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7:1,2
"기럇여아림"은 현재 쿠리엣 엘 에납(Kuryet el Enab)이라고 불리우는데 실로(본래
법궤가 있던 곳)에서 가장 가깝고 제일 큰 성읍이었으니만큼 그 때에 사람들이 법궤를
우선 그리로 옮겨 놓았다. "아비나답"은 레위 자손이었다고 추측된다. 그러나 이에 대
한 명확한 증거는 없다. 그런데 법궤가 기럇여아림에 20년 동안이나 안치되었어도 그
동안 그것을 성막으로 옮기는 운동을 일으키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이 하나님의
섭리일 것이다. 사람들이 귀한 것을 귀한 줄로 알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오랫동
안 공적(공적)으로 내어놓지 않으신다.
여호와를 사모하니라(2절 끝). "사모한다"는 말(* )은 '부르짖어 찾음'을 의
미한다.
삼상 7:3,4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3절). 이 말씀은 중요하다. 여기 "향하여"란 말(*
)은 '확고히 정함'을 의미한다(시 57:7, 108:1). 대하 16:9 참조. 우리는 신앙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 상대로 마음을 정하되 확고히 정해야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
그만 섬기라(3절). 여기 "그만"이라는 말(* , 그 분만)은 우리의 주의를
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사람들이 두 주인을 섬기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말뿐이다. 마 6:24 참조. 대하
16:9에 말하기를, "여호와의 눈은 온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
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하였다.
삼상 7:5,6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5절 중간). "미스바"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곳인데
사무엘의 고향 "라마"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모은
것은 그곳을 블레셋 사람들의 침략을 분쇄하는 영적 집회의 근거지로 삼으려는 것이었
다. 그는 거기서 폭력에 의한 전쟁을 예비한 것이 아니고, 다만 이스라엘로 하여금 회
개하게 한 것과 그가 기도한 일 밖에 없다.
그들이 미스바로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6절 상반). 이것은 하나의 상
징적 행위이니, 물을 부음과 같이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쏟는다는 의미이다. 그들이
물 쏟듯이 그들의 죄악을 마음에서부터 토하고, 또 물이 낮은 데로 흐르듯이 그들이
여호와께 피함을 의미한다.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께 대하여는 물과 같이 되어야 한다.
뻣뻣하고 굳은 심령으로 하나님을 대함은 회개의 태도도 아니고 믿음의 심리도 아니
다.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6절 하
반). 이것은 그 때에 이스라엘의 회개의 참됨을 알려준다. 그들이 사무엘의 권면을 순
종하되 참되이 하였다. 언제나 회개와 동반된 "금식"은 하나의 형식이 아니고 자신을
쳐 복종시키는 양심의 표현인 만큼 참된 열매를 가져올 수 있다.
삼상 7:7-9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왔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사무엘에게 기도를
요청하였다. 그들이 참되이 회개하였으니만큼(6절) 이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그들에게 있었다. 회개한 심령은 주님을 힘있게 의지하게 된다.
쉬지 말고 부르짖어(8절 중간). 사무엘은 그 어머니의 기도의 응답으로 났고 그 자
신도 역시 기도의 사람이다(12:23; 시 99:6).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전쟁의 위기를 당
하여 사무엘에게 그의 쉬지 않는 기도를 요청하였다. 쉬지않고 기도함은 응답되기까지
기도함이니, (1) 힘써 기도 함이고, (2) 정성을 바쳐 깨어 기도함을 의미한다. 심령이
깨어 있지 않는 기도는 느낌이 없는 기도요, 기계적 기도요, 따라서 괴로운 것이니 오
래 계속될 수도 없다. 사무엘은 그 때 이스라엘의 모든 비참한 광경을 느끼면서 기도
하였으니, 그 기도는 짧은 기도도 아니었을 것이다. (3)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심령을 쳐드는 인격적 기도이다. 전에 이스라엘과 아말렉이 전쟁할 때에 산 꼭
대기에서 모세가 손을 들고 있는 동안 이스라엘은 승리하였다(출 17:11). 그 전쟁에서
끝까지 이스라엘이 승리하도록 하기 위하여 아론과 훌이 모세의 피곤한 손을 붙들어
올려 해가 지도록 손이 내려가지 않게 하였던 것이다(출 17:12). 모세의 손이 들리운
것은 그의 심령을 여호와께 쳐들어 그를 의지하는데 도움을 준 말 없는 인격적 기도였
다.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
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9절). "젖 먹는 어린 양"은 제물
로 선정된 것이다(레 22:27). "온전한 번제"란 것은 신약 시대에 오실 그리스도의 속
죄 및 현신을 예표하면서(히 10:12-14) 그 것을 믿는 신자들에게 은혜로 이루어지는
그들의 전적 헌신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이스라엘의 전적 순종을 서원하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 헌신과 순종은 일체(一體)이다(히 10:5-9). 이렇게 그리스도
의 속죄와 헌신 때문에 이루어질 이스라엘의 헌신과 순종을 전제로한 사무엘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
삼상 7:10,11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드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
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10절 하반). "우뢰"는 사람마다 무서워한다. 소위 동양
의 성인(聖人)이라는 공자(孔子)도 우뢰 나는 밤에는 자다가도 일어나서 옷을 입고 관
을 썼다고 하며, 루터(Luther)도 청년 시절에는 우뢰소리를 크게 두려워하였다고 한
다. 블레셋 군인들이 우뢰 때문에 두려워하여 혼란하여졌고 마침내 도망하게 되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자연계에 속한 그
어떤 것으로써도 오늘날의 핵무기 이상으로 힘있게 사용하실 수 있다고 우리는 믿는
다.
삼상 7:12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돌을 세운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와
같은 기념은 사람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도우신 은혜를 기억하도록 하
기 위한 것이다. "에벤에셀"(* )은 '도움의 돌'이란 뜻이다.
삼상 7:13,14
블레셋은 사무엘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다시 이스라엘의 영도를 점령해 보지 못하
였다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사무엘)의 권위를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이렇게 능력 있는 일을 하게 되므로 마귀가 그의 하는 일을 못하게 만
들 수 없다.
에그론부터 가드까지(14절 중간). 이 말은 "에그론"과 "가드"가 이스라엘의 영토
안에 들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고 에그론에서부터 가드의 변경에 미치는 지역을 말함
이다. 블레셋이 그 지역을 일시 동안 점령했었으나 이제는 이스라엘이 그것을 다시 회
복하였다.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14절 끝). 곧, 아모리 사람들(가
나안 족속들 중 가장 강한 족속)도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여 침략 행위를 멈추었다는 뜻
이다.
삼상 7:15-17
사무엘은 부지런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는 해마다 각 지방(벧엘, 길갈, 미스바)으로 순회하면서 다스렸고, 또 자기 고향 "라마"로 돌아와서도 쉬지 않고 다스렸다. 이것이 믿음 있는 사람의 생활이다. 롬 12:11 참조.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17절 끝). 블레셋 군대로 말미암아 법궤를 빼앗긴 후 실로의 성막은 여호와의 성소가 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그의 집이 있는 라마에도 제단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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