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19:1-9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도피성을 두어야 할 것을 말씀한다. 민수기 35장도 이 문제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거기는 좀 더 자세히 기록하였다. 우리가 이 말씀에서 주목할 것이 있으니, (1)그것은 하나님께서 무죄한 자의 죽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부지중에 살인한 그 사람을 살려주시기 위하여 그의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다. 가나안 땅을 세 구역으로 나누어 도로를 닦은 것(3 절)은 피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6절 하반 참조. (2)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부적 동작보다 중심을 본위로 하여 판단하신다는 사실이다. 살인 사건과 같은 비참한 일이 벌어졌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고요히 가해자의 중심을 보신다. 이와 반대로 사람들은 외모만 보고 판단하며 또 행동을 취한다.이렇게 움직이는 인간 사회는 많이 비진리의 열매를 가져온다. 본의 아니게 저지른 살인이란, 나무를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옆 사람을 죽인 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아무 혐의("혐원")도 없이 되어진 살인이다.
이 셋 외에 세 성읍을 더하여 - (9 절). 민 35:13-15 참조.
신 19:11-13
그 본 성읍 장로들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거기서 잡아다가 보수자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할 것이라 - (12 절). 이 말씀은 고의로 살인하고 도피성에 가서 숨은 자를 벌하는 방법이다. 그 방법은 장로들이 그를 체포하여 보수자의 손에 넘겨 죽이도록 한 것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잘 해석하면서 읽어야 된다.이것은 그 살인자와 보수자를 직접 대결시키는 장면을 말함이 아니다.이것은 사형을 당해야만 될 죄수를 죽이는데 있어서 보수자가 먼저 손을 대는 것 같은 법적 절차를 말한 것이다(13:9-10). 민 35:16-21에 대한 해석을 참조하여라.
네 눈이 그를 긍휼히 보지 말고 무죄한 피 흘린 죄를 이스라엘에서 제하라 그리하면 네게 복이 있으리라 - (13 절). 이 말씀은 고의로 살인한 자를 개인적으로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지 말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개인적 행동 원리를 말한 것이 아니고 국가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법률을 말한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가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여기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난 사실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겸하여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공의가 폐지된다면 억울함을 당한 자가 신원 받을 길이 없을 것이다. 일이 그렇게 된다면 불의가 조장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신원하는 일은 그 자신이 개인적으로할 것이 아니고 법적 기관에서 할 것이다. 신정 국가에서 법적 기관은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우리 본문의 "네 눈이 그를 긍휼히 보지 말고" - 란 말씀(13 절)은 이스라엘의 법적 기관에 주신 말씀이고 보수자(피해자의 가족이나 친척)에게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개인적 복수 행위를 금하셨다(레 19:18). 신 32:35에 말하기를, "보수는 내 것이라"고 하였다. 롬 12:19 참조.
신 19:14
네 기업의 소유의 땅에서 선인의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이용하지 말지니라 - 하나님의 법에 있어서 "경계표"는 신성시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경계표를 이동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라고까지 말하였다. 신 27:17; 잠 22:28,23:10-11 참조. 이와 같은 교훈은 사회 생활 각 분야의 주권성도 포함한다고 생각된다. 곧, 가정,학교, 직장, 기타 분야에 대한 소유자의 권계(圈界)가 하나님이 주신 것이어서 침해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을 연계의 주권(主權)이라고 한다. 독재 국가에서는 권계의 주권이라는 것을 주장할 수 없다. 그러나 정상적인 국가들은 이것을 지키고 있다. 여기 "선인"이란 말은 이전 시대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곧, 벌써 분배된 남의 소유에 대하여 침해하지 말라는 뜻이 이 낱말에 포함되었다.
신 19:15-19
이 부분에는 두 가지가 기록되어 있으니, (1) 법정에서 증인을 사용함에 있어서 한
사람만으로 될 수 없고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으로 하라는 것이다(15 절). 이것은 판결의 공정을 보장하기 위한 공의로운 제도이다.여기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을 요구한다는 것은 사람의 수효에 중요성을 생각한 것이 아니고 증거의 성격을 완비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편 사람의 증거만으로는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어려우므로 쌍방의 증거를 요구한 것이다. (2) 위증자(僞證者)를 자세히 분변하여 엄히 처벌하라는 것이다(16-19). 여기 이른바 "위증하는 자" - 는 무죄한 사람을 정죄하며 고소하는 자니, 그런 자는 피고의 받을 벌을 당하게 된다. 이것을 보면 그 때에 이스라엘의 법정이 극히 공정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신 19:21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발은 발로니라 - 이것은 이스라엘의 재판 기관에 주신 말씀이고 개인적 복수를 명한 말씀이 아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잘못 알고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개인적으로 복수하라는 말씀인 듯이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를 대조 시켰다. 곧, 구약 시대는 악을 악으로 갚으라는 시대이고, 신약 시대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해석은 여기 21 절의 말씀을 법적 기관의 재판 원리인 줄 모르고 잘못 말한 것이다. 구약에도 개인으로는 복수하지 말라고 많이 강조하였다(레 19:18; 잠24:17,25:21-22). 출 23:5; 시 109:1-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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