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사무엘상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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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상 15:1-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3절). "아말렉"은  에서의  자손인데(창
36:12) 이스라엘이 광야를 여행할 때에 그 민족의 침해를 받은 바  있었다(출  17:8).
그 때에 그들의 적대 행위는 성질상 하나님을 대적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후에도
그  족속은 계속하여 이스라엘 운동의 원수로 행하여 왔다. 삿 3:13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아주 멸절시키겠다고 말씀하신 바 있었다(출 17:14; 신 25:17-19).
이제는 그 멸절 시기가 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울로 하여금 그 사명을 수행하게 하
신 것이다. 여기 "진멸"이란 말(*       )은 하나님의 심판적 진노를  만족시켜야  할
멸망을 가리킨다. 누구든지 이 "진멸"에 대하여 '잔인하다'거나 '필요없이  엄격하다'
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Langmna, De Boeken I en II Samuel in: De Bijbel  en  zijn
boodschap, p.71).


  삼상 15:4-9

   "겐"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친구였다(민 10:29; 삿 1:16). 그러므로 그들은  아말렉
과 함께 심판을 받지 않는다. 사울이 이렇게 아낄자를 아낀 것은 잘 한 일이었다.  그
런데 그가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들을 남긴 것은(9절) 죄악이었다. 하나님은  그것
들까지 진멸하라고 하셨는데(3절) 사울은 그 명령을 순종하지 않았다. 하나님  앞에서
선(善)은 그의 말씀을 순종함인데 사울은 물질을 탐하는 욕심에 기울어져서  순종하지
않았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는다(약 1:15).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명하신 것은 아말렉의 양이나 소도 진멸  하라는  것이었다(3
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그것들을 다 진멸하지 않고 그 우양들 중 기름지고 좋
은 것들은 남겨두었다. 사무엘은 이 사실을 지적함으로 사울의 회개를 촉구하였다. 그
러나 사울은 그 잘못에 대하여 자기 자신이 책임지지 않고 핑계하여 말하기를,  "그것
은...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남긴 것이라고 하였다(15절). 이
것은, (1) 자기의 잘못을 남들에게 전가시키는 무책임하고 파렴치한 죄악이요, (2) 자
기의 잘못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그것을 거룩한 제사와 관련시킨 외식의 죄악이다.


  삼상 15:10,11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11절  초두).  "후회"란   말(*           
)은 '유감스럽게 여김'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이 잘못하셨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실 때에도 그가 유감스럽게 행할 것을  내다보셨
다. 이제 하나님이 탄식하심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일 자체에 대한 것이다.  그  일
자체가 유감스럽지만 그가 허락하신 것은 이스라엘 민중의 잘못된 청원에  양보하셨던
것 뿐이다. 그 양보는 타협이 아니었고 그들의 고집하는 대로 허용하신 일종의  시벌9
施罰)이었다. 그것이 유감스럽지만 그는 그것을 행하셨는데 그것이 그의 성결(聖潔)을
손상한 것은 아니다.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11절 하반). 사무엘이 밤새도록
기도한 것은 하나님께서 사울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바라는 간절한  도고(禱告)였다
(Keil). 칼 부데(Karl Budde)도 말하기를, "사무엘이 죄인을 위하여 도고하였으니  이
는 소돔을 위한 아브라함의 기도와 같은 기도이다"라고 하였다(Samuel  legt  Furitte
fur den Sunder ein  wie  Abraham  fur  Sodom.-Kurzer  Hand-Commentar  Zum  Alten
Testament, Die Bucher Samuel, 1902, s.109). 모세도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런 기도를
하였다(출 32:11-13, 31-32; 민 14:13-19). 이 기도 후에 사무엘은 사울에게 가서  여
호와의 뜻을 전달하였다.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도 사무엘이 기도의 사람이었던  사실
을 알게 된다. 시 99:6 참조.


  삼상 15:12.13

   여기에 사울의 옳지 못한 행동 두 가지가 나타난다. (1) "갈엘에...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운것"(12절 하반). 이것은 아말렉을 이긴 승전의 영광을 자기에게  돌리는
불의한 행동이다. 이것이 곧바로 이방 왕들의 하는 행동이다. 8:5,20에  기록된  대로
이스라엘이 이방 왕과 같은 왕을 원했었는데 이제 사울이  그와  같이  나타난다.  눅
22:25 참조. (2)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다"고 자처하는 것(13절). 그는 이같이
외식(外飾)하였다.


  삼상 15:14,15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명하신 것은 아말렉의 양이나 소도 진멸  하라는  것이었다(3
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그것들을 다 진멸하지 않고 그 우양들 중 기름지고 좋
은 것들은 남겨두었다. 사무엘은 이 사실을 지적함으로 사울의 회개를 촉구하였다. 그
러나 사울은 그 잘못에 대하여 자기 자신이 책임지지 않고 핑계하여 말하기를,  "그것
은...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남긴 것이라고 하였다(15절). 이
것은, (1) 자기의 잘못을 남들에게 전가시키는 무책임하고 파렴치한 죄악이요, (2) 자
기의 잘못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그것을 거룩한 제사와 관련시킨 외식의 죄악이다.


   삼상 15:16-18

   "가만히 계시옵소서"(16절 초두)란 말의 히브리어(*       )는 '그만두라'는  뜻이
다. 곧, 핑계하기를 그만두라는 것이다.
   간밤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신 것을 왕에게 말하리이다(16절). 이 계시는  사무엘
이 밤새도록 기도하던 중에 받은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듯을 알기까지 힘써 기도하였
던 것이다.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17절
상반). 사울이 처음으로 사무엘을 만났을 때메는 자기 자신을 작게  보며  겸손하였다
(9:21). 그러므로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함을 입어 기름부음을 받을  만하였
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왕의 자격은 겸손을 그 기본으로 한다. 그것은  일찌
기 하나님께서 계시하여 주신 바이다(신 17:18-20).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이다(잠
15:33).
   탈취하기에만 급하여(19절 중간). 사무엘의 이 말씀은 아말렉과의 전쟁때에 사울의
탐심이 작용하였던 것을 지적한다. 그는 이렇게 말함으로 조금 전에 말한 사울의 외식
(15절)을 무찌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여전히 같은  외식을  고집하였다
(21절).


  삼상 15:22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잠 15:8). 그 이유
는 (1) 구약 시대에 제사의  의미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헌신  순종인  만큼(히
105-10),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자의 제사 행위가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그의  순종을
다짐하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는 그 제사 드리는 시간에라도 회개하는 인격으로  전환
되어야 한다. 악행을 고집하면서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이  미워하신다.  사  1:11-13,
66:3; 렘 6:20 참조.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곧,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 순종함이 수양의
기름(구약 시대에 제물의 가장 요긴한 것. 레 3:3,9,14)을 드림보다  낫다는  뜻이다.
이것은 윗말씀(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의 뜻과 같은 것이다.


  삼상 15:23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
라. 하나님께 의식적(意識的)으로 불손종하는 것은 우상 숭배와 같은 죄이다. 그 이유
는 그런 불순종은 인간 자신의 의지를 우상화 함이고, 자아(自我)를 우상화 하는 것이
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Allconscious disobedience  is  actually  idolatry,
because it makes self-will, the human I, into a god).


  삼상 15:24,25

   사울이 이제는 자기의 범죄를 시인하는 태도로 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그를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신다는 사무엘의 경고를 들은 그로서  자기
의 왕의를 보존하기 위한 심산(心算)으로 하는 말이니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그의 마
음은 아직도 죄감으로 녹아지지 않았으며 죄책(罪責)을 지고 낮아지지 못하였다. 그는
계속하여 자기 자신이 영광 받으며 높아지기를 원한다(30절). 그 뿐 아니라 그는 아직
도 자기의 죄책을 경하게 하려고 구실(口實)을 만든다. 곧, 그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과오를 범하였다는 것이다(24절 하반). 이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의 죄책은  경
해지지 않는다. 왕으로서 백성을 옳은 데로 인도하지 못한 것은  지도자의  실책이다.
그리고 그들을 두려워하여 불의를 행하였다고 하니, 옳지 않게 두려워하는 그  두려움
자체가 역시 죄악인 것이다(계 21:8).


  삼상 15:26-28

   사울이 사무엘레게 자기 죄를 용서하고 자기와 함께 가자고 청원할 때에(25절)  사
무엘은 거절했다(26절 상반). 그가 거절한 것은 자기의 의견대로 한 것이 아니고 사울
을 버리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배경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왕의 청구도 거절할 용기를 가진다. 이와 같은 거절 행위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사람의 엄위를 성립시킨다. 그 엄위는  바로
진리의 엄위인 것이다. 잠 25:26에 말하기를,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
의 흐리어짐과 샘의 더러워짐 같으니라"고 하였다.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서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
셨나이다(28절). 사무엘은 여호와의 뜻을 끝까지 그대로 전달한다. 그는 이렇게  굳세
게 나간다. 그것이 예언자의 절개요 생명인 것이다. "떼어서"라는 말(*       )은  27
절의 "찢어진지라"란 말(*       )과 은근히 통하는 점이 있다. 이 때에 사무엘의  옷
이 찢어진 것은 사울에게서 이스라엘 나라를 떼어내는 상징이 되었다. 사무엘은 이 사
실을 하나님의 변함 없으신 결정이라고 한다(29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사람"은 부패하여 거짓되되(렘 17:9; 롬 3:4), 하나님은
참되시며 진실하시다(요 8:26; 약 1:17).


  삼상 15:30-31

   사울이 "나를 높여"라고 말한 것은 진심으로 한 말이고, 그가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여달라고 청원한 것은 외식으로 한 말이다. 그는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  자였
다. 딤전 6:5 참조. 사울이 이렇게 사무엘에게 자기를 높여달라고 재차 애걸하므로 사
무엘은 그와 함께 갔다. 이것은 타협이 아니고(35절) 그의 할 일을 하기 위함이다. 그
의 할 일은 아말렉 왕 아각을 죽임으로(32-3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이다.


  삼상 15:32,33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도다(32절 하반). 아말렉 왕 "아각"의 이 말은 자기가
죽임이 되지 않고 놓일 줄 알고 한 것이다. 사무엘이 "여호와 앞에서" 그를 죽인 것은
여호와의 뜻을 만족하게 이루어 드리기 위한 것이었다. 죄악이 극도로 가득 찬 아말렉
의 우두머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될 것이었다. 출 17:14-16 참조.

  삼상 15:34,35
   사무엘은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만나지 않았다. 그가 이렇게 행한 것은  진리와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믿음 없는 사울과 타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이와 같은 비타협적 행위가 무정(無情)을 의미함은 아니다. 그는 사울을 위하여 몹시 슬퍼하였다. 16:1 참조.
   여호와께서는 사울로 이스라엘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35절 하반). 이  말씀은 상반절의 말씀(사울에 대한 사무엘의 태도)과는 벌도로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어떠하심을 말해준다. 하나님은 이제부터 끝까지 사울을 떠나셨고  그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셨다. "후회"에 대하여는 11절의 같은 해석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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