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룻기 0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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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 1:1,2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 보통으로 "흉년"은 사람들의  죄
값으로 오는 하나님의 징벌이다. 이 때의 흉년은 이스라엘 자손이 그 죄값으로 미디안
군의 침략을 당한 까닭이었다. 그 때에 미디안 군대가 이스라엘의 토지 소산물을 모두
멸하였다(삿 6:2-4). 이 일 외에도 자연적 흉년도 있었던 듯하다. 6절 참조.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
였는데 - 이 때에 흉년으로 인하여 유다 사람
   "엘리멜렉" 이 그의 아내
   "나오미" 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 을 거느리고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압 지방"으로 이주(移
住)하였다.


  룻 1:3-5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거기 거한지 십 년 즈음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
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 모압땅으로 이주한  나오미
의 가정에는 환란이 그치지 않았다. 먼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그  뒤에
그의 "두 아들"도 죽었다. 나오미의 가정에 이런 환란이 임한 것은 신자들에게 교훈을
준다. 그것은, 나오미와 그 가족이 기근의 환란을 피하려고 모압으로  갔으나  거기서
더 큰 환란을 만난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은, (1) 이  세상에는  그
어디나 안식이 없으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만 있는 영적 평안을  구해야  될  것과,
(2)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하면 환란으로 인해서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
루게 된다는 것이다. 곧, 나오미와 그 가족이 모압에서 환란을 당했기 때문에  "룻"이
나오미를 따라서 유다 베들레헴으로 오게 되었고, 그녀는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조
상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겔레만(Gillis Gerleman)은 탈굼역(Targum)에 의하여 말하기를, 엘리멜렉의 두  아
들이 일찍 죽은 것은 이방 여자들과  결혼한  죄  때문이었다고  한다(Die  Tage  der
beiden Sohne wurden nach Tag. verkurzt als eine Strafe wegen ihrer Ehen mit  den
auslandischen    Frauen.-   Biblischer    Kommentar   Altes     Testament,Ruth,Das
Hohelied,1965, s.15). 그러나 성경에 그들의 죽은 원인이 명시되지 않았으므로  우리
가 단언하기는 어렵다. 모든 사람의 생사 화복을 주장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의
깊으신 행사를 사람이 다 알 수 없다.
   나오미는 이렇게 외국 생활 10년 동안에 육신적으로 비참한 환란을 세 번이나 당하
였지만 조금도 원망하거나 낙심하니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주권(主權)을 믿고 그를 의
지하였다(13절)


  룻 1:6-9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 (6절
상반). 나오미는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소문을  들었
다. 그는 사람들에게 양식을 주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믿었다. 이것이 성경적 인상이
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
라고 하셨다(마 6:11). 그는 이제 그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고
   "두 자부와 함께" - 모압으로 떠났다. 그는 고향에 양식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돌아보시는 사랑("권고"의 뜻)을 느꼈다. 그가 고향으
로 돌아가려고 마음이 끌린 것은 양식 그것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하나님의  선
민(選民)으로서 외지에서 환난만 껸고 외로워질 대로 외로워진 나오미에게는 이제  하
나님의 사랑외에 다른 것은 요구되지 않았다. 신자가 그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을  때
에 인간의 위로나 도움으로는 치료되지 않는다. 그는 고요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살
피며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 그의 치료를 받고자 갈망하게 된다. 나오미는    하나님의
사랑이 임한 베들레헴 따으로 돌아가는 데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 (8절  상반).
나오미가 그 출발 당시에는 이런 말을 하니 않고 주 자부와 함께 우다 땅으로  향하여
길을 떠났던 것이다(6하반-7). 그런데 그가 길을 가던 도중에 두 자부에게 "너희는 각
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면하였다. 왜 나오미는 이런말을  하였을까?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기록에 나타나지 않은 나오미의 중심을 거의 확실하게 추측할  수  있
다. 그것은, 아마도 나오미가 두 자부의 개종(改宗)이 얼마나 견고한진를 알아본 것이
라고 생각된다. 모든 일에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을 찾은(6,8,9,13,21) 나오미는  이제
자기 고국을 떠나 멀리 우다로 가려는 두 자부에게서 확실한 여호와 신앙을 찾아 보려
고 했을것이다. 15절 참조.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
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8하반-9상반).
나오미는 그 자부들이 모압에 돌아가서 거기서 축복 받을 길도 여호와께만 있다는  의
리로 강조하여 말한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유일하신 참 하나님으로 굳게 믿은 신
앙가였다.


  룻 1:10-13

   나오미의 두 자부
   "오르바" - 와
   "룻" - 은 울면서 어디까지나 그 시모와 함께 유다 땅으로 가기를  간절히  원하였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10절) 나오미는 간곡한 말로 그들을 돌려 보내려고 길게  말했
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그들의 결심을 시험한 것이 되었다.
   그런데 나오미는 이 장면에 있어서 그들의 육신 생활과 관련된 남편  문제에  역점
(力點)을 두고 말한다. 이 부분(10-14)에
   "남편" - 이란 말이 네 번이나 나온다. 이 말이 사실상 그 두  여인에게는  중대한
결정을 하는 데 유일하고 절실한 시험건이 된 것이다. 그들이 외국 유다로 간다는  것
은, 남편보다도 여호와를 택하는 결단에서만 가능했던 것이다. 나오미는 이렇게  말함
으로 그 자부들로 하여금 각기 그들의 중점적인 소원대로 자유로이 결정하도록 만들었
다. 그 결과 남편 두는 것을 중점적으로 생각한 오르바는 결국 자기의 고국 모압에 남
게 되었다. 그러나 남편 두는 것을 중점적으로 생각하니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택한 룻은 그 시모를 떠나지 않았다.
   룻은 그를 불좇았더라 - (14절 끝). 여기서 "불좇았더라"란 말(*          )의  직
역(直譯)은 "다가섰다"이다. 룻은 그 시모를 끝까지 따르려는 결심이 견고함을 이렇게
행동으로 나타냈다.
   이 부분(10-14)에 나타난 나오미의 이론은 율법에 기록된  계대    결혼(繼大結婚)에
근거한 것이다. 신 25:5-6참조.


  룻 1:15

   나오미가 또 가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
를 따라 돌아가라  - 여기 이른 바 "그 신"이란말은 모압신(神)을 의미하였다. 나오미
의 말은 오르바이 행동을 좋게 여긴 것이 아니고 다만 오르바가 취한  행동의  결국을
말한 것 뿐이다. 그가 룻을 향하여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고 말한  것은,  룻의
마음을 시험하는 것 뿐이고 모압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꼭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


  룻 1:16-18

   룻은 끝까지 굳은 결심으로 자기의 시모를 따르고자 한다. 그는    다섯  가지조건을
들어가며 다짐하였다. (1) 어머니의 가는 곳에 자기도 가겠다는 것. (2) 어머니의  백
성을 자기 백성으로 삼겠다는 것. (3) 어머니의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섬기겠다
는 것 (4) 어머니와 같이 죽겠다는 것. (5) 자기의 만일 어머니를 떠나는 경우에는 여
호와의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 등이다. 룻의 이와 같은 결단(決斷)은 어디까지나 자
기를 희생하고 어머니에게로 동화된 처니를 취한 것이다. 룻이 그 시모를 따라 여호와
하나님과 및 그 택한 백성에게로 가는 것이 그의 축복을 받을 행동이다. 이 때문에 그
는 다윗의 조상과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게 되었다.
   우리는 룻의 말 가운데서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 란 말과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 란 말(16절 하반)에 대하여 중요히
생각할 것이 있다. 그것은 룻이 그의 결단을 나타낸 다섯 가니 조건의 핵심이요 또 이
유이다. 그는 이제부터 동족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그의 이런 결심은 하나님 여호와의
   "날개 아래" - 서 살기를 원함이다. 2:12 참조. 룻은 이 결단에  있어서  여호와를
중심하고 생각한 것인 만큼 혈통적 인연보다 영적(靈的)인연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이
스라엘 운동은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영적 인연으로 모이는 운동이다. 신약의 구원
운동은 이 점을 명백하게 밝혔으니(갈 6:15; 골 3:11)더 말할 것도 없고,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운동도 본래 그런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범죄 후에 뱀, 곧 마귀
에게 예언하시기를, "내가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셨다(창 3:15). 이 말씀은 많은 비유를 포함한 것이니 이 말
씀을 순전히 육적 의미로한 해석하면 안된다. 이 말씀 중 "뱀"은 마귀를  비유하며(계
20:2), "여자의 후손"은 뱀의 후손(마귀의 후손, 곧 하나님의 원수)과 반대되는  백성
을 비유한다. 그리고 "뱀의 후손"은 사상적으로 하나님의 원수된 백성을 비유한다.
   구약의 이스라엘 운동은 "여자의 후손"된 자들을 불러 모으는  운동이다.  "여자의
후손"은 후에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이름과 바뀐다(창 15:5).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것은 아브라함의 혈통 중심으로 불려진 칭호가 아니고(마 3:8-9), 하나님이 메시야 약
속을 중심하고 불려진 것이다. 롬 4:11,16, 9:6-8,24-26; 갈 6:15참조.
   룻이 그 때에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겠다고  말한  것은  "여자의  후손"(창
3:15), 곧 "아브라함의 자손"에 가담하려는 신앙적 결단이다. 그녀는 하나님을 위하여
민족을 초월하였고, 하나님의 백성(성도들)을 자기 민족보다 더  사랑한  것이다.  시
16:3-4에 말하기를,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
도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였다. 룻은
그 시모의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이 되신다고 한다. 사실상 그녀는 여호와의 "날개  아
래"서 보호 받기를 원하며(2:12), 끝까지 그 시모를 따라 유다로 간 것이다.  그녀는,
자기가 시모를 끝까지 따르지 않을 경우 자기는 여호와의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죄의
식(罪意識)마저 가졌던 것이다.


  룻 1:19-22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
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 (20절). 나오미가
   "베들레헴" - 에 돌아왔을 때에
   "온 성읍" - 이 그를 반가이 맞이하면서 "나오미"의 이름을 불렀다. 이 때에  나오
미는 그들을 향하여 자기의 이름을 고치며 말하기를,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
라라 칭하라"고 하였다. "나오미"란 이름(*      =괴로움)라고 불러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환란을 통과한 후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만을 신종(新從)하는 신앙 인격을 이루
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나오미는 자기에게 환란을 주신 이가 여호와시라고 간증한다. 21절의
   "나를 징벌하셨고" - 란 말(*            )은, "나를 거슬러 증거하셨고"라고 개역
되어야한다. 이 말에서도 그녀가 자기의 당한 환란이 여호와께로부터 왔음을  역설(力
說)하였으니, 그것이 그의 신앙 사상이다. 사람이 자기의 당한 환란을 우연에 붙여 생
각한다면, 그는 환란 가운데서 기쁨을 얻을 수도 없고 소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란이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임한다고 믿는 신자는 하나님이  그  환란이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임한다고 믿기 때문에 소망 중에 기도와    간구로써  힘있게
살아가게 된다. 욥 5:17-18에 말하기를, "불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라고 하였고, 호  6:1-3에는  말하기
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됴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는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
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고 하였다.
   (2) 나오미는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을 가졌다. 그가 모압에서 사는  동안 괴로움만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괴로움'을 자기 이름으로 취하겠다고 한 것은,  그 괴로움을 헛되게 여기거나 저주하는 마음에서 난 것이 아니다. 사람이 자기 이름을 새로이 취하게 되는 경우에는 아무쪼록 자기에게 보람있는 것을 선택하고자  하는  법이다. 그런데 나오미가 자기의 이름을 "괴로움"이라고 불러주기를 원한 것은,  어디까니자 하나님꼐서 행하신 그 일을 중요하게 여겨 그 섭리에 계속 순종하고자  하는  신앙행위이다. 그는, 그 괴로움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을 더 가까이 모시게 된 것을 큰  보람으로 여겨서 그 고난을 잊어버리기도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자기의 이름으로 취하기까리 하였다.

 

 

룻기 서론 : 합동신학교

 

 제  목 : < 구약연구 > 룻기 Ruth
 구  절 : 룻

-------------------------------------------------------- 구약연구 룻기
  룻기를 전선지서에 포함시킬 것인가 아닌가를 먼저 규명해야 한다.  룻기의위치는 70인경에는 사사기 뒤에 있으나 히브리 성경에는 잠언 뒤에 있다.  잠언 등은 지혜서인데, 성문서에  해당한다. 그런데 에스라, 느헤미야, 다니엘등과 잠언, 시편, 욥기, 룻기가 성문서라고 한다면 그 근거가  무엇인가? 어떤 자들은 오경과 선지서가 편집된 후  나머지를 한꺼번에 (케토빔; 성문서)으로 넣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잠언 맨 마지막인 31장은  이상적인 치리자(왕)의 자세와 "현숙한  여인"으로 끝나는데 아마 룻을 현숙한 여인의 대표적 인물로 본  것 같다. 또한 보아스를 가리켜 기보르 하일; 유력한  자 = 남자다운  남자)라고 하고있으므로 (에쉐트 하일; 현숙한  여인)과    은 대조되고 있으므로 남자다운 남자의  전형과  여자다운 여자의 전형으로서 보인다. 잠언 31장도 왕과 여인의 이야기로 끝맺고 있다.

  성경은 여자를 남자와 동등하게 취급하나  모든 면에서 다  그렇지는 않다.
신구약성경의 순서는 신약  - 시내산 사본을 따른다. 바티칸 사본은  복음서-바울서신-사도행전-공동서신(히브리서)-계시록이 나온다. 구약 - 우리말 성경은 70인역을 따른다.   그러나 히브리성경의 마지막은 역대상하이다. 에스라,느헤미야도 마지막에 나온다.

  그러나 이 룻기는  현숙한 여인의 기록뿐이 아님을  알아야 하는데 그 근거는  초반이 '사사시대'라는 기록과  종반이 다윗의 족보로 끝맺고 있으므로 '이스라엘의  역사'와 관련된 message임을 본다. 이것은 다윗왕조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효성 많은 여인의 model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 각 권의 순서의 분명한 이유는 없다. 룻기는 사사시대의  사건이므로,사사기 다음에 위치하는 것이  좋다.  사사시대 한 가정의  일이 룻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이기에 사사기 다음에  위치하는 것이 좋겠다. 만일  히브리 성경대로 잠언과 아가서 사이에  삽입하면내용상으로 잘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잠언, 아가서는 특정  역사에 관계되지 않기  때문이다(솔로몬이 지었으나  특정시대에  관련된 내용이 아니요 보편적인 내용이다).

  룻기의 사건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교훈은 무엇인가? 룻기를  알기  위해사사기를 보자. 사사기란 책   자체가 어떤 문맥에서 진전되어  가는가? 사사기의 진정한 면을  보기 위해 열왕기를 보면 특히 열왕기하만 보더라도 잘 나타난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을 실패한  역사로 본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볼때  이스라엘 역사는 계속된다. 성경은  될  수 있는대로 넓은 의미로 보아야된다. 성경신학은 성경을 개괄적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사기와 더불어 열왕기서는 이스라엘   역사를 와해된 것으로 보나  룻기가 등장해서 전개될  진로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사사시대의 막다른 상황이  무엇으로 인해 되어진 것이고,  어떻게 이 상황에 대처할  것이고, 하나님께서 이상황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를  바로 룻기가 제시해 준다. 즉 룻기가 역사의 구심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암시해 준다.  그러나 룻기는 사사시대의한 가정의 사건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윗왕의 족보로서 중요한 사건이고 시대적인 배경의 사건이므로 위치는  70인경, 우리 개역의 순서가 더 좋다.

 자료원 : 합동신학교 공부내용 서배현 제공

 

 제  목 : < 구약연구 > 룻기 Ruth 1장
 구  절 : 룻 1:


  룻기는 사사시대의 한 역사로서  특히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들었던 사사시대의  이야기를 다룬다. 1:1에  보면  사사들의 시대(400여년간 4-5대밖에 안됨)에 약속의 땅에  기근이 있게 된다. 한  가정이 기근 때문에 자기 삶의 터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버리고 다른 이방 땅으로 간다. 2절에 하나님 나라의 공적으로  지적된  모압지방에 나오미 일가가 가서 살았다는 것은,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주어진 땅을  떠나  삶을 포기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거기서 남편, 아들들이 다 죽고 과부만 셋 남는다.

  신명기에는 모압인을 영영토록  이스라엘 회중에 못들어 오게 하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출애굽시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한 족속이요, 롯과 근친상간한  족속이기 때문이다.  나오미 일가가 그들과 연합된 삶으로 이방풍속을  좇고 이방여인과 혈연을  맺게 되는  것은 사사시대에 이방과 통혼하고,  삶의 공간, 문화를 공유하고   이방과 한 몸이 되는 그때 상황과 유사하다.

  약속의 땅에 기근이  든다는 것은 레위기 26장에서는  기근이 언약  어김에대한 심판이라고 말하고, 신명기   11:9-17절에서 이스라엘의 땅은 천수답(하나님이 때를 따라  비를 주심에 따라 풍작과 흉작이  결정)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비를 주고 안주심은  이스라엘 백성의 순종여부에 달린  것이다. 따라서 약속의 땅에 기근이 듬은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패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의미를 가진다. 기근은 하나님의 심판의 요소로  나타났고, 이 심판으로인해  한 가정이 이방 땅 모압으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그  약속의 땅에 발붙이지 못하고 이방 땅에 나가 살게 되며,  또 남자들이 다 죽어 한  가정이 몰락한 사건은 그 의미하는  바가 사사시대의 전체의 축소판이다. 그런데 이 지리적   배경은 베들레헴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다윗왕조에서 나온 예수님을암시받을 수 있다.

  엘리멜렉 :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 -+
  나오미 : 사랑받는 자(beloved)       -+ 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이다.  이스라엘과 하나님 관계는  남편, 아내의 관계로 묘사된다. 부자관계,부부관계로  묘사되는 관계는  지극히 친밀한 연합관계인데, 신실함과 정결함이 요구되는 관계이다.  
이들의 아들은 말론과 기룐(             이다. 아들과 남편이  죽은 나오미는 가장 불쌍한 상태이다. 성경은 가장 불쌍히 도와야할 대상을 고아와 과부 계층이라  한다. 아들이 끊김은 대가 끊겨 소망이  없다는 말이다. 나오미는 남편과  아들이 죽고 난 후 가장  소망없는 상태가 된것이다. 이것은 소망없이 멸망당할 위기의 이스라엘의 message이다.

  1:6에서부터 사건은 시작한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셨다는 것은기근의 심판이 끝났다는 것이요 그  백성에 대한 긍휼을 의미한다. 심판이 끝나서 고향으로의  귀향하는 나오미  일가를 다루는 것이 룻기의  이야기이다.
잘 살아보겠다고 떠난  나오미 일가는 오히려 세 과부만 남게 되었다. 이것은나오미 일가의  몰락이다. 나오미 일가의 완전한 몰락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동생이 가계를 세워줄 수도 없는 아무 소망이  없는 모습이다. 나오미의 집은 바로   소망이 끊어진 가계이다.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라  자손이 단절된 상태이다. 그러므로 희망이  꾼어진 집안으로 망한  집안이다. 유업의 땅, 약속의  땅을 버리고 이방 땅에서과부가 된 상황의 의미가   무엇인가? 그런데 룻기에서는 사사시대의  암흑에대한 기록이 아니고  그  다음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권고하시는구원의 때를  듣고 돌아가는 내용이다.

  과부만 셋 남은 집안에서 나오미가 하나님의 땅에 기근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고 두 자부에게 각기 자기의 곳으로돌아가기를  권한다. '나의 아들이  있느냐, 나의  태가 남아 있느냐, 아들이생긴다해도 어떻게  너희가  그들을 기다리겠느냐?'  이것은 나오미의 처절한상태를 가리킨다. 이렇게  하여 오르바는 돌아가지만, 룻은 돌아가지 않는다.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오미는 하나님 백성의 약속의  땅을 생각했을 때, 인간적  헌신된 삶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과 이방인과의  건널 수 없는   깊은 간    것  같다. 나오미가 친정으로  돌아갈 것을 권고하는   것, "보라 네 동서는 그들의 신들에게로..."이 말은  그녀의 백성과 그 신들을   포기하고 어떤 의미에서 신앙의 결단을분명히 하는 것이다. 처음에 두 사람 다 어머니  백성(이스라엘 백성)에게 가겠다 했다.  그러나 질과 성격이 다름을 말한다. 나오미가 육적  차원에서 아무 소망이 없음을 말할 때 오르바는 돌아가 버린다. 그녀는 육적  이스라엘만생각했었다(영적 본질에 대해 생각지  못함). 오르바의 믿음에 대해 나오미는'그녀의  백성(이방)과 그  신들(우상)에게로  돌아갔다'고 말한다. 오르바는하나님의 백성의  독특한 위치에  대해서는 몰랐다. 영적 관계 맺음에 있어서하나님 백성의 관계  본질에 대해 무지했다. 외견상 동일한 고백을 했으나 룻의 그 고백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룻의 고백은 육정(나오미에 대한  동정)이 아니고 근본 동기가 신앙적인 것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요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으로  삼음을 알았다. 어머니를 따라감은 자기 민족의거짓 종교,   신들을 버리고 하나님 섬김의 의미를  갖는  이스라엘에 속하여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나님을 섬김을   말한다. 믿음의  열조들이 묻힌 땅에서 자신은  묻히겠다는 것이다. 창세기에서의  족장들의 마지막 소망은  조상들의 약속의 땅에 묻히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 백성의  신앙이다. 나오미는믿음의 확실성  때문에 권면을  포기한다(룻의 효성 때문만은 아니다).  이스라엘에게 돌아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를 보여준다.

  여기서 여자는  남성의 신앙을 따르는 부속물로  보이지 않는다. 남편과 떠나  자신의 독자적인 신앙의 결단이  족장시대에도 나온다. 또 신앙의 계보는남자에게서만이  아니라 여자에게도  이어진다. 즉 하나님 나라에서는 남녀의차이다 없다.  남녀가 다 동질의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룻기의 전반적 흐름은  회복의 이야기이다. 모압에서의 처절한  삶과  기근등은 회복의 멧세지의  배경적  역할을 하고, 그  생활에서  돌아오는 회복의과정에서 룻이 달라붙는다. 이처럼 망한 집안에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는길에 룻이   같이 오는데, 이스라엘이 다 놀란다. 그  이유는  전에 나오미와엘리멜렉의 삶이 풍성했음을 보고 이렇게   비참하게 돌아온 것에 대한  놀라움이다.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 도착시 이전 모습과  급변한 변모에 모든 사람들이  놀란다. 이는 사사시대  초기의 이스라엘과 말기의  이스라엘과의 차이이다.

  그에 대해 나오미가 말한다. (1) 나오미라 하지 말고, 마라라 하라    -> ;나오미 - 마라 . (2) 풍성하게 나갔으나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다    -> ;멜레아 - 레이쾀 . 나오미는  행복한 자, 사랑스러운 자였으나, 마라는  비참한 자란 뜻이다. 충만한 상태에서  제멋대로 갔으나  빈손, 모든 것이 궁핍으로 전락한 모습이  되어  돌아온다. 21절에 여호와께서  나를  괴롭게 했다고말한다. 이 역사는 우연히 된  것이  아니고 사사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왜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를 우리에게 도우라고 하셨는가? 고아와 과부는제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에 특별한 보호의  대상이 된다. 옛 고대사회에서 특별히 과부는 생계가 힘이  들었다. 22절의  추수기는 과부의 삶과비교시 고아, 과부들의   은혜의 시기이다. 하나님께서  과부, 고아들을 위해추수  때 이삭을 남겨두게 한다. 과부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삶을 살  수있는 시기(이삭줍는 시기)가 바로  추수기인 것이다. 이로보아 룻기의 주제가 회복임을  의도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룻이 왜 나오미를 좇았는가?  인간적인 사랑 때문인가? 단순히 인간적인 정이  아니라 룻의 나오미가 돌아가라는  말에  대한 대답에서 볼 수 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된다'는내용에서 그 동기는 신앙적  동기였음을 볼 수 있다.

 자료원 : 합동신학교 공부내용 서배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