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사사기 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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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삿 18:1

  단 지파는 ...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이 때까지 기업의 땅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음
이라  - "단 지파"가 일찌기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서 제비를 뽑아 그들의  분깃(땅)이
지정된 것은 사실이다(수 19 :40-46). 그들이 그 땅을 어느 정도  점령하기도  하였었
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서 그들이  그  땅을  아모리  족속에게  빼앗기고  말았다(1:
34-36). 그러므로 여기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다"는 문구의 내용은 그들을 위하여  지
정된 땅이 실제 그들의 소유로 낙착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음이
라"란 말(*          ...                   )은 기업으로 떨어지지 못하였다는  뜻이
다. 그들이 아모리 사람들에게 패배를 당한 원인은 물론 그들의  불신앙  때문이었다.
이것을 보면, 모든 지파들 중에 단 지파가 가장 믿음 없는 지파로 드러났다.


  삿 18:2

 "소라" - 는 예루살렘 동쪽으로 40마일 쯤 가서 있고,
   "에스다올"은 소라의 동북쪽으로 1마일 반쯤 가서 있는 곳이다. 이 두  도시는  단
지파가 제비 뽑아 얻은 기업(지정된 땅) 중 일부이다(수 19:41). 단 지파의 장정(20세
이상) 수는 광야에서(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계수할 때 64,400명이었다(민 26:43). 그
들은 이제 영토를 확장하기 위하여 정탐 다섯 사람을 파견했다.


  삿 18:3,4

   그 정탐들이 미가의 집 가까이에서
   "레위 소년의 음성을 알아 듣고" - 그에게로 갔다. 그의 말씨가 그곳 에브라임  사
람의 것과 다르므로 정탐들이 그를 쉽개 레위 소년으로 알아 보았아. 에브라임 사람들
의 발음은 특수하였다. 12:6 참조. 단 지파의 거주지인 "소라"는 유다와 가까운  거리
에 있었으니 만큼(15:9-13), 이 정탐들이 그 레위 소년(유다에서 온 소년-17:7)의  음
성을 쉽게 분별한 것은 당연하다.
   나를 고빙하여 - (4절 하반). "고빙"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는  고용(hire)
을 의미한다. 여기서
   "제사장" - 자신이 자기를 가리켜 삯군이라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이것을 보면  그
시대에는 제사장의 품위가 고용인의 처지로 떨어졌어도 제사장 자신도 그것을  부끄럽
게 여기지 못한 듯하다. 삯군은 목자가 아니다(요 10:12).

 

  삿 18:5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보아서 우리의 행하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 단 지파에서 온 사람들의 이 말은 신(神)을 분별하지도 않고 무엇이나  받아들
이는 미신(迷信)에 속한다.  그들의 마음은 참된 이스라엘 종교를 떠난지 오래 되었으
므로 이제는 참과 거짓을 분별할 마음도 없고 또 분별할 지식도 없었다.  그들은 삯군
을 목자로 착각하였다.


  삿 18:6

  평안히 가라 너희의 행하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으니라 - 그 "제사장"은 여기서 거
짓 선지자의 특징인 아첨(阿諂)을 나타낸 것이 분명하다.  (1) 그는 상대방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그들의 길이 평안한 것이라고 하였다.  렘 6:14 참조.  그는 그들이 과
거 역사를 알아보고 그들의 회개를 촉구했어야 될 것이다.  그리고 (2) 그가 엎어놓고
그들을  의인(義人) 치급하여 "너희의 행하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고 하였다.  
하나님은 참된 의인을 바라보시며 그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신다(시 34:15).


  삿 18:7

  "라이스" - (*      )는 사자라는 뜻이다. 이제 단 지파는 그 거주지가 협소하여서
뛰어 나가는 사자처럼 되었다. 이것은 모세의 예언대로 성취된 것이다. 모세가 단  지
파에 대하여 예언하기를 "단은 바산에서 뛰어 나오는 사자의 새끼로다"라고 하였다(신
33:22). "라이스"가수 19:47에서는 "레센"(레셈 =*      )이라고 불리었다. 같은 곳의
이름이 이렇게 조금 달리 불리우는 일은 역사상에 종종 있다. 이 지방은 두로(Tyre)로
가는 도중 최근에 알려진 반야스(Banyas)에서 4마일정도 거리에 있다. 그 위치는 레바
논 산맥과 헐몬 산맥 사이에 개재한 골짜기의 남쪽 입구이다. 이  지방에  요단강으로
흐르는 큰 샘물이 있다(C.F. Burney).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하여 시돈 사람 같이 한가하고 평안하니  - 그
지방은 레바논산으로 베니게를 막았고, 헐몬산으로는 수리아를  막았으므로    외국군의
침략을 두려워할 필요조차 없는 그야말로 난공 불락(難攻不落)의 땅이었다. 따라서 그
백성은 평안히 지내면서 아무런 군사 시설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단
지파가 그 땅을 용이하게 취할 수 있었다.
   시돈 사람과 상거가 멀며 아무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 곧, 라이스  사람
들이 전쟁 때에 시돈 사람들의 원조를 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삿 18:8-10

  정탐들이 저희 지파로 돌아가서 라이스 땅의 실정을 보고하면서 그 떠의 백성을 치
고 그 따을 차지하자고 독촉하였다. 그들은 말하기를, "그 땅은 ... 하나님의 너희 손
에 붙이셨느니라"(10절 하반)고 주장하였다. 그들이 어떻게 이런 말을 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1) 그들이 가나안 정복 당시 여호수아와 그 후 사사들이 사용한 말을 하나의
상습적 구호(常習的口號)로 사용한 것일까? (2) 아니면 그들이 미가의 집에 있던 제사
장(레위 소년)의 거짓 예언(6절)을 믿고 말한 것일까? 아마도 이 둘째 번 추측이 맞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 후에 그 거짓된 예언도 그데로 성취된 셈이다.  그것은  그들이
라이스로 가서 마침내 그 땅을 차지한 것이 증명한다(27-29). 그러면 거짓 예언이  성
취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마귀도 어느 정도까지는 맞는 말을 하여서 사람들을  미혹시
키고 그를 숭배하도록 만드는 일이 있다


  삿 18:11-13

  소라와 에스다올 - 2절의 같은 지명 해석을 참조하여라.
   기럇여아림에 진 치니  - 곧, "기럇여아림"이란 지방(도시가 아님)에 진을  쳤다는
뜻이다. 이렇게 해석해야 할 이유는, 12절 끝에 밝힌 대로 그 진지(陣地)가    기럇여아
림(그 도시)의 뒤에 있었기 때문이다. "기럇여아림(*                  )이란 말은 삼
림(森林)의 도시라는 뜻이다. 이 시는 예루살렘에서 욥바로 가는 도중 9마일쯤 떨어진
곳에 있는데 유다 지파의 영토와 베냐민 지파의 영토 접경에 자리하고 있다.
   "마하네단"(*              )은 단 지파의 군영(軍營)이란 뜻이다.


  삿 18:14

  이 집에 에붓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등 신산이 있는 줄을 너희가 아느냐
- 그들은 이민(移民) 가는 도중에 무엇보다도 먼저 우상에 관심을 두었다. 그만큼  그
들은 우상주의로 물들어 있었다. 그러니 만큼 그들이 부르며 의지한 소위 "하나님"(10
절 끝)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고 우상(偶像)이었다. 미가의 집의  우상주의(17장  참
조)는 이제 단 지파의 우상으로 번졌다. 19절 참조

 

  삿 18:15-18

 단 지파가 미가의 집에 오는 목적은 우상들과 제사장을 옮겨 가려는 데 있었다. 우
상주의에 대한 그들의 열심은 이러하니, (1) 그 우상과 그 비품을 강제로  빼앗았으며
(16-18), (2) 제사장을 충동하여 데리고 갔다(19-20). 그들은 이렇게 미가의 우상  시
설을 전부 탈취한 것이다. 이것을 보면 이들은 극도로 타락하여 우상주의로 어두워 있
었다. 그들은 종교적 만족을 얻기 위하여 강도의 행동까지 취한 것이다. 이 사실이 우
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우상주의자는 결국 어두움과 부패의 포로가 된다는 것이다.


  삿 18:21-24

  미가가 가로되 나의 지은 신들과 제사장 - (24절 상반) 우상주의자는, 자기가 만든
신을 섬기기 위하여 자기가 만든 제사장도 가진다. 그것은 장조주를 섬김이 아니고 피
조물(사람과 사람이 만든 것들)을 섬기는 미신(迷信)이다. 우상주의로 어두워진  자는
이렇게 모순된 일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한다. 인간은 마땅히 그 지으신  이(하나님)를
경배 해야 되는데 그가 지음 받은 자를 섬기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인가!  인류
의 경배의 대상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 뿐이시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는 제사장도 하나님이 세워 주신다. 제사장은 사람을 중보(仲保)하여 하나님께로 인도
하는 분이시니, 타락한 인류의 생각대로 세운 제사장은 그런 거룩한 중보자의 일을 할
수 없다. 우리의 중보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히
5:4-6).
   내게 오히려 있는 것이 무엇이냐 - (24절 하반) 미가의 이 말은  자기에게  있어서
우상과 그 제사장 이상 좋은 것이 없다는 뜻이다.
   미가가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 (26절  하
반) 미가는 단 지파 앞에서 자신의 미약을 알고 그 우상을 포기하였다.  우상주의자는
그 우상 때문에 생명을 내어 놓지는 못한다. 물체에 불과한 그 우상이 그에게 무슨 힘
을 줄 것인가!


  삿 18:27-29

 "단 자손이 ...라이스에 이르러" 평안히 사는 그곳 사람들을 쳐서  이기고  거기에
   "성읍을 중건"하였다. 그들은 저희 조상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 이름을
   "단"이라고 불렀다.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으니 - (28절 상반) 라이스는 거리 관계로 시돈의  원조도
받을 수 없었다(28절 하반).
   "베드르홉"(*                )은 휼레(Huleh) 평원의 윗부분에 있으며,  요단강이
그리로 흘러간다.


  삿 18:30,31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 - 이 사람은 단 지파가 라이스로 데리고 간  레
위인 소년일 것이다. "게르손"은 모세의 아들이다(출 2:22, 18:3; 대상 23:15).  우리
한역은 70인역(LXX)에 기준하여 "모세"(*          )라고 했으나 히브리어 구약은  므
낫세(*          )로 되어 있으니 문제이다. 이 난제를 다음과 같이 해결하는 학설도 있
다. 곧, 그 소년이 사실은 므낫세의 손자가 아니었지만 그의 우상주의로 보아서  그도
후세의 므낫세(므낫세는 우상을 섬겼음)와 같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모세"라고
한 70인역(LXX)의 기록이 원본대로일 것이다.
   요나단과 그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이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
더라 - 여기 "사로잡히는 날까지"란 것은 어느 사건을 가리켰을까? 많은 학자들이  이
것을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의 이스라엘 정복 사건이라고 한다(왕하 15:29). 그러나
이 말은 성립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렇다면 (1) 북쪽 이스라엘에도 손을 뻗쳤던 다
윗왕의 시대에도 단 지파의 우상 시설이 그대로 보존되었다는 의미가 되니, 그것은 성
립될 수 없는 까닭이며, (2) 이스라엘 전국에서 각 지파의 대표자들이 성전 건축을 축
하한 솔로몬 시대에(왕상 5-7장)도 단 지파의 우상주의가 라이스에 여전히 존속하였다
는 의미가 되니, 이것도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 이른 바 이스라엘의 "사로잡히는 날"이란 것은 사무엘 시대의  말기
(末期)에서 사울왕  시대의 초기까지에 된 일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불레셋
사람들이 법궤를 빼앗아 간 사건을 가리킨다. 법궤가 빼앗겼다는 것은 사실상  이스라
엘의 사로잡힘과 같은 일이다. 법궤는 이스라엘의 영광의 상징이었다(삼상  4:21-22).
시편 78편 저자는 이 사건을 가리켜서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과 같은 비극으로  간주
하였다(61-64). 사실상 그 시대에 수리아 군대가 이스라엘 북쪽을 침략하기도 했으니,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사로잡아 갔을 것이다. 삼상 14:47에 기록된 "소바의 왕"은
앗수르 왕이었는데 그가 이스라엘의 북방에 왔던 것이 사실이다(Delitzsch).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 - 이 말씀은, "사로 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고한 문구에 대한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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