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22:1-3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읜 이스라엘 백성의 많음을 인함이라 - 고등 비평가 그레
(Gray)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왕정 시대에 이르러서야 이렇게 많은 백성을 가진 나라
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민수기는 왕정 시대의 어떤 저자의 글이라고 한
다. 그러나 그 때에 이스라엘 사람의 수효가 많았다는 것은, 군대의 수효가 많았다는
뜻이다. 그 때 이스라엘 장정의 거의 전부가 군인이었겠으니, 그 수효가 많았을 것은
확실하다. 여기 "백성의 수효가 많았다"는 것은, 하필 왕정 시대에 번성한 인구를 생
각하였다고 할 것은 없다.
민 22:7,8
복술의 예물을 가지고 - 이것을 보면, 그 때에 술사들이 보수를 위하여 일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참된 선지자들과 다른점이다. 참된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위하
여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사람들이야 듣든지 말든지 예언하였다(겔 2:5).
발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 발람이 만일 참된 예언자였다
면 그 때에 이스라엘에게서 되어진 일들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음을 깨달았을 것이
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있는 여부를 알아보려고 시간 여유를 만
든 것은, 그가 참 선지자가 아니었던 증표이다.
민 22:9-12
이 사람들이 누구냐 - 이것은 하나님께서 발람을 책망하신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만 있으면 저주하려는 발람의 태도를 이 말씀으로써 정죄하신다.
발람이 그 사람들을 자기와 함께 유숙하도록 한 것부터가 잘못이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그런 옳지 않은 자를 만나 주셨을까 하는 것
이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될 것 없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때에 자기의 진리를 나타내
시기 위하여 그의 원수도 사용하시는 일이 있다. 그는 가야바를 통하여서도 그리스도
의속죄의 죽음을 예언하셨다(요 11:49-53). 그 때에 발람이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성을
알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혹 축복하거나, 혹 저주하는 일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런 일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영
광을 위하여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니고 사리사복(私利私腹)을 위하여 그리하였을 것이
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자를 이용하셔서라도 이스라엘에게 대한 자기의 계획을 계
시하셨다. 하나님의 진리는 이렇게 진리의 원수까지도 본의 아니게 증거하게 되어지나
니 여기서 그 진리의 확실성이 역시 별다르게 나타난다. 원수라도 별 수 없이 하나님
의 진리의 포로가 되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보호하시되 이렇게 철저히 하신다. 그는 어떤 때에
거짓 선지자의 입까지도 주장하여 그 백성에게 해로운 말을 못하게 하신다. 물론 악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훼방하는 일이 있으나, 그것은 그들을 해롭게 하지는 못하
는 것이다. 참으로 해롭게 하는 저주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인데, 그런 저주가 그의
백성에게는 오지 않는다.
민 22:13,14
여기서는 발람이 발락의 사신(使臣)들을 돌려보낸데 대하여 말한다. 그들은 발락에
게로 돌아가서 그 모든 경과를 보고하였다.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발락이 그 집에 은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어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
노라 - 발람은 여기서 참 말을 하는 것 같으나 실상 그 중심은 삯을 받으려는 미혹에
서 떠나지 못한 것이다. 여기 표현된 그의 말은 실상 하나님께 아첨하는 것 밖에 되지
못한다. 시 78:36 참조. 거짓된 자들은 자기도 속고 남도 속인다.
여호와 내 하나님 - 고등 비평가 그레이(Gray)는 말하기를, "여기서 발람의 본래
사용한 말은 '하나님'란 말을 첨부하여 이방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같다는
뜻을 표시하였다"라고 한다(Numbers, p.317). 그러나 이와 같은 견해는 마땅치 않다.
그 이유는 그 때에 발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빙자하여 예언한 것이 사실이니, 그가
"여호와"란 성호를 몰랐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너희도 이밤에 여기서 유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 보리
라 - 이 말도 그가 탐심에 끌려서 발락에게 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
는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였다.
민 22:15-17
발락은 더 높은 귀족들을 발람에게로 보내어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힘썼다. 이 때에 바락은 발람에게 더 큰 보수를 주기로 약속한다(17절). 이렇게 거짓
선지자는 보수(報酬)에 매여 움직인 것이 사실이다.
민 22:18,19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발락이 그 집에 은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어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
노라 - 발람은 여기서 참 말을 하는 것 같으나 실상 그 중심은 삯을 받으려는 미혹에
서 떠나지 못한 것이다. 여기 표현된 그의 말은 실상 하나님께 아첨하는 것 밖에 되지
못한다. 시 78:36 참조. 거짓된 자들은 자기도 속고 남도 속인다.
여호와 내 하나님 - 고등 비평가 그레이(Gray)는 말하기를, "여기서 발람의 본래
사용한 말은 '하나님'란 말을 첨부하여 이방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같다는
뜻을 표시하였다"라고 한다(Numbers, p.317). 그러나 이와 같은 견해는 마땅치 않다.
그 이유는 그 때에 발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빙자하여 예언한 것이 사실이니, 그가
"여호와"란 성호를 몰랐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너희도 이밤에 여기서 유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 보리
라 - 이 말도 그가 탐심에 끌려서 발락에게 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
는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였다.
민 22:20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 얼른 보면 이 말씀은 모순된 듯하다. 하나님께서는 얼마 전에는 가지 말
라고 하셨었는데 이제는 가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 난제는 쉽게 해결된다. (1) 칼빈
(Calvin)은 이것이 풍자적(諷刺的)인 말씀이라고 함. 곧, 이 말씀은 기쁘게 허락하는
것이 아니고 발람의 가고자 하는 태도를 좋지 않게 여기시면서 방임하는 뜻이라고 한
다. (2) 키스펜(Gispen)은 이것을 교육적인 처사라고 함. 곧, 발락에게 가고자 하는
발람을 가도록 하여 가지고, 그 가는 도중에 하나님께서 그를 가르치시려고 하신다는
것이다. 위의 어느 해석을 취하든지 문제는 해결된다.
민 22:21-33
이 부분에서는 발람이 나귀를 타고 가다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던 일에 대하여 자
세히 말한다. 여기 기록된대로 나귀가 말한 일에 대하여 두 가지 해석이 있다. (1) 실
상 나귀가 말한 것이 아니고, 발람이 환상 중에 나귀의 말을 듣는 체험을 하였다는
것. 그러나 우리 본문은 환상을 말하지 않는다. (2) 사실상 하나님께서 이적적(異蹟
的)으로 나귀로 하여금 말하게 하셨다는 것. 이 해석이 우리 문맥에 맞는다.
이 부분(21-35)에는, 발람의 행동이 나귀만도 못하다는 하나님의 교훈이 들어 있
다. 그것은, 발람이 나귀에게 책망을 받은 사실과(28,30), 또한 여호와의 사자의 말
가운데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고 한 것(33절)을 보아서 알 수 있다.
민 22:36-39
여기서는 발락과 발람이 서로 만난 뒤에 되어진 일들을 간단하게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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