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사무엘상 3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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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상 30:1
  다윗이 아기스에게서 떠나 시글락에 도착하여 보니 그 동안에 시글락이 아말렉  사람들의 침략을 당하여 잿더미로 화해 있었다. 물론 다윗과 그의 부하들의 가족들은 모두 다 원수에게 사로잡혀 가고 한 사람도 없었다.

  삼상 30:2-5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3하반-4). 시글락 성은 불타버리고  부녀들고  자녀들은 사로잡혀 갔으므로 다윗과 그 부하들이 심히 통곡하였다고 한다. 우는 것은 언제나 약점만이 아니고 도리어 장점일 수도 있다. 그들 중에는 순육정(純肉情)으로 운  자들도 있다(6절 상반). 그러나 정의감으로 운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슬픈 것을 슬프게 느꼈으니 만큼 그들에게서 정의감도 분발하게 되고, 의로운 희생도  각오하게  되었다(9절). 울음이 없는 자는 대부분 심령이 마비되어 있는 자로 판명된다.

  삼상 30:6
   다윗을 돌로 치자하니. 이렇게 사람들을 충동하는 자들은 물론 육에 속하여 그  심령의 눈이 어둡기 때문에 자기들의 불행해진 책임을 지도자에게만 돌린다. 그들은  이 때까지 다윗을 지도자로 추대하고 동고 동락해 왔건만 심한 환란을 당해서는 그를  배반하고자 한다. 이들은 마치 예수님을 높이며 호산나 찬송을 부르던 자들이 후에 변심하여 그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찬동한 그 무리와도 같다. 마 21:7-9, 27:22-23; 요 12:12-13 참조.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여기  "군급하였다"함(*                    )은 '근심에 깊이 빠졌다'(distressed)는  뜻이고,"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고 함은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안에서 강하여졌다.'는 뜻이다. 이말씀은 신약에 있는"그리스도 안에서 강하여짐"과 같은 말씀인데(엡 6:10; 딤후 2:1),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힘을 주셔서 강해졌다.(*          )는 뜻이다. 그가 이 때에 기도하던 중에 힘을  얻었는지, 혹은 심령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던 중 하나님을 믿음으로 힘을 얻었는지  우리는 알기 어렵다. 어쨌든 그는 절박한 사정 아래서 지금까지 그와 함께 해 주신  하나님을 강하게 의지하고 힘을 얻었을 것이다. 시 62:1-2 참조. 만일 그가 이 때에 힘을  얻지 못하였다면 그는 그 반역하는 부하들을 진압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또 아말렉  군대를 추격할 용기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노에 찬 대중을 두려워하지  않고"여호와  안에"피한 그는 큰 힘을 얻었던 것이다. 시 62:7 참조. 영력(靈力)이란 것은 특별히  이런 때에 필요한 것이다.

  삼상 30:7,8
  다윗은 이제 용기를 얻고 아말렉 군대를 추격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일에 있어서도 전과 같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원하였다. 이것이 역시 그의 신앙이다.  그는 능력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더 귀히 여긴 것이다.
   "제사장 아비아달"은 다윗과 함께 망명해서 블레셋 땅에 왔던 것이다. 2:20-23 참조. "에봇"은 제사장의 복장인데 대제사장의 에봇에 결부된 흉배에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우림과 둠밈(urim tummim)이 들어 있었다(출 28:6,29-30). 우림과 둠밈의 모양과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이 어떠하였는지 후대인들은 알 길이 없다. 우리가 한 가지 아는 것은, 패역하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우림과 둠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하였다는 것이다(28:6).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블레셋 군대를 따라 시글락을 떠난 사이에 아말렉  사람들이 다윗의 거주지인 시글락을 습격하고 집들을 불사르고 거기 있던 사람들을 모두 사로잡아 갔다. 시글락으로 돌아와서 이 장면을 당한 다윗과 그의 군인들은  심히  통곡하였다. 그들은"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 높여" 울었다.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기를,어려운 때에 우는 것은 약자들의 하는 일이라고 한다. 더욱이 시글락에서 다윗이 통곡한 것은 일국의 대왕이 될 사람으로서, 또는 군인으로서 체통을 지키지 못한 것 같이 보인다고 한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그런 때에는 도리어 지도자는 울지 않고 울고 있는  부하들을 위로하며 격려해야만 믿을 만한 지도자상(指導者像)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울 수 있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보다 용이하게 신앙으로 들어간다. 그 이유는 사람이 울 때에는 그 심령이 부드러워져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 때에 울 기력이 없도록 울었으니, 그만큼 그는 자기 자신을 믿는  마음은 전연 없었고, 어찌할 수 없는 처지에서 하나님만 의지한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될 것은, 울음 가운데는 발악하는 울음도 있다는 것이다. 그 때에 다윗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그런 울음으로 통곡한 것이  나타난다.  그 사람들은 심히 울고 난 뒤에 다윗을 돌로쳐 죽이고자 하였다(6절). 그만큼 다윗에게는 한 가지 고통이 더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로 그는 더욱 더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던 것이다. 신자는 자기 주위에 의지할 만한 아무 것도 없을 때에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되는 법이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그를 의지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푸신다. 대하 16:9; 시 34:5, 50:15, 55:22 참조.
이 점에 있어서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다윗이 그렇게 힘을 얻은 뒤에도  삼가 조심한 사실이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안 후에 다음 계단을 걸어가려 하였던 것이다. 그가 하나님께 묻기를, "내가 이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8절 상반)  할 때에 하나님은 대답하시기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도록  찾으리라"라고 하셨다(8절 하반).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힘입고 용기를 얻었다고 해서  그  즉시로 원수를 치기에 급급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신자는 언제든지 삼가 조심하면서 어떤 일에 있어서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 후에 움직이려고 기도하며 기다려야 된다.

  삼상 30:9,10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 인을 머물렀고(10절 중간).  이  말씀을 보아 다윗의 자비로운 성품을 알 수 있다. 그의 군대는 피곤해진 200명을 중도에 머물러 두고 남은 사람 400명 뿐이었다. (1) 그는 승리를 약속해 주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군인들의 수효를 믿지 않았으며, (2) 그는 한시라도 급히 쫓아가야 아말렉  군대를 따라잡겠기 때문에 용맹 있는 군인들만 거느리고 힘껏 달렸다. 신앙으로 행하는 성도는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써 자기의 할 일을 힘껏 행한다.

 삼상 30:16-18
  다윗은 아말렉 족속이 사로잡아 간 가족들자르 도로 찾아 왔다. 이것은 다윗이  받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무리가 말하기를, "이는  다윗이 탈취한 것이라"고 하였다(20절). 그 때에 하나님의 특별 간섭이  있었기  때문에 그 가족들의 생명이 원수의 손가운데서도 안전하게 보존되었던 것이다.   

  삼상 30:21-25
 다윗과 그 일행이 승전하고 돌아오다가 출전 다시 피곤에 지쳐 중도에 머물고 함께 전장에 나아가지 못했던 자들 200명을 만났다(21절). 그 때에 "악한  자와  비류들"은 이들 200에게는 전리품을 나누어 주지 말자고 제안하였다(22절). 그러나 다윗은  그들에게도 전장에 나아갔던 자들과 꼭 같이 분배하도록 명령하였다(24절).  그가  그렇게 해야 할 이유를 들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붙이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고 하였다(23절).
   그 날부터 다윗이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25절). 다윗은 불신앙으로 움직이는 비류들의 말을 은혜롭게 시정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군대에 사랑의 법을 세웠다.

  삼상 30:26-28
   다윗이 시글락에 이르러서 전리품을 유다의 여러 지방 장로들에게 선사하였다.  그가 이렇게 한 목적은 일찌기 유다에서 피신하여 다닐 동안 그를 도와준 자들에게 감사하기 위한 것이었다(Keil, Leimb, Med, Goldman, Oesterhoff). 어떤 학설에는 그가 블레셋에 망명하여 있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절개는 여전하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하여 이렇게 유다의 장로들에게 선물을 보냈다고 한다(Asmussen, Hertz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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