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13:1,2
가나안 땅을 탐지하게 하되. -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사람들을 보내어 가나안 땅을
탐지하게 하신 것은, 그 때 민중의 요청을 허락하시는 형식으로 된 것이다(신
1:22-23). 그들은 불신앙으로 인한 공포심 때문에 이런 요청을 하였다. 신 1:21 참조.
그 종족의 각 지파. - 여기 "종족"으로 번역된 말(* )은 실상 "조상들"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이 문구의 의미는 그들의 조상들이 속해있는 각 지파란 뜻이다.
족장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 정탐으로 보냄이 된 자들은 각 지파의 족장들인 만
큼 그들은 유력한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한 사실을 보
니 그들 중 대다수가 불신앙으로 움직였다. 유력한 인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다 신앙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선물이다(엡 2:8).
민 13:3
바란 광야. - 창 21:21; 민 12:16; 삼상 25:1 참조. 이 광야는 현재 바디예트 에티
(Badijet ettih)라고 한다(W.H. Gispen). 이 땅은 아무 것도 심지 못하는 곳이다. 이
곳은 시내 광야의 북쪽이고 아라비아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민 13:4-9
여기 열 두 정탐의 이름이 기록되었는데, 그들의 부친들의 이름까지 밝힌다. 이것
을 보면 오경의 기록은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실을 근거한 것이 분명하다.
민 13:17-20
남방 길(17절). - 이것은 가나안 땅의 남방을 의미한다.
진영인지 산성인지(19절). - "진영"이란 말은 촌락을 의미하고 "산성"은 군사 시설로
방위되어 있는 도시를 말함이다.
담대하라(20절). - 그들에게 신앙의 담력이 있어야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탐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 담대하지 않고는, 후에 돌아와서도
이스라엘에게 소망을 줄 수 없다. 여기 "담대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담
대하라는 신앙적 담대를 말함이다. 생래적(生來的)으로 겁약한 사람들도 신앙이 독실
하면 담대하여지는 은혜도 필요에 의하여 받는다.
그 땅 실과를 가져오라(20절). - 모세와 이와 같은 부탁은, 그 땅의 비옥함을 이스
라엘에게 알려주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이 좋은 땅이라는 말은 들었으나
실지로 보지는 못하였다. 모세는 실물을 보여주므로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
을 더욱 믿게 하려고 한다.
그 때는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이었더라. - 팔레스틴에 포도가 익는 때는 일년에
몇 번 있는데, 처음 익는 때는 7, 8월 경이다.
민 13:21-24
"하맛 어구 르홉" - 은 가나안 북쪽에 있고,
"헤브론" - 은 가나안 남쪽에 있다.
"아낙 자손" - 은 신체가 거대한 족속인데, 그 족속에 속하는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 - 는 모두 거인(巨人) 족속을 말함이다.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 한 송이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23절). - 그들이 이와 같이 한 것은 모세의 부탁대로 순종한 것이다. 20절
해석을 참조하여라.
민 13:25-28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27 절). - 그들의 이와 같은 보고는, 그들의 본 사
실이 하나님의 말씀과 같음을 증명한다(출 3:8). "젖과 꿀이 흐른다" 함은 젖과 꿀이
많이 나는 것을 말함이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
을 보았으며(28절). - 그 땅의 형편이 하나님의 말씀과 부합한 사실을 보고 온 그들이
이렇게 낙심하는 보고를 한다. 이것은 모순된 행동이다. 그들의 본 사실이 하나님의
말씀과 부합한다면 그것으로 그들은 용기를 얻어야 되고 하나님의 진실성을 믿어서 가
나안 정복을 담대히 추진해야 될 것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보고는 비관적
으로 끝났다. 곧, 그들의 마음은 강대한 민족 아낙 자손들 때문에 겁약하여졌다.
민 13:30-33
이 부분에는 정탐들 중의 한 사람인 갈램의 신앙이 기록된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불신앙이 나타나 있다. 갈렘은 비관하는 민중을 안돈시키면서 가나안 정복에 승리할
것을 확언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이렇게 담대하여져서 가나안 정복의 불
리한 조건들을 그의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 언제든지 신앙은 이와 같이 움직인다.
다른 정탐들은 또 다시 비관하는 말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악평하였다
(32절).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악평도 이와 같다.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천국 소망을 악평으로써 꺽으려고 한다. 그 정탐들은 또한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이 장대하다고 하면서 이스라엘의 힘으로써는 싸워 이길 수 없다고 보고한다(33절).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약하게 만드는 자들도 이렇게 보이는 현실만으로 타산하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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