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24:1,2
엔게디 황무지(1절 끝). 현대는 이곳 이름을 아인 이디(Aim-jidy)라고 하는데 염소
샘이란 뜻이다. 이곳에 있는 산은 석회석(limestone)으로 되었고, 약 400피드 높은 산
인데 거기에 굴들이 많다고 한다.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을 거느리고(2절 상반). 이 숫자는 다윗이
거느린 사람들의 5배나 된다. 자기 지혜로 권세를 유지하려는 사울은 많은 군인을 거
느리고 또 다시 다윗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다윗에게는
많고 강한 군대 같은 것이 아무문제도 되지않는다.
들염소 바위(2절 끝). 이곳은 들염소들이 찾아오는 바위였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거기 붙었다고 생각된다(Rob. pal. II. p. 204).
삼상 24:3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그 발을 가리우러 들어가니라. 이 "굴"은 다윗이 그 거느린
사람들과 피신해 있는 넓고 깊은 굴이다. "발을 가리운다"는 말(*
)은 잠자는 것자르 의미한다는 학설이 있다(Peshito, Michaelis). 또한 이 말
이 용변함자르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으니 고슬링가(Goslinga)는 이것이 용변을 가리키
는 화장식(化粧式)표현이라고 하였다(een Eufemistische uitdrukking voor zijn
natuulijke behoefte doen). 칼 부데(Karl Budde)도 이 말이 용변함을 의미한다고 말
하였다(Anstandswendung, seine Notdurft, ein Geschaft verrichten.-Kurzer
Hand-Commentar zum Alten Testament, Die Bucher Samuel, s. 161). 그러나 우리는 첫
째 해석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사울이 용변하였을 경우에는 자기의 옷자
락 베는 것을 몰랐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삿 3:24에도 이말(*
)이 사용되었는데 잠자는 것을 의미하였다.
삼상 24:4
다윗의 사람들이 가로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다윗의 부하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원수(사울)를 다윗의 손에 붙이겠다고 말씀하셨다
는데, 하나님께서 언제 이런 말씀을 다윗에게 하셨는지 문제이다. 그러므로 많은 학자
들이 말하기를, 이것은 다윗의 사람들이 그 때의 일을 풀이하여"하나님께서 목적하셨
던 대로 오늘은 하나님이 다윗의 손에 그 원수를 붙이신 날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한
다(Goldman, the occasion itself is interpreted by David's men as an indication
of God's purpose to deliver Saul into his hand).
삼상 24:5-7
사울의 옷자락 벨을 인하여 다윗의 마음이 찔려(5절).다윗은, 사울의 옷자락을 벤
자기 행동이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왕을 해롭게 한 것이라고 생갹하여 그 마음에 깊이
죄책을 느꼈다. 그만큼 그는 예민하게 하나님을 두려워하였다. 그의 양심은 맑아서 작
은 죄도 용납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정결(淨潔)을 힘썼기 때문에 자기 죄가 머리털
같이 많다고 고백하였다(시 40:12).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6절 하반). 어떤 학자들은, 다윗이 원수
를 죽일 수 있는 기회에도 죽이지 않은 것은 관대한 무사도(武士道)의 바로였다고 한
다(Hertzberg). 그러나 이것을 그렇게 볼 것이 아니라 고스링가(C. J. Golinga)의 말
과 같이, 그가 사울을 아낀 것은"여호와의 기름 부으신다 자는 여호와께 속하고 따라
서 누구든지 그를 해하지 못한다는 하나님 경외 의식(意識)때문이었다"(Marr het
bewustzija that Saul als Jawe's gezalfde alleen aan Zijn God toebehoort en dus
onschendbaar, onaantaastbaar is-Commentaar op Het Oude Testament, Het Eerste
Boek Samuel. 1968, p.410).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자르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7절). 다윗
은 자기를 위해 열심 내는 부하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하며 제지하였다. 욥
28:28; 잠 16:7 참조. 과연 진리에 입각한 지도자를 따르는 자드은 복되도다. 모세도
자기를 위해 열심을 내는 여호수아를 제지시킨 일이 있었다(민 11:27-29). 지도자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가! 먼저 자기가 진리에 굳게 서야 남을 바로 가르칠 수 있는 것
이 명백하건만 부패한 시대에는 양 떼보다 오히려 어두운 자가 지도자의 자리에 앉아
서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게 만드는 유감스러운 일들도 있다.
삼상 24:8-15
다윗은 굴에서 나가 걸어가는 사울에게 간곡히 호소하며 부르짖었다. 그것은 사울
의 강퍅한 마음도 움직였던 겸손과 지닐와 능력의 표현이었다. 곧, (1)"땅에 엎드려
절함"으로 왕에게 대한 그의 존경을 보여줌(8절 끝). (2) 아첨하는 자들의 참소하는
말을 듣지 말아 달라고 하면서 왕의 공정한 판단을 촉구함(9절). (3) 왕을 즉일 기회
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왕을 해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자기의 무
죄함을 증거함(10-11). (4)왕과 자기 사이를 하나님께서 판단해 주실 것이라고 함
(12-13). 그는 복수 행위는 악인의 소행이므로 자기는 그것을 행치 않겠다고 다짐한
다. 여기 "여호와께서 보복하신다"는 말씀은(12절) 두려운 말이요 진리이다. (5) 자기
는 "죽은 개나 벼룩"같다고 하면서 자기를 겸손히 낮춤(14절). 사실상 그가 이렇게 겸
손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와 함세 하셨던 것이다. (6) 자기는 하나님의 구언자르
바란다고 함(15절). 그는 이 때까지 사람들에게서 배신과 박해를 당할수록 하나님만을
더욱 신뢰한 것 뿐이다. 시 54,57,59편 참조.
삼상 24:16-22
이 부분에는 사울의 후회하는 모습이기록되어 있다. 그는, (1)소리를 높여 울었음
(16절 끝). 강퍅한 자의 울음은 귀하지만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가진 통회라야 한다.
(2) 다윗을 자기보다 의롭지 못하다는 정도로 자기를 평가하였을 뿐이다. 실상 그가 다윗은 의인이고 자기는 악인이라고 정직하게 고백했어야 옳을 것이다. 그는 아직도 그 잠재 의식 가운데 스스로 의롭다는 자아 (自我)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이 때에 그의 많은 말은 결국 자기를 아껴준 다우시의 선행을 칭찬하는 정도에 불과 했다. (3)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이 시점에서 할 수 없이 승인함(20-22).그는 다윗이 왕된 후에 자기의 후손을 보호해 주기를 다윗에게 맹세시켰다. 이상과 같은 사울의 태도는 회개가 아니다. 그렇기에 그는 이 일 후에 또 다시 다우싱르 죽이려고 하지 않았던가! 26장 참조. 성령으로 말미암은 참된 회개는 사울의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근본적 전환을 이룬다. 고후 7:10-11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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