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14:1
그 아비에게는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요나단은 신앙 없는 자기 부친의 지도를 받을
수 없었다. 그는 이 때에 독자적(獨自的)으로 작전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 부친에게 반역하지는 않고 고요히 그 부친의 부족을 채워주는 마음으로 독
자적 노선을 취한 것이다. 그는 부친을 공경하면서도 맹종하지는 아니한 신아가였다.
삼상 14:2,3
신앙으로 전쟁한 요나단은 블레셋 군대를 무서워하지 않고 담대히 움직인(1절) 반
면에, 사울은 블레셋 군대를 두려워하여 "석류나무 아래"서 지체하고 있었다. 그 때에
엘리의 증손 "아히야"라는 무력한 제사장이 그와 함께 하였다. 이 무력한 제사장이 사
무엘을 대신할 자격은 없었다. 사울의 이와 같은 처지는 불신앙의 비참한 열매였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난처해진 때에 요나단은 홀로 신앙 용단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그
는 남들을 비평하거나 원망하지도 않고 고요히 진리의 길을 힘차게 걸어갔다.
삼상 14:4-7
"어귀 사이"란 말(* )은 '통로(通路)들 사이'란 뜻이다.
요나단이 블레셋 진지를 향해 가던 도중엔 높이 솟은 바위로 막힌 험한 곳이 있었다.
그 바위들의 이름이 그곳의 험악함을 잘 나타내주었으니 하나는 "보세스"(*
), 곧 '미끄러움'이고, 다른 하나는 "세네"(* ), 곧 '가시'(thorn)이다. 이런
험준한 요새지(要塞地)를 향해 단 두 사람이 돌진해 들어간 것은 참으로 신앙 일변도
적 용단이다. 요나단은 믿음으로 말하기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
리지 아니하였느니라"로 하였다(6절 하반).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6절 상반). 의식하는 유대인이
"할례"(割禮)의 유무(有無)로써 사람을 구별해 말함은 도리어 가증하고 또 무력한 말
이다(롬 2:28). 그러나 진실한 신자인 요나단이 그렇게 행동한 것은 신념과 능력으로
역사한 것이다. 그 이유는 요나단은 이스라엘을 택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믿고 또 그의
도와주심을 받기 때무이다. 다윗도 이와 같은 선민 의식(選民意識)으로 승전하였다
(17:36 하반, 49).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6절 중간). 이것은 의심이 아니고 소망
으로 하는 말이다. 진리대로 믿으며 소망을 가지는 자는 실패하지 않느다. 요나단은
진리를 믿은 용사였다.
삼상 8-11
이 부분에 하나님께서 요나단가 함께하여 주신 증거가 나타났다. 45절 하반 참조.
그것은, 요나단이 앞으로 될 일들을 미리 말하고 그것으로써 하나님의 "표징"(*
), 곧 징조로 간주한 사실이다(9-10). 다시 말하면, 요나단이 신앙으로 말하기를, 만
일 블레셋 사람들의 말이 "우리에게로 올라오라"하면 그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
라엘의 손에 붙이실 징조라고 하였다. 그들이 블레셋 부대에 그들의 정체를 드러냈을
때에 과연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고 하였다(12절). 이것으
로 이제 하나님의 뜻을 밝히 깨달은 요나단은 그의 병기든 자와 함께 블레셋 진으로
돌진하였다.
반일경 지단 안에서(14절 상반). 이 말(* )은
"한 겨리 소가 갈 수 있는 반 에이카(acre) 땅 안에서"란 뜻이다. 이 때에 블레셋의
패전은 공포심 때문이었는데 그 공포심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것이었다. 15절에
"떨었다"는 의미의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다. 특별히 15절 끝에 "큰 떨림"이란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 )의 문자역은 '하나님의 떨림'이라는 뜻이니, 곧
하나님께서 주신 공포심을 가리킨다. 이것을 보면 요나단의 이번 돌격 행위는 하나님
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17:47).
삼상 14:16-18
요나단의 출전 때문에 블레셋 군대의 세력이 무너져가는 것을 본 사울은 그 전쟁의
최후적 승리를 위하여 제사장에게 법궤를 가져오라고 하였다(18절). 그 뒤에 블레셋의
패전이 더해짐을 본 그는 법궤 운반을 정지시켰다(19절). 이 때에 사울이 말한 몇 가
지 과오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곧, (1)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지도 않고 왕권으로
법궤를 경솔히 이동하려고 한 것. (2) 법궤를 전쟁 마당에 옮겨 와야만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 줄 착각한 것. 이것은 하나님이 버버궤에만 계신 줄로 아는 그의 영적 부지
이다. (3) 이그라엘 전세(戰勢)가 더욱 유리해짐을 보고는 법궤 옮겨오기를 그만두게
한 것. 그의 이와 같은 처사는 인본 주의적 동기에서 된 것이었다. 이것은, 인력으로
라도 일이 잘 되는 줄 잘못 안 것이며, 그런 때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 없다는
사상이다. 사울은 이렇게 영적 부지와 불신아의 사람이었다.
18절의 "하나님의 궤"란 말(* )이 70인역(LXX)에서는 "에봇"(* )으로
번역되어 있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정당한 히브리 원본에서 번역된 것으로 간주한
다. 헬츠벌크(Hertzberg)는 말하기를, 이와 같이 본문이 두 가지로 서로 달라진 이유
는 "그것이 두 가지 전통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다"라고하였다(Zwei Ueberlieverungen
in Umlauf waren). 그러나 그의 이와 같은 해석은 억측에 불과하다.
삼상 14:21-23
전에 블레셋 사람과 함께하던 히브리 사람이...돌이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이
스라엘 사람과 합하였고(21절 상반). 곧, 이스라엘 영토 안에 블레셋의 점령 지역이
있었다. 거기서 히브리 사람들이 블레셋 군대에게 징용(徵用)되었는데 이제 그들이 블
레셋을 배반하고 이스라엘과 합세한 것이다. 이 밖에 숨어있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다
나와서 이스라엘 군대에 들어와 합작하였다.
하나님만 전적으로 신앙하고 겸손히 침묵정진(沈默精進)한 요나단의 구국 운동이 이
제 와서 이스라엘 전국민의 협력을 받게 되었다. 정의를 위하면서도 남을 비방하지 않
고 겸손히 일하는 자는 반드시 성공을 거두며, 어떤 때에는 공동체 총화(總和)의 협력
까지 받게 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다(약
4:6).
삼상 14:24-26
내가 내 원수에게 보수하는 때까지 아무 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
다(24절 하반). 사울이 이스라엘 전군(全軍)에 완전히 승리할 때까지 단식령(斷食令)
을 내렸는데 그의 이와 같은 명령은 무모하고 어리석은 것이었다. 그가 그렇게 명령한
목적은 승리하기 위하여 식사도 중지하고 전투하게 하려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명령을 뒤늦게 알게 된 요나단은 부친의 처사를 옳지 않다고 하였다(29-30). 그는
부친의 권위를 존중하면서도 그 부친의 잘못은 늘 지적하였다. 사울의 명령은, (1) 피
곤한 군인들에게 유해 무익한 것이었으며, (2) 폭군의 횡포와 같은 것이었다. 이 때에
요나단은 그 부친의 명령을 듣지 못하였던 고로 꿀을 조금 맛본 바 있었다.
삼상 14:31-33
백성이 짐승을 잡아 그 고기를 "피 있는 채" 먹어 죄를 범하였을 때에 사울이 그
백성을 꾸짖었다(33절). 그는 백성이 이렇게 과오를 범하게 된 것이 자기의 단식 명령
(24절) 때문인 줄 깨닫지 못하였다. 이 때에 심히 주린 백성이 식물을 취하기에 급급
하여서 그런 과오를 범하게 된 것이 아니었던가?
삼상 14:36-38
이 부분에서는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진멸할 작전을 전개하기에 앞서 하나님께 물
어본 것과 그 결과에 대하여 말한다. (1) 사울이 하나님께 물음. 37절 참조. 그가 제
사장을 통하여 우림과 둠밈에 의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
님께서 대답하시지 않으셨다. 이것은 이스라엘 중에 죄가 있기 때문이었다.(38절).
(2) 제비 뽑아 범죄자를 찾아냄. 40-42절 참조. 요나단이 꿀을 먹은(27절) 그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왕의 명령을 어긴 점에 있어서는 형식상으로
죄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 명령자 내린 사실을 모르고 범하였으니만큼 용서 받
을 처지에 있었다. 45절 참조.
삼상 14:43-45
사울왕의 무모한 맹세 때문에 요나단이 죽을 뻔하였으나 민중이 "여호와"의 이름으
로 맹세하여 구원 운동을 벌였으므로 요나단은 죽음을 면하였다. 이것을 보면 그 때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함이 얼마나 권위 있는 일이었던지 알 수 있다. 사울의 명령
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이었기 때문에(24절) 그것을 어긴 요나단이 형식상
죄를 받게 되었고, 또한 백성이 요나단을 구출하는 운동에 있어서도 "여호와"의 이름
으로 맹세하였으므로 효과를 얻었던 것이다. 이렇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헤함이 중대한 이유는 그 이름이 지극히 위대하시기 때문이다. 사람이 혹시 실수로 그 이름을 가지고 맹세하였어도 그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된다. 수 9:3-21 참조.
삼상 14:47,48
사울이 왕위에 있을 동안 그는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여러 다른 민족들을 평정(平定)하였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물론 하나님의 도와주심을 힘입어서 행한 것이다. 9:16 참조.
삼상 14:49-51
이 부분은 사울은 가문에 대한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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