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10:1
사무엘이 기름병을 취하여 사울의 머리에 붓고. 슐츠(Schulz)의 학설에 의하면, 이
기름 부음의 의식(儀式)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그의 손님, 또는 그의 보호 받을 자(zu
seinem Gast, zu seinem Schutzling)로 확인하는 표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주로
직위에 설 수 있는 자격과 및 거기 필요한 은사를 주는 행위이다(Goslinga). 그 내용
은 성령을 주시는 상징인 것이다. 기름 부음 받은 자는 사람들이 해하지 못하는 법이
었다(24:6-7, 26:11, 16, 23). 이 때에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에게 기름을 부은 것
은 메시야(* = 기름부음 받은 자란 뜻)의 상징이었기에 이렇게 그 사건이 신
성시 되었다. 신약 시대에는 신자들(목사, 장로, 평신도들)이 모두 다 성령 받은(요일
2:28)제사장들이니만큼(벧전 2:9)목사들과 장로들만을 기름 부음 받았다고 하거나 그
들만을 신성시 함은 잘못된 사상이다. 다만 교회에서 안수 받은 직분을 존경하며 잘
대접하는 것은 성경적이다(딤전 5:17; 히 13:17; 벧전 5:5).
입맞추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 기업의 지도자를 삼지 아니하
셨느냐. 사무엘이 사울에게 "입맞춤"은 하나님이 왕으로 택하여 세우시는 그를 존경하
는 표시이다. 시 2:12 참조. "그 기업의 지도자"란 말은 이스라엘의 왕을 가리킨다.
"지도자"란 말(* )에 대하여는 9:16에 있는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라.
삼상 10:2-6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이가 하나님이신 사실을 증명하는 세 가지 징조를
예언하였다. 그 목적은 사울로 하여금 그 예언대로 성취됨을 체험케 함으로 그(사울)
를 왕으로 헤우시는 하나님의 뜻을 더욱 확신케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사울 자신은
자기의 왕권이 하나님께로 온 줄 알고 겸손해야 되며, 자기를 위하지 말고 하나님과
그 의를 위하여 일해야 될 것이었다. 그 세 가지 징조의 주요한 내용을 살펴 보면,
(1) 사울이 도중에서 두 사람을 만나게 될 터인데 그들이 잃었던 암나귀들을 사울의
부친이 찾았다고 가르쳐 주리라는 것(2절), (2) 더나아가다가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
람을 만나게 될 터인데 그들이 떡 두덩이를 주리라는 것(3절), (3) 하나님의 산에 이
르러서는 선지자의 무리를 만나게 될 터인데 사울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하여 새 사람
이 되리라는 것이다(5-6).
위의 세 가지 징조(徵兆)에 대한 사무엘의 예언은 매우 자세하여 그 징조가 나타날
장소와 거기에 관련된 사람들의 수효와 그들의 취할 행동까지 명백하게 발표되었다.
이렇게도 자세한 예언이 하나하나 그대로 다 이루어진 것(9절 끝)이야말로 놀랄 만한
사실이다. 사울은 이 사실 때문에 그가 받을 왕권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로 더욱 확신
케 되었을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이 징조의 내용도 사울에게 교훈을 주는 것이었다.
곧, (1) 인간의 염려는 소용 없다는 것이 첫째 징조(2절)의 교훈이다. 사울은 잃은 나
귀를 찾으려고 염려하였다. 그것을 찾게 된 것은 그의 염려와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
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었다. 그리고 사울의 부친은 그 아들 때문에 염려하였으
나 그 아들(사울)은 왕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2) 둘째 징조가 가르치는 것은, 왕으
로서도 하나님께 제사 드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뵈
려고(제사드리려고) 벧엘로 가는 사람들(3절)을 사울도 본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3)
세째 징조가 가르치는 것은, 왕직을 받는 자가 먼저 성령에 의하여 새로워져야 된다는
것이다(7절).
하나님의 산에 이르리니(5절 초두).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높은 곳을 가리킨다.
그곳에는 블레셋 사람의 영문이 있느니라(5절 상반). 13:3-4; 삼하 8:6,14 참조.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
오는 것을 만날 것이요(5절 하반). 케어드(G.B.Caird)는 왕하 9:11과 렘 29:26을 근거
귀절로 인용하면서, 그 때 선지자들이 춤추는 것과 입신(入神)의 광증(狂症)을 위하여
악기(樂器)를 사용하였다고 말한다(The Interpreter's Bible II. 1953, pp.932-933:
류 형기 편, 성서 주해 I.1974, p.681). 그의 이 말은 참 선지자의 행동이 광증으로
나타난다고 한 잘못된 해석이다. 케어드가 인용한 왕하 9:11; 렘 29:26은, 참된 선지
자의 사역을 오해한 사람들의 말이다. 그 때에 선지자들이 악기를 사용한 것은 여호와
를 찬송가기 위한 것이었고, 그들의 예언은 언제나 자주 의식(自主意識)을 가지고 하
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정상적인 행동이었다. 성경에 기록된 예언 운동은 광신주의(狂
信主義)와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19:18-24 에 대한 해석을 참조하였다.
헬만 바빙(H. Bavinck)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비몽사몽 중에 계시 받음이 어디까지
나 광신주의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몽사몽의 때에 선지자의 의
식(意識)이 전적으로나 부분적으로나 자주성(自主性)을 잃은 것은 아니다. 계시 받는
자의 의식이 그 자주성을 잃는다는 것은 헬라의 소위 탈혼(脫魂)이란 것과 관련된 것
이다"(Toch was de extse, waarin de ontvangers der openaring menigmaal
verkeerden, geen toestand, waarbij het bewustzijn geheel of gedeeltelijk was
onderdrukt, Zoodanig was wel de toestand, waarin de Grieksch * hun
godsspraken gaven.-Gereformeerde Dogmatiek I. 1967, p.304).
삼상 10:8
너는 나부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사무엘의 이 부탁은 11:12-15에 기록된 사건과
관련된 것이 아니고, 13:8 이하의 사건과 관련되는 것이다. 그는 길갈에서 먼저 하나
님께 제사를 드린 후 이스라엘 통치에 관한 중요한 말을 사울에게 전하고자 한 것이
다. 사울은 이 부탁대로 던저 길갈에 가서 "칠 일"을 기다리도록 되어 있다.
삼상 10:9-12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10절 초두). 여기 이른 바 "산"이란 말은 기브아(*
), 곧 높은 곳(산당 있는 곳)을 의미한다.
사울도 선지자들중에 있느냐(11절 끝). 헬츠벌크(H.W.Hertzberg)는 이 말이 예언자
들을 업신여기는 어투로 잘못 깨닫고 말하기를, "합리적 인물이고 지위 있는 시민인
그가 치우친 무리 속에 있음이이 웬 일인가?" 하는 말이라고 하였다(I & II Samuel, A
Commentary, 1964, p.86). 그러나 그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언자들의 무리를 치우
친 사람들로 보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여기서 사울이 "예언"(* )하였다는 말씀은, 그가 자의식(自意識)없이 발언하였
다는 것이 아니다. 예언은 덕을 세운다고 하였는데(고전 14:3), 사울의 예언도 초자연
이면서도 정상적인 심리로 말한 것이었다. 이 때에 예언한 사람들이 황홀하게 되어 말
하였다고 할 수 없다. 그 때에 사람들이 예언하는 사울을 보고 놀란 이유는, 그가 사
무엘이 세운 선지 학교에 속하였던 일이 없었는데도 예언하였기 때문이다.
삼상 10:14-16
사울이 사무엘을 만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이 되었고(1절), 또 성령의
은사도 많이 체험하였다(9-13).그러나 그는 자기 숙부에게 그 놀라운 사실들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 생애의 초기에는 이렇게 겸손하였고 또 묵중(默重)하였다. 그러던 그
가 얼마 오래지 않아서 권세와 명예를 사랑하게 되었고(18:7-9), 종내 실패하고 말았
다.
삼상 10:17-19
이 부분에는 사울이 이스라엘 백성 앞에 왕으로 뽑힘이 되고 또 내세움이 된 사실
이 기록되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왕을 세워주심은, (1) 그들의 잘못된 요구대
로 허락하신 것임(18-19).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主宰)이시지만 어떤 때에는 인간의
자유를 막지 않으신다. 사람들이 옳지 않은 소원을 끝까지 고집할 경우에 그는 그들의 소원대로 행하도록 방임하시는 경우도 있다. (2) 사람들의 제비를 통하여 그의 뜻을 보여주신 것임(20-24).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이 모여 제비를 뽑아 왕을 세움으로 하나님의 섭리적 의지가 나타났고, 그 결국은 사무엘이 이미 기름을 부은 사울이 뽑혔다. 잠 16:33 참조. 이렇게 사울은 여호와께서 세우신 왕으로 이중적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니 만큼 그는, 1) 하나님께만 합당하게 행해야 되며(잠 21:1), 2) 시종일관 인자와 진리를 지켜야 되며(잠 20:28), 3) 겸손해야 된다(잠 15:33).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행구 사이에 숨었느니라(22절). 그 때에 그들이 "여호와께 묻"는 방법은 대제사장의 우림과 둠밈에 의하여 판단을 받는 것이었다. 출 25:30; 레 8:8 참조. 여기 "행구"로 번역된 말(* )은 '쌓아 놓은 수하물', 혹은 '행군(行軍)하는 군대의 짐'을 가리킨다(Karl Budde, das zusammengeschobene Gepach, ,,die Bagage eines'' Heereszuges). 17:22, 25:13 참조. 그 때에 사울이 짐 속에 숨은 것은 그의 겸손이다.
삼상 10:25-27
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를 백성에게 말하고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고(25절 상반). 사무엘은 이스라엘 와의 행정 제도를 하나님의 율법에 근거하여 기록했을 것이다. 8:11-18; 신 17:14-17 참조.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영구 보존시킨 목적은, 이스라엘 왕 사울로 하여금 그것을 명심하게 하기 위함이며 또 실행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방 왕들은 사욕을 위하여 돼권을 사용하지만,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의 율법에 의하여 그 백성을 다스리며 겸손하게 행하도록 되었다(신 17:18-20).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26절 하반). 이들은 비류들과 대조된다. 이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협조하는데 비류들은 그를 반대한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여호와의 신)께 감동된 자(예언한 자)는 의로운 일을 행할 수 있는 "유력한 자들"이었다. "비류"란 말(* )은 '무가치한 자들'을 말함인데 배교자(背敎
者)들을 가리킨다. 그들이 사울을 멸시하였어도 그는 침묵하였다. 그가 이 때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인간적인 반대를 문제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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