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14:1,2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섭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 그
때 가나안 땅 이방인들은 그들의 죽은 자를 위하여 저렇게 괴상한 방식으로 슬픔을 나타냈다. 곧, 그들은 슬픔 때문에 몸의 지체를 파상하는 일들이 있었다. 이런 풍속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잘못된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들은 사람에게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기 때문에 상사(喪事)를 당하여 지나치게 슬퍼하지 않는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선하게 지으신 몸 자체를 파손시키지 않는다.
그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니 만큼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민족들과 타협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진리대로 성별된 생활을 해야 될 것이었다.
신 14:4-8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먹을 만한 짐승과 먹지 못할 짐승들을 구분한다. 물론 이 구분은 대표적으로 몇 가지 종류를 들어 말한 것이다. 그런데 먹을 만한 짐승의 표준은 굽이 갈라지고 겸하여 새김질하는 것들이다.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만 없어도 먹을 수 없었다. 학자들은 이와 같은 표준을 여러 가지로 영해(靈解)한다. 굽이 갈라진 것은 성별을 비유하고, 새김질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을 비유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같은 영해는 성경적 뒷받침이 없으니 추측에 불과하다. 우리는 차라리 이와 같은 표준에 대하여 어떤 의미를 확실성 있게 드러내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위의 두 가지 특징을 가진 짐승들은 육식 동물이 아니므로 사납지 않고 정결한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온유의 덕과 성결의 덕을 숭상하는 하나님 백성은 이런 것들을 먹을 만하다.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법규들을 계속적으로 이행시키지 아니하신다. 그 이유는, 이와 같은 법규는 그 때에 이스라엘로 하여금 음식물을 구별 없이 먹는 이방인들과 타협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이런 외부적인 장벽을 폐지하고 세계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때이니만큼, 그런 규례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장벽을 둘 필요가 없게 되었다. 행 10:9-16 참조. 이 부분(4-8) 말씀에 대하여는 레 11:1-19의 해석을 참조하여라.
신 14:9,10
무릇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요 - 어떤 학자들은 "지느러미와 비늘"을 각각 영해하여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재미 있게 말한다. 그러나 그런 해석이 성경적 보장이 없는 한, 우리는 안심하고 그것을 받을 수 없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고기는 그것들이 없는 고기보다 정결한 것으로 믿는다. 성경의 이 부분 말씀은 이런 자연물들 가운데서도 깨끗한 것을 취하여 하나님 백성에게 성결의 도를 가르친 것 뿐이다.
신 14:12-15
이 부분에 기록된 새들은 작은 동물이나 뱀 같은 것을 잡아 먹는 더러운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도덕적으로 불결한 것을 상징한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 이런 자연물을 가지고도 이스라엘에게 성별을 가르치는 의미에서도 그것들을 먹지 말라고 하셨다. 물론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규례를 폐지하셨다. 그것이 그렇게 된 원인은 구약 시대의 외부적인 성결의 제도가 신약 시대에는 영적으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행 10:9-16 참조.
신 14:21
염소 새끼를 그 어미 젖에 삶지 말라고 함
스스로 죽은 것은 먹지 말 것이니 - "스스로 죽은"동물은 그 고기에 피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먹을 때에는 피도 겸하여 먹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일찌기 이스라엘더러 피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창 9:4; 레 7:24-27,17:10-14).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 - 이 말씀에 대하여는 나의 창세
기 주석, 575페이지를 참고하여라.
신 14:22-25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그 농산물의 십일조를 가지고 성전에 가서 제물로 바치고, 자기 가족들과 함께 즐거워해야 될 것을 말해준다. 제물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것은 단순한 식사뿐이 아니고, 그것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의 순서로 간주되었다.그러므로 23 절에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고 하였다. 이런 예배는 신약 시대의 성찬식을 예표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성찬식에서는 신자들이 먹고 마시는 것으로 신앙을 비유한다. 먹고 마시는 것 같이 믿는 것이야말로 거짓이 없는 내부적(內部的)인 믿음이고, 주님과 연합하는 믿음이고, 실제적 믿음이다. 이 점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성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편리한 방법을 보여주기까지 하신다. 그것은 그 모든 예물을 먼 거리에서 가지고 올 필요없고 그것들을 팔아 그 돈으로 성전 가까운 곳에서 다시 그와 같은 제물의 재료를 사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지도하심에 있어서 이렇게 주밀하시고 자세하시다. 제사법이 이렇게 자세한 것이 신자들의 신앙에 유익하다. 그 이유는 신앙이란 것은 계시 의존 사색(啓示依存思索) 안에서만 참다운 생명을 보존 하기 때문이다. 신앙에는
자율주의가 금물이다. 신자는 이러한 주밀하신 하나님의 지도 아래서 움직일 때에 오히려 기쁨과 안전 보장을 느낀다.
네 성읍에 거하는 레위인은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 (27 절). 곧,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그 권속들과 함께 제물을 먹을 때에 레위 사람들과 함께 먹으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신령한 일을 맡은 자들을 잊지 아니하시고 물질면에 있어서도 빈틈 없이 그들을 돌보아 주신다. 이런 말씀은 레위기와 민수기에도 많이 있다.
신 14:28,29
여기서는 매 삼년 끝에 농산물의 십일조를 도시 가운데 저장하고 레위 사람을 돌보라고 하며, 또한 불쌍한 자들(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을 도와주라고 한다.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불쌍한 자들을 잊지 아니하신다. 잠 19:17 에 말하기를,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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