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 2: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 유력한 자가 있으니 이름은 보아스더라 - "유력
한 자"란 말(* )은 "유력한 재산소유자", 혹은 "유력한 지주"(ein
vermogender Grundvesitzer)라고 개역되어 한다(Gillis Gerleman). "보아스"란 이름(*
)은그에게 힘이 있다는 뜻을 가진다. "괴로움"이란이름, 곧"마라"(* )에해당
되는(1:20) 나오미는 극히 약한 자인데 그녀에게 구원을 줄 수 있는 힘의 사람이 이제
는 나타났다. 하나님의 경외하는 자는 마침내 이런 위로를 만난다. 이것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인생들이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과 같은 것이다(마 11:28). 어
떤 학자들은 보아스가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한다.
룻 2:2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 룻의 이 말은 매우 겸손하고 온순한 청원이다. 룻은 그
언사에 있어서 공손하였으니, 그는 여자로서의 중요한 덕(德)을 갖춘 교양 있는 여성
이었다. 그녀는 베들레헴 사람들에게서 "현숙"한 여자라는 정평(定評)을 받았다
(3:11).
"현숙" - 하다 함(* )은 덕화(德化)의 힘을 의미한다. 그의 덕화는 우선 그의
온순한 말로 나타났다. 그가 시모를 봉양하기 위해서는 남의 밭에 가서 곡실 이삭을
주어 와야 되는데, 그는 이것까지도 시모의 허락을 공손히 청원한 것이다. 그의 겸손
안 인격은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 이란 말로도 나타났다. 그당시에 가난한 자가 남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것은 율법으로 허용되어 있었다(레 19:9-10,23:22 신 24:19). 그
러므로 그 때에는 사람들이 남의 밭에 가서 이삭 줍는 것을 떳떳한 일로 생각하였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룻은 그것이 남의 혜택을 받는 일 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그는 공
손한 덕행으로 인격적 감화를 남들에게 끼쳤다. 여자의 가장 중요한 덕은 공손(혹은
은유)이기 때문에 성경은 그것을 강조한다(벧전 3:4)
룻 2:3
"우연한" - 란 말의 히브리어(* )는 "그에게 일이 맞아 떨어져서"
라고 개역되어야 한다. 겔레만(Gerleman)은 이 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으니,
곧 "이 사건은 인간의 의지(意志)나 협력이 없이 당착된 것으로서 그 배후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고 하였다(Gillis Gerleman, Biblischer Kommentar Testament,
Ruth, Das Hohelied, 1965, s. 25). 이 말씀은 하나님의 간섭도 없는 무의무정(無意無
情)한 우연 사태를 말함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룻이 보아스에게로 인도되어 그와
결혼하도록 함이다.
룻 2:4-9
이 부분에서 보아스의 신앙 인격을 보게된다. 그것은 그의 믿음과 덕(德)이다. 첫째,
그는 기도를 쉬지 않는 사람이었음(4절). 그는 다른사람에게 문안하면서도 여호와의
축복을 빌었다. 둘째, 그는 이웃을 깊이 동정하는 사랑의 사람이었음(8-9). 그는 룻을
취하려는 생각도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3:12) 룻을 자세하게 동정하였다. 그 룻에게
말하기를, (1) 다른 사람의 밭으로 가지 말고 자기 밭에서 계속 이삭을 주우라고 함(8
절 상반), (2) 거기서 추수하는 일을 돕는 다른 소년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의 지도를
받으라고 함(8절 하반), (3) 밭에서 일하는 청년들에게 명하여 룻을 해하지 못하도록
금했다고 함(9절 상반), (4) 목이 마를 경우에 소년들의 길어온 물을 마시라고 함(9절
하반) 등이다. 그의 사랑은 이렇게 자상하였으니, 이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구조 행
위가 자상한 것과 같다. 눅 10:33-35 참조. 참 사랑은 성실하고 또 자상한 법이다. 보
아스가 미천한 룻을 이렇게 깊이 동정한 것은, 죄인을 깊이 동정하시는 예수님의 사랑
을 예표한다.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말며 여기
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 (8절). 보아스의 정신은 남을 돕는 데
부담을 느끼지 않는 점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정신과 같다(마 11:28). 그는 불쌍한 자
를 홀로 맡아 돕고자 한 것이다. 콜부뤼게(H.F. Kohlbrugge)는, 이 귀절을 영해(靈解)
하면서 보아스의 말은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의 권면을 예표한다고 하였다. 곧, "신자
여 !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백성과 함께 있으라. 나를 섬기는 종들과 함께 있으라.
그 이유는 네가 여기서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참하나님이신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
다. "라고 해석하였다(Verklaring Van Het Boek Ruth, 1886, p.6).
룻 2:10-13
룻과 보아스의 말 가운데 룻의 덕행과 신앙이 드러났다.
(1) 룻은 겸손한 여성임(10절). 그가 보아스의 친절한 지도를 받고 감사한 것은,
단지 예의(禮義)를 갖춘 정도가 아니라 자기는 그런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음을 느끼
고
" 땅에 엎드려 절하며" - 사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깊은 겸손의 덕을
소유한 자들을 특별히 사용하신다. 룻은 이방 여자이면서도 예수님의 조상들 중 한분
이 되었다(마 1:5).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도 겸손의 덕을 소유했고(눅 1:48), 사무엘
의 어머니 한나도 이 진리를 깨닫고 노래하기를, 여호와는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
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
지하게 하시는도다"라고 하였다(삼상 2:8 상반).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이다(잠
15:33). 하나님은 언제나 "겸손한 자의 편에 계신다.
(2) 룻은 효부(孝婦)임을(11절 상반). 보아스는 룻이 그 남편이 죽은 후로 시모에
게 행한 모든 선(善)에 대하여 들었다고 한다(11절 상반). 자부 된 자가 보통으로 그
남편의 생전에 시부모를 공경할 수있다. 여자는 남편을 소망으로 삼고(창 3:16 하반)
살기 때문에 그 남편의 부모도 소중히 여기다가 자식이없이 그 남편이 죽은 후에는 그
시부모에게 대한 부양(扶養)의 책임을 덜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은
그 남편이 죽은 후에도 많은 고생을 무릅쓰고(7절 하반)시모을 계속 봉양한다. 그녀가
이렇게 효성으로 시모를 섬기는 일은 온 베들레헴 성읍 사람들까지 다 아는 사실이었
다(3:11 하반). 사람이 한 두 번 선(善)을 행하기는 쉬워도 선을 계속해서 행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사는 자는 어려운 일도 잘 감당하게 된
다.
(3) 룻은 아브라함과 믿음의 후계자임(11절 하반). 보아스는 룻에게 말하기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분명히" - 알려졌
다고 하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위하여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창 12:1),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히 11:8). 룻도 이렇게 하나님 여호와를 사모하여(12절 하
반) 부모와 고국을 떠다(롬 4:12 하반).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 자신을 "지극히
큰 상급"으로 받은 것처럼(창 15:1) 룻도 하나님으로부터
"온전한 상" - (12절 끝)을 받아야 마땅하다. 이것은 그녀를 위한 보아스의 축복이
다. 하나님 여호와의 "날개 아래 보호"란 말씀과 유사한 표현은 구약에도 있고(시
36:7, 57:1, 91:4), 신약에도 있다(눅 13:34).
(4) 룻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여성임(12절). 그는 보아스의 기원(祈願)대로
하나님의 축복 받기를 원하였다.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 라고 한 그녀의 말(13절 상반)은, 기도의 사람
인(4절 참조) 보아스의 축복 기도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는 말과 같다. 룻은 보아스
의 축복 기도의 말씀 때문에 위로와 기쁨을 얻었다. 신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그것이 그가 참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 있는 증거이다(룸 6:11). 그는 만난(萬難)
을 무릅쓰면서라도 영적(靈的)생명에 부요해지기를 원한다. 죽은 고기는 흐르는 물과
함께 떠내려 가지만 산 고기는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룻 2:14-16
이부분에 나타난 대로 보아스의 친절은 그의신앙 인격의 일면을보여준다. 그는 불
쌍한 자를 긍휼히 여겨 구조함에 있어서 성실하고 자세하다. 진실한 신앙과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구 환란중에 돌아봄"을 그 내용으로 지니고 있다(약 1:27). 요일
4:20-21 참조.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불쌍한 자를 향하여 눈물겨운 마음으로 구조할
열심이 있다. 그는 긍휼을 행함으로 심판날에 담대해진다. 약 2:13에 말하기를, "긍휼
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 하느니라"고 하였다. 요일 4:17-18 참조. 그러므로 진실한 신
자들은 긍휼을 베푸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성의를 다한다.
보아스의 긍휼은 다음과 같이 자세하게 나타났으리, 곧 (1) 룻을 초대하여 식사에
동참하게 하였고(14절). (2) 곡식 베는 청년들에게 룻을 책망하지 못하도록 주의시켰
으며(15절) (3) 그들에게 명하여 벤 곡식을 줌에서 조금씩 뽑아버려서 룻으로 하여금
줍도록 하라고 당부하였다(16절). 8-9절에 대한 해석을 참조하라.
룻은 비록 이방 여인이지만 룻을 향한 보아스의 긍휼은 깊이 움직였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긍휼을 그 행실의 중요한 요소로 가진다(마 5:7). 그들은 민족을 초월한
사랑을 실행한다. 그들은 동족애(同族愛)보다 오히려 다른 민족에게 더욱 사랑을 실행
하는 경우도 있다. 이점에 있어서 우리는 예레미야를 죽을 자리에서 구조한 에벱멜렉
(구스 사람)의 선행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렘 38:7-13). 교회 역사에 나타난 대로 많
은 선교사들이 다른 민족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다가 생명을 바친 사실을 우리는 안다.
룻 2:17-19
이 귀절들에는 또 다시 시모에게 대한 룻의 효행이 기록되었다. (1) 룻은 자기 시
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희생과 노고를 아끼지 않았음(17절). 그녀는 곡식
"한 에바" - (약 11 Kg)를 줍기 위하여 종일 힘겨운 노동을 하였다(17절). 7절 하
반 참조. 신자는 남을 돕기 위하여(사랑하기 위하여) 노고를 당할 때에 오히려 보람을
느끼고 기쁨을 얻는다. 사랑은 수고를 자진하여 당하며 견디어 나아간다(고전 13:7;
살전 1:3). (2) 룻은 자기가 주운 곡식을 가져다가 시모에게 보여주었음(18절 상반).
보리 "한 에바"가 큰 수확은 아니지만 양식이 없는 극빈자들에게는 매우 귀한 것이다.
룻은 그 시모에게 이것을 보여줌으로써 위로와 기쁨을 나누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룻
의 마음은 그 시모를 잠시도 잊지 않고 그를 기쁘게 하고 평안케 하려는 뜨거움으로
가득했었다. 그러므로 룻에게 있어서는 그 시모의 기쁨이 그 자신의 기쁨이 되었던 것
이다. (3) 룻은 좋은 음식으로 시모를 대접하기 원하였음(18절 하반). 그는 일터에서
받은 음식을 다 먹지 않고 남겨 가지고 돌아와서 그 시모를 대접하였다.
그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모에게 드리매 - (18절 하반). 룻이 그 받은 음
식으로 배부르도록 먹은 이유는, 그리하지 않고는 종일 이삭 줍는 중노동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 음식의 얼마를 남겨둔 것도 그것을 먹으면서 시모를 생각
한 효심이다. 이렇게 그녀는 가난과 싸우면서 그 시모를 잘 대접하였다.
룻 2:19-22
이 부분에 기록된 나오미와 룻의 대화는 참으로 덕스럽다. 그들의 말은 축복과 감
사로 일관하였다. 보아스가 그들에게 대하여 선을 많이 행하기도 하였지만 그들이 그
의 혜택을 입고 감사하는 데 뜨거운 것도 만고(萬古)에 모본이다.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남의 혜택을 입으면서 도리어 불만을 품으며 원망하는 일도 허다하다. 그러
나 나오미와 룻의 마음엔 감사가 가득 차서 축복과 치하로 터져 나온 것이다.
너를 돌아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 (19절
중간). 이 말씀을 직역하면 "너를 알아준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함이다.
곧, 룻은 일개 이방여자로서 이삭 줍는 미천(微賤)한 자요, 다른사람들은 별로 쳐다보
지도 않는 존재인데 그녀를 알아주며 동정한 그에게 여호와의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는
나오미의 축원이다. 하나님은 가련한 자(나오미와 같은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신
다(출 22:27). 그러므로 욥은 그들(가련한 자들)의 축복 기도(부르짖는 기도)를 탐내
어 그들에게 은혜를 끼쳤다. 욥 31:20 참조. 잠 19:17에 말하기를, "가난한 자를 불쌍
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느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하였다.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 (20절 상반). 룻이 자기를 도와준 자가
"보아스" - 라고 대답한 것도 보아스의 혜택을 증거하며 감사하는 의미이다(19절
하반). 나오미는 이 말을 받아 가지고 다시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뒤이어 그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한다. 그는
"생존한 자" - 들(나오미와 룻)만 생각해 주는 이가 아니라,
"사망한 자" - 들(나오미의 별세한 남편과 아들들)까지해 주는 이가 아니라,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 라고 하였다. 이말은, 보아스의 선행이 일관
성(一貫性)있게 실행되고 있음을 치하함이다. 나오미는 그(보아스)를 가리켜 자기의
"근족" - 이며
"기업 무를 자 중 하나" - 라고 기쁨으로 말한다(20절 하반). "기업 무를 자"란 말
(* )은 잃은 것(혹은 잃었던 사람)을 회복시킴을 의미한다(Stamm, Erlisen und
Vergeben im Alten Testament, 1940, p.45). 그런데 이 말이, (1) 잃었던 재산을 그
본래의 서유 권리대로 회복시킴에 대헤서도 사용되지만, (2) 자식 없이 죽은 사람의
미망인으 그 사망자의 친척이 취하여 자식을 낳아 계대(繼代) 시켜줌에 대하여도 사용
된다. 창 38:7-10; 신 25:5-10 참조.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 (21절 하
반). 보아스의 말을 옮긴 룻의 이 말도 그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의미이다. 나오
미는 룻에게 보아스의 이 말을 잘 지키라고 하면서 역시 감격스러운 마음을 표현한다
(22절). 이렇게 나오미와 룻의 말에는 그 한 마디 한 마디에 덕(德)이 있어서 그들이
서로 만난 자리는 감사와 축복의 분위기로 가득 찼다. 그들은,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모든 여성들의 언행(言行)에 모본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단 두 사람이 만나도 원망과 불평을 쏟아 놓으니, 결국 그 자신들의 심령이 메마르게 되고 은혜의 길에서 멀어진다.
보아스에게 대한 나오미의 축복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곧, 보아스가 룻과 결혼했으므로 그의 증손(曾孫)으로 다윗왕이 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들 중 한 사람이 되었다(마 1:5). 하나님 중심한 선행과 축복은 그 자신들도 모르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된다. 마 26:12 참조.
보아스는 나오미의 집의 기업을 무르는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 주려고 운동했으며(3:12) 그 사람도 처음에는 받을 뜻이 있었다(4:4 끝). 그러나 그가 나중에는 뜻을 변하고 그 자리를 사절하였다(4:6). 일이 이렇게 된 것이 우연한 것이 아니고 보아스에게 대한 나오미의 축복 기도의 응답인 것이다.
합동신학교
< 구약연구 > 룻기 Ruth 2장
구 절 : 룻 2:
2:11-12의 보아스의 말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하나님께서 네 행위를 갚으시기를 네가 하나님의 날개 아래 피하기 위해 왔다 부모와 고국을 떠나 네친척 아비집을 버리고 네가 알지 못하는 백성에게로 왔다'. 이것은 곧 룻의신앙의 결단을 말한다. 즉 리브가, 라헬, 레아에게 요구된 신앙의 결단이었다. 친척 아비집을 버리고 약속의 땅으로 가기를 요구 받았던 신앙의 결단과 같다.
보아스를 통해서 룻의 신앙의 성격을 말하게 한 것은 중요하다. 이방을떠나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께로, 가나안 약속의 땅으로 온다는 것은큰 의미를 갖는다. 룻은 아무 소망이 없는 집안에서 믿음 때문에 시어미를좇아 이스라엘로 온다. 시어미에 대한 친절한 행위, 하나님의 신뢰에 대한의지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이다.
2장의 유력한 자( ; 기보르 하일 라는 말은 도와줄 능력이 있는자란 뜻이다. 1장 마지막이 '보리 추수 때'라고 하여 회복의 가능성을 말하고, 2장은 유력한 보아스의 출현으로 시작한다. 그는 나오미의 친족이요,또한 고엘; redeemer = 구속자 = 기업무를 자)이다. 이것은 빈털털이나오미의 신세가 이제 회복되는 것을 말한다. 룻이 생계를 위하여 이삭을 주으러 나간다.
3절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에 따라 간 곳이 우연히(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친족 보아스의 밭에 있게 된다. 이것은 이삭줍는 자체가 하나님의 긍휼에 근거해 있고, 모든 실상을 하나님께서 세우셨음을 암시한다. 우상숭배의 땅에서 나와 하나님의 백성되기 원해, 나오미 따라 살기 원하는 룻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하나님이 세운 이삭줍는 제도와 보아스라는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긍휼을 보게 된다. 보아스가 굉장한 호의를 베푼다. 이는 남자다운 남자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룻이 이방여인임을 나타내고 11절에 호의받을 자격없으나 호의받음에 감사하자 은혜베푼 동기를 12절에 말한다. '그은혜 사모자에게 하나님께서 갚아주심'(룻의 효심에 대한 글이 아니다)이다.
보아스의 긍휼 베품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을 암시한다. 이는 룻의 한 일에대한 하나님의 보상이다. 여기서 룻의 삶은 신앙의 삶인 것을 알 수 있다.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