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3:1
다윗은 점점 강하여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가니라. - 이 말씀을 읽을 때 우리
는 시 127:1의 말씀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으로만 그 노력의 열
매를 거둘 수 있다. 하나님의 세우신 자는 마침내 형통하지 않을 수 없다.
삼하 3:2-5
본서의 저자는 이 부분에서 다윗의 아들들이 많이 출생하였음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그런데 그 많은 아들들이 다윗의 중혼(重婚) 생활의 결과였다. 여기서 저자는 다윗의
중혼 생활에 대한 논평은 별문제로 하고 그의 사생활의 단면을 그 역사적 사실대로 진
술한 것 뿐이다. 그 아들들 중
"암논"은 패륜자요(13장),
"길르압"의 다른 이름은 "다니엘"이라고도 한 듯한데(대상 3:1), 그의 행적은 나타
난 바 없다.
"압살롬"은 반역자가 되었고(15장),
"아도니야"도 반역자가 되었다(왕상 1:5).
"스바댜"와
"이드르암"의 행적은 성경에 없다.
삼하 3:7,8
사울에게 첩이 있었으니 이름은 이스바요 아야의 딸이더라(7상반). - 여기 "이스바"
로 번역된 히브리어(* )는 "리스바"라고 개역되어야 한다. 삼하 21:8-11 참조.
네가 어찌하여 내 아버지의 첩을 통간하였느냐 아브넬이 이스보셋의 말을 매우 분히
여겨 가로되 내가 유다의 개 대강이뇨(7하반-8상반). -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
로 추대하고 권세를 잡은 아브넬이 이제부터 이스보셋을 배신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이스보셋의 책망을 인하여 그에게 속한 백성을 다윗에게 돌릴 것을 맹세한 것이다(9
절). 이스보셋의 책망 내용은 아브넬이 사울의 "첩을 통간"하였다는 것이다. 그 사실
여부에 대하여는 우리로서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이 책망 때문에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버리고 다윗을 지지하기로 결심하고 이스보셋을 향하여 반기(反旗)를 든 것은 확실하
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명분이 없이 일어난 운동은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일이
있다. 사울 왕가(王家)를 힘껏 지지하던 아브넬의 주장이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
이었더면 그가 자기 개인의 신상(身上)문제로 그 주장을 그렇게 쉽사리 버렸을 리는
만무하다. 여기 이른 바 "개 대강"이란 말(* )은 "개 머리"라고 번역되어
야 한다. 아브넬은 이스보셋에게 대하여 이렇게 맹렬하게 분노함으로써 사울 왕가의
기둥 같은 위치에서 떠나려 한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사실상 궁극적으로는 하
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다윗을 이스라엘 전국의 왕으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뜻
이 확실한 만큼 그 뜻에 배치되는 운동은 점차적으로 와해되기 마련이다. 다윗은 집권
을 위하여 어떤 전쟁이나 기타 아무런 운동도 하지 않았지만, 그를 반대하던 세력이
그 자체 안에서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삼하 3:12-16
아브넬이...가로되 이 땅이 뉘 것이니이까 ... 당신은 나로 더불어 언약하사이다 내
손이 당신을 도와 온 이스라엘로 당신에게 돌아가게 하리이다(12절). - 아브넬은
"사자"(使者)를 통하여 이제부터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전속시키기를 힘쓰겠다고 하
면서 다윗에게 화친 조약을 제안하였다. 이 때에 다윗은 조건부로 승락하면서
"사울의 딸 미갈을 데리고 오라"고 하였다(13절). "미갈"은 일찌기 다윗이 취하였던
첫아내였었는데(삼상 18:27), 사울이 불의하게 그를 발디엘이란 사람에게 출가시켰다
(삼상 25:44).
이스보셋이 보내어 그 남편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에게서 취하매 그 남편이 저와 함
께 오되 울며 바후림까지 따라왔더니 아브넬이 저에게 돌아가라 하매 돌아가니라
(15-16). - 발디엘은 사울의 왕권을 배경으로 하고 일시동안 미갈과 동거한 셈이다.
이 점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1) 세상 권세로 말미암은 기쁨은 얼마 못가서
역시 권세에 의하여 슬픔으로 바뀐다는 사실과 (2) 내 몫이 아닌 것을 취하고 즐거워
하다가는 마침내 그것을 빼앗기는 쓰라림을 당한다는 사실이다.
삼하 3:17-20
아브넬은 이스라엘 장로들에게와 베냐민 사람들에게 이제는 이스라엘이 전체적으로
다윗의 통치 아래 돌아가야 한다고 권유하고 그들의 의견이 일치한 사실을 다윗에게
알게 하려고 헤브론으로 갔다. 그는 자기의 이와 같은 운동이 하나님의 약속(18절)에
근거한 것이라고 내세웠다. 이 때에 다윗은 아브넬을 환영하였다(20절). 그는 아브넬
이 "대인"(* )이고 반역자가 아님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그는 이 때까지 사울
왕가에 충성하던 아브넬을 조금도 미워하지 않았다. 31-39 참조. 그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았던 사울 왕가의 흥망을 하나님의 섭리에 맡긴 신앙의 소유자였다. 그는 이제
아브넬의 귀순(歸順)도 하나님의 섭리로 믿고 환영하였을 것이다.
삼하 3:22-25
요압이 어떤 전쟁을 마치고 헤브론으로 돌아와서 자기 없는 동안에 다윗과 아브넬과
의 회담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돌아가던 중에 있는 아브넬을 다시 헤브론으
로 불러다 성문에서 암살하였다. (1) 그가 이렇게 행한 것은 자기 동생 아사헬의 원수
를 갚은 것이었다(27절 끝). 요압이 이 일을 감행하기 전에 다윗왕에게 아뢰기를, 아
브넬의 헤브론 방문은 정탐 행위라고 거짓되이 단정했던 것이다(24-25). 요압은 장군
이요 용사였지만 이 때에는 시기(猜忌)와 사사로운 복수심으로 행동한 소인이었다.
(2) 요압의 이 행동은 이스라엘의 공동체를 해롭게 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을 거족적
(擧族的)으로 다윗와의 통치 아래 돌아오도록 하려는 아브넬의 운동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압이 그를 죽였으니, 그것은 회개 운동을 방해
한 악한 행동이다. 언제나 믿음 없이 사욕(私慾)으로 덤비는 자는 하나님의 일에 거치
는 자가 된다.
삼하 3:28-39
이 부분에 아브넬의 죽음에 대한 다윗의 태도가 자세히 진술되었다.
(1) 아브넬의 피에 대하여 자기와 자기 나라는 무죄하다고 선언함(28절). 다윗은 그
의 평생에 우리아의 일 외에는 언제나 죄를 두려워하였다. 시 4:4, 7:3-5, 26:1-6,
139:1-24 참조.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를 힘썼다(왕상 15:5).
(2) 요압이 아브넬을 죽인 것은 공의로운 일이 아니고 사적(私的)인 복수 행위였으
니만큼 그에게 하나님의 벌이 임할 것을 예언함(29-30). 잠 14:35 하반 참조. 복수 행
위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금하신다(레 19:18; 눅 6:27; 롬 12:20). 요압이 다윗의 신하
로서 왕에게 상의하지도 않고 아브넬에게 행한 일은 반역적 처사였다. 그러므로 그 죄
값은 다윗과 관계없고, 요압과 그의 가문이 당해야 될 것이었다.
"백탁병"은 유출병을 말함이고(레 15:2),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라는 말은 절뚝발이를 가리킨다.
(3) 요압과 모든 백성(그의 군대)에게 명하여 아브넬의 죽음에 대하여 애도(哀悼)하
라고 함(31절). 다윗이 아브넬을 죽인 장본인 요압과 그 군인들에게 이렇게 권면한 것
은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사람 앞에서 담대히 의를 주장한 신앙 행위이다.
(4) 다윗은 친히 상여를 따라갔으며, 또 아브넬의 무덤에서 통곡하고 애가(哀歌)를
지었음(31 끝-34). 그의 울음이 인정에 속하였다고 하기 보다는 의리(義理)가 손상된
것을 원통히 여김이었다. 그는 이렇게 의를 사모한 임금이었다. 그의 애가에
"어찌하여 미련한 자의 죽음 같은고"(33 하반) - 라고 한 것은, 이스보셋을 지지하
던 이스라엘 회중을 다윗에게 인도하여 오려던 아브넬의 운동이 지혜롭고 선한 것이었
음을 알게 한다. 여기 "미련한 자"란 말(* )은 '의롭지 못한 자'를 가리킨다.
네 손이 결박되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착고에 채이지 아니하였거늘 불의한 자식의
앞에 엎드러짐 같이 네가 엎드러졌도다(34절). - 곧, 아브넬이 반역자로 정죄되어 결
박된 바도 없었는데 어찌하여 그가 미련한 자("불의한 자")처럼 죽었는가 하는 애도이
다. "불의한 자식의 앞에 엎드러짐 같이 네가 엎드러졌도다." 곧, 아브넬이 불의한 무
리들의 습격을 받아서 죽은 것처럼 죽었다는 뜻이다.
(5) 금식함(33-37). 백성은 진정으로 슬퍼하는 다윗의 모습을 보고 그제야 그를 바
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곧, 그들이 아브넬 암살 사건에 다윗은 전혀 관련되지 않았음
을 파악한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므로 백성은 다윗의 하는 일을 감심으로 따르게 된
것이다. 잠 11:10에 말하기를,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라고 하였다.
(6) 하나님께서 요압의 악행을 징계하시기 원함(38-39). 다윗은 자기의 왕권으로써도 범죄자를 제어(징계)하기 어렵다고 하며 하나님께 그들의
"악한 대로" 그들에게 갚아주시기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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