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16: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 이월 십 오일이라 - 그들이, "엘림"에서 "신 광야"에 이르기 전에 한 번 홍해 가의 어떤 지점(地點)에 머물렀던 것이다(민 33:10), 그러나 본서에는 그것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곳에 오기까지 그들은 애굽에서 가지고 나왔던 양식을 먹었을 것이다.
출 16:2,3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 이 때에 이스라엘 민족이 먹을 양식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다. 그들의 "원망"하는 소리는, 몇 가지 죄악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1) 그들이 애굽 땅에서 구원되어 나옴보다 거기서 떡을 배불리 먹음이 좋을 번 하였다는 사상. "애굽땅에서 고기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란 말(3절 상반)이, 그런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2)일시적 흥분으로 나오는 반역적 태도. "애굽땅에서...죽었더면좋았을 것"(3절 상반)이라고 하면서 원망했는데, 그들은 실상 언제라도 애굽에서 죽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시점(時點)에 와서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대하여 반역하는 심리로 극도로 흥분되어 이렇게 말한 것이다. (3) 그들이 그 찰라에 떡이 없어서 죽을 줄로 아는 불신앙 사상.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라고 한 말(3절 하반)이, 그와 같은 불신앙을 나타낸다. 물론 그 때에 양식을 채아 볼 수 없는 광야에 떨어진 그들로서 아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앙은 그런 때에 필요한 것이다. 신앙의 열매는 여러가지이겠지만, 특별히 그런 때에는 하나님의 약속에 매달리어 용단을 내리고 기다리는 신앙이 필요하다.
출 16:4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다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 "하늘...양식"에 대하여는 16절 끝에있는 설교를 참조하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원망하는 무리를 꾸짖지 않으시고, 도리어 "양식을 비 같이 내리"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것이, 죄인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취급 방법중 하나이다. 곧, 그들이 범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넉넉히 주시는 은혜의 방법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방법을 쓰시는 것은 어떤 때이며, 또한 어떠한 종류의 죄인들을 상대하신 것인가? 우리는 이 점에 대하여 판단하기 어렵다. 이런 난문제는 그의 깊으신 지혜에 속한 것으로 알고, 우리는 믿을 뿐이다. 지혜있는 부모도, 많은 과오를 범하는 자식을 취급함에 있어서 매번 꾸짖지 않고 어떤 때에는 침묵하여 그의 필요한 요구를 이루어 주기도 한다. 하나님의 그 깊으신 지혜와 사랑에 대하여 인간은 헤아릴 수 없다. 롬 11:33-35 참조.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와 같은 지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물질에 대하여 취할 보편적 진리에 근거한 것이다. 잠 30:8 하반-9의 기도도 이와 같은 진리를 가르쳤고, 마 6:11에 있는 주기도문도 이 진리를 보여 준다. 신자는 부자되기를 원할 것이 아니고,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 앞에서 받는 것으로 만족 할 줄 알아야 된다. 그가 일용할 양식 이외의 수입을 가질 수 있으나, 그 수입을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 그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야 된다.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15:25하반-26 참조. 여기 이른 바 "율법"이란 것은, 그들이 하늘에서 내린 양식을 거두어 들임에 있어서 지킬 법도를 말한다. 16-20절 참조. 이 밖에 모든 율법도, 하나님 백성의 신앙 인격을 훈련(시험)시키기 위한 것이다. 신자들은, 특별히 물질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그 신앙이 향상(向上)된다.
출 16:5
제 육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 그들이 "제 육일에" 배나 거두는 이유는, 그 다음 날(안식일)에는 그들이 쉴 것이고 하늘의 양식을 거두지 않도록 되었기 때문이다.
출 16:6
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 곧, 저녁 때에는 메추라기 떼가 하나님의 권능에 의하여 이스라엘 진(陣)으로 날아 들게 되므로, 그들은 자기들을 출애굽시키신 하나님의 권능을 재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출 16:7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하여 원망하느냐 - 곧, 하나님께서 아침에는 하늘나라 만나를 내리시므로, 그들이 그것을 먹고 살게 될 것이었다. 만나가 내림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권능인 것이다. 그가 이와 같은 권능을 행하심은, 그들이 하나님을 원망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이 하나님을 원망한 일때문에 벌을 받지 않고, 도리어 그의 능력의 도우심을 받는다는 것은, 얼른 보면 모순된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은혜의 원리에 속하는 하나님의 처사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구원해 주신다.
출 16:8
이 귀절 말씀은, 위의 6-7절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출 16:9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명하기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느니라 하라 - 모세는, 하나님을 원망한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죄감을 느끼도록 하려는 것이다.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그들이 하나님을 원망할 때에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잘못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곧, 하나님은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모세와 그민중이 있는 자리에 계시다는 것이다. 모세에게 "가까이 나아오"는 것은,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함과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모세를 원망할 때에 하나님이 그 원망을 들으셨다.
출 16:10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 아론은, 모세의 부탁대로 이스라엘 민족더러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고 촉구하였다. 그 때에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났다. 13:22 참조. 그들은, 그 때에 하나님께서 저희와 함께하심을 재인식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 때에 저희의 원망하는 말을 하나님이 들으신 줄 깨달았어야 될 것이었다.
출 16:11,12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신 결과로 이제 "고기"(메추라기)와 "떡"(만나)을 주시겠다고, 재차 역설(力說)하신다. 6-7절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신바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원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도리어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이, 본장의 주요한 사상이다. 이것이야말로 롬 5:20에 말씀한바,"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사상으로써 택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복음적 행동 원리를 잘 드러낸다.
출 16:13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사면에 있더니 - "메추라기"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핫셀라우(* )인데, 메추라기의 큰 종류를 말함이다. 그러므로 70인역(LXX)은 이것을 올투고메트라(* ) 곧, "왕(王)메추라기"라고 번역했다. 아라비아에는 이런 새가 봄철에 아프리카 내지에서 북쪽으로 날아 이동하였다가 가을에 돌아간다고 하는데, 그 때에는 그 새가 너무 많기 때문에 아이들이 막대기로 쳐서 잡기도 한다고 한다(Diod. Sic. 1. 60; Schubert, Reise, p.361). 그러면, 이스라엘 민족이 이 지방을 지나갈 때에는 특별히 하나님의 권능에 의하여 그 새들이 막바로 그 진(陣)을 뒤덮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일은, 단순한 자연현상만이 아니고 자연 현상에 하나님의 특수 간섭도 가해진 것이다. "이슬이 진사면에 있더니." 여기 "이슬"이란 것은 이슬 같은 것을 말함이다. 만나는 이슬처럼 흠뻑 "진 사면에" 풍성히 내렸다. 4절 하반을 참조하여라.
출 16:14,15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 "만나"는 어떤 자연수(自然樹)의 생산물이 아니고 초자연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그것을 지적(知的)으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무엇이냐"(* =만후)란 질문이 그래서 나왔으며, 그 질문(만후란말)의 어음(語音)이 그 떡의 이름이 되었다(31절). 그것이 초자연적의 것임을, 모세가 15절 하반에 잘 밝혀 주었다. 곧,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고 한 말씀이다.
출 16:16
이 귀절 말씀에 대하여는 4절 하반의 해석을 참조하여라.
출 16:17,18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호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 - 곧, 이스라엘 민족이 만나를 거둘 때에, 하나님이 지시하신 분량을 초과하여 "많이 거둔 자"도 있었고, 또 혹은 그 분량보다 "적게 거둔 자"도 있었다. 그랬음에고 불구하고 "되어 본즉", 각자의 거둔 것이 각 사람에게 정해 주신 분량 만큼만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도 바울의 해석대로 알려진 뜻이다. 바울은, 고후8:14-15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기록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였다. 사람들의 거둔 것이 개인에 따라 하나님의 지시하신 분량대로 되어지지 않았어도, 거기에도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간섭하셔서 그 거둔 것이 결과적으로는 그의 지시하신 분량대로 되었다는 것이다.
출 16:19,20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모세의 말을 청종치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 그들이 만나를 그 이튿날 "아침까지"남겨 둔 것은, 다음 날을 위한 예비로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그것은, 그 이튿날에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인데, 그것을 믿지 않고 인간의 지혜를 써서 하나님의 명령(이튿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는 명령-19절)을 어긴 행동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벌하시는 의미에서, 그들의 남겨 두었던 만나에 벌레가 생기게 하셨다. 이 사건은, 신자들의 물질취급의 원리를 보여 준다. 신자들은 자기 사욕을 따라서 물질을 저축하면 안된다. 마6:19-20 참조.
출 16:21
무리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고 해가 뜨겁게 쪼이면 그것이 스러졌더라 - 이것은, 그 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침"일찌기 나가서 만나를 거두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만일 누구든지 나태하여 "해가 뜨겁게 쪼이"기 전까지 만나를 거두지 않았으면, 후에는 그것을 도무지 거둘 수 없었다. 신령한 은혜도 그렇다. 우리가 은혜의 임하는 기회에 참석하지 못하면, 후에는 그런 은혜를 못받을지도 모른다.
출 16:22-27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23절) - 민 11:8 참조.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23절) - 이것은, 그 이튼날 곧, 안식일을 위하여 예비함이다. 이 부분(22-27)말씀을 보면, 사람들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만나에 대해서 특수 간섭을 하셨다. (1)제 칠일에는 만나를 거두지 않고 전날 거둔 것을 그날까지 남겨 두었어도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아니한"것(24절). (2)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치 않는 자들이 "제 칠일"에도 만나를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한"것(27절). 위의 두가지는 하나님의 특별 간섭으로 된 기적이었다.
출 16:28-30
이스라엘 민족 중 어떤 자들이 "안식일"을 범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꾸짖으시고 "안식일"을 지키라고 부탁하셨다. 그 때에 그 민족이 잘 순종하였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 그 때에 자기 백성을 취급하심에 있어서 징벌로써 하심보다는, 사랑과 교훈으로 하신 사실이다. 이 때는 그들이 애굽에서
나와 처음으로 나라를 이루는 초기에 있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민족의 그 시절을 가리켜 "소년의 때"라고 하였다(렘 2:2). 겔 16:1-14 참조. 이스라엘 민족은 이 때에 아직 율법을 완전히 받지는 못하였고, 또 종교적으로 많은 연단을 받지도 못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그들을 양육하시는데 치중하셨다.
출 16:31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고도 희고 맛은 꿀섞은 과자같았더라 - 여기"만나"라고 한 말은 히브리원어로 만(* )이니,만 후(* )에서 유래된 듯하다. 만 후(* )는 "무엇인가?"란 뜻이다. 이 점에 대하여 16절 끝에 있는 설교를 참조하여라. "깟씨"란 말은 까드(* )란 식물의 씨를 의미한다. 영어로는 코리안델(Coriander seed)인데, 그 모양이 둥글다. 그것은 요르단 골짜기에 많이 있다고 한다.
출 16:32-3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더러 "만나 한 호멜"만 항아리에 담아서 "대대"토록 간수하라고 하실 때에, 아론이 그 명령을 순종하였다. 그것을 후대인들에게 보여 주기 위하여 보관한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곧, 하나님의 놀라우신 기적적 역사를 후대인들에게 알게 함이다. 하나님께서 옛날 이스라엘 민족에게 행하신 일은, 후대의 우리도 위한 것이었다(롬 15:4 ; 고전 10:11).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리신 사건을 보고, 택한 백성을 대대토록 사랑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
"증거 판 앞에"란 어귀의 "판"이란 말이 원문에는 없다. 이 어귀의 히브리원어 리
프네 하에두드(* )는 "그 증거 앞에"란 말인데,"그 증거"란 말은 법궤를 뜻한다. 율법책이 후에 법궤 안에 비치 되었으니 만큼, 그 앞에 만나 항아리를 간수하는 사건도 후에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금부터 그 일을 미리 부탁하여
두신 것이다. 히 9:4 참조.
출 16:35
"이스라엘 자손이...만나를 먹"게 된 것은, 식량이 전연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기적으로 되어졌던 것이다. 이 기적은, 식량이 자연계로 말미암아 공급되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계속되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필요 없는 이적을 행하시지 않는다.
출 16:36
호멜은 에바 십분의 일이더라 - 한 "호멜"은 4리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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