라와서 충성하던
"가드 사람 잇대"는 유명한 용사였다(18:2). 그가 이제 전란 중에 빠진 다윗과 동고
동락하기 원하여 다윗을 따라나섰다. 이 때에 다윗은 그를 돌려보내려 하였으나 그가
끝까지 따르기를 원하므로 그도 동행하게 하였다.
"가드"는 블레셋의 도시였다. 잇대가 유다에 귀화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진실히 믿고
섬긴 것이 분명한 것은, (1) 다윗이 그에게 축복한 말씀에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 고 한 것(20절 끝)으로 알려지고,
(2) 잇대 자신의 맹세, 곧
"여호와의 사심"이란 말(21절 상반)로 보아서도 알려진다.
너는 쫓겨난 나그네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19절 하반). - 곧, 그는
자기 조국 블레셋에서 쫓겨나서 나그네 생활을 하는 몸이니 전란 때에는 어느 편에 가
담할 필요 없고 잠잠히 있다가 어느 왕이든지 집권할 때에 그를 섬기면 될 것이라는
뜻이다. 다윗은 여기서도 남을 사랑하는 의리(義理)를 지켰다. 그는 신변이 위태한 그
피란 시절에도 "잇대"와 같은 장군을 이용하려 하지 않고 도리어 그를 아꼈다. 그는
그 위험 한 가운데서 신앙을 지키며 사건들을 하나하나 의리대로 처리하였다. 이것은
그가 환난 중에 하나님만 바라본 증거이다.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없이 가니(20절 초두). - 곧, 잇대는 그의 조국을 떠나서
유리하다가 이스라엘에 온지가 어제와 같은데, 또 다시 정처없이 유리하는 생활을 하
도록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윗의 이 말은 그가 잇대를 뜨겁게 사랑하며 그를 중요하
게 아는 증표이다(Goslinga).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20절 끝). - 곧, 하나님의 은혜와 그의
진실하신 구원 행위(믿는 자를 그 약속대로 구원하심)가 잇대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하
는 기도이다.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무른 사생하고 종도 그곳에 있겠나이다(21절 하
반). - 잇대의 이와 같은 굳은 결심은 나오미를 끝까지 따르겠다고 하였던 룻의 태도
와 같다. 룻 1:16-17 참조.
건너가라(22절 상반). - 곧, 잇대와 그 일행을 왕과 함께 가도록 허락하는 말인데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라는 것이다.
삼하 15:24-26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도로 메어 가라(25절 상반). - 다윗은 법궤가 예루살렘에서
이동되어 다시 자기처럼 유리하게 됨을 원치 않았다. "이스라엘의 수호신 기호(守護神
記號)는 마땅히 수도(首都)에 있어야 될 것이었다"(Schulz, Das palladium soll an
der Hauptstadt gebunden bleiben). 그가 이렇게 생각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
가 예루살렘으로 회복될 것을 믿은 까닭이기도 하다 (25절 하반). 그가 하나님의 긍휼
과 은혜 입기를 원하면서도 겸손히 말하기를,
"그러나 저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
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 고 첨부해 말하였다(26절). 곧,
하나님께서 그를(다윗을)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하셔도 그는 감심으로 그 처분대로 순
종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자(悔改者)의 심정이다. 그는 모처럼 거기까지 운반된
법궤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옮겨가도록 제사장 사독에게 부탁하여 실행하게 하였다(29
절).
삼하 15:30,31
아히도벧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31절 하반). - 이것은 다윗의 기도이다. 위기에 처한 성도가 불의한 세력의 붕괴를 기원함은 당연한 일이다. 이 기도는 응답되어서 아히도벧의 전략이 채택되지 않았으므로 압살롬은 패망하게 되었다(삼하 17:1-23). 삼하 18장 참조.
삼하 15:32-34
다윗이 "후새"를 압살롬에게 보내어 거기서 정탐의 역할을 하게 하였고, 또한 아히도벧의 모략이 실패하도록 공작하게 하였다(33-34). 후새는 다윗의
"친구"였다(대상 27:33).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