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출애굽기 33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출 33: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기를 네
자손에게 주마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어디까지나 그의 언약
을 지키시겠다는 것이다. 그는, 일찌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가나안 땅을 주
시마고 여러 차례 약속하신 바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금송아지 우상 사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 계약의 근본적 부분을 폐기하시려고 하신다. 다시 말하면, 그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시마 하신 땅을 주시되 그 계약의 골자 곧,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 되시는 귀한 요서는 철회(撤回)하려고 하신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계약의 외
부적 부분만(가나안 땅을 주실 약속)은 이행하시려고 하신다. 그가 이렇게 하심은 그
의 불신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이 금송아지 우상을 섬겼으므
로 벌써 그들 측에서 하나님을 버린 까닭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가 아직도 가나안
땅만은 주시려고 하셨으니, 그것은 그의 후의라고 생각된다.


 출 32:2,3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 이스라엘 민족 상대로 결성된 본래의 계
약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그 초점으로 가진다. 이것이, 신약
적 견지에서는 영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영생이란 하나님을 떠나서는 생각될 수도 없
다. 그 이유는, 죽지 아니하심이 그에게만 있기 때문이다(딤전 6:16). 그러므로 신천
신지(神天神地)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영생도, 결국 그들이 하나님을 그들의 하
나님으로 모신 것으로 드러난다(계 21:3). 이렇게 영생은 신구약을 통하여 한 모양으
로 계시되어 있으니, 곧, 사람이 하나님을 소유함이다. 2절 초두에 "사자를"(*
 ) 이스라엘과 함께 보내시겠다는 약속이 있는데, 그 "사자"는 그리스도를 의
미하는 "여호와의 사자"라는 이는 아니다. 출 23:20 참조.


 출 33:4-6

 백성이 이 황송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그 몸을 단정하지 아니하니 -
(4 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가시지 않으시겠다는 말씀(3 절)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크게 근심하게 되었다. 여기 "황송한 말씀"이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하따바르 하라(*   )인데, 그 문자적 전역은, "그 불행한 말씀"이다.
"황송한 말씀"으로 번역된 것은 옳지 않다. "그 몸을 단장하지 아니"함은, 회개의 정
신을 공적으로 표시하기 위함이다. 회개자는 옷을 찢는 것보다 마음을 찢어야 한다고,
요옐 선지자는 말하였다(욜 2:13). 이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몸을 단장하지 아니한"
것도 심령의 통회를 위주하지만, 외부적으로 그 슬픔을 표시하여 회개의 정신을 그 분
의기에 까지 나타내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회개를 장려하는 것이다. 그들이 이와
같이 한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신 까닭이었다. 그 명령이 이들의 이
와 같은 처사 전에 벌써 있었던 것이다(5-6). 어쨌든 그들은, 그 때에 하나님의 명령
을 복종한 것만은 사실이다.


 출 33:7-11

 이 부분에서는, 하나님을 대리한 모세가 이스라엘 민중의 거처하는 진(蔯)에서 "멀
리 떠나" 별도로 "장막"을 시설하고, 거기서 하나님을 만난 사실을 보여 준다. 이렇게
별도로 시설한 장막을 "회막(*  )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과 사
람이 모이는 "장막"이란 뜻이다. 이것은 26 장에 진술된 성막을 말함이 아니고, 일시
적으로 사용되기 위하여 마련된 것 뿐이다. 모세가 이와 같이 한 목적은, 이 때에 이
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나타시는 자리에서 격리시켜 그들로 하여금 반성케 하려는
것이다. 7절 초두에 이는 "항상"이란 말이 히브리 원문에는 없는 것인데, 여기에 오
역되었다. 모세가 이와 같이 별도로 마련된 "회막"에서 하나님을 만나 보게 됨으로
인하여, 백성 가운데는 세 가지 일이 생겼다. (1)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
깥 회막으로 나아가며(7 절 하반), (2)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의 거처하는 "장막문에
서서 모세"를 바라보았으며(8 절), (3) 어던 사람들은 자기들이 거처하는 "장막문에
서서" 멀리 회막을 향하여 "경배"하였다(9-10). 백성의 이와 같은 태도를 보면, 이 때
에 와서는 그들이 겸손하여졌으며, 또 하나님을 사모하였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자들
을 그에게서 격리시키므로 그들은 다소 반성하게 되고, 또한 회개하게도 되어진다.
신약 교회에서 범죄한 자들을 책벌하여 일반 성도들과 그들과의 교제를 제한시키는
것은, 출애굽기에 기록된 이 부분 정신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택한 백성은,
징벌을 받을 때에 자기를 반성하며 회개한다. 징벌을 달게 받지 않는 것은, 불택자들
의 취하는 불의한 행동이다.


 출 33:12-15

 하나님은 진리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 그는,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우상 사건으로
인하여, 이제부터 그들을 떠나시고 그들과 함께 하지 아니하시려고 하신 것이다(3
절). 그러나 이 부분(12-13, 15-16)에 기록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셨
다.


 출 33:18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을 직접 보다시피 대면하기를
원하는 기도이다.


 출 33:1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 하나님을 보기 원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
(善)을 보여 주시고자 하신다. 그의 "선"은 그의 모양이 아니고 그의 윤리적 속성이
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직접 볼 수 없고, 영적으로 그의 사랑과 그의 의로우심과
그의 거룩하심을 인식함으로 족하다. 그것들을 깨닫게 되는 때가 "여호와의 이름"을
알게 되는 기회이다. 하나님은 영(靈)이시기 때문에 외부적 형상을 가지지 않으셨다.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 이 말
씀에 대한 칼빈(Calvin)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곧, 사람마다 하나님의 선을 깨달을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만이 깨닫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 이 말씀은
그런 의미로 나온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은혜 베푸시는 이"란 뜻으
로 나왔다(34-6-7).


 출 33:20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 여기
이른 바 "얼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하나님은 육체가 아니시니 얼굴을 보는 여부의
문제조차 우리는 관설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본문에 사람이 그의 얼
굴을 보면 죽는다고 하였으니, 무슨 말씀이나 "여기 이른 바 그를(혹은 그의 "얼굴
"을) 본다는 것은, 사람이 그의 성결성 앞에 직면하게 됨을 말한다. 사람은 죄인인
고로 하나님의 성결성 앞에 직면하면 죽을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되, 그의 나타내신 일들을 통하여 아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 이상 더 하나님에게
침투해 들어 가려고 해서는 안된다. 만일 태양빛이 공기를 통하지 않고 직접 우리에게
온다면, 우리는 다 타져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공기를 경유하여 우리에게 오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적합하게 된다.


 출 33:21-2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섰으라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 이 말씀은, 산 꼭대기에 있는 모세에게 이루어진 일들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기를 알려 주시기 위하여 특별한 형편으로 나타나셨는데, 그 때에도 모세로 하여금 그의 뒷모습(그가 지나가신 뒤에 남겨 놓으신 영광)만 보도록 하셨다.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가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란 말씀이 그 뜻이다. 이 부분에서 볼 수 있는대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반석 틈에 두시고" 그의 손으로 "덮으셨다"는 것은, 모세로 하여금 하나님을 직접 보지 못하도록 하심을 말해 준다.


Articles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